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 좋아서 두 번 다녀왔어”

한 고참 선배는 <어둠속의대화> 체험전을 강력히 추천하며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본인 역시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 됐으므로 기자들도 느꼈으면 한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결코 후회하지 않는 시간이 될 터이며 깨닫는 바가 많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당부했다. 절대 어떤 체험인지 알아보지 말라는 것이다. 본래 취재하기 전에 사전조사는 필수인데…. 그걸 가장 잘 아는 분이 ‘하지 말라’고 말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듯했다. 이에 지난 7일, 오로지 약도만을 파악한 기자는 동료 여기자 2명과 함께 <어둠속의대화> 체험전이 열리고 있는 신촌을 찾았다. 그 선배의 말은 사실이었을까. 궁금하다면 이 기사에 주목하라. 단,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길.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어둠 속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체험전 입구에서 기자의 일행을 포함한 사람들 7명이 옹기종기 모여 입장을 기다렸다. 오후 7시가 되자 커튼을 젖히고 하나둘씩 마치 터널을 가듯,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체험 관계자는 약간의 빛이 들어오는 공간에서 우리들을 맞이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시각장애인이 사용하는 기다란 봉을 주며 <어둠속의대화> 체험의 시작을 알렸다. 잠깐의 오리엔테이션을 들은 후 우리는 본격적인 어둠의 세계로 발을 내딛었다.

‘깜깜’. 다른 단어는 떠오르지 않았다. 칠흑 같은 어둠이 뭔지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눈을 아무리 크게 떠도 보이지 않았다. 평소 눈을 감고 어둠을 접하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다른 사람들 역시 낯선 어둠에 ‘아, 어떡해’, ‘안 보여’를 연신 외쳐댔다. 기자가 약간의 어지러움을 호소하자 관계자는 시신경이 예민한 사람은 어두운 곳에서 억지로 눈을 뜨면 어지러울 수 있다며 차라리 편하게 눈을 감으라고 말했다.

우리 그룹은 긴 봉을 의지한 채 바닥을 툭툭 치며 발걸음을 옮겼다. 어둠 속으로 들어갈수록 마음이 불안해 괜히 팔을 저어보고 앞에 있는 동료의 어깨를 붙잡았다.

몇 발자국 걸어가자 어디선가 맑고 고운 여성의 경쾌한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아주 앳되면서도 귀여운 목소리였다. 순간 줄지어 가던 사람들은 놀라면서도 반가워 웃음을 지었다. 자신을 로드마스터 ‘손혜림’이라고 소개한 그녀는, 눈을 마주치며 손을 흔드는 대신 고운 목소리로 우리를 환영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로드마스터는 우리에게 소개를 부탁했다. 어둠 속에서 만난 사람들은 6명이었는데 2명은 미술을 전공하는 고등학생 커플, 2명은 대학생 커플이었다. 기자가 속한 팀은 투데이신문의 여성 기자들이었다. 로드마스터는 “커플들 틈에서 괜찮냐”며 물었고 우리는 애써(?) “아무렇지 않다”고 말했다. 일순간 모두 웃음바다가 됐다. 로드마스터의 재치 덕분에 긴장이 조금씩 풀리는 듯했다.

로드마스터는 어둠 속 여행에 앞서 팀 이름을 정해야 한다고 했다. 각자 함께 온 일행의 팔을 붙잡고 뭘로 하는 게 좋겠냐며 속삭였다. 고등학생 커플은 ‘미술’로 대학생 커플은 ‘자기야’로 팀명을 정했다. 기자가 “미녀삼총사, 어때요?”라고 하자 동료들은 “왜 그러냐”며 타박(?)했다. 결국 먹는 것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기에 ‘먹방(먹는 방송의 줄임말)’으로 정했다. 이름을 정한 후 ▲미술 ▲자기야 ▲먹방팀의 어둠 여행이 시작됐다.

 

살면서 경험해보지 못했던 진한 어둠이 밀려와 긴장이 됐다. 로드 마스터는 억지로 보려고 하지 말고 다른 감각을 통해 주변 사물을 느끼라고 했다.

