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성본 변경 허가 심판청구인 김정현씨

‘부성우선주의’에 따라 김해 김씨인 父 성본
“모성으로 변경된 이름으로 살아가길 원해”
“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가족성 선택하길”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가정법원 앞에 선 김정현(남·25세)씨 ⓒ투데이신문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가정법원 앞에 선 김정현(남·25세)씨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정인지 기자】 김중배(가명·남·62세)씨와 김영애(가명·여·59세)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그의 성은 김씨다. 당연하게도.

앞으로도, 그는 김씨일 것이다. 그러나 김정현(남·25세)씨는 최근 어머니의 성을 따르기 위한 ‘성본 변경 허가 심판청구’를 제출했다.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서울가정법원 앞에서 본보와 만난 김정현씨는 “아버지 성을 따르는 게 당연한 사회에 의문을 품고 제 성부터 어머니의 것으로 바꿔보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 김중배씨와 어머니 김영애씨는 각각 김해 김, 경주 김씨다. 김정현씨는 만약 양친의 성이 달랐다면 성본 변경을 준비하기까지 조금 더 고민했을 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반대로 ‘양친의 성이 같은데, 왜 굳이 성본 변경을 준비하고 있냐’는 질문을 숱하게 들었다고도.

이에 대해 김정현씨는 자신이 어릴 적부터 어머니 본가의 일원이라고 느껴왔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외가 친척과의 관계는 ‘전원일기’에 빗댔다.

“올해 초 12명이서 제주도 여행을 갔어요. 그 자리에서 저는 ‘경주 김씨 집안이라 참 화목해’하고 농담을 하기도 했죠.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 본가와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일원이라는 인식을 가졌어요. 이제는 어머니 성을 따름으로써 모계의 후손으로서 소속감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친가와의 관계 또한 나쁜 것은 아니나 만남의 횟수나 범위 모두 외가와의 그것에 비할 수는 없었다고.

매해 명절마다 아버지 쪽 친가를 먼저 만나는 점이나 어머니 쪽 행사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해지기 쉽다는 점 또한 의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성묘’도 그래요. 날짜 조율이 어려우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시기가 있는데, 아버지 쪽 산소를 가지 않고 어머니 쪽을 간다고 하면 ‘일반적이지 않다’는 느낌이 들어 항상 신경이 쓰였죠.”

“‘전통 속에 남아있는 성차별적인 관행들을 수행하는 것에 거부감이 컸던 것 같아요. 나름대로 이를 해소할 방법을 찾아왔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성본 변경인거죠.”

김정현(남·25세)씨 ⓒ투데이신문
김정현(남·25세)씨 ⓒ투데이신문

부모는 그의 성본 변경 청구 과정에 대해 알고 있을까. 결과부터 말하자면 김중배씨는 전혀 알지 못하고, 김영애씨는 넌지시 아들의 뜻만을 알고 있다. 실제로 법원에 심판청구를 신청하는 등 진척 사항은 알지 못한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김 씨에서 김 씨로 왜 바꾸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이때 김정현씨는 “그러니까”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만일 김씨가 아닌 다른 ‘성’을 원한다면 평생 자신이 알아왔으며 알아 갈 모든 이에게 설명해야겠지만, 그가 원하는 건 경주 김씨라는 ‘본’이니까.

“모성으로 변경된 이름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제가 생각해 온 정체성이에요”

김정현씨는 부모의 온전한 동의를 받아 이를 법원에 제출하지 않은 점 또한 의도였다고 강조했다. 양친의 동의서가 없어도 성본 변경 심판 청구를 신청할 수 있다. 다만 법원에서 관행적으로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고.

민법 제781조 6항에 따르면 법원은 ‘자의 복리를 위해 자의 성과 본을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자의 나이와 성숙도를 감안해 자 또는 친권자·양육자의 의사를 고려하되, 먼저 자의 성·본 변경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내부적으로 가족 사이의 정서적 통합에 방해가 되고 대외적으로 가족 구성원에 관련된 편견이나 오해 등으로 학교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겪게 되는 불이익의 정도를 심리하고, 다음으로 성·본 변경이 이뤄질 경우 초래되는 정체성의 혼란이나 자와 성·본을 함께 하고 있는 친부나 형제자매 등의 유대 관계의 단절 및 부양의 중단 등으로 인해 겪게 되는 불이익의 정도를 심리한 다음, 자의 입장에서 위 두 가지 불이익의 정도를 비교형량해 자의 행복과 이익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와 같이 자의 주관적·개인적 선호의 정도를 넘어 자의 복리를 위해 성·본의 변경이 필요하다고 판단되고, 범죄를 기도 또는 은폐하거나 법령에 따른 각종 제한을 회피하려는 불순한 의도나 목적이 개입되어 있는 등 성·본 변경권의 남용으로 볼 수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원칙적으로 성·본 변경을 허가함이 상당하다.(대법원 2009.12.11.자 2009스23 결정 참조)

물론 아버지나 어머니가 동의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무조건 기각이 되냐고 하면 그것은 아니지만, 김정현씨는 부모의 동의를 받지 않고도 자신의 의사에 따라 성본을 변경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겨볼 생각이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가족성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됐으면 한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다만 상기 내용 중 ‘형제자매 등의 유대 관계의 단절’ 우려를 염두해 누나 김정윤(가명·32)씨의 진술서를 법원에 함께 제출했다. 김정윤씨는 동생이 평소 자신을 어머니 본관으로 정체화하는 등 맥락을 보았을 때 어머니 혈통을 잇고 싶어하는 마음을 이해한다며 지지의 뜻을 전했다.

김정윤(가명·32)씨가 작성한 진술서 일부 [자료제공=본인]&nbsp;<br>
김정윤(가명·32)씨가 작성한 진술서 일부 [자료제공=본인] 

김정현씨처럼 모성을 따르기를 원하는 ‘엄마 성 빛내기 프로젝트’ 법률자문을 맡은 법률사무소 의림 원의림 변호사는 “법이 바뀌기 전에 자신의 성부터 어머니의 것으로 바꿔보겠다는 용기를 사법부가 잘 갈무리해주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김정현씨는 모두가 자신을 이상한 시선으로 볼 수 있겠지만, 그 시선 뒤에 감춰진 더 이상한 제도와 문화를 바꿀 수 있다면야 기꺼이 특이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웃어보였다.

그는 오늘도 김정현이 아닌 김정현이 될 날을 고대하고 있다.

“성본 변경은 주로 이혼 가정이나 재혼 가정에 한해 신청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처럼  성평등 사회 확립을 원하는 개인의 가치 차원에서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음을 알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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