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시 파는 시(時)팔이 하상욱을 만나다

   
▲ '시팔이' 하상욱이 본인의 저서 '서울시'를 보며 웃고 있다.
 

 『끝이 어딜까/너의 잠재력(다 쓴 치약)
   너의 진짜 모습/나의 진짜 모습/사라졌어(포토샵)
   고민 하게 돼/우리 둘 사이(축의금)』

 

가벼운 표현 속에 삶의 아픔 담으려 노력
인기요인? ‘새로운 생각’ 아닌 ‘우리 생각’이기 때문
‘열정’, ‘도전’, ‘노력’ 등 긍정 속에 있는 함정 조심해야
스스로 자신의 능력·적성에 대한 인지가 필요

【투데이신문 김두희 기자】하상욱. 요즘 이 남자가 화제다. 이 남자가 본인의 SNS에 글 한 줄 적으면 순식간에 리트윗 횟수가 몇 백 건, 몇 천 건 올라가고 인터넷에 퍼지면서 사람들의 엄청난 호응과 공감을 이끌어낸다.

특히 모바일 메신저를 기반으로 한 게임이 한창 유행했을 때 그가 쓴 ‘서로가 소홀했는데/덕분에 소식 듣게 돼 -애니팡’이라는 짧은 시가 크게 유행했다. 이로써 그는 ‘하상욱’이라는 이름보다 게임 이름을 딴 ‘애니팡 시인’이라고 설명되기도 했다.

디자이너, 전자책 회사 기획자, ‘서울시(詩)’를 출간한 작가이면서 최근엔 각종 토크콘서트에서 청춘들을 위한 촌철살인의 강연자로 나서고 있는 ‘하상욱’을 <투데이신문>이 만났다.

그와 만나기로 한 장소는 서울 성북구 하계동에 있는 작은 카페. 하상욱은 흔히 동네에 있는 카페처럼 샌드위치나 간단한 디저트를 취급조차 하지 않고 다양한 원두를 구비해 일일이 드립으로 커피를 내려주던 푸근함이 느껴지는 바리스타의 손 때 묻은 그 카페를 ‘자주 가는 카페’라고 소개했다.

만물이 소생한다는 춘삼월이지만 아직도 매서운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던 날, 하상욱은 눈이 시린 파란색 니트와 일명 ‘빽바지’로 불리는 하얀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게다가 나중에 사진 촬영 때 보니 그가 신고 있는 양말은 울긋불긋한 꽃이 큼직하게 잔뜩 그려져 있는 ‘꽃무늬’ 양말이었다. 어디로 튈지, 예측 불허한 하상욱의 시처럼 외모에서도 누가 봐도 그는 ‘하상욱’이다.

2대 8 가르마, 앞머리를 올려 훤히 드러낸 이마, 묘한 느낌을 풍기는 옷차림에서 이미 그의 독특한 면모가 다 파악됐다고 생각했을 때 그는 ‘의외로’ 차분한 허브차를 주문했고, 신선한 충격에 빠진 속에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그냥 시 팔아 먹는 ‘시팔이’입니다.
사실 시인이라는 호칭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단어 자체를 좋아하지 않거든요. 시인이라는 것 자체가 싫은 건 아니고 스스로 시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글 써서 일을 하고 있으니까 이제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건 맞는 것 같지만요.

▲‘시팔이’에게 그럼 시라는 것은 어떤 존재인가

저한테 시라는 건 제 글의 일종의 콘셉트죠. 굳이 시인이라고 불리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저는 시라는 장르 자체를 가지고 응용한 거죠. 한 마디로 응용재료 같은 거랄까요. 제 글이 시의 새로운 형식이라는 생각도 아니고 제 생각을 표현하는데 재료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 직업을 소개할 때 ‘시팔이’ 아니면 ‘작가’정도가 좋아요.

▲학창시절에 유난히 독특하고 튀는 친구들이 있다. 혹시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던 건가

아니 뭐 다들 그 정도는 독특하지 않나요? 제가 가끔 MT, OT 사회도 보지만 제가 딱히 그렇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다들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어느 정도 독특함은 다 가지고 있어요.
저는 학생 때 별명도 이름 때문에 ‘하쌍’이라는 게 전부였을 정도로 평범했어요.

