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인터뷰] 장애인 역도선수 이현정

   
 

어머니 돌아가신 지 한 달도 안 돼 장애 찾아와
대학서 쥬얼리디자인 전공했지만 장애로 인해 취업 어려워
역도하는 이유, ‘기록 오르는 맛’ 있기 때문
“장애가진 친구들, 밖으로 나와 새로운 세상 보기를”
장애인역도계 유망주… 이번 대회서 1~2위 예상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감동의 휴먼드라마가 시작된다!

한계를 뛰어넘어 아름다운 감동을 전하는 아시아 최대의 장애인스포츠 축제, 인천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가 이제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대회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장애를 극복하고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어떤 희망과 감동을 줄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에 <투데이신문>이 두 번째로 만나본 선수는 인천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86kg급 장애인역도 여자부의 유망주로 주목받고 있는 이현정 선수(29)다. 그녀의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같은 인생역전 역도이야기, 지금 시작한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예고없이 찾아온 장애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일까. 이현정 선수의 장애는 너무나 잔인하고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그녀가 초등학교 5학년 때, 그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를 잃은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 큰 절망이 소녀를 덮쳤다. 그것은 바로 예고 없이 찾아온 장애였다.

이 선수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한 달도 안 돼 야영을 가게 됐다. 야영날 아침 6시,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혼자만 일어날 수가 없었다. 다리가 도무지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날, 감기 기운이 있어서 약을 먹긴 했지만 별다른 증상은 없는 터였다. 선생님께 아프다고 한 후 누워있는데 나아지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조금만 쉬면 괜찮아지겠지’ 생각했으나 소변도 나오지 않았고 몸에선 열이 났다. 그로부터 6시간이 지난 오전 12시쯤, 그녀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아버지한테 전화를 건다. 이후 아버지와 함께 경북 구미에 있는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는 큰 병원을 가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대구에 있는 병원으로 다시 이동해 검사를 실시했다. 검사 결과, 원인은 척수염이었다. 척수에 염증이 생겨 신경을 누르는 바람에 신경이 죽었다고 했다. 염증 제거수술을 마친 의사는 그녀에게 ‘앞으로 걷지 못할 것’이라며 냉정하게 말했다.

“그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한 달도 안 돼 저까지 아프니까 아빠가 많이 힘들어하셨죠. 사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그런지 장애가 무엇인지 잘 몰랐어요. 그냥 장애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또 무엇보다 엄마가 돌아가셔서 너무 힘들다 보니 장애가 별로 슬프지 않게 느껴졌어요”

이 선수는 장애를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면서 장애에 대한 서러움도 함께 커졌다. 가장 서러웠던 적은 학교를 다니지 못할 때였다. 초등학교는 간신히 졸업했지만 문제는 중학교였다. 통학이 어려워 중학교에 가지 못해 2년 동안 집에서 지내야 했다. 학교에 가는 언니가 부러울 따름이었다.

“언니가 학교 가면 길만 쳐다보며 하루 종일 언니 오기만을 기다렸어요. 친구들도 없었거든요. 그때 ‘아, 장애인이라서 학교를 못가는 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파트 앞에서 언니를 기다리고 있던 어느 날,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이웃주민이 그녀에게 왜 학교를 다니지 않느냐며 재택 교육을 소개해줬다. 그 주민의 도움으로 일주일에 3번, 집으로 찾아오는 선생님과 함께 공부했고 일주일 중 한 번은 중학교 특수학급을 다녔다.

중학교 공부를 시작할 무렵, 비극은 또 한번 그녀에게 소리없이 찾아왔다. 아버지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렇게 이 선수는 언니, 동생과 함께 서로 의지하며 살 수밖에 없었다. 기초생활 수급자였기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아 이 선수의 언니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곧장 일을 시작해 돈을 벌었다.

“언니가 어려서부터 생활비를 벌었고 그 돈으로 제 운동도 시켜줬죠. 언니를 생각하면 고마운 마음뿐이에요. 어쨌든 힘든 상황에서 어렵게 공부해 3년 과정을 2년 만에 마칠 수 있었어요.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못 갈 줄 알았는데 다행히 집 근처에 고등학교가 생겨서 가게 됐죠. 특수학급에서 일반 수업을 들으면서 고등학교도 무사히 졸업했어요”

“여자가 무슨 역도를?… 처음에는 거부감도 들어”

이 선수는 고등학교에 이어 대학도 들어갔다. 전공은 쥬얼리디자인학. 평소 만지는 것을 좋아했던 터라 공부가 재미있고 즐거웠다. 2년 뒤 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취업의 단꿈에 부풀어 있었지만 그마저도 장애라는 벽 앞에 부딪히고 말았다. 그가 전공한 계통은 회사의 시설이 취약해 취업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졸업 후 1년 정도 집에서 쉬었는데 그때 역도 인생이 시작됐다.

“부모님이 안 계셔서 자신의 차로 저를 병원에 데려다주신 아저씨가 있었거든요. 한 날은 그 분이 저를 찾아와 ‘집에만 있지 말고 운동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시더라고요. 운동이 싫어서 안 하겠다고 했죠. 아저씨께서 저 몰래 여러 군데 알아보던 중 역도에서 연락이 왔다고 하시더라고요. 이후 장애인 역도연맹 감독님이 저를 보기 위해 집을 방문했는데도 싫다고 했어요. 솔직히 여자가 역도한다고 하면 좀 그렇잖아요(웃음)”

운동에 흥미가 없었고 언니랑 동생이랑 떨어지는 것도 싫었다. 그런데 언니와 동생이 “일단 해봐라. 3개월 동안 합숙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내려오면 되지 않냐”고 했다. 2009년 3월경 결국 감독이 다녀간 지 일주일 만에 서울로 가게 됐다. 합숙을 하면서 운동의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갔다. 역도대회에 나가고 합숙을 하다 보니 기록이 조금씩 올라 기분이 좋았다. 3개월이 지났지만 ‘내려가면 뭘 할 수 있을까, 일단 해보자’라고 다짐하며 운동에 열중했다. 이후 국가대표로 태극마크를 달게 됐고 활동하던 중 인천에서 장애인역도 실업팀에 들어갔다.

