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욱 칼럼니스트
▸저서 <삼국지인물전>, <역사, 어제이면서 오늘이다> 외 4권

【투데이신문 김재욱 칼럼니스트】세상 좋아졌다. 몇 년 동안 생사조차 몰랐던 친구들을 ‘밴드’,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에서 만났다. 친구들 모두 풍요롭게 살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예쁜 꽃, 정갈한 음식, 경치 좋은 곳의 사진을 올린다. 사진작가가 따로 없다. 그에 곁들인 글은 한 편 한 편이 멋진 수필이고, 좋은 시다. 모두들 작가에 버금가는 글 솜씨를 지니고 있다. 인명사전을 찾아봐야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서양의 철학자, 동양의 고승ㆍ선비의 글을 꾸준히 올리기도 한다. 참으로 식견이 넓고 사려 깊다. 친구가 병에 걸렸다고 하니 쾌유를 기원함과 동시에 ‘이 또한 지나간다’, ‘병을 친구로 삼으라’고 하며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고매한 인격과 너그러운 성품까지 지니고 있다. 이런 친구들과 이처럼 아름다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한테만 주어진 신의 축복이다.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에 맞게 정치도 아주 잘 이루어지고 있다. 대통령이 집무 중에 일곱 시간 동안 자리를 비워도 나라는 별 탈 없이 잘 돌아간다. 유능한 관료들이 많아서 그렇다. 그 뿐인가. 수시로 해외를 방문하면서 우리나라의 국격을 높이는 데 여념이 없다. 여당과 야당은 이런 태평한 분위기를 타고 한 번 다투는 일도 없이 모든 사안을 일사천리로 진행한다. 아주 오래전 제주도로 가던 배가 가라앉아서 304명이 목숨을 잃는 경미한 사고가 발생하자 신속하고 정확하게 사고를 일으킨 주범의 시신을 찾아냈고, 관련자 처벌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피해자에게 두둑한 보상을 주어 다시는 이런 가벼운 사고조차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드디어 우리나라도 말로만 듣던 선진국대열에 들어서고 있다는 게 피부에 와 닿을 정도다.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제 사진 밖 세상으로 나가 본다. 길거리에는 노숙자들이 박스를 깔고 잠을 청한다. 직장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거리를 점거하고 농성을 한다. 군에 보낸 자식은 온 몸이 멍투성이가 되어 죽어서 돌아온다. 착한 줄로만 알았던 자식이 동료에게 총질을 한다. 하급자의 엉덩이에 자기 성기를 대고 비벼댄다. 공직자가 바바리맨 노릇을 한다.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교인 자격을 박탈한다’며 돈의 액수로 신앙의 척도를 삼는다. 교수가 제자의 연구비를 갈취하고, 논문을 베낀다. ‘우리 아이는 시키지 않아도 잘한다’고 하면서 금니까지 팔아서 고액과외를 시킨다. 아이들을 사랑한다면서 ‘아홉 시 등교는 말도 안 된다’며 돼지 같은 소리를 내 뱉는다. 금쪽같은 자식이 왜 죽었는지 그것만 알려달라고 하는 외치는 부모한테 밀실에서 처리한 합의안을 들고 와서 그만하라고 종용한다. 목숨을 걸고 38일이라는 긴 시간을 곡기하나 입에 대지 않고 있는 가엾은 아빠한테 ‘그 정도면 병원에 갔어야 한다’, ‘빨리 죽으라’고 한다. 동시에 생각이 있다는 사람들조차 ‘당신의 뜻을 존중합니다’, ‘그것도 투쟁의 방법이죠’,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고 하며 성인군자 같은 말을 내 뱉는다. 이념과 정치성향을 떠나 아주 많은 사람들이 세상일을 남의 일이라 여긴다. 이게 진짜 풍경이다.

아름다운 사진과 글, TV를 들여다보며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는 사이 우리 사회는 점점 추해지고 있다. 이제는 다른 방법이 없다. 거리로, 광장으로 나가야 한다. 요임금을 보고 짖는 폭군 걸의 개와 같은 경찰이, 수구언론이 막아서더라도 우선 나가 보자. 아름다운 풍경은 이 발걸음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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