1분쯤 걸었을까. 갑자기 시원한 냄새가 나면서 바람이 부는 듯했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 물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로드마스터는 숲 속에 도착했다며 옆에 있는 나무를 만져보라고 했다. 다들 손을 휘저으며 나무를 찾았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왠지 초록빛깔의 싱그러운 나무일 것 같았다. 나무의 모습을 상상하며 잎사귀와 몸통의 질감을 손끝으로 오롯이 느꼈다. 사물을 이토록 정성스럽고 조심스레 만져본 적이 있을까. 손으로 비벼보고 냄새를 맡아보기도 했다. 어둠 속에서 만난 나무는 평소 알던 나무가 아닌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울퉁불퉁한 느낌이 나는 돌을 밟으며 다리를 건넜다. 로드마스터는 우리를 멈추게 하고는 쉬었다 가자며 벤치를 찾아 앉으라고 했다.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찾지’ 순간 겁을 먹었지만 찾아보기로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배 기자가 “여기 있다!”며 벤치를 찾았다. 기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선배, 어디예요?”라고 외치자 내 손을 이끌고 ‘여기’라며 앉혀줬다. 벤치를 찾는 게 마치 보물을 찾은 것처럼 기뻤고 기분이 좋아 괜히 벤치를 쓰다듬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며 어둠을 적응해가고 있었다. 잠시 벤치에서 휴식을 취한 후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겼다. 발 끝에 닿는 바닥을 느끼며 거닐었다.

여기저기에서 체험을 마친 후 이번에는 시끌벅적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해산물 냄새가 나는 곳에 도착했다. 로드마스터는 옆에 뭔가가 있으면 만져보라고 했고 우리는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기자의 손에는 뭔가가 잡혔는데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로드마스터에게 물으니 ‘미역’이라고 했다. 다른 팀은 과일 코너에 과일을 만졌고 누군가는 과자를 만졌다. 그렇다. 우리가 온 곳은 ‘마트’였다. 집 앞에 있는 마트의 모습이 순간 머릿 속에서 그려졌다. 있지도 않은 물건이나 상품도 떠올리며 입맛을 다셨다. 배가 조금 고파왔다.

로드마스터의 목소리의 톤이 조금 올라갔다. 이번에는 배를 태워주겠다고 했다. “제가 운전을 좀 잘해요”라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우리들은 배에 올라탔고 배는 고동소리를 내며 출발했다. 배가 정말 움직인 것은 아니지만 파도소리, 갈매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옆에서 물도 튀었고 바람도 세차게 불었다. 배를 타고 어딘가 놀러가는 것처럼 주변의 풍경을 상상했다. 기자는 머릿 속에서 까만 도화지를 펼쳐보았다. 도화지 위에는 배의 종착지인 외딴 섬 하나와 봉숭아 물이 든 하늘과 구름, 갈매기를 그렸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상상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은은한 헤이즐넛 향이 번지며 몽환적인 음악이 흐르는 카페였다. 카페에 들어선 후 테이블 앞에 서 있으니 로드마스터가 아닌 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카페의 주인이라고 했다. 우리는 카페 주인과 재미있게 수다를 떨었다. 잠시 후 그는 캔음료 하나씩을 나눠줬다. 우리는 음료를 받아 들고 폭신한 의자가 있는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우리는 로드마스터와 재미있고 의미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로드마스터가 시간이 얼마나 흐른 것 같냐고 물었다. 사람들은 40분 정도가 지난 것 같다고 했다. 그녀는 1시간 20분이 흘렀다고 했다.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가다니’ 모두가 놀랐고 아쉬워했다.

숲 속, 마트, 카페…. 어둠 속에서 일상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당연하게 누렸던 ‘보이는 것’이 눈물겹도록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을 만날 때 겉모습으로 그 사람을 판단한다. 어둠 속에는 선입견, 편견이 존재하지 않기에 상대와 더욱 진실해진다. 어둠에서는 빛을 보지 못했지만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다. 억지로 뜨고 있는 눈, 때론 조용히 감아보는 시간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기자는 90분의 체험 모두를 기사에 담지 않았다. 중간 중간에 느끼는 감동과 쿵쾅거림, 마지막에 접하게 되는 반전까지…. 미리 다 말해버리면 재미없지 않나. 가서 느껴보시라. 어둠 속에서 진짜 빛을 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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