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미선 칼럼니스트
· 스토글 대표이사
· 경찰교육원 외래교수 / 교보문고 독서코칭 전문강사 / 아동문학가

【투데이신문 윤미선 칼럼니스트】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이해의 선물”이란 소설이 실려 있다.
위그든씨는 사탕가게 주인이다. 어느 날 종종 엄마와 함께 사탕을 사러오던 네 살짜리 아이가 혼자서 가게에 들어온다. 아이는 사탕을 한참을 고르더니 계산대로 와서 정성스럽게 싸 온 버찌 6개로 값을 치른다.

이런 황당한 일을 당했을 때 여러분은 어떤 반응을 보이겠는가?

“얘, 이건 돈이 아니야. 엄마하고 돈 가지고 다시 와.”
아니면, “너 진짜 이게 돈인줄 알았니?”

하지만 우리의 위그든씨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이의 얼굴에서 천진함을 본 위그든씨는 “모자라나요?”하고 묻는 아이의 질문에 “돈이 좀 남는 것 같구나” 하면서 금고로 가서 2센트를 거슬러 준다. 그 2센트는 단순한 거스름돈이 아니라 천진한 어린아이를 이해해 줬던 어른의 선물이었다.

그 아이가 어른이 되어 열대어 가게를 열게 된다. 어느 날 어린 남매가 와서 열대어를 고르고 턱없이 부족한 돈을 낸다. 어른이 된 아이는 위그든씨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의 얼굴을 찬찬히 보고 “돈이 좀 남는 것 같구나” 하면서 금고로 가서 2센트를 거슬러 준다.

필자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마음 한편에 햇살이 비추는 것 같은 훈훈함을 느꼈었다. 위그든씨는 아이의 눈높이에서 마음을 읽은 것이다. 어린 아이의 순진하고 천진한 마음이 다치지 않게 이해해서 지켜줄 수 있는 어른의 마음을 전했던 것이다.

대화를 할 때 눈높이를 맞추는 것은 ‘나는 당신과 말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눈높이 대화란 그 사람 입장이 돼 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대화를 할 때 갈등이 생기는 것은 서로가 바라는 것과 원하는 것에 대한 인식의 차이이다. 같은 그림을 보고 각각 다른 대답을 하는 것과 같이 보는 대상이 같아도 인식의 편차가 크다는 것이다.

눈높이 대화로 화목한 가정을…

초등학교 1학년 딸을 둔 아빠가 있었다. 어느 날 학교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학교에 좀 와달라는 것이었다. 아빠는 바쁘니까 애 엄마와 통화하라고 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아빠께 꼭 보여 드릴 것이 있다며 바쁘더라도 와주기를 부탁했다. 아빠는 하는 수 없이 바쁜 시간을 내서 학교에 갔다.
선생님께서 그림 한 장을 보여 주었다.

“이게 무슨 그림입니까?”
“이건 소연이가 그린 그림이에요.”
“음… 위를 쳐다보고 있는 이 아이는 소연이 같은데…앞에 있는 그림은 무엇인가요? 통나무 두 개 같기도 하고……”

선생님은 난감한 듯이 말했다.

“통나무라고 생각하신 그 그림은 소연이 아빠 무릎이랍니다.”
“네?”

아빠는 어안이 벙벙하여 말을 잇지 못했다.
선생님도 소연이가 그린 그림이 너무 이상해서 소연이를 불러 물어보았다고 한다. 소연이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설명을 했다.

“위를 쳐다 보고 있는 아이는 저구요. 앞에 있는 그림은 아빠의 무릎이에요. 아빠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늘 바쁜 아빠는 평상시 소연이와 이야기를 할 때 늘 서서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소연이 오늘 학교에서 잘 지냈어?”
“아빠, 바쁘니까 빨리 얘기해.”
“그래, 알았어. 엄마한테 해 달라고 해.”
아빠는 무심코 자신의 눈높이에 소연이를 맞추고 일방적인 대화를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키가 작은 소연이는 아빠의 말을 아빠의 무릎을 보면서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던 것이다.
소연이 아빠처럼 무의식적으로 자녀와 이야기 할 때 이런 식의 대화를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식하지 못한다.

어린 자녀일수록 눈을 마주치고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어휘를 사용하여야 한다. 그리고 아이의 말을 잘 들어줘야 한다. 아이가 아빠, 엄마의 말을 잘 이해했는지 점검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눈높이 대화이다.

부부간의 갈등도 따지고 보면 눈높이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함께 살다보면 서로가 부딪히는 기회가 많다. 처음에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참고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언젠가부터 자존심이 고개를 들면서 자기를 고집하게 된다.

이는 부부의 시각의 차이, 인식의 차이 때문이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그럴 수도 있지.”하면서 너그럽지만 상대방의 잘못에 대해서는 “도대체 이해를 못하겠어.”하며 격분을 한다.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눈높이 대화법이 필요하다.

그럼 눈높이 대화는 어떻게 해야 할까?
눈높이 대화의 출발점은 내 것이 중요한 만큼 당신의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부터 가져는 것이다. 부부는 평등한 관계이다. 어느 한 쪽도 상처를 받지 않고, 기쁨과 만족을 누려야한다.
그리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얼굴 생김새가 다르듯이 기질이나 살아온 환경이 다름을 인정하고 그 사람의 입장이 돼 보는 것이다.
결론을 먼저 내지 말고 각각의 마음을 조율해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A씨는 지난달에 모친상을 당했다. 본가가 시골인지라 집에서 상을 치렀다. 도시생활만 하던 아내는 처음 겪는 시골 장례식에서 불편한 환경이었을 텐데 한 마디 불평 없이 잘 해줬다. 모친상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는 차안에서 A씨는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시골 장례식이라 환경도 많이 불편했을 텐데 일하느라 힘들었지? 힘든 내색하지 않고 잘 해줘서 정말 고마워.” 하면서 아내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아내 또한 남편의 손을 잡으며 “당신은… 내가 남이야? 나도 어머님 자식 며느리야. 나보다 당신이 더 맘 고생했지. 어머니를 잃었으니까.”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라는 옛 속담이 있다. 상대방의 눈높이에서 마음을 헤아려 줄 때 서로에게 따뜻한 말이 오고 간다는 말이다.

가족과 같이 가까운 사이일수록 ‘다 이해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눈높이 대화에 소홀하다.
진정한 소통을 하고자 하는 마음은 상대방의 허물조차 사랑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눈높이 대화란, 상대방의 눈을 보면서 마음에 주파수를 맞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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