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SNS ‘재수의 연습장’ 운영자, 만화가 ‘재수’

▲ ⓒ재수의 연습장
 
“특별한 이유 없이 그리고 싶으면 연습장에 그려”
“독자의 빠른 피드백 위해 SNS 운영.. 많은 도움 된다”
“스스로 고민하다 보면 답 찾을 것.. 무엇이든 해보기를”
 
【투데이신문 김두희 기자】시시때때로 눈 안에 오래도록 담아두고 싶은 장면들이 있다.
 
따뜻한 햇살 속에 유모차 안의 아기와 눈 맞추며 웃는 아기 엄마의 모습, 카페에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마주보면서 마냥 행복해 보이는 커플들의 얼굴, 알록달록 줄무늬를 몸에 두른 고양이나 성실한 눈망울을 갖고 있는 강아지가 애교를 피우는 모습이 그렇다. 따스하게 눈 안에 남은 이 잔상들이 사라지는 게 아쉬워 어떻게든 기록해두고 싶었던 적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본 적이 있다면 작가 ‘재수’를 추천하고 싶다. ‘재수’ 작가의 그림은 일상 속 담고 싶은 풍경을 투박하고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의 차분하고 담담한 그림체는 보는 이들을 편안하고 포근하게 만들어 준다. 
 
이렇게 ‘재수’ 작가만의 따뜻한 시선을 담은 스케치들은 지난 1월 23부터 페이스북 등 SNS 페이지에 공개됐고 8개월 여만에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좋아요’라고 엄지를 ‘척’ 올렸다.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일상 속 소소한 이야기를 위트 있게 담아 스케치로 옮기는 ‘재수의 연습장’ 속 그림을 보면서 ‘민머리’ 캐릭터로 본인을 표현한 그가 정말 궁금해졌다. 
 
지금까지 보여진 것보다 앞으로 보여 줄 것이 더 많은 작가이자 베일 속에 가려진 SNS 스타 작가 ‘재수’를 서면 인터뷰를 통해 <투데이신문>이 만나봤다.
 
Q. 반갑습니다. ‘재수’ 작가님. 이번 인터뷰를 직접 만나서 하지 못하는 게 안타깝습니다. 평소 본인이 어떤 성격의 사람인 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소심하고 예민하고 고집이 강합니다. 또 행동보다 생각이 많은 편이라 좋게 말하면 신중하고 나쁘게 말하면 굼뜨고 게으르지만 스스로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지기 위해서 많이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Q. 작가님을 알게 된 곳이 바로 페이스북인데요.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독자들과 만나기 전에는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대표작으로는 <모베러 블루스>, <금붕어의 자살>, <파이프시티>가 있습니다. 아직 장편 연재는 해보지 않았네요. 짤막하게 뱉어내듯이 제가 하고 싶은 만화 작업을 했고, 남은 시간은 생활을 위해서 삽화 외주 작업이나 메신저에 들어가는 캐릭터 이모티콘 작업을 해왔습니다.
<모베러 블루스> 2009 SICAF 서울국제디지털만화공모대상 대상 수상
<금붕어의 자살> 2011 대한민국창작만화공모전 단편부분 최우수상
<파이프시티> 2011년 포털사이트 다음 만화속세상에서 6회 연재한 단편
 
▲ ⓒ재수의 연습장
Q. 그럼 페이스북 페이지에 그림을 올리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파이프시티> 작업 이후 스토리 작업이 뭔가 가로막힌 것처럼 답답하고 앞으로 만화가로 살아갈 수 있을지 불안감도 커졌습니다. 때마침 좋은 취지의 제안이 들어와서 <감정코치K>에 참여했어요. 2년 동안 연재 없이 단행본으로 바로 나오는 작업이었는데 일반 웹툰처럼 연재하는 게 아니라서 피드백이 없으니 답답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답답함을 해소하고 그림을 그리는 즐거움을 되찾기 위해 단행본 작업과 병행하면서 ‘재수의 연습장’ 페이지를 관리하게 된 거죠.
 
Q. ‘재수의 연습장’에서 어떤 설정을 적용한 캐릭터가 아니라 작가님 본인을 그리게 된 이유도 궁금한데요
-딱히 이유는 없네요. 페이지의 제목처럼 연습장에 그리듯이 그냥 그리고 싶으면 그립니다. 저를 캐릭터로 만들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을 관찰하기도 하고, 설정이 들어간 캐릭터를 그릴 수도 있습니다. 아무런 제한 없이 말 그대로 ‘연습장’에 그리듯이 그리고 있습니다.
 
