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미선 칼럼니스트
· 스토글 대표이사
· 경찰교육원 외래교수 / 교보문고 독서코칭 전문강사 / 아동문학가

【투데이신문 윤미선 칼럼니스트】 얼마 전 중학교 3학년인 시훈(가명)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상담을 요청해 왔다.

같은 반 친구가 자신이 제일 아끼는 CD를 빌려 달라고 하는 데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 친구는 오래전에 책을 빌려갔는데 늘 갖다 준다고만 하고 돌려주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돈도 금방 갚아 준다고 빌려가서는 돈 말은 아예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CD를 빌려주면 틀림없이 제때 돌려주지도 않을 뿐 아니라 망가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거절을 해야겠는데 얼굴 붉히지 않고 안됀다는 말을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것이었다.

시훈이는 온순하고 모범적인 학생으로 친구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친구들은 시훈이가 거절을 못하는 것을 이용해 대수롭지 않게 부탁을 많이 하는데 그로 인해 시훈이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시훈이가 그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기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상식대로라면 그 친구가 빌려간 책이나 돈을 돌려주지 않았으니 당연히 거절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시훈이의 문제는 거절과 거절당하는 사람을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거절을 하면 친구와의 관계에 금이 가지 않을까, 내 평판이 나빠지지 않을까, 너무 매정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맘이 크기 때문이다.

필자는 시훈이에게 거절해야 하는 이유를 객관적으로 평가해 보게 했다.

친구에게 오래 전에 책을 빌려 주었다. 하지만 책을 지금까지 돌려주지 않고 있다. 친구가 돈을 빌려주면 곧 갚겠다고 해서 내 용돈을 주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돈 얘기조차 하지 않는다. 결국 거절을 하면 그 친구가 상처를 받지 않을까 염려가 되어 내 마음을 정확하게 말하지도 못하고 그냥 빌려줬다.

필자는 시훈이에게 거절해야 할 필요성이 충분하기 때문에 거절해야 한다고 말해줬다.
거절을 할 때는 어설픈 핑계보다 솔직하게 사실대로 말한다.
말할 때에는 부드러운 어조로 논리적으로 거절의 이유를 말한다.
친구가 빌려간 책과 갚지 않는 돈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
더불어 시훈이가 이렇게 정확하게 자기표현을 함으로써 남의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약속을 아무렇게나 생각하는 친구의 나쁜 버릇을 고쳐주게 되는 것이라며 조언해줬다.

이후 시훈이는 친구에게서 책과 돈을 돌려받았다. 그리고 그 친구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며 더 친하게 됐다면서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거절해야 서로 더 좋은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면서 가장 말하기 난처한 상황은 상대방의 부탁을 거절할 때이다. 특히 금전관계에서 거절은 거절하고도 뭔가 개운치 않다. 심지어는 상대방과 관계가 어긋나기도 한다. 물론 형편이 돼서 도움을 주면 더 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거절하기가 매우 난감하다.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거절할 수 있을까?
먼저, 성의 있는 경청을 해야 한다.
처음부터 무턱대고 자신의 입장을 선수 치듯이 늘어놓는 방법은 당장은 그 자리를 모면할 수 있겠지만 차후 관계는 서먹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상대방이 심각하게 말 할 때는 일단 이야기를 잘 들어줘야 한다.
특히 가까운 사람들일수록 이러한 자세는 꼭 필요하다.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가 간다는 제스처를 하면서 듣는다.

다음으로 거절해야 하는 나의 처지를 성의 있게 말한다.
그러나 이 때 핑계 대는 데 너무 치중하다보면 역효과를 낳는다.

마지막으로 애원형으로 거절을 한다.
자신의 생활철학이나 신조를 말하면서 명분과 상황을 잘 전달한다.

금전관계에서 있어서 “빚 보증하는 자식은 낳지도 말라”는 말이 있듯이 거절을 못해서 무리하다 보면 개인의 실패 뿐 만 아니라 조직도 피해를 본다. 월급에 차압이 들어와 자신이 힘들게 일한 대가를 받지도 못한다면 일 할 의욕이 나겠는가? 그래서 요즘 기업들은 빚 보증을 서는 서류는 발급을 하지 않는 것이 회사 방침으로 정해 놓는다고 한다.

인간관계에서도 거절하거나 거절당하는 상황은 언제나 발생한다. 인간관계를 맺어 나가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타인을 설득하고 협력해야 하는 상황이 수없이 발생한다. 어차피 거절을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좀 더 지혜롭게 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필자는 남매를 두고 있다. 그런데 아들과 딸의 성격이 무척 달라서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도 차이가 난다.
첫째인 딸은 다른 사람들의 부탁을 거절을 못한다. 예를 들어 자기의 할 일이 분명히 있는데도 친구가 부탁한 것을 먼저 해 준다.
“넌 왜 그렇게 실속이 없니? 니 일을 먼저 하고 남의 부탁을 들어주던지 해야지.”
“그 애도 얼마나 급하면 나한테 해 달라고 하겠어요. 그리고 난 거절을 못하겠어요.”
엄마인 입장에서 속 터질 일이다. ‘남을 배려해라.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마라. 너무 이기적으로 살지 마라.’ 등을 강조하다보니 거절하지 않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반면 둘째인 아들은 너무 자신의 의견을 명료하게 해서 문제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을 때 친구들한테 전화가 오면 “나 할 일이 있으니까 지금 너희들과 놀 수 없어.” “내 것 끝나면 해 줄게.” “지금은 안 돼.” 옆에서 듣고 있으면 내가 무안할 정도다. 이렇게 거절 못하는 딸과 거절을 딱 부러지게 하는 아들은 거절당할 때의 모습도 사뭇 다르다. 딸은 거절을 당하면 상처를 입는데 아들은 그냥 알았다는 듯이 넘어간다.
필자는 아들과 딸을 보면서 거절을 잘 하는 사람이 거절을 당해도 상처를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거절을 하지 않는 것이 예의가 아니다. 아니라고 생각되면 “아니요”라고 말하는 용기와 기술이 필요하다.

따라서 지혜롭게 거절을 하려면 일단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어 상대방의 요구를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아니라고 생각 되면 공손하면서도 단호하게 거절해야 한다. 괜히 미안해서 모호한 표현을 하게 되면 상대방에게 가능성을 제공해 시간만 허비하게 될 것이다. 거절을 할 때는 이유를 분명하고 설득력 있게 논리적으로 말한다.
그리고 다른 방법이 없는지 대안을 함께 제시 해 준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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