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윤태영 전 청와대 비서관, 그가 ‘기록’한 노무현 대통령 이야기

   
▲ 윤태영 전 청와대 비서관 ⓒ투데이신문
노무현 전 대통령 최측근 윤 비서관이 전하는 그의 기록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알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
 
【투데이신문 김두희 기자】2014년 4월, 전국에 ‘노란 리본’이 휘날렸다. 국민 모두가 304명을 위한 ‘노란 리본’을 각자의 마음속에 하나씩 묶었다.
 
2009년 5월에도 대한민국은 노란 물결로 뒤덮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국민들이 그를 상징하던 ‘노란색’을 각자의 손에 들고 추모한 것이다. 그로부터 5년이 흘렀다. 노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지 5년이라는 시간이 너무도 빠르게 지나갔지만 그의 철학과 생각들은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되고 있으며 그의 뜻을 이어받아 ‘행동’하려는 사람들도 여전히 남아있다. 그리고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아직 ‘노란 리본’이 매어져 있다.
 
노 대통령이 떠난 지 5년 만에 그의 ‘기록’이 책으로 묶여 나왔다. 노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던 윤태영 비서관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노 전 대통령의 이야기를 마음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적어냈다.
 
연둣빛의 연한 잎들이 억세고 질긴 초록색으로 성장하는 초여름 6월, <투데이신문>은 마포구 노무현재단에서 윤태영 비서관을 만났다. 노 대통령이 서거한 후 충격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는 윤 비서관. 이제는 조금 추스르고 단단해진 것 같았다.
 
“이 책은 나에게 맡겨진 ‘사명’”
 
윤 비서관은 “원고가 끝나고 출판사로 넘기면 편하게 쉴 줄 알았는데…”라고 가볍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어 “책을 쓰고 나서 큰 짐은 벗은 것 같다. 그래도 작은 숙제 하나는 해결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책을 펴내면서 부담과 걱정이 공존했을 터.
 
그러면서도 윤 비서관은 이 책에 추천글을 써준 문재인 의원에 대해 “추천글에도 적혀있지만 막걸리 한 잔 해야겠다고 하시지 않았냐. 그래서 막걸리 한 잔 했다”라면서 고마움을 표했다.
 
노 대통령의 서거 후 5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나온 『기록-윤태영 비서관이 전하는 노무현 대통령 이야기』를 윤 비서관은 본인에게 맡겨진 ‘사명’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통령께서 가까운 곳에 두고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게 했던 것은 어떤 방법으로든 당신의 행적을 사람들에게 많이 알리는 역할을 하도록 하신 것”이라고 책을 세상에 내놓게 된 계기에 대해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윤 비서관을 두고 ‘대통령의 입’, ‘노무현의 필사’와 같은 단어로 그가 권력의 핵심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윤 비서관은 그저 노 대통령을 옆에서 지키고 관찰하고 기록하는 사람이었고 노 대통령도 그에게 ‘미화할 필요도 없고 일부러 사실을 왜곡할 필요도 없으니 꼭 사실대로 쓰라’고 부탁했다.
 
노 대통령의 재임 시기, 유난히 말과 관련한 논란이 계속됐다. 그렇기에 평소 솔직하고 시원하게 속내를 털어놓는 화법을 구사했던 노 대통령은 자신을 지켜보는 비서관에게도 본인에 대해 꾸미거나 혹은 왜곡하지 말고 사실 그대로 전달해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윤 비서관은 그러한 노 대통령을 “말과 관련한 오해가 있을 때 대통령님은 정면 돌파라고나 할까, 당신이 쓴 말의 본래 뜻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으로 오해를 풀어나갔다. 상황에 맞춰 각각 다른 해결방식을 취한 것도 아니고 우회적으로 돌아가는 일도 없었다”며 “말씀이 문제가 됐을 때마다 녹음한 것이나 받아 적은 것이 있다면 그대로 공개하라고 10번 문제되면 10번 다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기억했다.
 
