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인터뷰] 장애인 역도선수 정성윤

 

장애 이해하는 과정 혹독했지만 묵묵히 받아들여
활발하고 쾌활한 성격에 운동까지 좋아해
휠체어 탄 선수가 농구하는 모습 본 후 운동 결심
“역도, 기록 깼을 때 쾌감과 정복감은 어마어마”
“장애인 선수, 불쌍하고 안타깝게만 보지 않았으면”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불가능이 우리를 이끈다’

지난달 열린 인천아시아경기대회가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이제 좀 더 특별한 스포츠인들의 축제가 시작된다. 바로 이달 18일부터 24일까지 열리는 ‘인천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다. 이번 대회는 42개국 4500여 명 선수가 참가하며 양궁, 육상, 유도, 역도 등 총 23개 종목에서 메달을 겨룰 예정이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107kg급 장애인역도 남자부 선수의 기대주로 떠오르고 있는 정성윤(30) 선수를 만났다. 감동의 물결 일렁이는 그의 역도 인생이야기, 지금 시작한다.

두 살 때, 보행기 추락사고로 장애 얻어

사람은 누구나 사고를 겪는다. 하지만 어린 아이의 사고는 한 사람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정성윤 선수가 두 살이었을 때의 일이다. 그의 어머니는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집에서 부업을 했는데, 돌보기 어려워 정 선수를 보행기에 태워놓고는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두 살짜리 아이가 탄 보행기가 2층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사고 이후 운동신경에 마비가 왔고 그렇게 장애를 안고 살게 됐다. 그래서 지금 남아 있는 그의 돌사진을 보면 어머니와 아버지가 울고 있는 모습밖에 없다고 한다.

하지만 부모님은 정 선수를 강하게 키웠다. 활발한 성격 덕에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잘 지냈다. 또 워낙 운동을 좋아해 일반 친구들과 똑같이 체육활동을 했다. 운동 중에서 축구를 좋아했는데 목발을 짚으면서도 골키퍼, 공격수, 수비수를 했다. 일진(잘 노는)친구들과 어울리고 선도부에서 활동하는 등 스스로 강해 보이려고 부단히 애썼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게 있었다.

그는 고등학교 때 학급 반장 선거에 나가 반장으로 당선이 됐다. 뛸 듯이 기뻤고 행복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담임선생님이 조용히 그를 불렀다. “성윤아, 네가 선생님 일을 도와줘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반장이라는 이름표를 다른 친구에게 양보했고 결국 부반장이 됐다. ‘장애가 이렇게 힘든 거구나’를 느끼게 된 계기였다.

장애로 인해 눈물을 삼켜야 했던 적이 또 있었다. 그는 대학을 가기 위해 K대학교에 지원했고 서류전형을 통과했다. 당시 면접을 보는데 면접관이 ‘좋은 인재이긴 한데 저희 학교는 장애인 시설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이후 그는 불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정 선수는 “차라리 그런 얘기를 안 들었다면 ‘아,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 떨어졌구나’라고 생각할 텐데 그 얘기를 듣고 불합격 통지를 받으니 더 슬퍼지더라고요. 떨어진 이유가 장애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니까요. 그때 자괴감이 굉장히 심했죠”라며 씁쓸해했다.

결국 정 선수는 다른 대학의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다. 그런데 대학은 들어가자마자 입학의 설렘이나 새내기의 풋풋함보다 ‘장애에 대한 서러움’을 먼저 알게 했다. “대학교를 들어가서 처음으로 혼자 수업을 가고 점심을 먹으러 식당을 갔어요. 근데 혼자 목발을 짚고 여기저기 다니는 게 너무 힘이 들어 3일 동안 끙끙 앓았어요. 처음으로 엄마한테 전화해 펑펑 울면서 ‘엄마, 나 장애인이래. 그래서 휠체어가 필요할 것 같아’라고 말했죠. 그때 처음으로 장애를 인정했고 부모님에 대한 원망도 조금은 생겼던 것 같아요” 자신의 장애를 이해하는 과정이 혹독했지만 그는 묵묵히 받아들였다.

