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화 ‘윤희’ 감독 윤여창

   
 

【투데이신문 김두희 기자】지난 15일, 일산의 한 사무실에서 윤여창 감독을 만났다. 다음 작품에 들어가는 중이라 조금 바빴다며 미안함을 내비치는 그는 최근 화제가 됐던 영화 ‘윤희’의 연출자다. 

탈북여성이라는 소재로 만든 ‘윤희’는 개봉 당시 언론의 많은 주목을 받으며 화제를 모았지만 상영관 수는 불과 두 곳에 불과하다. 

영화 ‘윤희’는 주인공인 탈북여성 윤희가 남한에 오게 되면서 겪게 되는 피핍한 삶을 그리고 있다. 북한 출신이라는 이유로 마녀사냥을 당하고, 정의를 대변한다는 법이 ‘돈’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경험한 윤희를 통해 우리사회의 감추고 싶은 면들을 보여주고 있다. 

윤 감독 역시 ‘돈’의 논리, 대기업 자본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만든 작품이라는 점이 영화 속 주인공 ‘윤희’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윤 감독은 ‘윤희’를 통해 ‘을’을 대변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첫 마디를 꺼내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윤희’가 탄생하게 된 배경을 알고 싶다. 

-최근 한국사회는 ‘을의 사회’라고 보고 있다. ‘갑’에 대항하는 ‘을’들의 사회.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그래서 사회적 약자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그에 맞는 대상에 대해 생각을 뻗어 가다보니 끝에 있는 건 탈북자였다. 비슷하게 조선족이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조선족은 탈북자와 성향 자체가 다르다. 그들은 그들끼리 똘똘 뭉치지만 탈북자들은 아니거든. 탈북자들은 꽁꽁 숨어 지낸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 탈북자는 ‘을’이고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 제일 끝에 있다고 생각했고 그에 대한 영화를 만들게 된 것이다. 

TV조선에서 방영된 ‘탈북모녀, 네 개의 국경을 넘다’라는 다큐멘터리도 연출했던데,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영화에 대한 영감을 얻은 것인가. 

-순서가 다르다. 오히려 반대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나는 ‘을’의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사실 ‘윤희’의 첫 대본은 주인공이 탈북자가 아니라 할머니였다. 2005년에 실제로 있었던 일인데 한남동에서 우유배달하시는 할머니가 억울하게 당한 일을 정태성 작가가 대본으로 썼다. 그런데 그대로 진행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들었고 우리나라에서 ‘할머니’가 과연 ‘을’일 것인가 의문이 생겼다. ‘할머니’는 그저 우리와 같은 입장이지 ‘을’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탈북자들은 평범한 입장의 우리가 생각했을 때도 ‘을’의 입장이다. 그래서 탈북자들의 실상을 알고 싶었다. 내가 그에 대한 기획서를 작성하고 여러 군데에 넣어봤는데 답이 온 곳이 TV조선이었다. 영화를 위해 취재한 거다. 탈북자들의 생각은 어떤지, 죽음을 무릅쓰고 탈북을 감행하는 그들의 진심을 알고 싶어서다. 

종편에서 다큐멘터리를 진행해서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도 많을 것 같다.

-설마 그런 시선 때문에 영화가 잘 안 된 거라면 억울하다. 안 그래도 이번에 영화 평점을 보면서 나쁜 말을 많이 봤는데 나를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로 몰아가더라. 내가 대형 배급사, 영화사들에 대해 ‘갑’과 ‘을’로 표현하면서 (배급사의 영향으로) 갑이 된 ‘변호인’이라는 영화 때문에 을인 독립영화들이 살아남기 어렵다고 말한 적이 있다. ‘변호인’의 내용을 비판한 것도 아니고 독립영화를 찍는 감독 입장에서 뱉은 말일 뿐인데 거기서부터 내가 일베라는 말이 나오더니, TV조선에서 다큐를 찍었다고 아예 몰아가면서 평점도 많이 떨어졌다. 홈페이지에 가서 확인하면 알겠지만 그저 휴먼다큐다. 탈북하면서 거쳐 왔던 네 개의 국경을 되돌아가면서 자신이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내용이고. 더군다나 나는 중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인데 이번 ‘일베’일은 충격이었다. 

영화를 본 관객의 입장으로, 상영관이 적은 게 참 아쉽다.