“운동하면서 가장 큰 힘이 돼준 사람이 바로 ‘정성윤 선수’예요. 성윤 오빠한테 운동을 그만두고 싶다, 힘들다고 얘기하면 그때마다 오빠가 저를 다독여주고 위로해줬어요. 동계훈련이 굉장히 힘든데 ‘동계훈련 끝나면 좀 편해지지 않냐, 조금만 참자’며 잘 이끌어줬죠”

이 선수가 운동한 지도 어언 5년이 넘어간다. 그녀가 말하기를 5년 동안 운동하면서 정성윤 선수로 하루도 안 본 날이 없다고. 만약 정 선수가 없었다면 자신은 운동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운동으로 지쳐있는 그녀에게 그는 정신적인 지주였던 셈이다.

   
 

“역도의 매력… ‘기록 오르는 맛’이 있는 것”

그녀에게 다짜고짜 역도의 매력이 뭔지 물었다. 잠시 고민하더니 ‘솔직히 모르겠다’며 개구쟁이처럼 웃는다. 이내 표정을 가다듬더니 말을 이어나간다.

“역도의 매력은 ‘기록 오르는 맛’이 아닐까 싶어요. 기록이 올라갈수록 더 올려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스러울 때도 있어요. 하지만 목표로 하던 기록을 깨면 해냈다는 성취감에 정말 기분이 좋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요. 기록 오르는 맛이 없으면 역도 못할 것 같아요. 물론 기록이 안 나올 때는 역도를 그만두고 싶어지지만요(웃음)”

이 선수는 2010년 광저우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3위를 차지해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국제대회 첫 메달이었다. 당시를 회상하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당시 제가 97.5kg을 들었는데요. 상대도 저와 같은 무게를 들었어요. 상대보다 무조건 더 많이 들고 싶었는데 감독님이 97.5kg을 들라고 하시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그 무게를 들었는데 제가 이겼어요. 역도는 같은 무게를 들더라도 몸무게가 적게 나가면 이기거든요. 그때 역도가 전략적인 운동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답니다”

이어 국내 무대에서도 빛을 발했다. 2012년,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1위를 한 것. 하지만 국내 1위가 그녀에겐 기쁜 기억으로 남아있지는 않았다. 이유는 역도를 잘 하는 언니가 있었는데 역도를 그만 두면서 라이벌이 사라진 것. 그 언니는 이 선수보다 기록이 약간 높았는데 언니가 없으니 긴장이 되지 않고 자극이 생기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의 승부욕과 열정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껴졌다.

   
 

“필리핀 언니만 이기면… 동메달 딸 수 있을 것 같아요”

2012년 무렵, 운동선수라면 흔히 경험하는 슬럼프가 그녀에게도 찾아왔다. 몸이 계속 쳐졌고 매일 매일이 피곤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록이 늘지 않았고 역도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보냈다. 계속 될 것만 같았던 슬럼프는 그리 길게 가지 않았다. 이듬해 동계훈련 끝나고 나서는 뭘 해도 힘이 남을 정도로 체력이 좋아졌다. 이후 2013년 IPC 아시아오픈선수권대회에서 오픈 3위, 올해 IPC세계장애인역도선수권대회에서는 86kg급 4위를 차지했다.

현재 이현정 선수는 우리나라 여성 장애인역도에서 유망주로 손꼽히고 있다. 곧 열리는 인천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에서 1~2위를 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다행히 요즘 컨디션이 좋다고 한다. 몸 상태가 대회까지 쭉 이어졌으면 좋겠다며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그녀가 말한다.

“추석에 조금 쉬고 나니 힘이 나서 훈련스케줄을 잘 소화하고 있어요. 얼마 남지 않은 경기,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를 내고 싶네요. 저는 동메달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제 라이벌은 필리핀 언니인데 그 선수가 2010년 광저우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땄거든요. 근데 요즘에는 기록이 조금 줄었더라고요. 그 언니만 이기면 동메달을 딸 수 있을 것 같아요. (웃음) 딸 수 있을 거라 믿어요”

끝으로 자신처럼 장애를 가진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그녀는 ‘밖으로 나오라’고 말한다.

“밖으로 나오니까 좋은 사람들도 만나고 다양한 경험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집 안에서만 있었다면 몰랐겠죠. 저 역시 언니나 동생에게 등 떠밀려서 세상 밖으로 나오긴 했지만, 누군가 등을 떠밀었을 때 밀려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니면 새로운 걸 못 보게 되거든요. 사실 저는 사람 눈을 보면서 이야기를 못할 정도로 성격이 소극적이었고 친구가 많은 편도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운동을 하면서부터 성격도 밝아지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자연스러워졌죠. 역도를 하고 난 후부터 인생이 달라졌어요”

“맹인으로 태어난 것보다 더 불행한 것은 시력은 있으나 비전이 없는 삶이다”… 말하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삼중고 장애를 가졌던 미국의 사회사업가 헬렌켈러는 이렇게 말했다. 장애가 있지만 비전을 품은 채 특별한 삶을 살고 있는 역도선수 이현정. ‘하면 된다’는 그녀의 좌우명처럼 하면 된다는 열정과 도전정신이 오늘의 장애인역도계의 유망주를 만들었으리라. 장애는 불편할 뿐 불행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오늘도 그녀는 편견에 맞선 채 무거운 바벨을 들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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