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지예·정민구·김정원씨 가족

모성 쓰려면 혼인신고서 기재해야
생후 6개월만 ‘성본변경청구’ 확정
“정원이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길”
“엄마 성 따라도 하늘 안 무너져요”

어머니 김지예(38)씨는 아이를 바라보고, 아버지 정민구(45)씨는  그의 머리칼을 정리해주고 있다. ⓒ투데이신문
어머니 김지예(38)씨는 아이를 바라보고, 아버지 정민구(45)씨는  그의 머리칼을 정리해주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정인지 기자】 “아이에게 엄마 성을 물려주는 건 웬만한 유난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난 8일 본보는 아버지 성을 따라 출생신고된 자녀의 성을 ‘성본변경청구’를 거쳐 어머니의 것으로 변경한 김지예(38·여)·정민구(45·남)씨 가족을 만나봤다.

부부에게는 혼인 7년 만에 아이가 찾아왔다. 이들은 아이에게 잘 어울리는 최고의 이름을 지어주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그러다 의문이 들었다.

‘왜  사람들은 아기에게 당연히 아빠 성을 붙이는 걸까?’

이에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엄마 성 물려주기’에 돌입했다. 대한민국에서 부부가 아이에게 엄마 성(모성)을 줄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혼인신고 시 해당 내용의 협의서를 제출하는 방법이다.  혼인신고서를 작성하는 예비 신혼부부들은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했냐’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추후 자녀에게 모성을 물려주고자 한다면 이 방법이 가장 쉬울 수 있겠으나, 새 출발하는 연인으로서는 난처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혼인신고서 작성 시점에 구체적인 자녀계획을 갖고 있는 부부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현행 민법에 따르면 자녀에게 모의 성·본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혼인신고서 양식의 ④항에 따라 미리 해당사항을 협의해 신고해야 한다. [자료제공=법원]
현행 민법에 따르면 자녀에게 모의 성·본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혼인신고서 양식의 ④항에 따라 미리 해당사항을 협의해 신고해야 한다. [자료제공=법원]

이처럼 자녀에게 모의 성·본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혼인신고서 제출 시 미리 신고해야 한다. 김씨는 “(아이가 생길) 7년 뒤를 내다보지 못한 것”이라며 “당연히 혼인신고 때는 미리 체크하지 못했다”고 언급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아이가 부의 성과 본을 따르리라 간주되는 것, 이것이 민법이 정하고 있는 ‘부성우선주의’ 조항이다.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 다만, 부모가 혼인신고 시 모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 모의 성과 본을 따른다. (민법 제781조 1항)

그렇다면 이를 이행하지 못했다고 해서 이들 부부의 아이가 태어났을 때 반드시 부성을 따라 살아야 할까? 정씨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이혼 후에 다시 혼인신고를 하고 거기(신고서 ④항)에 체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극단적인 방법에 부부의 눈앞은 아득해졌다. 합리적이지 않음은 물론이었다. 남은 방법이 있었다. 가정법원에 성본변경허가청구를 거치면 ‘될 수도 있다.’ 

아이의 이름은 정원으로 지었다. ④항에 따라 우선 아빠 정씨의 성을 따 ‘정정원’으로 출생 신고됐다. 이들은 법원에 아이가 모의 성과 본을 따름으로써 자신의 이름이 가부장적 가족 질서를 저항하는 맥락에서 지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평등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삶을 꾸려가길 기대한다는 내용을 제출했다.

그러던 지난 2021년 11월 9일,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부성을 택했다면 걷지 않아도 됐을, 유의미한 걸음이었다. 정정원은 출생 6개월 만에 김정원으로 살게 됐다.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서울가정법원 앞에서 열린 ‘엄마 성 빛내기’ 기자회견에서 김정원(4)양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투데이신문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서울가정법원 앞에서 열린 ‘엄마 성 빛내기’ 기자회견에서 김정원(4)양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투데이신문

이들 부부라고 해서 고민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성본변경청구는 대부분 재혼가정이나 한부모가정에서 신청하는 경우가 대다수기 때문이다.

여기에 ‘아이 성이 아빠와 다르면 아빠가 없거나 친아빠가 아닌 것 아니냐며 사람들이 오해할 것’이라는 주변의 우려도 더해졌다.

아버지 정씨의 결심도 필요했다. 그는 ‘아이에게 아빠 성을 물려주는 건 당연한 건데’, ‘남들도 다 그렇게 하는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뺏긴다’는 느낌을 인식하자 되려 이해가 갔다. 당연히 내 것이었다고 생각한 자신 또한 사회의 틀 안에 있었음을.

이제는 보여줄 수밖에. 엄마 성을 따른다고 해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이 아님을, 제도는 변할 수 있는 것임을 말이다.

“정원이가 어른이 됐을 즈음에는 엄마 성을 따른다는 사실로 누구에게도 관심받지 못하는 세상이 됐으면 해요. 만일 그때도 여전히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원이와 함께 쫓아가서 지상 최대의 차가운 눈빛을 쏘아주기로 했답니다.”

두 사람은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보다 자유롭고 평등하길 소망하는 마음으로 앞으로도 사회의 불합리에 맞서 나갈 생각이다. 

“정원이도 동의가 된다면 편견과 차별에 당당히 맞설 수 있으면 싶죠. 대신 ‘공부하라, 좋은 대학 가라, 돈 많이 버는 일 해라, 결혼해서 아기 낳아라’ 등의 잔소리는 하지 않을 테니, 정원이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닐 거예요. (웃음)”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서울가정법원 앞에 선 김정원(4)양이 몸만한 크기의 손팻말을 들고 있다. ⓒ투데이신문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서울가정법원 앞에 선 김정원(4)양이 몸만한 크기의 손팻말을 들고 있다. ⓒ투데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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