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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책사업 반대 주민에 돈봉투로 해결?
‘내부 청렴도 1등급’ 한전, 이미지 추락 불가피
‘돈봉투 사건’ 송전탑 건설지역 전체로 수사 확대 조짐

【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에 대해 한전이 돈봉투로 매수한 사건이 점입가경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전이 청도에 이어 밀양까지 반대주민들을 대상으로 돈봉투를 전달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주장이 나와 파문이 예상된다.

특히 한전은 지난해 공공기관 청렴도 조사에서 내부청렴도 부분 1등급을 받고 반부패 경쟁력 평가에서도 우수기관으로 선정되는 등 클린기업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번 ‘돈봉투 사건’으로 한전은 국책사업의 정당성을 훼손시켰으며, 윤리경영 또한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청도 송전탑 반대 주민 7명에 1700만원 전달
한전 직원 “돈은 전달했지만 개인 돈이다”

22일 경찰 등에 따르면 경찰청은 지난 12일 경북 청도 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들에게 돈봉투를 돌린 이현희 경북청도서장을 경질했다.

경찰청은 이현희 전 서장의 처신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 즉각 조사에 착수하는 한편 현 상황에서 서장으로서 직무수행을 계속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직위해제 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들을 대상으로 수백만원 상당의 돈봉투를 돌린 행위는 법질서를 확립해야 할 경찰서장으로서 매우 부적절하다”며 “앞으로 철저한 감찰조사를 실시해 그 결과에 따라 엄정히 책임을 물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앞서 청도경찰서의 한 직원은 추석 연휴인 지난 9일 청도군 각북면 삼평1리에 사는 주민 6명에게 이현희 전 서장 이름이 쓰인 돈 봉투를 전달했다.

이들은 송전탑 건설에 반대해 온 주민들로 이들 중 2명은 돈을 돌려줬지만, 4명은 자녀가 대신 받거나 경찰이 돈을 두고 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주민 6명 외에도 할머니 1명이 추가로 100만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총 7명의 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들에게 1700만원을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현희 전 서장은 한전 측으로부터 돈을 건네받아 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들에게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전 서장은 돈봉투를 전달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동안 한 달이 넘는 장기대치에도 불구하고 말이 통하지 않던 다친 할머니들에게 명절도 되고 해서 순화활동의 일환으로 한과와 함께 치료비 및 위로의 의미로 전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다른 의도는 없었고 한전에서 받은 돈도 기존에 알려진 1700만원이 전부”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 전 서장에게 돈을 전달한 한전 대구경북지사장 등 한전 관계자들은 경찰 조사에서 “이현희 청도경찰서장에게 건넨 돈은 회사 돈이 아닌 개인 돈”이라며 “개인 직원 계좌에서 위로금조로 낸 돈”이라고 말했다.

지사장 등은 자신들의 통장 계좌 입출금 내역 등을 증거로 제시,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한전비자금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경찰은 직원들이 1700만원 이라는 큰돈을 사비로 마련했다는 점이 석연치 않다고 보고, 한전이 반대 주민에 대한 로비용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는지 여부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이에 경찰은 돈의 출처를 명백히 밝히기 위해 관련자 및 계좌 추적 등을 통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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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서도 송전탑 반대 주민에 돈전달 시도
한전 직원 “시공사에서 돈 받아 전달한 것”

청도뿐 만 아니라 밀양에서도 한전이 돈으로 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을 매수하려한 정황이 포착돼 논란이 일고 있다.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밀양 송전탑 경과지 마을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해 온 반대 주민 A씨가 2014년 2월 밀양시 단위농협 임원 선거에 이사로 출마하자 한전 밀양특별대책본부 소속 김 모 차장은 A씨가 거주하고 있는 마을 이장인 B씨를 통해 A씨에게 현금을 전달할 것을 부탁했다.

김 차장은 B씨에게 1000만원을 전달했고, B씨는 이 중 200만원을 따로 챙긴 뒤 선거를 이틀 앞둔 2월 12일경 A씨를 만나 800만원을 전달하려 했다. 그러나 A씨가 강하게 반발하며 돈을 받지 않자, B씨는 다시 마을 주민인 C씨와 D씨를 불러 대신 전달하려 하였지만 이조차도 실패해 한전 측에 돈을 모두 되돌려줬다고 대책위는 설명했다.

A씨가 한전의 김 차장을 찾아가 돈의 출처를 묻자 “B씨가 두 차례나 요구해 그 돈을 주게 됐다”면서 “시공사에게서 받은 돈”이었다고 진술했다.

대책위는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명백하게 한전이 반대 주민을 금전으로 매수하려 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금융기관인 지역 단위농협 임원 선거에서 불법적인 금품 살포를 시도한 것이자 하도급업체에 금전을 요구한 3중의 위법사안이 겹치는 중대한 범죄 행위”라며 이번 사건과 관련해 조환익 한전 사장과 김 차장을 밀양경찰서에 고발했다.

특히 대책위는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이러한 한전과 경찰의 행태가 그동안 송전탑 분쟁 지역에서 수없이 자행됐을 것”이라며 “사정기관들은 이 사건은 물론이거니와 전국 곳곳에서 자행되었을 것이 분명한 이런 더러운 행태를 뿌리 뽑을 수 있도록 전면적인 사정 작업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도 한전의 돈봉투 사건을 겨냥해 “새롭게 문제가 제기된 밀양을 포함해 주민과 갈등을 빚었던 송전탑 건설 지역을 대상으로 한전의 돈봉투 매수 시도가 있었는지 정식 수사를 진행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하 의원은 “중요 국책 사업에 대해 ‘묻지마’ 식 반대도 문제지만 주민동의를 돈봉투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더 큰 문제로 국책사업의 정당성을 훼손시키고 있다”며 “이번 기회에 정확하고 성역없는 수사를 통해 이런 악생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강요했다.

한전 “수사가 진행 중인 사항…밝힐 입장이 없다”

이번 돈봉투 사건과 관련해 한전 관계자는 <투데이신문>과의 통화에서 “청도 송전탑 건설 돈봉투 사건은 조사가 진행 중인 만큼 명확히 밝힐 입장은 없다”고 말했다.

밀양에서 발생한 사건과 관련해서는 “돈이 오고 간 것은 한전과 계약한 시공회사와 마을 이장 간의 일”이라며 “한전 직원은 이에 대해 인지하고는 있었으나 한전 직원을 통해 돈이 오고 간 것이 아니며 한전은 이와 관련 여부가 없다”고 해명했다.

주민 로비를 위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이 역시 수사가 진행 중인만큼 밝힐 입장이 없다”고 짧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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