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前 국무총리실 주무관 장진수

   
▲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주무관 ⓒ투데이신문

2012년 민간인 불법 사찰·증거인멸 청와대 개입 사실 폭로
‘블루게이트’ 통해 숨겨진 진실을 담다
영혼 없는 공무원에서 영혼 있는 시민이 되다
“장함사와 함께 진실규명을 위해 끝까지 싸울 것”

【투데이신문 이광명 기자】2008년 촛불집회가 일어날 당시 민간인사찰이 자행됐다는 소식으로 뒤늦게 나라가 떠들썩한 일이 있었다. 국무총리실 직원들이 KB한마음의 김종익 대표 회사로 찾아가 막무가내로 회계장부를 뒤지고 회사 지분도 모두 헐값으로 넘기게 만들어 밥줄을 끊어놨던 사건으로 죄목은 김종익 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대통령을 비하하는 동영상 링크를 걸었다는 것이었다. 대통령 명예훼손죄로 기소가 됐으나 결국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런 식으로 500여명이 불법 사찰의 피해자가 됐다. 그러나 쥐도 새도 모르게 감춰져있었다. 2010년에 이르러서야 김종익 씨가 직접 이런 피해를 당했다고 밝히면서 세상에 드러났다. MBC PD수첩에 방영이 되고 국회에서도 문제제기가 되자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지만 그 과정에서 증거인멸이 일어났고 결국 국무총리실의 일탈로 결론이 나며 힘없는 말단직원들만 쫓겨나며 마무리됐다. 증거인멸 때문에 더 이상 수사가 진행이 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렇게 또 2년이 흐른 2012년, 억울하게 공복을 벗었던 힘없는 말단 직원 중 한 명이 용기를 내 ‘그 일은 청와대의 지시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게 가려졌던 진실이 다시 표면 위로 떠오르는 듯 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정작 심판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유유히 법망을 피해서, 아니 법을 자유자재로 부리며 다 빠져나가는 것을 두 눈을 뜨고 지켜봐야 했다. 그래도 그는 진실을 밝히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바로 ‘블루게이트’를 들고 나온 장진수다. <투데이신문>이 그를 만나 국민을 우롱하는 권력자들의 뻔뻔한 탐욕의 실체를 낱낱이 파헤쳐봤다.

▲ 당시 일을 겪고 4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책으로 엮어내겠다고 생각했던 이유가 있나?

-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이 있어 기록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꾸준히 해왔다. 또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마음에 작년 대법원 판결 이후 제 페이스북에 조금씩 연재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 내용을 한꺼번에 엮어내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런 힘을 받아 열심히 원고를 썼고, 마침 출판사도 잘 섭외가 됐다. 책을 쓰면서 저 또한 답답했던 마음들이 정리가 되고 편안해진 기분이다.

▲ 폭로 이후 어떻게 지냈나?

- 힘든 부분도 있고, 좋은 부분도 있고 그렇다.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시고 지지해주는 메시지를 보며 견딜 수 있었고, 폭로를 통해 나는 그 범죄 집단의 일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충분히 밝힌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다만 그 뒤로 대법원 판결도 있었고, 유죄가 계속 유지되면서 직장이 없어지고 백수로 지내는 신세가 됐다. 그래도 올 봄 ‘장함사(장진수와 함께 하는 사람들)’라는 모임이 꾸려졌다. 저의 직장문제부터 많은 부분을 도와주시고 불법사찰에 대한 진실규명도 끝까지 지원해주시기로 한 분들이다. 여전히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

▲ 가족들도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아이들은 워낙 어렸다. 사건 당시 큰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고, 지금 고학년이 되긴 했지만 사건 자체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른다. 작은 아이는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인데 최근에 제가 책 쓰는데 몰두하고 있으니까 아빠를 책 쓰는 작가로 알고 있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더니 아빠가 나온다며 좋아한다. 아이들이 크면 이해하겠지만 아직까지는 깔끔하게 설명해줄 방법이 없어서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그래도 이 사건과 별개로 아이들도 그렇고 아내도 다 잘 지내고 있어서 고맙다. 특히 아내가 내색을 안 하고 그러니까 가족들과는 여전히 즐겁게 산다.