Q. 그럼 ‘재수의 연습장’ 페이지 내의 작가님 캐릭터를 보면 실제로 머리를 밀고 계신 건가요? 처음에는 J모 작가님과 헷갈리기도 했는데, 스타일적인 이유에서 ‘민머리’ 스타일을 고수하시나요
-네. 지금 이 스타일이 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벌써 그 분과 헷갈리시면 안 됩니다. 대머리가 세상을 지배할 것입니다.
 
Q. 다시 ‘재수의 연습장’의 그림 이야기를 해볼까요. 페이지에 올라가는 그림들은 대부분 일반 사람들의 모습이잖아요. 밖에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은데 그림으로 옮기게 되는 기준이나 혹은 그리고 싶은 어떤 포인트가 있는 건가요
-기준은 없고 그냥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립니다. 가끔은 그려놓고 나서야 ‘내가 이래서 이것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구나’하는 부분들이 눈에 들어오곤 하죠. 그렇게 그린 후 바로 페이지에 업로드하게 됩니다.
 
▲ ⓒ재수의 연습장
Q. 독자들과의 활발한 소통이 필요해서 ‘재수의 연습장’을 열게 됐다고 하셨는데, 완전 제대로 통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벌써 2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좋아요’를 외치며 ‘Thumbs up’ 했잖아요. 작가님께서 독자들로부터 아이디어를 얻기도 할 것 같은데 어떤가요
-제가 나름대로 재미있는 제목이라고 생각하고 올려도 댓글에서 제목을 더 재미있게 달아주시기도 하고 또 그림의 내용을 이어받아 친구들과 재미있는 대화를 하기도 하더라고요. 실제로 그 내용을 몇 번 옮겨 그리기도 했습니다. 저는 모든 댓글이 관심의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페이지 내에서 타인을 배려하는 매너있는 댓글 문화가 형성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요.
 
Q. 카페 등에서 관찰하시면서 그림을 그리시는 것 같던데, 아직 작가님을 알아본 일은 없나보네요. 그림을 그리러 가는 단골 카페가 있나요
-아직 저를 못 알아차리시는 건지 배려해주시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누군가 저를 알아보시고 알은 척한 적은 없었습니다. 저는 그다지 활동반경이 넓지 않아서 가기 편한 동네 카페로 갑니다. 작고 아담한 곳보다는 시끌시끌한 사람이 많은 곳으로요. 작은 카페는 조용해서 옆 테이블의 대화가 너무 잘 들려서 오히려 집중이 잘 안 되지만 사람이 많고 큰 카페에서는 이른바 백색 소음이 만들어지기에 집중도 잘 되고 그릴 사람도 많습니다. 그렇다고 카페를 사람들을 관찰하기 위해서 다니는 것은 아니고요(웃음). 아침에 잠을 깨려고 멍하게 앉아있거나 책을 읽거나 자잘한 작업을 주로 하다가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는 장면을 메모해두거나 그립니다.
 
▲ ⓒ재수의 연습장
Q. 전작인 『모베러 블루스』, <금붕어의 자살>, <파이프시티>를 보면 제목 자체에서 음울함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아요. 한 포털사이트에서 연재한 <파이프시티>의 경우 세계관이 현실과 차이가 있고요. 이것들은 최근 ‘재수의 연습장’에서 볼 수 있는 그림들과는 분위기와 성격이 매우 다른 것 같은데요. 분위기 등이 변화한 계기가 있을까요
-음울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다시 보니 음울하네요. <파이프시티>를 기점으로 책상머리에서 머리를 쥐어짜서 만들어내는 이야기에 대해 뭔가 한계를 느낀 것 같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카페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 속에 담긴 이야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죠. 그래서 그것을 조금씩 제 스타일로 옮겨 그리기 시작하고 그렇게 8개월 동안 매일 꾸준히 연습하다보니 나름대로 그림체도 다듬어지고 만화적 형식도 갖추게 된 것 같네요.
 
