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학자 이희진

【투데이신문 이희진 칼럼니스트】10월 말에서 11월 초에 이르는 몇 주가 ‘인문주간’으로 설정된 모양이다. 그래서 인문학과 관련된 행사가 봇물 터지듯이 열리고 있다. 이 자체야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의 입장에서 싫은 것이 없다. 이렇게 해서라도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면,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국가·사회적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이런 저런 인연으로 행사 몇 군데에 참여하게 되면서, ‘인문주간’이 과연 이러한 효과를 낼 수 있을 지 의구심이 생겼다. 그리고 행사에서 마련한 강연을 들으면서 의구심은 더 짙어졌다. 이러한 생각의 계기가 된 강연 중 하나가, 2014년 10월 27일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열린 인문 공감 콘서트다. 이날 발표자는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 발표 주제는 미래와 만나는 한국의 선비문화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번듯한 발표자와 발표주제를 두고 의구심이라는 말이 나오니 의아하게 여길지 모르겠다. 그러니 그런 생각이 들게 한 내용부터 소개해야 할 것 같다. 강연 내용 중 첫 번째 것부터 의구심이 들었으니, 판단해 보시기 바란다. 강연 맨 앞에 나오는 구절은 ‘(우리나라) 역대 왕조가 500년 장수한 비결은 선비정신의 결과’라는 것이었다. ‘역대왕조’라 하면 당연히 우리 역사의 첫 번째 왕조로 치는 고조선부터 시작해서 그 뒤의 모든 왕조를 포함해야 한다.

확실히 해 두어야 할 점은 한영우 교수가 제시한 선비정신 사례 대부분이 조선시대에 치중돼 있다는 것이다. 설마 한영우 교수가 말하는 ‘역대왕조’가 이성계의 조선 뿐은 아니어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한영우 교수는 대부분의 한국인들과 조상을 달리 한다는 얘기밖에 안될 테니까.

그런데 고려에 대한 판단을 잠시 접어둔다 하더라도 고구려·백제·신라 같은 왕조들이 ‘선비정신’ 덕분에 장수(長壽)했다는 말에 공감이 가야할까? 행사 제목이 ‘인문 공감 콘서트’라는 점을 감안해 보면, 이렇게 공감하기 어려운 내용이 첫 번째 강의주제였다는 점부터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렇게 되면 한영우 교수가 말하는 ‘선비정신’이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아닌게 아니라 강연의 뒷부분에 ‘선비정신과 선비정치의 특징’에 대해 정리해 주었다. 단군신화에 보이는 <홍익인간>이 공익정치(公益政治)로 진화, 민본(民本)사상, 수기치인(修己治人), 청렴(淸廉), 선공후사(先公後私), 공론(公論) 존중, 교육열 등의 키워드가 한영우 교수가 정리한 내용이다. 여기에 공자가 제시한 위정(爲政)의 3대 요소라는 민(民)신(信)지(之), 족(足)식(食), 족(足)병(兵)이나 기록문화, 감사(監査)제도 발달 등을 추가해 놓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런 요소들이 선비정신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가만히 보면 좋은 말은 다 골라 놓은 것 같기는 한데, 꼭 집어서 자신이 말하는 ‘선비정신’이 무엇인지 제대로 규정해 놓은 것은 없는 것 같다. 더욱이 내용 하나 하나를 곱씹어 봐도, 여기서 제시된 것을 굳이 ‘선비정신’의 소산이라고 보아야 할 것인지 의문이 든다.

맨 처음에 제시된 <홍익인간>이 공익정치(公益政治)로 진화했다는 논리부터가 그렇다. 따지고 보면 홍익인간이라는 개념은 대놓고 말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정치에서 추구하는 바이다. 사실 대놓고 ‘널리 사람을 해롭게 하겠다’고 하는 정치 이념은 거의 없으니까. 수기치인(修己治人), 청렴(淸廉), 선공후사(先公後私) 등도 역시 굳이 선비정신 아니더라도 다른 사상, 다른 문화에서도 강조하는 덕목이다. 뒤집어 말하면 이렇게 일반적인 것은 선비정신의 핵심이라고 하기 곤란하다는 뜻이 된다.

또 백번을 양보해서 이런 것이 선비정신의 실체라 하더라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맨 처음 내세웠던 대로 이런 정신 덕분에 우리의 역대 왕조가 500년 정도씩 장수했다는 점이 증명되어야 하니까. 그런 맥락에서는 더욱 공감을 얻기 어려울 것 같다.

사실 사람들이 ‘정치’라는 것에 대해 혐오감을 가지게 된 원인 중 하나가, 겉으로는 좋은 말 내세우면서 돌아서면 자신들이 했던 말과 180도 다른 행각을 보이는데 있다는 점이라는 데에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니 한영우 교수는 자신이 제시한 명분이 겉으로만 내세워진 것이 아니라, 역대 왕조가 500년을 지탱했을 만큼 실질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을 논증해야 한다.

물론 논증 같은 것은 없었다. 반면 반증이 될 만한 것들은 쉽게 떠오른다. 역대 왕조 중 정치에 선비들의 비중이 가장 컸고, 민본을 적극적으로 내세웠던 조선왕조만 하더라도 수많은 민란이 일어났다. 관리들의 횡포와 부정부패 등은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후반기로 가면 백성들이 고통을 받는 체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왕조가 명맥만 유지하는 상황이었다는 점 공인되는 분위기다. 이렇게 보면 조선왕조는 민본정치나 선비정신이 제대로 실행되지 못한 시기에도 백년이 넘는 시간을 버티었다는 얘기다. 그러니 왕조의 장수와 선비정신이 무슨 관계가 있는 것 같지 않다. 역사를 제대로 연구한 사람이라면 민본 내세웠다고 정치가 잘 되어 왕조 오래 갔다는 식의 주장에 공감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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