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비극이 숨쉬는 곳, 서울 광화문광장에 가다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자식이 왜 죽었는지 밝히고 싶은 마음”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만난 세월호 희생자 단원고 2학년 7반 학생 故이민우 군의 아버지 이종철(47) 씨는 심정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작고 힘없는 목소리로 눈에는 눈물을 담은 채. 이내 목소리를 다시 높이며 “세월호 특별법 제정돼 앞으로 이런 사고가 없었으면 한다”고 소리쳤다.

28일 오후 2시경,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무더운 날씨임에도 아들을 잃은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많은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였다.

현재 세월호 특별법 합의안은 큰 진전이 없다. 심지어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온갖 루머들이 판을 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유가족과 시민들은 간절히 외치고 있다. 보상, 대학 특례입학과 같은 혜택이 아닌 다음 세대 아이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특별법이 하루 빨리 제정되는 것을 말이다. 특별법의 핵심은 진상규명, 재발방지대책, 안전한 사회건설 구축이다. 이에 대한 열망과 간절함 그리고 세월호 유가족들의 아픔을 함께 하고자 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다.

   
 

세월호 사고 희생자들의 단식 농성으로 시작된 광화문 단식이 시민들의 동참으로 더욱 확산되고 있다. 이곳에 모인 시민들은 단체 혹은 개인적으로 단식에 참여했다. 참가 접수를 받는 곳을 가보니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입구에는 짧게는 하루에서 길게는 3일까지만 단식에 참여할 수 있다는 설명이 붙어있었다. 한 관계자에게 단식에 참여한 시민 수를 묻자 오늘 하루만 300여명 정도가 된다고 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에서 온 서은경(50)씨는 “부모의 마음으로 함께 하고 싶었고 앞으로 내 자식이 안전한 나라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단식을 하러 왔다”고 전했다.

   
 

대전에서 올라와 단식을 1일 째 하고 있다는 대학생 홍승택(19)씨는 “사실 이 문제는 논쟁이 될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세월호 특별법은 당연히 제정돼야 하는 것 아니냐”며 “여당과 야당이 힘겨루기를 할 필요도 없는 것 같은데 진상규명 등과 같은 국민들의 바람을 포기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분노했다.

3일간의 단식과 함께 피켓시위까지 했다는 김태희(56) 씨는 “자식 잃은 것도 억울한데 (진상조사가) 제대로 안 되고 있으니까 안타깝다”며 “아니 사람이 한 달 넘게 코앞에서 밥을 굶고 있고 유가족들이 계속 청와대 앞에서 시위하고 있는데 (대통령은) 어떻게 이리도 모른 척 할 수가 있는지….”하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우리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다시는 이런 참사가 없도록 서명해주세요. 철저한 진상규명 통해서 안전한 사회 만듭시다”

서명을 독려하는 자원봉사자들의 목소리가 광장에 울려퍼졌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시민들은 당연하다는 듯 펜을 들었다. 외국인들에게 서명을 받고 있는 영어강사 조미선(50) 씨에게 외국인들의 반응을 물었다. 그러자 그는 “유럽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 거의 다 알고 안타깝게 생각한다. 우리가 오히려 외국인들에게 많은 위로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서명운동 봉사를 하는 이유에 대해 “유가족만의 일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한 일, 나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여기저기서 1인 피켓 시위도 진행되고 있었다.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50대 여성에게 물을 건넨 한 청년에게 광화문광장을 찾은 이유를 물었다. 경기도 안양에서 왔다는 대학생 문태웅(27) 씨는 “단원고 희생자 유민 양의 아버지인 김영오 씨의 목숨을 건 단식과 문재인 의원의 단식을 보면서 나도 동참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대학생 친구들의 참여가 부족해 아쉽다. 대학생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이 문제에 대해 남의 일이라며 배척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관심갖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광화문광장은 비극만이 숨쉬는 외딴 섬 같았다. 분노와 비통함이 가득찬 섬.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또다른 모습이다. 단식농성장 한 켠에 있는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내는 분수에서 아이들은 웃으며 뛰어놀았다. 쉴새없이 물이 터져 나오는 분수가 세월호 유가족들의 눈물과 닮았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유가족들과 끝까지 함께 합니다”라는 글씨가 적힌 노란 리본이 바람에 더욱 세차게 나부끼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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