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네트워크 김경식 대표<br>-&lt;착한 자본의 탄생&gt; 저자<br>-前 현대제철 홍보팀장·기획실장(전무)
▲ESG네트워크 김경식 대표
-<착한 자본의 탄생> 저자
-前 현대제철 홍보팀장·기획실장(전무)

대(大)그룹에서 일하다 보면 회장님 가족분들이 경영하는 회사들과 불편한 관계에 놓일 때가 가끔 있다. 필자의 경우 회장님이 만족해하는 행사를 마치고 행사 비용 문제로 그룹 계열 광고회사인 I사와 그런 일이 있었다.

2010년 4월 8일, 당진제철소 제1고로 준공식 행사는 성공리에 끝났다. 이날 행사는 현대차그룹 자체적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정주영 창업 회장도 못 했던 일관제철소 건설을 4전 5기로 해냈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의미를 더하는 것은 이 행사에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했다는 점이다. 당시 이 대통령은 남북 간의 연이은 군사 충돌로 외부행사 참석이 없었다고 한다. 2009년 11월 10일 우리나라 해군과 북한 해군 고속정 간 3번째 교전인 대청해전이 있었다. 그리고 2010년 3월 26일에는 북한 잠수함의 어뢰 공격으로 천안함이 침몰됐다. 이창기 준위를 비롯한 46명의 젊은 용사들이 희생됐으며, 구조 과정에서 한주호 준위가 순직했다.

남북 간의 대치 상황임에도 다행히 대통령이 행사에 참석했다. 창업 회장의 일관제철소에 대한 집념·추진·실패를 가장 가까이서 함께 했던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라 회장님 입장에서도 더 뜻깊은 행사였다. 행사 후 대통령을 배웅하고 회장님이 “오늘 저녁에 TV광고 나오는 거지?”라고 주위에 물으셨다. 동시에 모두 “예, 회장님!”이라고 말씀을 드렸다.

잠시 후 여러 임원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홍보 담당자인 필자는 참으로 난감했다. 이번 행사는 신문광고만 하고 TV광고는 안 한다고 몇 번이나 보고를 드리고 승낙을 받았었다. 그런데 갑자기 TV광고를 하라니? 무엇보다 TV광고는 사전에 광고 내용에 대해 심사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므로 며칠이 소요된다. 또 이미 짜여진 방송국의 광고 편성 중 다른 회사의 광고와 교체를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오후 3시경 지시가 떨어졌고 8시 뉴스부터 광고가 나와야 하니 5시간 밖에 시간이 없었다. 난감했지만 필자의 답변 또한 간단했다. “예, 알겠습니다!” 현대차그룹에서 일하면서 익숙해진 루틴이다. 생각하고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일을 하면서 생각해야 한다. 조건반사적으로 숙달이 돼있었다.

바로 그룹 광고 대행사인 I사와 작업에 들어갔다. 기존에 촬영해뒀던 영상을 편집하고, 광고 메시지를 준비해서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 심사 준비에 들어갔다. 광고 편성은 다행히 기존 예정된 현대차와 기아의 광고와 교체가 가능했다. 8시 뉴스부터 광고가 나갔다. 이 모든 과정을 I사 직원들이 훌륭히 수행해 줬다. 준공식 행사 언론보도부터 저녁 TV광고까지 홍보팀 업무는 잘 진행이 됐다. 필자는 5월 1일자로 임원 승진을 했다. 이번에는 지상(紙上) 발령이 났다. 준공식 홍보가 잘 못 되었으면 ‘또’ 다른 사람에게 기회가 돌아갔을 지도 모른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제1고로 준공식 기념 신문광고. TV광고를 생략하는 예산으로 신문 양면 와이드 광고를 준비했으나 정몽구 회장의 지시로 준비 5시간 만에 TV광고도 했다. [자료제공=ESG네트워크]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제1고로 준공식 기념 신문광고. TV광고를 생략하는 예산으로 신문 양면 와이드 광고를 준비했으나 정몽구 회장의 지시로 준비 5시간 만에 TV광고도 했다. [자료제공=ESG네트워크]

행사를 마치고 I사에서 구두로 대금 청구를 해왔다.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많은 금액이었다. 지루한 공방을 통해 조율이 이어지고 최종 합의까지는 무려 1년이나 걸렸다. 그 사이 양사 실무자 간의 미팅이 수없이 진행됐다. I사 대표이사 명의의 공문도 두 번이나 전달됐다. 공문은 ‘이미 제작 참여 회사에 작업비를 지급했으니 대금을 달라’는 내용이었지만 확인해보니 아직 작업비는 지급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대금 내역을 직접 확인할 요량으로 세부 제작 명세서를 요청해서 받았다. 카메라가 몇 대 동원됐는지, 조명기구가 얼마나 소요됐는지 따져보기로 했다. 홍보영화 제작 때 알게 된 촬영 감독에게 홍보팀 직원을 보내 영상촬영 장비 소요와 임대료에 대한 자문도 받았다.

급기야 I사 담당 전무가 두 번이나 찾아왔다. 그는 항상 “고문님께서 현대제철에 관심이 많고 회의 때마다 잘 해드리라고 늘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인사를 했다. 고마운 말씀이었다. 고문님은 정몽구 회장님의 따님을 말한다. 그렇지만 엄격히 점검하는 일을 그만 둘 수는 없었다. 인사를 들으면서도 속으로는 ‘제발 준공식 광고 대행료를 아직 못 받고 있다고 고문님께 보고 좀 드려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연말이 다가오자 I사 대표이사가 현대제철 CFO(K 부사장)에게 대금 지급 독촉을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당시 K 부사장은 일관제철소 관련 회장님 보고 멤버 중 한 분이었고 제철소 투자에 소요되는 막대한 자금을 잘 조달해서 그룹 내에서 존재감이 있었다.