▲그럼 혹시 영향 받았던 선생님이나 친구가 있나

전 누구한테 영향 받는 거 질색해요. 누구나 다 똑같은 사람이지 누가 위에 있고 아래 있고 그런 건 없잖아요. 제가 겁 없이 제 맘대로 글 쓸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인 듯싶고요. ‘내가 못 할 게 뭐있어’, ‘내가 저 사람한테 저런 소리 들었다고 주눅 들 게 뭐있어’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제가 규칙이나 매너는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것에 걸리지 않는 이상 남 눈치를 보지 않아요.

▲어릴 적 꿈은

어릴 적 꿈은 만화가였죠. 근데 고등학교 때 포기했어요. 그 뒤로 딱히 꿈이라고 할 만한 것 없네요. 그냥 제가 잘할 만한 것, 재밌어 보이는 것 찾아서 움직였으니까요.

▲처음 시작했던 일은 시인이 아닌 디자이너였는데

디자이너는 한 4년 정도 했어요. 처음에는 편집디자인 쪽 일을 하다가 앱(APP) 쪽 방향으로 바꿨어요. 앱 쪽에 디자인만 한 것도 아니고 나중에는 기획자였고요.

▲ 그 뒤 전자책을 서비스하는 리디북스에서 기획자로 있었다. 디자이너에서 기획자로 파트를 바꾼 계기가 궁금하다

무엇보다 디자인이 재미가 없었어요. 물론 공부도 했고 일도 했지만 오래 했다고 해도 재미있어서 하는 거 아니잖아요? 공부, 우리가 재미있다고 십 몇 년 하는 거 아닌 것처럼요. 학교 다닐 때는 디자인이 재미있었어요. 그 때 재미있었던 이유는 아무래도 내가 기획도 하고 디자인도 하니까요. 근데 알고 봤더니 제가 재미있어했던 건 디자인을 완성시키는 게 아니라 기획하는 것이 재미있던 거예요. 디자인만 하고 기획은 안 하는 건 재미가 없었어요. 제가 회사 가서 그걸 깨달았던 거죠.

▲이제는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고, 상당히 많은 직업들을 거쳐 온 셈인데. 제일 적성에 맞는 직업은 무엇인가

제일 적성에 맞는 건 기획자죠. 앞으로 지금보다 만약 더 나아지는 상황이 되면 옮기게 될 수도 있겠죠? 저한테 지금 작가라는 건 직업일 뿐이에요. 다들 작가는 평생의 직업이라는 것처럼 많이 이야기를 하는데요, 그래서 앞으로 작가라는 인생을 어떻게 살거냐는 질문을 듣는데 이건 저에게 직업일 뿐이고요. 사실 평생 글을 안 써도 되는 거잖아요?

▲‘기획’은 발상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또 지금 쓰고 있는 글도 마찬가지로 다들 발상이 기발하다고 한다

제가 발상의 전환법을 따로 생각하거나 하지는 않아요. 전 새로운 생각을 하는 사람이 절대 아니에요. 다들 공감이 된다고 하시는 게 그건 결국 제가 쓰는 글이 새로운 생각이 아니기 때문인 거죠. 그게 나한테도 있는 생각이고 너도 하는 생각, 결국 다들 하고 있는 생각이라서 공감이 되는 거예요. 저는 딱히 누가 정리하지 않았던 걸 짧은 글로 정리를 했던 것뿐이고요. 그래서 공감이 되는 게 아닐까요?

아, 제가 약간의 언어센스가 있는 것 같긴 해요. 제가 디자인을 쭉 해왔잖아요. 사실 디자인은 굉장히 언어적인 작업이에요. 항상 언어를 먼저 떠올리고 그 언어를 이미지화 시키는 것, 그게 디자인이고요. 이미 그런 훈련이 되어있다 보니 항상 제 욕심보다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냐 없냐가 중요해서 버릇처럼 언어를 그렇게 구사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요즘 세상을 살면서 문제라고 생각하고 정서적으로 아픔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저도 똑같이 느끼고 살아요. 만약에 제가 했던 생각이 정말 새로웠다면 공감이 아니라 경악하고 쇼크를 먹겠죠? 그저 약간 표현 방식이 새롭게 느껴졌고 제가 지속적으로 글을 쓰니까 새롭게 느껴지는 거지, 발상이 새롭거나 신선한 것은 아니에요.

