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욱 칼럼니스트
▸저서 <삼국지인물전>, <역사, 어제이면서 오늘이다> 외 4권

【투데이신문 김재욱 칼럼니스트】옛날에는 나라에 큰 사고가 나면 왕이 스스로 반성하며 모든 책임을 자기가 짊어지려 했다. 동시에 사고의 원인을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였고, 신하들에게 대책을 강구하라고 명령했다. 1628년(인조 6년) 인조는 여러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임금이 덕을 잃으면 하늘이 재앙을 내리고 교화가 행해지지 않으면 백성들이 국법을 범하는 법이다. 그 이치는 매우 분명하니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형편없는 사람인데 외람되게도 신민(臣民)의 위에 군림한 지 어언 6년이 되었다. 그런데 볼 만한 일은 하나도 한 것이 없이 그저 백성들을 귀찮게 하기만 하였으니, 하늘이 노여워하고 백성들이 원망하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아, 윗사람을 죽이는 일과 같은 엄청난 일이 몇 달 사이에 한양과 경기도에서 잇따라 일어나고, 말도 못할 가뭄의 재앙이 발생하여 중추(仲秋)의 계절에 접어들도록 비 한 방울 내리지 않고 있다. 그런가 하면 전국에 우박이 쏟아지고, 6월에 서리가 내리며, 밤하늘 별자리도 경계를 보여 준 일이 이미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처럼 괴이한 변고가 어느 달이고 없는 때가 거의 없었다. 나의 허물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통렬하게 나 자신을 꾸짖을 뿐이다. 일 처리가 타당성을 잃어 덕을 훼손시켰기 때문인가? 죄 없는 사람이 억울하게 걸려들어 그 지극한 원통함이 아직 풀어지지 못했기 때문인가? 인사 행정이 잘못되어 인재의 길이 답답하게 막혔기 때문인가? 형벌과 포상이 믿음직스럽게 되지 못해 권선징악의 뜻이 없게 되었기 때문인가? 부역(賦役)이 불공평하여 서민들이 원망하기 때문인가? 언로(言路)가 가로막혀 아랫사람들의 마음이 통하지 못하기 때문인가? 제사를 정결하게 지내지 못해 신령들이 흠향하지 않기 때문인가? 세력 있고 교활한 자들이 제멋대로 나쁜 짓을 행한 결과 민간에 수심이 쌓였기 때문인가? 참소하는 자가 뜻을 얻고 사사로운 청탁이 기승을 부리기 때문인가? 안과 밖이 엄숙하지 못해 뇌물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인가? 재앙을 막을 도리를 강구하려면 마땅히 올곧은 말을 청해서 들어야 할 것이다. 정원은 나를 대신해서 하교를 작성하여 정직한 말들을 널리 구하도록 하라. 채용할 만한 점이 있으면 내가 상을 줄 것이요, 혹 걸맞지 않는 말을 하더라도 벌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명령이 떨어지면 선비들은 왕의 심중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고 기탄없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어떤 경우에는 왕의 심기를 건드리는 과격한 말도 마다하지 않았다. 인조의 명을 접한 당시의 유명한 선비 계곡(谿谷) 장유(張維 1587~1638)는 기다렸다는 듯 상소를 올렸다.

“……삼가 전하의 하교를 읽어 보니 그 말씀하신 뜻이 간절하였으며 자신에게 책임을 돌리면서 도움을 요청하신 것이 정말 지극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말씀으로만 그렇게 하신 것일 뿐, 전하께서 마음속에 지니시고 실제로 보여 주시는 것 가운데에도 과연 이런 말씀에 부합하는 것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전하께서는 지금까지 해 오던 방식대로 따르실 뿐 뭔가 크게 해 보려는 뜻을 분발하지 않고 계십니다.…… 지금 하고 계시는 일을 가지고 살펴본다면, 느슨하게 풀어져서 게으름만 부리는 것과 비슷한 점이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계속 이런 식이 되고 만다면, 좋은 정치를 이룩하기는커녕 점점 힘이 없어지고 뺏기기만 하는 가운데 날이 갈수록 멸망의 길로 빠져 들고 말지나 않을지 두렵기만 합니다. …… 사람들은 늘 “나라에 언로(言路)가 있는 것은 사람에게 혈맥(血脈)이 있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혈맥이 막히면 사람이 병드는 것처럼 언로가 통하지 않으면 국가가 망하고 마는 법입니다. 그런데 임금으로 말하면 억조창생의 위에 군림하는 신분으로서 구중궁궐 깊은 곳에 처하여 듣지도 보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언로(言路)를 활짝 열어 놓지 않는다면, 가령 자신의 몸에 잘못된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어떻게 알 수가 있으며, 아래에서 간사한 행동을 하더라도 어떻게 들을 수가 있겠습니까. ……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래로 조정의 신하들은 말을 하다가 견책을 받은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전하의 뜻을 거스르면 좋아하지 않으시고 재상들의 뜻을 거스르면 그들이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사헌부와 사간원에선 말하는 것을 금기로 여기고 있습니다. …… 기껏 말을 한다고 하는 것이 미관말직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거론하여 탄핵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라서 이런 일에 대해 식자들은 세상일을 개탄하고 있습니다. …… 그저 하릴없이 세월만 보내면서 이리저리 뚫어진 자리를 꿰매어 맞추기나 하다가 하루아침에 하늘이 노여워하고 백성이 떨어져 나가는 가운데 내우외환(內憂外患)을 맞기라도 한다면 걷잡을 수 없이 나라가 망하고 말 것이니, 이것이 바로 신이 크게 두려워하는 점입니다.”

