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경찬 문화 칼럼니스트】한줄기 빛마저도 집어삼키는 심연(深淵)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노래 할 수 있을까?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서정주 시인은 그렇게 말했다. 그리움이 때론 두려움이 돼 뇌리에서 지우려고 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였다.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는 민주화 항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5.18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은 서로를 보듬었고 아파했다. 그리고 용서했다.

연극 ‘푸르른 날에’는 2011년에 초연됐다. 당시 세간(世間)의 관심을 집중시키며 수많은 화제를 몰고 다녔던 작품이 세 번째 시즌으로 우리 곁에 다가왔다.

‘푸르른 날에’는 5.18이라는 역사적 비극 가운데 서있는 주인공 오민호와 윤정혜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둘은 서로 뜨겁게 사랑하지만 5.18이라는 격랑 속에 헤어지고 만다. 민호는 전남도청을 사수하다 투항해 목숨을 연명하고. 그 죄의식으로 인해 미친 사람처럼 살아가다 결국 자기 아이를 가진 정혜를 뒤로한 채 불가에 몸을 맡기고 스님이 된다. 그 후 30년 뒤 딸 운화가 결혼할 날이 다가오자 정혜는 민호에게 결혼식장에서 딸의 손을 잡고 들어가 달라고 부탁한다. 속세의 연을 끊으려고 몸부림치는 민호는 결국 결혼식장에 딸의 손을 잡고 들어간다.

‘푸르른 날에’는 민주화 항쟁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품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연출의 방법은 풍자와 희극적인 연극 어법으로 자신의 색깔을 입혔다.

과장된 화술과 움직임이 자칫 무거워 질 수 있는 감정선에 위트를 더해주었고 도청 장면에서의 최후의 결전은 더욱 비장미 있게 연출해 관객의 몰입을 도왔다. 결전을 앞두고 외치는 김남주 시인의 ‘학살2’에서 울분과 분노를 느낄 수 있다.

죽음과 삶의 경계 속에 살아남는 것을 선택한 민호는 고문 후유증과 죄책감으로 정신이상을 겪는다. 그의 손에 씻겨 지지 않는 핏자국은 그를 점점 조여오고 사랑하는 남자의 괴로움을 곁에서 지켜보는 정혜 또한 상처가 점점 깊어진다. 30년이 흘러도 치유되지 않는 기억.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살아가려는 사람과 너머의 세상에서 자신을 기억해주길 바라는 망자의 모습 가운데 안타까움은 배가 된다.

면사포를 쓴 정혜와 그 모습을 환한 미소로 지켜보는 민호. 두 손을 붙잡고 서로를 마주보는 모습 가운데 용서와 화해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다. 벚꽃잎이 떨어지며 흘러나오는 송창식의 ‘푸르른 날’이 울려면 먹먹한 가슴에 다시 한 번 따스한 햇살이 쏟아진다. 

6월 2일까지 서울 중구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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