   
▲ 포인트는 '꽃무늬 양말'

▲ 시에 대한 영감은 어디서 어떻게 얻는지

대부분 제 기억에서 나오죠. 제가 들었던 다른 사람 이야기, 제 이야기 같은 기억 아니면 인터넷에서 본 사연이나 뉴스나 TV에서 본 것들이 대부분이에요. 그리고 주변에서 나오는 말 중에 모두가 말하는 ‘거기서 거기’인 것만 쓰고 있어요.

▲ 시가 어렵지 않고 재밌다 보니 말장난 정도로만 평가하기도 하는데

말장난이나 ‘드립’ 같은 것도 능력이 아닌가요? 저는 재미있는 인터넷 ‘짤방(사진을 일컫는 인터넷 용어)’이나 인터넷 댓글을 다는 사람들은 웬만한 시인과 비교했을 때 언어의 표현 방식이 다를 뿐이지 언어를 이용하는 능력이나 그런 건 뒤질 게 없다고 생각해요. 가벼운 표현을 가볍다고 생각하는 것이 편견이에요. 제가 쓰는 글들은 대부분 사회의 아픔이나 힘든 것들을 써요. 근데 그런 이야기들이 과연 가벼운 언어에 담았다고 해서 가벼운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요? 다들 글이라는 것을 너무 심각하게 바라보려고 하니까 가벼움 속에 담길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외면하려고 하는 건 아닌가 생각하거든요. 무엇보다 저는 웃기려고 글 쓰지 않아요. 울리려고 씁니다.

▲처음에는 ‘이거 뭐야’ 하다가도 공감되는 부분이 있고 웃게 만드는 것이 하상욱 시의 매력이다. 재미있는 건 알겠는데 이게 이렇게 대박날 것이라 예상했는지 알고 싶다

전혀 몰랐죠. 그걸 노리고 쓴 것도 아니고요. 그냥 쓴 거예요. 그래서 오히려 더 편하게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었지 않나 싶네요. 그냥 제 SNS에 친구 공개로 올린 거죠. 처음에는 연재한 것도 아니고요. 그러다가 전자책으로 내게 되면서 회사(리디북스) SNS에 일주일에 한 번씩 올리게 됐어요. 그런데 그때도 화제가 된 건 아니고요. 홍보한 적이 없으니 알려졌을 리가 없잖아요. 그러다 그 전자책 이용자 한 분이 보시고 재미있다고 다시 올리시면서 인터넷에 퍼지게 되고 알려지게 됐어요.

▲인생이 바뀌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있나

많이 바뀌었어요. 일단 회사를 그만 뒀잖아요. 직장인이 회사를 그만뒀다는 것만큼 큰일이 있을까요? 최근엔 강연하면서 들어오는 수입도 있고 ‘서울시’ 책도 아직 팔리니까 인세도 있고요. 가끔 광고건도 있어서 그거하면서 벌기도 해요. 제 수입은 회사원 때와 비교하면 엄청나졌죠. 물론 쇼핑몰 운영하시고 이런 분들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금액이지만 제 기준에서 이 정도면 차고 넘쳐요. 이 이상 돈을 가지게 되면 돈이 주는 행복 자체를 잃어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제 스스로에게 고마운 게 그 욕심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렇게 될까봐 굉장히 경계하고 있는 상태에요. 돈을 따라가는 사람이 될까봐요. 그렇게 욕심으로 살고 있지 않아서 참 다행이에요.

▲인기의 요인은 뭐라고 생각하는가

(단번에)외모? 외모는 전부터 많이 신경 썼어요. 캐릭터가 중요한 거니까요. 저한테는 캐릭터가 많은 영향을 미쳐요. 그 글을 쓸 만한 캐릭터로 느껴지잖아요. 다행히 ‘똘끼’도 있고 십 몇 년 동안 디자인만 보고 살아온 사람이다 보니 이미지가 주는 효과를 많이 알고 있기도 해요. 요즘엔 워낙 시각적인 부분이 중요하기도 하잖아요.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글 쓰는 사람이라는 것뿐 아니라 하상욱이라는 사람이라는 것도 같이 보여주면서 많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거죠.

또 다른 이유는 글을 볼 때 남의 이야기를 구경하는 게 아니라 내 이야기로 내 기억으로, 그래서 자기 이야기로 완성할 수 있게 되는 그런 게 있으니까 그게 재미요소가 돼서 인기가 있는 것 같네요.