평소 ‘대화’를 최상의 취미, 최고의 일상,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통 방식이라 했던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나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당시 언론과 일부 여론은 그러한 노 대통령을 두고 ‘대통령답지 못하다’며 노 대통령이 추구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부정했고 일반적으로 생각하듯이 ‘권위적인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투데이신문
노사모는 남들에게 없던 가장 큰 자산
 
윤 비서관은 이점에 대해 “노 대통령님의 리더십은 수평적 리더십”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대통령은 권위적이어야 한다는 선입관이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님은 모든 공격을 감수하더라도 대통령의 권위를 내려놓아야하고 그래야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하셨다”면서 “아무래도 사람들에게 대통령 이미지에 대한 선입관이 있으니 그 부분이 역으로 작용하기도 했지만 그 선입관을 깨려고 노력하셨다”고 노 대통령의 고집스러운 리더십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러한 면모를 지닌 노 대통령에게는 그의 인품을 따르는 ‘노사모’라는 두꺼운 지지층이 존재했다. 윤 비서관은 노 대통령이 ‘노사모’에 대해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가장 큰 자산’이라고 고마워했다고 기억했다.
 
그는 “후보 시절에 말씀하셨다.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두 가지 큰 자산이 ‘청문회 스타’라는 이미지와 ‘노사모’였다고. 노 대통령께 노사모는 굉장히 큰 힘이 되는 동시에 미안함을 느끼게 하는 존재였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다니는 곳마다 노사모들은 항상 찾아와서 노란 풍선을 매달고 플래카드를 들면서 그를 응원하고 지지했다. 윤 비서관은 미소를 지으며 “노사모 초기에는 고등학생도 있었다. 순수한 마음으로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것이 정말 고마웠지만 한편으로는 저 학생 부모님들은 뭐라고 하실까, 걱정 많이 하실 텐데… 하면서 항상 미안해하셨다”고 기억했다.
 
그렇지만 결국 노사모는 노 대통령에게 “정치적으로 힘들고 어려울 때 일어나서 다시 전진할 수 있도록 동력이 된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결국은 쓰러지지 않게 만드는 큰 힘이었던 것 같다”고 하며 “많은 사람들이 응원해주니 그것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면 어떡하나하는 부담으로 작용한 부분도 물론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역시 ‘힘’이었을 것”이라고 윤 비서관은 설명했다.
 
노 대통령이 정치를 시작하면서 노사모가 그에게 영향을 주고 힘이 됐던 적은 많았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위로가 됐던 적은 역시 노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의결됐을 때가 아닐까. 『기록』에서는 탄핵이 의결된 후 노 대통령이 이에 대해 ‘역사상 가장 불법적인 선거운동이 탄핵 의결이다’라고 소감을 정리했다고 밝힌다.
 
당시 전국 곳곳에서 ‘우리가 뽑은 대통령을 왜 당신들이 꺾으려 하느냐’며 시작됐던 촛불집회를 윤 비서관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광화문 네거리에서는 자발적으로 모인 국민들의 촛불이 어둠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고 노 대통령은 이를 북악산으로 오르는 중턱에서 바라보았다고 했다. 그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청와대 밖에는 그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촛불집회에 대해 노 대통령이 당시 어떠한 말씀을 하신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윤 비서관은 “노 대통령이 청와대에 갇혀서 지내는 동안 말을 많이 한 것은 아니지만 질서정연한 촛불들의 행진에 놀라움을 표했다”며 “그때 국민들이 들어준 촛불의 따뜻함에 힘을 얻었을 것”이라 말했다.
 
   
▲ ⓒ투데이신문
대통령이라는 책임감에 변화할 수밖에 없어
 
‘노사모’처럼 노 대통령에게 무한 지지를 보냈던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의 결정에 대해 반기를 들던 사람들도 존재했다. 특히 이라크에 파병을 결정했던 것은 반대 여론이 상당했다.
 
『기록』에도 그때 노 대통령의 심정을 담았다.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야할 책임이 있다’,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달라졌다’고 말하며 노 대통령은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다.
 
윤 비서관은 노 대통령의 결정에 대해 “사람이 변화됐다기보다는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가져다주는 어쩔 수 없는 변화였다고 본다. 만약 한 명의 국회의원이었다면 이라크 파병에 대해 충분히 반대했을 수도 있지만 이라크 파병 전후 상황을 살펴보면 북핵 문제가 최고조에 달해있었고 북한 폭격설까지 나왔었다. 한미공조가 전쟁을 막기 위해서 굉장히 중요한 한 축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파병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대통령이라는 자리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 나라 전체의 운명과 평화를 위해서 생각하신 것 아닐까”라고 조심스레 추측했다.
 