   
 

휠체어 탄 선수가 농구하는 모습 보고 운동 결심

2004년, 정 선수는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된다. 그는 TV에서 휠체어를 탄 선수가 농구를 하는 장면을 보게 됐다. 그 모습이 멋있다는 생각이 들어 인터넷을 통해 장애인 체육과 관련된 정보를 찾았다. 전공이 컴퓨터다 보니 정보를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장애인 스포츠에 관심이 생겨 정보를 모았고 인터넷 사이트에 ‘운동에 관심이 있다’며 글을 올렸다. 그리고 며칠 뒤, 장애인 수영국가대표 출신 용필성 선수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용필성 선수는 그에게 성남 아이스링크장으로 오라고 했다. 그해 당시 장애인 아이스슬레이지하키 선수 육성이 활발하던 때였다. 정 선수가 찾아간 현장에 역도 올림픽 2관왕을 했던 박종철 선수가 있었다. “박종철 선배가 저의 몸을 보더니 ‘넌 이거(아이스슬레이지하키) 할 몸이 아니야, 역도를 해야 돼’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때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어요. 아이스슬레이지하키는 3번 정도 훈련해보다가 그만뒀고요”

목발을 집고 전철로 1시간 반 이상 이동하는 게 힘들었고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아이스슬레이지하키에 대한 꿈을 접은 그는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사업을 했다. 하지만 ‘태극기를 왼쪽 가슴에 달고 싶다’는 생각을 쉽게 떨쳐낼 순 없었다. 2006년, 박종철 선수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역도를 하고 싶다”고. 그러자 박 선수는 “그래, 와”라며 그를 반갑게 받아줬다.

“아내,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해준 고마운 사람”

2006년도에 훈련소에 들어간 그는 그토록 원하던 태극마크를 왼쪽 가슴에 달았다. 당시 말레이시아 아·태평양장애인경기대회에 앞서 신인 T.O가 났고 들어간 지 일주일 만에 태극마크를 얻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5년 동안 경기체육회에 소속돼 합숙하고 훈련했다. 당시에는 장애인 실업팀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국가대표 훈련수당이 있긴 했지만 턱없이 적은 금액이었다. 5년이라는 시간 속에는 아내의 남다른 내조가 있었다. 정 선수에게는 브랜드 옷을 사주고 그녀는 시장에서 옷을 사 입었다. 어디에 가서 기죽지 말라고 남편 지갑에 항상 돈을 넣어주는 사람이었다.

“아내는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해줬어요. 사실 운동을 한다고는 하지만 5년 동안 돈을 제대로 벌어주지 못했어요. 제가 물질적으로 가정에 도움을 못 줄 때 아내가 일을 하면서 돈을 벌었죠. 일도 하고 부모님을 모시면서 힘들었을 텐데도 투정하거나 불만을 쏟아내지 않았어요. 정말 고마운 사람이고 제가 한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친구들 사이에서 ‘신사임당’으로 불린다는 아내.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 당시 정 선수는 3학년으로 선도부장을 맡았고 아내는 1학년 신입생이었다. 아내는 일반인이었음에도 장애인인 자신에게 처음부터 마음을 열어줘서 고마웠다고 말한다.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결혼식은 올리지 못했단다. 이유를 묻자 그가 고개를 떨구며 말한다. “사실 런던올림픽 때 출전권 얻어서 좋은 결과를 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 축복 속에 결혼하겠다고 다짐했는데 제가 부족해서 출전권을 받지 못했죠. 그렇게 미루다 보니 아직도 못하게 됐네요. 결혼식은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장애인올림픽 이후에 할까 생각하고 있어요”

기자가 딸이 있지 않냐고 묻자 순간 그의 눈이 반짝였다. 카리스마 있는 표정과 진지한 말투는 사라졌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딸 자랑을 쏟아낸다. 누가 봐도 ‘딸바보’ 아빠였다. “딸이 24개월인데요. 조그마한 입에서 ‘아빠’라고 하는 거 있죠. ‘엄마’라는 말보다 ‘아빠’를 먼저 했다니까요. (웃음) 저희 어머니가 아들만 둘을 키웠는데 딸이 예쁜 짓을 많이 해서 엄청 좋아하세요”

딸이 생기고 나서 생활도 많이 달라졌을 것 같았다. “우리 딸 지이가 생기기 전에는 솔직히 내가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살았어요. 차도 바꾸고 카메라, 낚시가 취미라서 고가장비를 구입하기도 했죠. 하지만 지금은 어딜 가도 장난감부터 보여요” 그의 딸 사랑은 아내의 질투심마저 자극할 정도였다. 정 선수는 “영상통화를 하면 딸 얼굴만 보고 끊는다며 아내가 서운해해요”라고 했다. 기자는 이 정도면 아내가 질투를 할 법(?)하다며 아내 편을 들었다. 서로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그에게 딸 지이가 어떤 사람으로 컸으면 하는지 묻자 곰곰이 생각한 뒤 입을 연다. “일단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했으면 좋겠어요. 딸이 봉사활동도 많이 하고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줄이는 데 힘썼으면 해요. 남들과 더불어 사는 착한 아이로 큰다면 더 바랄 게 없겠네요”

   
 

“역도의 매력, 쇳덩이를 이겼다는 우월감과 쾌감”

예부터 역도는 정직한 운동으로 불렸다. 역도는 바벨을 가슴에서 1초정도 정지한 후 올려야 하는데 수평감을 잃어도, 지그재그로 올라가도 안 된단다. 반동이 아닌 본인의 순수한 힘으로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신이 운동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것. 요행이 통하지 않기 때문일까. 목표하던 기록을 세웠을 때 느끼는 감정은 남다르다. 정 선수는 매일 역도를 그만둘까 고민하지만 바벨을 잡으면 마음이 달라진다고 했다. 물론 운동이 끝나면 병든 닭처럼 쓰러지긴 하지만.