▲인기가 높아지면서 알아보는 사람도 생겼나

알아보는 사람도 많죠. 예를 들어 강남이나 가로수길 같이 젊은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많이 알아보시죠. 근데 인기가 가끔 부담스럽기도 해요. 평소 제 캐릭터라면 인기를 즐길 것 같지만 아니거든요. 강연이나 행사장에서 저를 알아보는 건 참 좋아요. 그런데 길에서 볼 땐 부담스럽더라고요. 물론 알아봐주신 것이 감사하고 저도 잘 대해드리지만 마음이 편치가 않아요. 마치 퇴근하고서 회사에서 전화 온 느낌이 들어요.

예전에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누가 알아보시고 사진 찍었던 일이 있는데요. 그 분은 찍고 가시면 되지만 저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야 해요. 그 분은 재미있는 추억이 됐고 저도 고마운 분이지만 그 상황이 참 민망하더라고요. 제가 전국구 스타도 아니고 아직 모르는 사람이 더 많으니까요. 예전에 그런 상황이 있던 후에 ‘쟤는 뭐하는 사람이야’하는 그 궁금증 섞인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내려야 되는 척 하고 그냥 내린 적도 있어요.

▲평소에 책을 많이 읽는지, 어떤 책을 읽는 지 궁금하다

사실 책은 잘 안봐요. 만화가가 꿈이었으니까 만화책은 정말 많이 봤어요. 거의 천 권 가까이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럼 제일 좋아하는 만화는 무엇인가

‘캠퍼스러브스토리’, 우리나라 제목으로 ‘동경대이야기’라는 일본만화가 있어요. 정말 ‘깨알’같은 인간심리묘사를 잘 건드려 놨다고 생각해요. 웹툰은 거의 안 보는데. 딱 두 분 것 봐요. 하나는 ‘이말년’씨에요. 개인적으로 21세기 최고의 천재라고 생각하거든요. 아, 정말 진지하게. ‘가벼움’이라는 것을 웹툰이라는 소재를 사용해서 가벼움의 ‘깊은’ 이야기를 담는 게 이말년이라는 사람 말고 누가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에요. 다음은 김성모 작가인데요, 요즘 그리는 만화가 ‘돌아온 럭키짱’이라고 있어요. 근데 저 그걸 굉장히 새로운 유형의 웹툰이라고 생각해요. 만화보다도 웹툰에 달린 댓글이 재밌어요. 새로운 유형이죠. 한 마디로 2차 가공이 가능한 만화라고나 할까요.

▲평소에는 뭘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지 궁금하다

보통 인터넷하죠. 게임하고 인터넷하고 TV보고. 예전에 스타크래프트1을 거의 미친 듯이 했어요. 꽤 잘하는 편이었고. TV를 틀면 게임채널이 고정이었고 무조건 그것만 봤어요. 스타2가 나오고도 열심히 했는데 요즘은 축구게임 정도 하고 그래요. 책은 아예 안 읽지만 글은 많이 읽어요. 인터넷에 깔린 게 글이잖아요. 인터넷이 이미지기반인 것 같지만 사실 텍스트 기반이잖아요?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글을 쓰는 것이 본인 일인데 머리가 너무 답답할 때는 어떻게 하는가

그래서 제가 쓰고 싶을 때만 써요. 웬만해서 원고 마감을 가지고 쓰는 글은 안 쓰려고 해요. 연재를 안 하는 이유도 그거에요. 그러면 이 생활을 빨리 접게 될 것 같아서요. 지겨워져서. 하기 싫은 것은 회사에서 많이 했잖아요. 언제 제가 다시 어떤 일을 하게 될 지도 모르는데 굳이 나와서까지, 지금은 하지 말자는 생각이라서요.

▲최근에는 청춘콘서트에서 멘토로서 강연을 하고 있다. 강연에서 가장 전달하고자 하는 메지지는 무엇인지

제가 나가서 하는 주된 이야기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안 되면 될 것 하라’는 말이에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긍정적인 말이 가지고 있는 함정 같은 걸 이야기해요. 도전, 열정, 꿈 이런 말들이 제일 위험한 말이라고 전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 말들이 ‘긍정’ 속에 담겨있어서 깨는 것을 사회적으로 터부시하죠. 그런데 반면 그것이 가지고 오는 폐해가 얼마나 큰지는 다들 느끼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하고 싶어요.