윤 비서관은 노 대통령이 자리가 주는 책임감에 어쩔 수 없이 변화한 모습도 있었겠지만 인간적으로는 여전한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며 인간미가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일례로 노 대통령은 사람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하며 웃어보였다.
 
“『기록』에도 나와 있지만 노 대통령께서는 사람 이름을 잘 기억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옆에서 누군가 지나가듯이 말씀드린 것도 며칠 후에 깊이 생각하신 후 그것에 대한 답변을 주셨다. 절대 남의 말에 대해 허투루 듣지 않으셨다. 일이 바쁘고 정신 없으셨을 테고 나는 큰 의미를 담지 않고 말씀드린 건데 2~3일 후에 오랫동안 고민한 흔적이 느껴지는 답변을 주실 때가 많았다”며 “사람의 이름은 한편으로는 껍데기나 마찬가지다. 사람 자체를, 그 실질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라고 표현했다.
 
인터뷰를 진행했던 날은 6·4지방선거가 끝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충남도지사에 새정치민주연합의 안희정 후보가 당선됐다. 언론에서 ‘노무현의 장자’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한 안희정 후보다. 또한 ‘세월호 참사’ 후에 선거가 치러져 여당을 선거로 심판해야한다는 말까지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렸다. 노 대통령의 최측근이라고 불렸던 윤 비서관은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안희정 충남도지사에게 노 대통령이라면 어떤 조언을 해줬을 지 궁금해 질문을 던졌다. 
 
그는 “지금 내가 정치에 몸담고 있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대답을 드리기 곤란하다”고 말하면서도 “예전에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에게도 이래라 저래라 말씀하시는 편은 아니었다. 또 예전에는 지향하는 바가 같아서 같이 행동했다하더라도 지금 노 대통령이 안 계시는 상황에서 이제는 새롭게 태어난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몫 아니겠나.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무슨 말씀을 하시지는 않았을 거다”라고 말했다.
 
이어 ‘친노세력’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만약 ‘친노’라는 이미지가 청와대 있었을 때 같이 있었다고 ‘친노’라고 한다면 의미가 없다고 보고 노 대통령이 추구했던 지역주의 청산, 권위주의 해체, 탈 권력 같은 가치관들을 지지하고 따르려는 사람들을 ‘친노’라고 한다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다지 친분은 없을지라도 김부겸 후보처럼 지역주의 청산을 위해 열심히 뛰고 아깝게 진 사람도 노 대통령의 가치관과 철학에서 보면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거다”라고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그렇다면 윤 비서관은 노 대통령의 어떤 부분이 가장 닮고 싶은 것일까. 그는 한참을 생각한 후에야 “승부해야할 시기에 승부할 줄 아는 것. 끊임없이 변화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 금기시되는 것도 바꿔보려는 그 도전정신이 정말로 닮고 싶은 부분”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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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
 
『기록』에서도 서술된 것처럼 노 대통령은 본인만의 표현을 즐겨 사용했다. 재임 시에 만들어진 어록도 상당했다. 그러한 노 대통령을 관찰하고 기록했으니 무언가 하나쯤은 마음에 지표로써 삼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딱 생각은 못 해봤지만 제일 좋은 말은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다’다. 제일 상징적으로 쓰이고 있는 말이기도 하고. 사실 감명 받았다기보다는 이것이 노 대통령님의 생각을 응축시켜서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봄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줄 알았더니, 땅에서 솟아오르더라’
 
『기록』속에 적힌 것 중 가장 아리송한 노 대통령의 말이다. 이를 두고 윤 비서관은 하늘에서 봄볕이 내리쬘 때보다 땅에서 아지랑이가 올라올 때 봄이 왔음을 느낀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좋은 정치나 민주주의라는 게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땅에 발 딛고 사는 사람들이 노력해서 이룩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이 서거한 지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가장 민주적인 대통령이었다는 평가와 국민의 지지도가 너무 낮았던 대통령이라는 비판이 동시에 거론된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을 접하게 될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지 물었다.
 
“노 대통령님을 지지하고 좋아하는 분들을 위해서도 썼지만 잘 모르거나 오해하고 있는 분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논란이 많은 쟁점보다도 대통령의 사람됨이 어땠고 일상이 어땠으며 취미는 무엇이었고 사람들은 어떻게 대했는지… 사람을 알 수 있는 책, 인간미가 느껴지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 선입견을 갖지 말고 봤으면 좋겠다”
   
▲ 노무현 전 대통령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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