“솔직히 역도가 엄청 재미있지는 않아요. (웃음) 하지만 내가 쇳덩이를 이겼다는 우월감을 느낄 수 있어요. 기록을 깼을 때 쾌감과 정복감은 어마어마하죠. 죽을 만큼 운동해서 1%, 2% 더 많이 들었을 때는 기분이 정말 좋답니다”

한 때 ‘운동 그만 둘까’ 생각…추신수 선수 보며 슬럼프 극복

2006년부터 2013년까지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3관왕을 했고 동아시안 게임에서 동메달을 땄던 정성윤 선수. 하지만 다른 선수와 마찬가지로 그에게도 슬럼프는 찾아왔다. “한 때 2~3년 정도 슬럼프에 빠져있었어요. 요즘은 많이 돌아왔는데요. 실패했던 적이 많아서 두려움과 불안감이 있죠. 그래서 요즘에는 이미지 트레이닝과 멘탈(정신)코칭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 ‘나는 할 수 있다! 내가 이 무대의 주인공이다! 내가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다’ 이렇게 항상 되뇌곤 해요”

2010년 중국 광저우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때 실격을 당한 것이 슬럼프의 시작이었다. 당시 정 선수는 출전을 위해 8kg을 뺐는데 한국에서 체중관리를 못하는 바람에 4kg이 넘어갔다. 그래서 하루 반 정도 굶은 상태에서 시합에 나갔다. 준비운동을 하는데 무게가 무겁게 느껴졌고 정신적으로도 위축됐다. 이런 이유로 1차에서 3차까지 한 번도 바벨을 들지 못해 실격처리가 됐다. 이후 운동을 그만두려고 했는데 그를 잡아준 것은 미국 프로야구 무대에서 활약 중인 추신수 야구선수였다.

“어느 날 예능프로그램을 보고 있는데 추신수 선수가 그러더라고요. 운동이 너무 하기 싫었던 적이 있었는데 팔이 부러지면 운동을 안 할 수 있을 것 같아 천 번 넘게 야구방망이를 휘둘렀대요. 그게 지금의 위치에 오르게 된 원동력이 됐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마음을 다잡았죠. ‘그래 나도 팔이 부러질 때까지 해보자. 그럼 나중에는 정상에 우뚝 서 있지 않을까’라고요”

 

“장애인 선수, 몸 불편해도 정신은 누구보다 강해”

자신에게 장애가 없었다면 어땠을지 상상해 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그가 웃으며 말한다. “저는 끼가 많아요. 노래도 잘하고 춤추는 것도 좋아하죠. 주위 친구들이 ‘너 안 다쳤으면 뭐라도 될 놈이야’라고 이야기하곤 해요. 제가 너무 잘 날까봐 신이 하나를 빼주신 게 아닐까 싶어요. (웃음) 존재만으로도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특별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기자님도 저랑 인터뷰해주시는 거잖아요. 제가 일반 회사원이었으면 이런 상황도 없었겠죠? 장애인이든 일반인이든 ‘정성윤’ 자체는 특별했을 거예요”

이어 장애를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세상에는 몸이 멀쩡해도 정신적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이 많아요. 우리는 단지 몸이 불편할 뿐이죠. 정신은 누구보다 쾌활하고 건강하며 슬픔을 이겨낸 강인한 사람들이에요. 역경을 이겨냈다는 것, 대단한 일 아닌가요?”

3년 전부터 정 선수는 인천장애인역도 실업팀에 소속돼 운동하고 있다. 그가 역도를 시작한 지도 어느덧 9년이 다 돼 간다. 처음 왼쪽 가슴에 태극기를 달았을 때는 ‘뭐라도 해낼 수 있을 것’처럼 자신감이 넘쳤고 행복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무게가 바벨만큼이나 무거운 듯 느껴졌다. “열심히 최선을 다할게요. 이 대회에서 애국가를 꼭 울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끝으로 그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며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이렇게 말했다.

“다들 ‘박태환 멋있다’, ‘김연아 예쁘다’라고 하죠. 그런데 장애인 선수들은 왜 불쌍하고 안타깝게만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저희도 그들처럼 멋있거든요. 일반 선수처럼 메달을 위해 열심히 땀 흘리고 있어요. 우리들의 노력이 불쌍하지 만은 않아요. 똑같은 시선에서 저희를 바라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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