장유의 말은 완곡해 보이지만 내용을 보면 반드시 그렇지 만은 않다. 장유가 보기에 인조는 ‘말만 그럴듯하게 하고 행동은 하지 않는 임금’이고, ‘언로를 막아서 바른 말을 통하지 못하게 하는 임금’이며, ‘듣기 싫은 소리를 들으면 신하를 벌주는 속 좁은 임금’이고, ‘하는 일 없이 세월만 보내면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임금’이다. 그러나 인조는 이런 임금일망정 신하의 말을 듣는 시늉이라도 했다. 장유는 왕한테 저런 말을 하고도 벌을 받지 않았다. 결국 조선은 장유의 예언대로 8년 뒤에 ‘병자호란’을 겪으며 속절없이 무너졌다.

“국민 여러분, 지난 한 달여 동안 국민 여러분이 같이 아파하고, 같이 분노하신 이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 살릴 수도 있었던 학생들을 살리지 못했고, 초동대응 미숙으로 많은 혼란이 있었고, 불법 과적 등으로 이미 안전에 많은 문제가 예견되었는데도 바로 잡지 못한 것에 안타까워하고 분노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채 피지도 못한 많은 학생들과 마지막 가족여행이 되어 버린 혼자 남은 아이, 그 밖에 눈물로 이어지는 희생자들의 안타까움을 생각하며 저도 번민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 나날이었습니다. 그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그 가족들의 여행길을 지켜 주지 못해 대통령으로서 비애감이 듭니다.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습니다. …… 민관유착으로 또 다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지 않도록 우리 사회 전반의 부패를 척결해 나갈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특검을 해서 모든 진상을 낱낱이 밝혀내고 엄정하게 처벌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야와 민간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포함한 특별법을 만들 것도 제안합니다. 거기서 세월호 관련 모든 문제들을 여야가 함께 논의해 주기 바랍니다.” <2014. 5. 14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담화’ 발췌 수록>

대통령 스스로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습니다.”고 했다. 누가 물어보지 않았다. 대통령 스스로 최종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밝혔다. 과연 지금까지 대통령은 책임을 지기 위해서 어떤 조치를 취했고,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가. 혹시 그 옛날 병자호란을 맞이했던 인조처럼 말만 하고 실제로는 행동하지 않고 있지는 않은가. 국민의 말을 듣겠다면서 경찰을 동원해 언로를 막지는 않았는가. 듣기 싫은 소리를 듣지 않고 있지는 않은가. 모든 책임을 국회에 떠넘기고 세월만 보내며 자리만 차지하고 있지는 않은가.

국민은 대통령을 모셔야 하는 사람이 아니다. 대통령은 국민의 선택을 받아 5년 동안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일뿐이다. 이것은 ‘대통령을 모독’하는 발언이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지극히 상식적인 발언이다. 왕이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조선시대에도 지금처럼 언로가 막히지 않았다. 이제라도 국민들에게 답해야 한다.

“훗날,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는 말을 듣는다. 인조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고,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가. 인조에게 바른 말을 했던 장유는 또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가. 눈물을 흘리면서 국민에게 한 약속을 스스로 어기고 있는 대통령을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 것이며, 어떤 평가를 하게 될 것인가. 생각 있는 식자들은 세상일을 개탄하고 있다.

<장유의 상소문은 『국역 계곡선생집』 18권, 「말해 주기를 요구한 유지에 응한 차자」(한국고전번역원)의 번역을 발췌하여 부분적으로 수정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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