▲ 폭로 당시 아내분이랑 먼저 상의를 했나? 직장을 잃고 힘든 상황이 닥쳐오리라는 것을 알았을 텐데 동의하기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 상의했다. 그리고 선뜻 그렇게 하라고 북돋아줬다. 아내가 반대했다면 그런 결정은 어려웠을 것이다. 그 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른 주동자로 낙인찍힌 채 어느 직장에든 들어가 생계는 유지했겠지. 아내도 제 성향을 잘 알았기 때문에 이 사람(장진수)이 그렇게는 살 수 없겠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다. 아내에게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 민간인 사찰의 주범이 누구인지를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 민간인 사찰이 세상에 알려지고, 1차 수사에서는 총리실의 일탈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청와대 지시로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을 제가 폭로한 것이다. 책임져야할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책임질 사람들은 청와대에 있는데 엉뚱하게 총리실 직원들만 다 잘려나갔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옳은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 다행히 귀기울여주셔서 지금까지 견뎌올 수 있었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그 사람들과 제가 완전히 한 덩어리가 된 상황에서 탈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공무원이었기 때문에 지시에 따라 마음에 안 들어도 시키는 대로 했던 잘못은 있지만 정말 결백했다.

   
▲ 2012년 4월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참고인 자격으로 출두한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 ⓒ뉴시스

▲ 청와대가 주범이라는 것은 어떻게 확신할 수 있었나?