-이렇게 될 지는 나도 몰랐다. 나는 다큐멘터리나 TV영화로 주로 활동했던 감독이고 우리 사무실도 보다시피 규모가 작다. 그러니까 아무래도 자본에 밀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까 말했던 것처럼 대형 배급사와 영화관들이 수직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보니 자신들의 영화가 아니면 잘 걸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리 영화에 흔히 티켓파워가 있다고 하는 배우들이 출연한 것도 아니지 않나. 주연이었던 최지연씨는 기존 팬들도 있었지만 이 영화에서 새로운 캐릭터와 인지도를 얻어갔다고 생각하고 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아쉽긴 하다. 그래도 봐주신 관객들이 있고 ‘윤희’를 이야기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감사하다. 

‘윤희’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리고 있다.

-소재도 그렇고 주제도 그렇고 선입견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느낀다. 탈북자들의 실상 그대로인 핍진한 이야기는 거부감이 생길 수도 있다. 꿀꿀한 우리 사회 안에서 실제 탈북자 문제고 진실과 사실에 가까운 것이니까. 그렇지 않나, 자신들 살기도 힘들고 꿀꿀한데… ‘우리도 살기 힘든데 나를 왜 갑갑하게 하지?’ 근본적으로 이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런 거다. 그렇지만 능력 없는 사람들을 배척하고 정의감도 사라진 ‘위너’만 위하는 게 당연시되는 사회가 된다면 언젠가 우리에게 칼날이 되어 되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하나는 아무래도 비주얼적인 면이 아닐까 싶다. 상업영화지만 저예산 영화다. 그래서 내가 봐도 부족한 면이 당연히 있다. ‘윤희’는 촬영 8일차, 예산 1억3000만원으로 만든 영화다. 다른 작품보다 시간이 짧으니까 감독인 내가 머릿속에서 계산한 컷만 찍었다. 그래서 여유 없이 빡빡하게 영화가 제작되다보니 화려하고 버라이어티한 영상을 추구하는 분들에게는 아쉬울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그저 내게 주어진 환경에서 정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아무래도 영화 감독이라면 작품에 대한 평점에 신경이 많이 쓰일 것 같다.

-평점도 별로 관심이 없다. 한 분이라도 그 작품을 본 사람과 약간의 교감만 있어도 나는 좋다. 이 영화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9200만원의 예산을 받아 500원 단위까지 검수해서 만든 영화다. 어떻게 보면 국민 세금으로 만든 작품인데 조작이 가능한 평점보다는 대중의 생각과 마음을 두드려 굳어있는 마음에 조금 균열을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 영화 <윤희> 여주인공 최지연

영화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윤희’역을 맡은 최지연씨 앞에 붙는 수식어는 ‘동안미녀’, ‘방부제미모’ 다. 우리가 생각하는 탈북자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고 느껴지는 데 캐스팅한 이유는.

-일부러 노린 거다. 캐스팅을 하면서 정한 기준은 딱 두 가지다. 가장 탈북자스럽지 않은 사람, 인지도는 조금 없어도 좋다는 것. 탈북상업주의처럼 나는 탈북자를 파는 영화를 만들고 싶은 게 아니었다. 한국 사람들이 한 발짝 물러나 탈북자들의 아픔에 슬퍼하는 게 아니라 그에게 처한 상황에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원했다. 그래서 탈북 하는 장면에 집중하지 않고 지금은 대한민국 국민인 여자, 아줌마가 자기 딸을 데리고 와야 하는 명확한 목표를 설정했다. 

인지도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건, 너무 알려진 배우가 출연하면 그저 장르영화가 되어버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명배우가 출연하면 배우가 화제가 되지 역할은 두 번째가 되버리는 것도 피하고 싶었다. 또 약간 다큐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가고 싶었고.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탈북자는 하나의 장치일 뿐이다. 탈북자에 포커스를 맞추고 싶지 않다. 우리가 생각하는 탈북자 이미지에 가까운 배우는 윤희의 언니 역으로 나오는 황석정씨다. 실제로 아버지가 함경북도 출신이기도 하다. 황석정씨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하더라. 그렇지만 곧 내 의도를 이해했다. 한국 사회에 ‘을’이 주는 약간의 균열 같은 것 말이다. 

영화에서 자극적인 설정이나 장면이 많이 나온다. 