K 부사장의 호출에 경위를 말씀드리니 호통이 떨어졌다. “왼쪽 주머니든 오른쪽 주머니든 다 회장님 주머니다! 네가 왜 따지냐!?” 평소 필자는 명분과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일 처리로 주위에 불편해하는 사람들의 민원이 있었다. 그때마다 K 부사장이 방패 역할을 해주었다. 그만큼 필자를 아끼는 분이 호통을 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도 좀 언성을 높이며 말씀을 드렸다. “예, 부사장님! 그래서 저는 한 주머니에 그대로 두자는 것입니다.”

당진제철소 제3고로 화입식 행사장의 필자 모습. 당진제철소에는 총 3기의 고로가 가동하고 있다.&nbsp;[자료제공=ESG네트워크]<br>
당진제철소 제3고로 화입식 행사장의 필자 모습. 당진제철소에는 총 3기의 고로가 가동하고 있다. [자료제공=ESG네트워크]

이 일이 있고 나서 대금 청구서가 왔다. 1억원에 가까운 금액이었다. 돌려보냈다. 8개월여의 긴 협상에 10% 가까이 낮춰 금액을 제시해 왔다. 계열사간 업무라고 시간에 쫓겨 대충 넘길 수는 없었다. 결심을 했다. 해를 넘겨야 하니 회계처리는 알아서 하라고 회계팀에 통보를 했다. 그리고 만 1년이 지난 다음 해 4월 최종적으로 최초 제시 금액의 50% 수준에서 합의가 이뤄졌다.

필자가 계열사 간 거래, 그것도 회사의 실질적 경영자가 회장님의 가족임에도, 또 어떤 사람의 표현을 빌리자면 ‘임원까지나 된 사람’이 이렇게 엄격하게 한 것은 나름 이유가 있었다.

기업이 성장을 하게 되면 가치사슬이 복잡해진다. 특히 경제가 고도성장을 할 때는 타인 자본(자금) 동원 능력 즉, 계열사 확장 능력이 기업에는 중요하다. 각 그룹은 거래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또는 업무의 기밀 유지가 필요해서, 또는 상속을 목적으로 계열사를 늘려간다. 여기까지는 사회적으로 공식화된 패턴이다. 거래관계가 투명하면 문제 될 것도 없다.

I사는 2005년에 설립됐다. 당연한 일이지만 회사 설립 초기에는 그룹 계열사 광고가 대부분이었다. 매년 말이 되면 제주도 해비치 리조트로 계열사 홍보팀장을 초대해서 고객 사은 행사를 했다. 출발 전부터 김포공항, 제주공항, 해비치 리조트에 가는 동안 그룹사 홍보팀장(부장)들임에도 의전이 놀랄 정도로 격이 있었다. 현대백화점 1층 출입구 의전을 보고 ‘현대’도 저렇게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상이었다. 당시에는 ‘현대=투박’이란 이미지가 있었다.

해비치 리조트에 도착하니 고문님을 비롯한 임원들이 버스에서 내리는 직원들에게 90도 인사를 했다. 2박 3일간 워크샵을 하고 골프도 치면서 고문님과도 즐겁게 지냈다. 항상 먼저 대화를 걸어오고 편하게 해주려는 마음 씀씀이가 느껴졌다. 시중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재벌 3세가 전혀 아니었다.

그럼에도 꼼꼼하게 따지게 된 것은 필자의 일 처리 원칙도 있었지만, 당시 I사 일부 직원들의 일하는 태도가 더 컸었다. 그리고 회계연도를 넘겨 가면서까지 따지면서도 내가 느낀 고문님의 성품으로는 절대 필자를 질책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광고회사는 대부분의 작업을 외주(아웃소싱)로 진행하게 된다. 홍보영화 촬영 때 광고주, 광고대행사, 외주사 간에 아이디어 회의를 많이 해서 좋은 결과를 얻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런데 당시 I사 직원은 단순한 전달자에 불과했다. 광고주가 일의 배경과 희망 사항을 얘기하면 이 회사 직원은 외주사에게 “알아들었지?” 하고는 회의를 끝냈다. 그 배경에는 잘못된 믿음의 구석이 있었을 것이다. I사 직원의 일 하는 태도에 대한 불평이 다른 계열사로부터도 들려왔다. 회사 초창기 자유분방한 광고업계 직원들이 갑자기 제조업 스타일의 그룹사에 일하다 생긴 문화충돌일 수도 있었다.

그런 엄청난 일이 있었지만 필자는 그 이후로 승진을 하면서 11년간 근무했다. 준공식 행사 7년이 지난 2017년 11월 11일 11시에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 PPL광고를 했던 HCORE(에이치코어) 브랜드 광고 발표와 론칭 행사가 있었다. 이 행사도 I사가 대행을 했는데 광고는 물론 행사에 대해 고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회사 경영진과 직원들도 모두가 만족한 행사였다. 이번에는 I사가 청구한 금액이 너무 적어 보였다.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그룹에서 계열사간 내부거래가 많다. 계열사의 경영자가 오너 가족일 경우에는 거래 행위의 판단 기준을 법에 많이 의존한다. 이런 경우 법을 의식하기 전에 스스로가 더 엄격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회사를 더 건강하고 튼튼하게 키워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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