Q. 사람들 말고도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 그림도 있던데요. 최근에는 ‘개 그리기 개 어렵다’라는 말과 함께 ‘개’ 그림이 올라오기도 했죠. 동물을 그리는 것은 좀 더 다양한 주제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연습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어떤 매력을 느껴서 그리시는 건가요
-고양이와 개가 나오는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어서 연습 삼아 그린 것을 올렸습니다. 좀 더 자연스럽게 그리고 싶어서 많이 연습하고 있고요. 사실 개는 이제야 ‘제대로 한 번 그려볼까?’ 하고 알아가는 시점이라 어떤 느낌인지, 매력이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고양이는 재미있는 구석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알 수 없는 행동도 많고 사람과 비슷한 행동도 많은 것 같습니다. 알수록 신비롭고 사랑스러운 동물인 것은 확실하네요.
▲ ⓒ재수의 연습장

 

▲ ⓒ재수의 연습장
 
▲ ⓒ재수의 연습장
Q. 지금은 이렇게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계신데요. 원래 꿈은 무엇이었나요
-특정한 직업이 꿈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어릴 때부터 낙서하는 것을 좋아했고 그림을 잘 그리고 싶었고 글을 잘 쓰고 싶었습니다. 글과 그림이 효과적으로 어우러지는 양식 중에 제게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이 만화였고요, 만화가가 돼야겠다고 결심한 때는 대학교 졸업 작품을 구상할 때였습니다. 졸업 작품을 1년 동안 진행하면서 긴 이야기를 만드는 시간을 처음으로 가질 수 있었고 그때부터 만화에 더 깊이 발을 담그게 된 것 같네요. 그리고 운 좋게도 졸업 작품으로 수상과 데뷔를 동시에 하게 됐습니다.
 
Q. 남자들은 ‘슬램덩크’가 ‘인생 만화(인생에서 가장 영향을 준 만화 혹은 가장 재미있게 읽은 만화)’라고 하던데요. 작가님도 그런가요
-아니요, 만화가가 돼야겠다고 결심하기 전까지 제게 만화책이란 잘 그린 그림을 베껴 그릴 수 있는 연습 도구였습니다. 만화가가 되겠다는 결심 이후로는 만화를 열심히 읽고 있는데 제 인생 만화는 <창고라이브>(지피, 세미콜론, 2007)입니다. 대학생 때 도서관에서 <창고라이브>라는 만화책을 펼쳤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그전에는 깔끔하게 맺어지는 그림체가 만화다라는 편견이 있어서 낙서와 만화에 사용되는 그림을 따로 두고 생각했었죠. 하지만 <창고라이브>를 보고난 후 ‘아, 이렇게 그려도 되는 거였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그 뒤로는 바스티앙 비베스의 <염소의 맛>, 에드몽 보두앵의 <여행> 등 드로잉이 부각되는 유럽 만화들을 보면서 비슷한 감회와 자극을 받았습니다.
 
Q. 작가님이 <창고라이브>를 통해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누군가는 ‘재수의 연습장’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됐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빠른 소통이 장점인 SNS의 특성상 지망생들에게 관련 질문도 많이 들어올 것 같은데요, 활발히 소통하고 계신가요
-네. 물어보시면 아는 대로, 제가 생각하는 대로 답변해드리고 있습니다만 질문이 구체적이지 않으면 저 또한 구체적인 답변을 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리고 스스로 질문을 구체적으로 고민하다보면 대부분 스스로 답을 찾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딱히 드리고 싶은 충고는 없습니다. 무엇이든 일단 해보시길 바랍니다. 저 또한 ‘재수의 연습장’을 통해 무엇이든 해보는 중이니까요. 
 
Q. ‘재수의 연습장’을 통해 작가님을 지켜보고 있을 테지만, 그 외 앞으로의 활동 계획도 궁금합니다
-오랜 기간 준비해왔던 <감정코치K> 작업이 끝났으니 지금부터는 저의 오랜 숙원인 장편 웹툰 연재를 준비해야할 때인 것 같습니다. ‘재수의 연습장’은 당장 어떠한 콘텐츠로 개발하기보다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부담 없이 낙서하듯 즐겁게 그려서 올릴 계획입니다. ‘재수의 연습장’은 여러 많은 가능성을 열어둔 곳이니까요. 일단 장편 웹툰을 연재한 이후에 구체적으로 고려해볼 생각입니다.
‘재수의 연습장’을 제 주변 사람들도 잘 보고 있다고 만날 때마다 이야기해주시고 있습니다. 많은 독자분들도 페이지를 봐주시고 그때그때마다 즉각적인 반응을 주시는데 그때마다 정말 신기하고 즐겁습니다. 늘, 언제나 감사합니다.
▲ ⓒ재수의 연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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