제가 쓴 글 중에 ‘젊음은 과정은 아닌데/노년이 결과도 아닌데’라는 게 있어요. 지금 사람들이 열정이나 도전의 주체를 젊은 사람들로 생각하고 있고, 또 젊음은 과정이라는 전제가 깔려있어요. 그런데 심지어 어떤 사람은 20대, 30대에도 죽을 수 있거든요. 사실 ‘나이를 먹는다’, ‘죽음’의 문제 때문에 젊음을 과정으로 보는 건데 죽음이 언제 올지 모르고 삶이 어떻게 될지 몰라요. 그런데 다들 청춘을 인생의 과정, 당연하게 희생해야 되는 걸로 보고 그 과정 때문에 청춘이 도용당하고 있죠. 남들에게 내 청춘이 도용당하고 있어요. 물론 열정, 도전 이런 것들이 참 좋은 이야기인데 인식이 잘못 퍼졌다고 봐야죠. 그래서 그 말 때문에 청춘이 이용당하는 측면이 많고요.

얼마 전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 하잖아/그거 파는 사람들 합법적인 거야?’라는 글을 썼어요. 젊음은 고생이라고 말하면서 고생을 이야기하는 그 사람들이 과연 젊음을 합법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건지, 우리나라에서 과연 젊음이 합법적인 범위에서 정상적으로 열정을 제공하고 있는 건지 말이죠. 긍정이라는 말도 결국 ‘이용’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청춘을 과정으로 보는 인식 자체가 바뀌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방송에서 제발 도전이나 열정을 멋있는 걸로 포장해서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강연할 때 청중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무엇인가

어떻게 그렇게 하고 싶은 거 하고 사시냐고 물어봐요. 근데 저는 하고 싶은 거 하고 사는 거 아니고 제가 지금 현재 제일 잘할 것 같은 거 선택해서 하는 것이거든요. 잘하면 재미있으니까 더 하기 마련이고요. 지금이 현실에서 금전적인 면과 재미 면에서 나름 타협한 거예요.

사람들이 너무 막연한 환상을 안 가졌으면 좋겠어요. 아름다운 환상들이 스스로를 망치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아름다운 환상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능력문제가 아니라 운이 필요한 거예요. 그런데 그런 매우 낮은 확률에 자기의 인생을 걸 필요가 있을까 싶은 거죠. 그런데 그걸 ‘도전하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한편으로는 바보 같은 거죠. 물론 순수하고 아름다운 바보 같은 모습이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지금 바보 같다는 걸 스스로 인지해야한다는 거예요. ‘내가 지금 바보 같은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할 필요가 있어요. 적어도 내가 지금 멋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으면 해요. 이게 자기를 망칠 수도 있거든요. 이걸 꼭 잊지 말고 자기 자신을 좀 냉정하게 바라봤으면 좋겠어요.

▲스펙경쟁, 취업경쟁 등 요즘 청년들은 청춘을 정말 힘들게 보내는 것 같다고 생각하지는 않나. 또 관련해서 기성세대와 청년들 간에 갈등도 심화되고 있는 것 같다

제가 트위터에 <세대 간 갈등이 생기는 이유>로 앞 세대는 이전보다 좋아진 세상에 살고 현 세대는 이것보다 좋아질 세상을 본다고 썼어요. 이건 안 바뀌어요. 우리 세대가 나이를 먹으면 똑같아 질 거예요. 기본적으로 인간은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요. 예를 들어 지금 좋아진 세상을 사는 기성세대는 한편으로 이 세상을 함께 만들어온 사람들이죠. 자신의 산물인거예요. 당연히 여기에 가치를 둘 수밖에 없고요. 그런데 지금 젊은이들은 다른 세상을 보고 싶고 그리고 만들어가고 싶어 해요. 이건 또 본능이고요. 그러니까 반복될 수밖에 없고 이것이 건강한 사회를 증명하는 거겠죠. 또 기성세대가 바꾸려고 하는 것보다는 젊은 세대가 바꾸려고 하는 게 더 가능성이 열려있기도 하고, 더 많은 시간을 준비하고 천천히 바꿔나갈 활력이 분명 젊은이들에게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젊을 때 꿈에 도전하라고 하는 것도 맞는 측면이 있다고 봐요. 그런데 이게 너무 과하게 이용되니까 문제죠.