- 그 당시 약 500여건의 여러 민간인사찰이 있었다. 그중 제가 연루됐던 김종익 씨 사건만 놓고 봐도 이상한 점이 많았다.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공공기관 종사자가 대통령을 음해하는 동영상을 블로그에 올려놓았다며 총리실에서 무슨 조치를 취하라는 전화를 받았다는 것이 사찰의 배경이었다. 그러면 일단 공공기관 종사자인지 확인을 하고 실제로 블로그에 그런 동영상이 게재됐는지만 확인하면 될 일인데, 총리실 직원들이 김종익 씨 회사까지 찾아가 회계장부를 뒤지고 직원들에게 굉장히 강압적이고 심한 소리까지 일삼으며 조사를 했다고 한다. 굳이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하는 점이 아직까지 명쾌하게 해소되지 않았다. 익명의 제보자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 당시 연락을 받았다는 공직윤리지원관실이라는 곳이 사찰조직인 암행감찰반으로 내부에서도 그쪽 연락처를 알 수 없었다. 국무총리실 전화번호와 전 직원 전화번호가 다 공개돼있지만 그 지원관실 만큼은 번호가 비공개 상태였다. 어떻게 그 번호를 알고 연락을 했다는 것인지 말이 안 된다. 추정컨대 MB정부 시절 촛불집회로 한창 시끄러울 때 그걸 끄기 위해서는 거기에 참여한 시민들이 불순하다거나 어떤 불순한 세력에 선동되었다고 말을 하지 않으면 빠져나갈 길이 없었던 것이다. 쇠고기 수입만 해도 전 정부에서 어떤 절차를 밟아왔는지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이 하룻밤 만에 통과시켜버리는 등 너무나 명백한 잘못에 지적을 당하니까 상대방을 걸고넘어지는 방법 외에는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탈출구를 찾으려고 김종익 씨 회사 돈이 촛불시위에 지원이 되었다는 둥 그렇게 꾸미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 식으로 짜맞추려고 했는데 다 뒤져도 아무것도 안 나오니까 동영상이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가 있다며 기소된 것이다. 그런데 그 동영상도 명예훼손일 수가 없는 것이 김종익 씨가 그 동영상을 만든 사람도 아니고 그냥 링크를 걸어뒀을 뿐인데 그런 식으로 따지면 명예훼손에 안 걸릴 사람이 어디 있겠나. 말이 안 된다. 동영상 내용도 대부분 수긍이 가는 수준이다. 그것을 가지고 명예훼손으로 기소를 하는 황당한 일들이 벌어졌던 것이다. 물론 시간이 흐르고 다 무죄처분을 받았다. 그게 민간인 불법 사찰이었다. 처음 김종익 씨가 기소됐을 때는 경찰관들이 무죄라고 기소 못한다고 했었는데 위에서 압력이 있었는지 수사관이 교체가 되고 후임 수사관이 와서 김종익 씨를 동작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해갔다. 엄청나게 오만한 공무원들이 아니고서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스스로 굉장히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어쨌든 이것이 또 문제로 불거지자 감춰야 했는데, 그 감추는 과정에서 증거인멸이 벌어진 것이다. 청와대가 나서서 감춘 것이 확실하다. 사찰은 총리실의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어이없는 일은 검찰의 수사에서도 증거인멸을 많이 부각시켰다. 결국 그 당시에 민간인 사찰보다 증거인멸이 더 큰 사건이 돼있었다. 그 증거인멸을 부각함으로써 혜택을 본 집단도 검찰과 청와대였다. 검찰이 증거인멸로 인해 더 이상 윗선을 확인할 수 없다고 하며 청와대가 보호됐고, 검찰도 자신들이 수사를 제대로 못한 부분을 다 증거인멸로 떠넘겼다. 자기들이 시키고 본인들만 빠져나간 것이다. 처벌은 엉뚱하게 힘없는 말단직원들만 받고 몸통은 버젓이 살아남았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조사조차도 받지 않았다. 김종익 씨에 대한 사찰 문건이 ‘민정수석실 보고용 폴더’ 안에 있었다. 그게 무슨 의미이겠나. 민정수석실에 보고한다는 뜻 아닌가. 그럼 반드시 민정수석실도 같이 조사를 해서 이 사찰 사건을 보고받고 어떻게 했는지가 나와야 하는데 전혀 수사가 안 됐다. 민정수석실 관계자들 중 처벌받은 사람조차 없다. 마찬가지로 검찰 관계자들도 전혀 처벌을 받지 않았다. 1차 수사가 부실수사라는 의혹이 제기돼 재수사가 있었다. 그러면 그 때 왜 잘못됐는지에 대한 파악을 하고 조사를 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제가 이렇게 책을 내기에 이른 것이다. 사찰 건에 대한 기사만 해도 수만 건이 넘기 때문에 너무 방대해서 볼 수도 없고 완전히 산재해 있어 찾기도 힘들다. 그래서 이렇게 한 권으로 정리를 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 결국 관련자 처벌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 증거인멸이 종이 파쇄와 하드디스크 파쇄가 있는데 종이 파쇄는 증거인멸이 아니라고 한다. 하드디스크 파쇄만 증거인멸로 처리가 됐다. 또 외장하드를 파쇄한 사람은 증거인멸이 아니어서 잘못은 인정됐지만 징계만 받고 형사상 처벌은 받지 않았다. 또 저에게 증거인멸을 지시한 진경락 과장은 증거인멸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자기가 민간인사찰의 본범이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의 증거를 인멸하는 것은 증거인멸죄를 묻지 않는다는 법리로 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런데 같은 상황이었던 이영호 고용노동비서관은 민간인사찰의 본범으로 지목을 받았음에도 증거인멸교사범으로 처벌도 받았다. 그러니 이도저도 앞뒤가 안 맞는다. 너무나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잣대로 법이 적용됐다.

▲ 가장 억울한 점은 무엇인가.

- 물론 억울한 점도 있지만 그걸 호소할 처지는 아닌 것 같다. 억울하다기보다는 제가 잘못했던 일을 함께 고발하는 의미가 크다. 다만 재판 과정에서 형을 확정하는데 있어 그 이유에 대한 합당한 근거를 전혀 말해주지 않았다. 검찰의 공소장이 옳으니 이와 관계된 어떤 상반된 주장도 이의가 있을 수 없다는 식이었다. 대법원 판결까지 다 그런 식으로 일관했다. 너무 답답한 마음에 항소 이유서에 내가 죽을 때 죽더라도 죽는 이유라도 알고 죽자고까지 썼을 정도다. 그런 부분이 억울했다. 그러나 제 억울함을 계속 말하기에는 제 잘못도 있고 영혼이 없는 공무원이었다는 반성도 있다. 그런 것을 강조하고 싶지는 않다.

