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학자 이희진

【투데이신문 이희진 칼럼니스트】최근 ‘유관순’이라는 인물이 일부 국사 교과서에서 빠져 있다는 사실을 두고 말이 많다. 한국학중앙연구원 권희영 교수 같은 이는 ‘조선의 잔다르크’, ‘민족의 자랑’인 유관순이 교과서에서 누락된 이유를 일부 필자들의 좌편향 성향 때문이라 주장한다.

권희영 교수는 <문화일보> 9월 2일자 ‘유관순 외면하는 세력의 정체’ 제하의 칼럼에서 ‘계급투쟁 아닌 애국·애족의 화신이며 이화학당 출신이라는 게 못마땅한가?’라는 반문을 던지며, 그녀에게 발견되는 것은 고결한 마음으로 민족을 위해 헌신했다는 사실 뿐이라고 일갈한다.

그래서 권 교수가 결론은 명확하다. 몇몇 교과서에서 유관순이 빠진 이유는 “국민은 보이지 않고 민중만 보이는, 하나 된 국민은 보이지 않고 계급투쟁만 보이는, 북한 정권의 죄악은 보이지 않고 ‘지상낙원’만 보이는, 대한민국의 위대한 성취는 보이지 않고 어두운 그늘만 보이는 민중사관의 덫에 역사학자들이 갇혀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학자의 본분이 진리 발견임을 망각하고, 그들을 묶어두는 이데올로기를 과학이며 진리라고 생각하는 착각 속에 빠져 있다.”라고 결론지은 것이다.

그런데 과연 권 교수가 주장하는 대로일까?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우선 내막부터 알아 봐야 할 것이다. 권 교수는 해당 칼럼을 통해 “유관순의 교과서 누락을 정당화하려는 어설픈 변명이 더 황당하다”며 어느 교수의 말을 인용했다. 그 교수가 “유관순은 친일파가 만들어낸 영웅”이라는 논리로 변명하면서 한걸음 더 나가 “북한에선 당연히 유관순을 모른다”고 했다는 것. 이러한 발언은 좌편향 교과서 집필 기준을 알게 하는 실마리를 제공했다.

권 교수가 이렇게 편집해 놓은 내용만 보고, 그의 주장에 동조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특히 ‘북한에서 유관순을 모른다’는 말이 ‘교과서에서 유관순을 제외한 사람들이 북한에 동조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권 교수의 주장에 절대적인 근거가 되어 있다.

그런데 근현대사 전공자들과 접촉할 기회가 많은 필자도 권 교수가 인용한 ‘어느 교수’들에게 그 내용을 직접 들은 적이 있다. 역사학계가 그리 넓은 바닥이 아닌지라, 필자가 들은 그 ‘어느 교수’의 논리가 권 교수가 인용한 것과 크게 다를 리 없다. 그런데도 권 교수가 편집한 내용은 필자가 들은 내용과 사뭇 다르다.

필자가 들은 내용은 이렇다. ‘독립유공자를 정하는 자리에서 김활란이 자기 학교 출신인 유관순을 추천했다. 그래서 유관순이 당시 3.1운동에 나선 학생들의 대표 인물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이 내용을 알고 나면 ‘북한에서 유관순을 모른다’는 말도 달리 해석된다. 권 교수가 매도한 것처럼 ‘북한에서 유관순을 모르니 우리도 빼야 한다’는 논리가 아니라, ‘3.1운동에 나섰던 그 많은 학생들과 특별한 차별성이 없는 유관순을, 남한에서 몇몇 사람이 제멋대로 지목해서 영웅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북한에서 알 턱이 없다’는 뜻인 것이다.

혹시 우리 사회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 중, 북한의 논리를 퍼뜨리는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필자가 ‘어느 교수’에게서 직접 들은 논리는 위에서 소개한 내용 이상이 아니다. 그러니 적어도 유관순 개인을 비판하거나, ‘계급투쟁이 나선 좌익계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교과서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취지가 아니다.

