‘선녀와 나무꾼’ 작품 시리즈 14점 포함 200여 점 전시
세종문화회관 세종무실관서 오는 4월 7일까지 열려

[사진제공=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서 어느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누지 않은 채 그림만 그렸습니다. 오오카야마 초등학교에 다니게 된 이후에도 그랬습니다. 그런 내 모습을 걱정한 어머니는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상담을 했습니다. 이렇게 그림만 그려도 될까요? 그러자 선생님은 자신이 그린 그림을 같은 반 친구들에게 보여주기도 하고 즐거워하고, 잘 웃기도 하니 걱정하지 마세요. 괜찮습니다. 라며 어머니를 안심시켰습니다. 나중에 어머니는 나에게 그 말을 듣고 마음을 조금 놓았다는 말을 해줬습니다. ” 후지시로 세이지 어린 시절의 증언 中 발췌

【투데이신문 박세진 기자】그림자 회화(카게에) 거장으로 불리는 일본 작가 후지시로 세이지의 ‘오사카 파노라마’ 전시가 오는 4월 7일까지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에서 열린다. 2024년 100세를 맞는 작가는 모든 인류가 이 땅에서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 메시지를 담아 작업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한 세기에 걸친 빛과 그림자의 파노라마를 선보인다. 특히 조선 설화를 다시 읽고 재제작한 선녀와 나무꾼 작품 시리즈 14점과 6m가 넘는 초대형 작품을 비롯한 200여 점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후지시로는 이번 한국 전시를 앞두고 열흘에 걸쳐 ‘선녀와 나무꾼’ 열두 작품을 새로이 제작했다.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는 1958년에 다섯 작품을 제작하고 1973년에도 이 작품을 동화로 엮어 발행했다.

그 당시는 후지시로가 30대로 가장 왕성히 작업했던 전성기였으나 일부 원화들이 작품 촬영 등을 계기로 유실됐다. 선녀와 나무꾼도 원화가 남아 있지 않아 이번 한국 전시를 위해 12점을 추가로 제작해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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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광의 소나타_月光の響   [사진제공=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1947년 종전 후 대학을 졸업한 후지시로가 입사한 첫 직장은 영화배급사였다. 회사 일도 해가면서 그다음 해에는 쿠라시노테쵸우(삶의 수첩)이라는 여성지에 카게에 연재를 시작했다. 그 때 지면으로 처음 실려 세상에 공개된 게 ‘완두콩 다섯 알’이다. 이땐 물자 부족으로 철사나 굴러다니는 물건을 이용해 카게에를 만들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초토화가 된 도쿄에서 구할 수 있던 것은 골판지나 전구 따위가 전부였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일본은 여전히 정전이 잦았다. 그는 카게에를 제작하며 어둠 속에서 자신만의 빛을 찾았다.

그는 십 대에 이미 일본의 △독립미술협회전 △국화회전 △춘양회전 △신제작파전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았지만, 카게에에만 전념했다. 이후부터 그의 작품 활동은 상업과 예술의 모든 경계를 넘나들며 펼쳐지기 시작했다.

NHK 일본 공영방송국 개국 방송 시, 그의 극단 ‘모쿠바자’가 전속으로 채택됐고, 1960년대 비틀즈가 최초 아시아 투어를 마친 부도칸에서는 그의 분신과도 같은 캐릭터 케로용이 등장하는 ‘케로용 쇼’가 열렸다. 소니의 전신인 도쿄통신공업의 광고에는 <포도주 병의 여행> 카게에가 사용됐고, 날씨 예보, 공익광고를 비롯한 상업광고에도 그의 작품이 등장했다.

쿠라시노테쵸우의 표지와 내지에도 그의 작품이 사용됐으니 작가로서 그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고도성장기 일본 대중문화예술 발전의 중심에는 후지시로 세이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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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파노라마 大阪パノラマ   [사진제공=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그림자 회화 장르를 개척한 후지시로 세이지는 일본에서 100회 이상의 순회 전시 개최, 그림자극의 상연 횟수만도 2000회가 넘는다. 은하철도 999의 모티브가 된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 ‘은하철도의 밤’을 그림자극으로 상연한 작품은 일본 문부과학성이 공인한 특별 선정작이 됐다.

이번 ‘오사카 파노라마展’은 그의 역사적 발자취를 담은 작품들과 그가 애정을 담아 아끼는 작품들로 구성됐다. 아울러 후지시로가 전시 도면도 직접 그려서 그 의미를 더한다.

거장의 탄생을 알리는 모노크롬 시리즈 ‘서유기’와 ‘목단기’ 시리즈를 비롯해 일본의 국민작가이자 세계적인 동화작가인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를 소재로 한 ‘첼로 켜는 고슈’, ‘은하철도의 밤’, ‘구스코부도리 전기’등을 후지시로의 감각으로 소개한다.

또한 우리 국민에게도 친숙한 오사카, 교토, 나가사키 등 일본의 풍경을 담은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다. 이번 전시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카게에 소재는 다름 아닌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들이다.

겐지의 동화가 극으로도 그림으로도 세상에 나오지 않았던 시절 겐지의 동생이자 겐지 연구가인 미야자와 세이로쿠의 허락을 받아 카게에 극을 상연했다. 초연은 전쟁이 끝난 바로 직후였는데, 그 후로도 1000회 이상 상연했다.

鹿からもらったお嫁さん 2 [사진제공=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br>
선녀와 나무꾼 鹿からもらったお嫁さん 2 [사진제공=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후지시로의 카게에와 극에 있어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는 성장의 동력이 됐다. 겐지 동화가 ‘은하철도의 밤’에 의해 기도의 동화라고 불리게 됐다면 후지시로의 카게에는 ‘은하철도의 밤’에 의해 빛과 그림자의 기도라는 예술관을 확립하게 됐다.

‘은하철도의 밤’을 소재로 한 그림책은 1983년 브라티슬라바 국제그림책원화전BIB의 최고상을, 그림자극으로는 1982년 예술제의 우수상을 수상했다. 올해로 한 세기의 삶을 맞이한 거장이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사랑과 평화다.

그는 이번 전시가 한·일 양국 간의 관계가 조금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하며, 한 세기에 걸친 사랑·평화·공생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이 한국 관객들의 마음에 닿길 바란다는 100세 현역작가로서의 소회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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