▲ 이번 폭로전에는 본인의 치부도 드러내야 하는 부분이 있어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 저를 회유할 목적으로 건넨 5000만원을 받았던 사실을 밝힐 때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에 정말 힘겨웠다. 폭로전이 진행될 당시 ‘이슈 털어주는 남자’에 출연해 특수활동비 상납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돌아왔는데, 아내가 그러더라. 왜 5000만원 받은 이야기는 하지 않았느냐고. 할 거면 다 하고 다 털어버리라고 했다. 그 사실을 다 밝히고 나면 어떻게 될지 너무 두려웠다. 그러나 다 꺼내놓지 않으면 결국에는 말하지 아느니만 못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단은 솔직하게 고백하고 판단은 국민들께 맡기기로 했다. 다행히 용서해주셨고 감사할 따름이다. 무엇보다 그 5000만원에 대한 진실이 밝혀질 부분들이 있다. 제가 받았다는 사실만 밝혀졌을 뿐 그 돈의 출처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다만 저에게 전달한 류충렬 국장이라는 사람이 돌아가신 장인에게서 받았다고 진술했는데 검찰도 그것은 말이 안 된다고 발표를 했다. 누구의 제안으로 누가 결정을 해서 저에게 오게 됐는지 이런 것들이 좀 더 밝혀져야 이 사찰의 지시 관계 등이 더 잘 드러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주무관 ⓒ투데이신문

▲ ‘청와대’라는 거물을 상대로 폭로전을 펼쳤다. 압력이 있다거나 힘든 일은 없었나.

- 더 이상의 이야기는 하지 말아달라는 연락은 있었다. 안 만나주면 집으로 찾아올 것 같아 몇 번 만나기도 했는데 그 사람들이 회유하거나 강요하는 것은 뻔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었지만, 그에 대한 큰 갈등은 없었다. 약간 두려움은 있었지만 이판사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들이 시킨 일로 형량도 받고 공직생활도 박탈당했는데 진실을 이야기한다는 이유로 다시 또 불이익을 가하고 그런다면 정말 그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지 않나. 그렇게 되면 나도 진짜 화를 내야지 하면서 준비하기도 하고 그랬다.

▲ 책에 보니 처음 공무원에 합격하고 촌놈이 출세했다며 굉장히 기뻤던 것 같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을 텐데 공직사회를 겪어본 소감은 어떤가?

- 제가 91학번인데 그때만 해도 다들 데모를 많이 했다. 92~93년 들어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91년도까지는 데모가 참 많았는데 데모 한 번을 안 했다. 물론 데모한다고 사회인식이 무조건 높은 건 아니겠지만 그 정도로 사회문제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공무원이 되고 총리실에 들어가면서부터 조금씩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전 참여정부 당시에는 무슨 문제만 터지면 노무현 탓이라고 몰아가는 기사들이 많았는데 아무 비판 없이 그냥 그런 줄로 알았다. 그런데 총리실 업무를 하며 ‘아, 그것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알았다. 총리실은 총리가 국장들을 모아놓고 간부 회의하는 장면을 직원들에게 생중계로 보여준다. 보고를 받고 지시하는 장면을 월요일 아침마다 생중계로 보니까 저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떻게 일을 추진하는구나하는 것을 많이 배웠다. 그러면서 언론이 국민들을 호도하는 내용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렇게 서서히 문제의식을 가지게 됐고 이 사건을 겪으면서는 신문에 나는 대부분의 기사들이 100% 신뢰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완전히 깨달았다.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는 상사가 시키는 일이면 그것이 국가에 충성하는 일로 알고 그냥 했다. 정말 아닌 것 같더라도 시키면 따르고 그것이 공무원인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을 겪고 나니 저런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면 국가를 위하는 일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국가에 대한 충성이라는 명분을 앞에 내세우고 뒤에서는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게 됐다. 그런 사람들이 국가의 중책을 맡고 있는 자리에 앉아 있으니 그런 곳에서 나오는 지시가 제대로 된 것일 리 없다. 주변인을 지역 인맥으로 채우는 그런 기본부터가 애초에 잘못돼 있는 것이다.

