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욱 칼럼니스트
▸저서 <삼국지인물전>, <역사, 어제이면서 오늘이다> 외 4권

【투데이신문 김재욱 칼럼니스트】영화를 보지 않아도 이야기 전개를 알 수 있을 만큼 영화 ‘국제시장’은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국제시장’ 속에는 흥남철수를 시작으로 파독광부, 월남전 파병, 이산가족 찾기 등 세대를 아우르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러다보니 당시를 살았던 분들은 옛날을 떠올리며 상념에 젖으며, 그 시절을 겪지 못한 젊은이들은 ‘저 때는 저랬구나’ 하면서 신기해한다. 이것으로 끝나면 좋으련만 적지 않은 수의 어른들이 ‘우린 이렇게 고생했어. 너희들이 이렇게 사는 건 박정희 대통령 덕분이야’라고 하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출연하지도 않은 박정희를 거론하며 은근히 ‘이 시대에도 독재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분위기를 몰아간다. 대통령을 왕으로 국민을 백성으로 여기며 나랏일에 백성이 왈가왈부하면 안 된다고 점잖게 또는 엄하게 훈계를 시작한다. 자신들이 민주주의 최고의 가치인 선거를 통해 ‘왕’을 뽑는 시대를 살면서 여전히 ‘대통령이 국가’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으니 영화 ‘변호인’의 명대사 ‘국가란 국민입니다’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으리라. 이들은 여전히 그 옛날 국제시장에 살고 있는 것이다.

반면 박정희의 쿠데타와 장기집권, 전두환의 군부독재를 원수처럼 미워하는 사람들은 대번에 들고 일어났다. 이들 역시 박정희는 출연하지도 않았는데 그 시절을 보여주었다는 이유만으로 국제시장을 보지 말아야 할 영화로 낙인찍었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이해할 만하다. 영화를 본 모든 관객들이 ‘세뇌’ 당할까봐 염려하거나, 심지어 그들을 ‘수구꼴통’으로까지 매도하는 경우도 있다는 데에 큰 문제가 있다고 본다. 나이만 믿고 훈계하는 어른이나 ‘의식’과 ‘지식’을 무기 삼아 타인을 공격하는 사람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 오히려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진보진영에서 이토록 획일적이며 폭력적인 태도가 보인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진보는 무척 더디게 진행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까지 생긴다.

설령 감독이 영화 속에 교묘히 박정희 시절에 대한 향수를 담아냈다고 하더라도 모든 관객이 그렇게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윤제균 감독은 “아버지 세대의 미화가 아니라 위로를 하고 싶어서 만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오히려 아주 많은 사람들은 그런 해석을 두고 지나치다고 말한다. ‘영화는 영화일 뿐’인데 왜 거기에 정치색을 입히느냐고 한다. 이 해석이 옳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 영화는 얼마든지 다방면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이를 두고 우열을 가리거나 품평을 하더라도 불특정 상대를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하는 것은 분명 잘못되었다는 말이다.

하나의 사회 안에 다양한 목소리가 있는 건 지극히 정상이고, 목소리가 크든 작든 존중하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가 아닐까 한다. 그러나 정말 안타깝게도 자신의 신념을 과도하게 믿은 나머지 타인을 ‘어리석은 대중’, ‘의지 없는 사람’, ‘뭔가를 모르는 사람’으로 설정해 놓고 자기 할 말을 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이것도 다양성의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지 의문이다. “이런 사람들이 많으니 안타깝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도 이랬으면 좋겠다.” 라고 할 필요까지는 없다. 다만 “지금 세상은 이래. 사람들은 생각이 없어. 그런 식이면 다 소용없어.” 라고 하지는 말아야겠다.

영화를 보고 감동하는 것도 좋고, 감독의 의도와 관계없이 이 영화를 정치적으로 해석해서 박정희 만세를 부르거나 박정희를 비판하는 것도 괜찮겠다. 부모님 세대를 미화해도 좋고, 미화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영화를 보고 감동한 나머지 주변에 관람을 권해도 좋고, 실망해서 권하지 않아도 관계없다. 영화에 대한 감상은 관객의 성별ㆍ세대ㆍ살아온(또는 살고 있는) 환경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말할 자유는 누구한테나 있다. 누군가를 공격할 자유도 있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진보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자신만의 기준을 세워 놓고 ‘너는 틀렸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옛날 국제시장에 살았던 사람들이 하던 행동을 그대로 답습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국제시장’을 두고 벌어지는 갑론을박을 통해 ‘극과 극은 통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깨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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