-겁탈, 보험사기, 대리모 등 강한 씬(scene)이 많아 거북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런 강한 장치들을 많이 넣어 과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실 굉장히 행복한 환경에서 자란 거다. 영화를 위해 두만강이나 국경 지대를 취재해본 결과, 이것은 모두 현실이다. 이보다 심한 일들이 실제로 많이 일어난다. 이런 설정들은 모두 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거다. 

‘윤희’는 딸을 데려오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해 결국 대리모까지 하게 되더라. 그로 인해 낳은 아기도 자신이 받아들여 키우는 건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설정인 것 같다. 

-윤희는 악인들에게 이용당하지만 ‘선(善)’을 나타내는 캐릭터다. 윤희를 통해 악인의 본성에 균열을 겪으면서 조금씩 허물어지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대리모가 된 윤희는 그 생명조차 소중하게 생각해야 된다. 아기를 원한 부부가 더 이상 아기가 필요 없어졌을 때 낙태를 선택하는 합리적인 생각은 일반적인 대중인 우리가 하는 거다. ‘윤희’가 만약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다면 탈북을 했을까. 이미 건너오면서 제정신으로 오는 게 아니다.

그 아기를 통해 또 하나의 새로운 가족이 탄생하는 것이다. 만약 낙태를 한다면 윤희의 캐릭터가 깨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오히려 아기를 낳아 그쪽으로 보내야 되는 상황이 되도 주지 않았을 거라고 본다. 

윤희의 집에 성모 마리아 상이 있는데 그걸 마지막에 부수는 의미는 무엇인가. 

-마리아 상이 깨지는 걸 종교적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감독으로서 종교적인 의미는 넣지 않았다. 그저 탈북자들이 한국에 오면 종교에 많이 기대니까 넣었을 뿐이다. 아무래도 윤희는 중국에 딸을 두고 왔으니 신의 도움으로 아이를 데려오고 싶고, 그 아이를 지켜달라는 의미 정도가 되겠다. 마지막에 마리아 상으로 거울을 깨서 부수는 건 그 거울 안의 엄마인 본인을 (예수의 어머니인)마리아로 치는 거다. 심각하게 종교를 부순다거나 그런 의미는 아니었다. 

관객들이 눈 여겨 봤으면 하는 장면이나 영화의 메세지가 가장 전달된다고 생각하는 장면이 있다면 추천해달라.

-장면 하나가 중요하거나 그런 영화는 아니다. 그저 윤희의 감정선을 따라가면서 보면 좋을 것 같다. 비주얼보다는 감정의 흐름을 중요시하는 연출을 했다. 

아무래도 젊은 분들은 초반에 나오는 두만강씬을 좋아할 것 같고, 개인적으로는 노래방에서의 감정씬, 마지막 법정 씬을 추천하고 싶다. 악인들이 조금씩 균열을 받고 변화하는 감정을 눈치 채고 본다면 더 좋은 영화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 힌트를 준다면 리포터의 감정이 처음과 끝이 다른 것을 눈치 채는 정도랄까. 

영화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대한민국 사회의 ‘을’들에 대한 이야기. 탈북자라는 소재 자체는 잊어버리고 봐도 좋을 것 같다.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는가.

-‘탈북모녀, 네 개의 국경을 넘다’를 찍으면서 중국에서 겪은 일이 굉장히 많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그곳에서 일어났던 일을 모티브를 삼아 영화를 찍고 싶다. 예를 들면 ‘베를린’같은? 예산이 넉넉할 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감독이니까 할 때까지는 열심히 할 것이다. 작품이 끊기지 않고 들어오는 것만 해도 난 행복한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다음 작품을 준비 중이다. ‘방문자’라는 작품인데 주인공을 홍경인으로 캐스팅했다. 표창원 교수를 모델로 잡았다. 연쇄살인마와 프로파일러의 대결이라고 해야 되나? 프로파일러의 아내가 연쇄살인마에게 살해를 당한다. 그런데 프로파일링은 살인의 이유를 알 수는 없고 그저 잡아내는 수단이 될 뿐이다. 그래서 프로파일러는 거기에 회의감과 한계를 느끼고 정신과 의사가 된다. 그런데 그 의사가 된 프로파일러에게 연쇄살인마가 정신 감정을 요청하는 그런 내용이다.

음… 올해까지는 예산이 적더라도 남들이 만들 수 없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그런 힘을 ‘윤희’를 통해 받은 것 같다. 그 덕분에 영화감독으로서 성장한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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