▲ 이런 일들이 자행되는 가장 핵심에는 무엇이 있다고 보나.

- 권력이다. 이 모든 일련의 사건들이 자신들의 실정이나 부정을 감추기 위해서 펼치는 과정이다. 자신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국민들은 불순세력이라고 몰고, 다른 정당의 비판도 당신네도 도진개진이라는 식으로 몰아간다. 국민들을 억압하기도 하고 현혹하기도 한다. 국정원 댓글사건만 봐도 국민을 현혹한 대표적 사례가 됐다. 전혀 성립되지 않는 전제들 위에 자행되는 이런 일들, 다 거짓인 것이다. 사찰도 자신들의 권력에 해가 될 것으로 생각되면 막무가내로 조사하고 감시하며 억압하는 그들의 단편이다. 황당할 뿐이다. 이 모든 일에는 지도자의 몫이 크다. 지도자가 지시해서 했든 안했든 최측근에서 한 일이었다. 청와대 1급 비서관이 벌인 일이라는 말이다. 그런 자리에 제대로 검증된 인사가 오지 않고 지연, 학연으로 얽힌 인맥으로 앉혀놓고 그런 것부터 지도자의 잘못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런데 나아가서 그분이 다 보고받으며 진행된 일이라면 과연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 것인가. 어쨌든 지도자의 책임은 크다.

▲ 공직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 국민이 국가인데 공무원들이 대통령을 국가로 인식하고 있는 오류에 빠져있다. 그 부분이 안타깝다. 저도 그랬었고. 미심쩍으면 한 번 더 생각해보고 아니라는 판단이 들면 아니라고 말을 해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말해야 한다. 절대자에 대한 충성이 아닌 국민을 위한 행정을 펼쳐야 한다.

▲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며 MB 정부에 대한 심판이 있을 거라고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었다. 그 부분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가.

- 왜 그러는지 답답하다. 기대에 부응하는 분명한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은 한 통속이라고 자인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아직 늦지 않았으니 불법 사찰에 대한 진실규명을 끝까지 해주고 관련자 처벌을 해주길 바란다.

▲ 국민들은 이런 상황에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겠나.

- 정부와 공무원은 국민의 공복이다. 우리의 행복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지 우리가 모셔야할 분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청와대 및 국무총리실의 사람들은 결코 국민들이 우러러볼 대상이 아니다. 내가 불편하면 이런 것이 불편하다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어야 하는데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고소, 고발당하지는 않을까 걱정해야 하는 현실에 처해있으니 참 슬프다. 저도 어릴 때는 사회문제에 대한 의식이 없었기 때문에 현재 젊은이들이 관심이 없는 것을 마냥 탓할 수는 없지만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 그것이 곧 우리의 행복과 직결된다고 생각을 하고 진실이 무엇이고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판단해야 한다. 또 자꾸 들여다보면 그런 눈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언론에서 떠드는 그 이면의 진짜를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 이번 일을 겪으며 본인 스스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 영혼 없는 공무원이 영혼 있는 시민이 됐다는 것이다. 시사평론가 김종배 선생님께서 제 책의 추천사에 “남을 고발하는데 그치지 않고 나까지 고발함으로써 그는 비로소 자유를 얻었고, 양심 있는 국민이 되었다”는 문구를 써주셨다.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가장 큰 변화는 직업이 있다가 백수가 됐다는 점이다. (웃음) 대통령이 국가라고 생각했던 시절을 지나 대통령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지시가 반드시 국민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의문을 제기하게 됐다. 폭로를 함으로써 자유를 얻었다. 책을 쓰면서 치유가 됐다.

▲ 향후 계획은?

- 솔직히 없다. 지금까지는 책을 출간하는데 몰두해있었고, 어떻게든 직장을 구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데 계속 고민 중이다. 다만 제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면 계속 할 생각이다. 짤막한 글로나마 지속적으로 많은 분들과 소통할 기회는 이어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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