기성세대와 젊은 사람들이 서로를 모른다고 생각해야 되는데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만큼은 잘못됐다고 봐요. 그래서 젊은 세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기성세대에게 당신들이 틀렸으니 이제 꺼져라 물러나라 라는 생각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노년도 얼마든지 자신의 남은 인생동안 의견을 내면서 살아가야 하잖아요. 또 어떤 청춘은 노년보다 남은 인생이 더 짧을 수도 있거든요. 도대체 노년이 왜 물러나야 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노년을 물러나야 된다고 생각하거나, 청춘을 애송이들이라고 생각한다거나 그런 생각이 대화 자체를 막아버리는 것 같아요. 이성적인 정답으로 찍어 누르는 게 이기는 게 아니라 서로의 아픔을 먼저 교감하고 공감하는 게 시작인 것 같아요.

한 때는 진중권 씨 굉장한 팬이었는데 나중에는 진중권 씨 같은 분이 어떻게 보면 세대 간의 갈등을 더 공고화 시키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한 편으로는. 왜냐면 나와 생각이 다른 반대 입장을 조롱하니깐요. 조롱의 유머, 그런 해학을 하잖아요. 근데 묻고 싶은 게, 조롱은 강자에게 해야 해요. 기성세대는 강자라고 할 수 없어요. 힘을 가진 몇몇 기성세대가 강자인 거지, 그 강자들에게 동조하고 의견을 동의하는 기성세대가 강자가 아닌 경우가 더 많아요 사실은.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제대로 된 조롱인 지 잘 모르겠어요. 강자가 아닌 게 더 많고 어떻게 보면 젊은 사람보다 더 약자일 때가 많아요. 먼저 교감을 하는 게 더 맞지 않을까요, 그래야 대화가 시작되니까요.

▲사랑에 대한 생각도 궁금하다. ‘ASKY(애인이 ‘안생겨요’의 인터넷 용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유독 연애를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이 말하길 사랑이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

사랑은 사람이죠. 사람을 몰라서 사랑을 못한다고 생각해요. 사람을 알게 되면 사랑도 알게 된다고 생각하고. ‘사랑해야지, 사랑해야지’하게 되면 사랑이 숙제처럼 느껴지잖아요. 그럼 더더욱 못해요. 저는 사람만 알면 사랑은 자연스럽게 생긴다고 봐요. 사랑은 누구나 하는 평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걸 알려고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접근방식이 아닐까요? 사랑을 궁금해 하지 말고 사람을 궁금해 해야죠.

또 본능을 무시할 필요는 없어요. 플라토닉한 사랑만이 아름다운 건 아니니까요. 예를 들어 손을 잡고 걸어가는 건 아름답다고 생각하면서 관계를 맺는 것은 아름다운 게 아니라는 생각, 그런 건 좀 달라졌으면 좋겠다고 느껴요. 사랑은 사람이고 본능인거지 공부하거나 궁금해 할 필요 없어요. 각자의 사랑이잖아요.

▲10년 후, 하상욱의 미래는 어떨 것 같은지

모르죠 뭐. 결혼은 했을까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결혼을 소망하고 있지만 하려고 하는 건 아니고 십 년 후에 결혼을 할 마음이 서로 완전 딱 맞고 결혼이 참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내 옆에 있다면 결혼을 하고 싶어요. 다들 꿈꾸니까. 상황에 따라, 나이가 어떻게 되고, 그런 끌려가는 결혼은 하고 싶지 않아요. 딱 결혼다운 결혼하고 싶네요. 마음도 결혼답게 서로 막 결혼식을 하다가 너무 가슴이 벅차올라서 눈물이 나기도 하는 그런 결혼이요.

▲왠지 결혼하는 날도 신부에게 그날의 소감을 시로 읊어줄 것 같다

그렇게 하는 것도 좋겠어요. 그런데 청첩장에는 꼭 제 글을 넣을 거예요. 결혼식은 쇼가 아닌 진지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감동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진정성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결혼식을 꿈꿔요.

▲앞으로는 어떻게 활동할 계획인가

지금과 비슷할 것 같아요. 미래에 어떤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해보고 싶은 건 화보모델이고요. 잡지 화보 모델 말고요. 그건 인터뷰할 때 몇 번 찍어봤거든요. 재미있었어요. 브랜드 광고 화보 모델을 하고 싶다는 건 제 소망, 막연한 꿈이에요. 반전매력이 있는 사진을 찍어보고 싶기도 하고요. 방송은 아직까지 계획이 없어요. 제가 방송에 나가면 지겨운 사람이 될 것 같아서요. 셀러브리티(유명인)가 되는 게 목표가 아니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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