진정한 취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3.1운동 당시 유관순 이외에도 많은 학생들이 독립만세운동에 동참했다. 그런데 지금 그들 모두의 이름을 교과서에 일일이 적어놓고 교육시킬 수는 없다. 그러면 왜 유관순의 이름만을 교육시켜야 하는가? 그러려면 유관순이 특별한 대표성을 가지고 있던가, 안중근 의사처럼 다른 사람이 엄두도 내지 못한 발자취를 남겼어야 한다. 하지만 그 분야 전공자들이 보기에는 ‘김활란이 지목했다’는 점 이상의 이유를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유관순만 강조함으로써 오히려 같은 독립운동에 동참했던 수많은 다른 학생들을 묻어 버리는 결과가 될 수 있는 셈이다.

이것이 몇몇 교과서에서 유관순을 제외한 이유다. 필자 역시 이런 취지에 공감했기 때문에 얼마 전에 출간했던 한국사 개설서인 『다시 보는 한국사』에서 유관순을 올리지 않았다. 물론 여기까지만 말하면 권 교수는 늘 그래왔듯이 『다시 보는 한국사』가 좌편향 성향의 개설서이기 때문이라고 몰아가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이 책은 필자 혼자 쓴 것이 아니라, 권 교수가 가끔 방송에까지 나와 자신의 논리에 동조한다고 주장했던 이성무 전국사편찬위원장과 공저를 한 책이다. 그렇지 않아도 󰡔다시 보는 한국사󰡕 집필 과정 중에 필자에게 유관순이 제외된 이유를 물었고, 앞에서 말한 대로 말씀드리면서 책을 완성했다. 앞으로도 유관순을 삽입할 계획이 없다. 그러니 이성무 위원장도 유관순 제외에 동의한 셈이다.

유관순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종북·좌빨 타령하고 싶으면, 이성무 위원장도 몰아대야 한다. 그런데 기득권층 취향에 맞는 역사 쓰기에 앞잡이 노릇하는 이들일수록 학계에서 이름 좀 난 원로들에게는, 보통 사람들에게 거품 물었던 소신이고 뭐고 꼬리 내리면서 비굴해지기 마련이다. 혹시 이 문제만큼은 예외로 생색 내보고 싶다면 지금까지의 행태와 달리 원로들에게도 종북·좌빨 타령해야 한다.

사실 이 문제에 있어서 정말 심각한 문제는 다른 차원이라고 보아야 한다. 당사자의 업적보다 몇몇 기득권자들의 결정이 민족의 영웅을 정하는 기준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 훨씬 더 본질적인 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민족의 영웅이 결정된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본받아야 할 위인이 아닌, 기득권자들의 이익을 위해 조작된 인물을 떠받들 게 되기 때문이다.

뒤집어 보면 권 교수와 같은 이들이 원하는 바가 바로 이런 것이다. 실제로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거품을 무는 집단들 대부분이 특정 인물을 영웅으로 만들지 못해 안달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집단들 일수록 자신들이 영웅 만들고 싶어하는 인물의 이면에 대해 말하려 하면, 종북·좌빨·친일 등 무슨 이유를 붙여서든 매도하고야 만다.

권희영 교수만 해도 그렇다. 앞서 소개한 사정만 제대로 알아도, 유관순이 몇몇 교과서에서 빠진 이유를 ‘민중사관의 덫에 걸린 역사학자들의 망발’이라는 식으로 몰아갈 일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사실 필자와 같은 이야기를 듣고도 이런 식의 발상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오히려 신기할 뿐이다.

명색이 전공자라면서, 별로 어렵지도 않은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동료를 모략하게 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뻔히 알면서 동료들을 종북세력으로 몰기 위해서 논지를 왜곡시켜 언론에 퍼뜨리고 있다고밖에 볼 수가 없게 된다.

권 교수가 단순히 학문적인 차원이라면 동료 학자들의 취지를, 수습이 안 될 정도까지 왜곡시켜 언론에 퍼뜨리고 다닐 리가 없다. 이렇게까지 해봐야 학계에서 자신에게 돌려줄 수 있는 거라고는 손가락질밖에 없을 테니까. 결국 대가를 받아낼 수 있는 건, 비슷한 성향을 가진 기득권자의 앞잡이 노릇해 주는 것 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정말 비극적인 사태가 무엇인지도 분명해 진다. 기득권자의 앞잡이 노릇하기 위해 파렴치한 왜곡이나 일삼는 자들이 우리나라 교육계의 영향력 있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권 교수만 하더라도 현직 한국학대학원장이다. 우리 국민의 피같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에 이런 이가 수장 자리에 앉아 어떤 교육을 시키고 있을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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