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학자 이희진

【투데이신문 이희진 칼럼니스트】최근 춘천에서 발견된 이른바 ‘중도 유적지’를 두고 말이 많다. 그래야 할 만큼 가치 있는 유적임은 분명한 것 같다. 사실 주변지역까지 포함하면, 이 지역에서는 구석기 시대에서 신라 후기까지 유적이 많이 나온다. 그 중에서도 중도는 고조선이 있던 시대와 직결되는 청동기 시대의 유적과 유물이 중심이다.

오랫동안 요하문명을 연구해 온 우실하 선생의 말로는, 여기서 나온 석관묘가 중국의 홍산에서 나오는 것과 매우 비슷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이만큼 상고시대 유적이 밀집된 곳도 드물다며, 중국 같으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립공원으로 만들었을 거라는 말도 덧붙인다. 그러니 중도 유적은 고조선 문명과의 관계, 홍산문화와의 연결 가능성 등 연구과제가 무궁무진한 역사적 보물창고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유적지를 밀어 버리고, 유명 장난감 회사인 레고의 테마파크가 들어선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유적지 관련 비극의 전형적 형태다. 강원도에서는 이런 불황에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기업 투자를 유치했다. 그 결과 레고사와 이 지역에 테마파크를 건설하도록 계약을 맺었다. 이미 천억이라는 적지 않은 금액이 투자되었기 때문에, 위약금을 물어주기는 부담스러운 상황인 것 같다.

그래서 유적지 보존과 개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테마파크의 위치를 조정하는 방안 등이 제시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라면 유적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이 지역 유적에 맞는 제품과 테마파크 개발을 추진해 봄직도 하다. 이 점은 앞으로 관계자들이 머리를 쥐어짜서 어렵더라도 상생의 길을 모색해 보아야 할 과제이다. 여기까지는 보통의 유적지 관련 비극 발생과 수습의 전형적인 과정이 되풀이 된 것이다.

하지만 눈에 띄게 다른 점이 하나있다. 바로 기성 학계의 반응이다. 이 문제가 불거진 지 1년이 지나는 동안, 기성 학계에서는 중도 유적 보호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인 흔적이 없다. 고속철도가 놓일 때에는, 확인도 되지 않은 유적이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반대에 나섰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용객들에게 상당한 불편을 감수하게 만들면서까지 기어코 노선을 바꾸어 놓고야 만 적도 있다. 이런 사건 등과 비교하면 중도 유적지에 관한 한 학계의 보존 움직임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최근 몇 달 동안 중국에 가 계시던 우실하 선생께서는, 당연히 학계의 항의가 줄을 잇고 있을 줄 알고 있다면서 당혹스러워했다. 뒤늦게 여기 저기 연락을 넣으면서 유적 파괴 저지를 위해 움직여야 하지 않느냐고 촉구해 보는 장면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솔직히 답답함을 느꼈다. 여러 해 동안 지켜본 경험으로는, 기대할 바 없을 것 같은데 뭐하러 저런 노력을 하는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도 유적지가 그동안 많은 갈등과 희생을 불러일으키면서도 보존했던 주요 유적에 비해 그 가치가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중도 유적지만 이렇게 박대(?)를 받아야 할까? 우선적으로 지목되는 이유가 참 이율배반적이다.

중도 유적이 청동기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고,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발견된 청동기 유적 중에서는 매우 빠른 시기일 가능성이 오히려 고대사학계 기득권층의 외면을 받은 이유가 되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필자 자신부터 여러 번 확인한 적이 있다. 국내 국립대학과 연구기관 등에 재직하는 고조선 전문가 상당수는, 기원전 4세기까지도 고조선이 중앙집권적 고대국가는 고사하고 이른바 ‘부족국가’ 수준도 되지 않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들로서는 자신의 주장을 뒤집을 근거가 될 유적의 출현이 달갑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유적의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해석이 나오는 셈이다.

이에 비해 최근 경주 월성 발굴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은, 학계가 유적을 두고 애정을 쏟는 태도에 분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월성 발굴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사업의 우선순위를 보면 의구심이 생긴다. 경주가 지역구인 정수성 의원은 영리 발굴법인(발굴회사)를 대거 투입해 발굴기간을 단축하라고 주장하다가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럴 만큼 월성 발굴이 시급할까? 경주 월성은 보존이 매우 잘 되고 있는 지역이다. 언젠가는 발굴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밝혀야 하겠지만, 발굴이 조금 늦춰진다고 해도 유적이나 유물이 심각하게 파괴되어 복구하지 못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에 비해 중도에서는 기공식이 끝나고 이미 공사가 진행 중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유적이 파괴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면 뭐가 더 시급한지를 따지는 것도 우습다.

그런데도 현재로서는 파괴가 코앞에 있는 중요 유적보다, 그리 급하지 않은 발굴에 더 힘을 쏟는 셈이다. 도대체 왜? 최근 뉴스에서는 현 정권이 임기 안에 발굴을 끝내고 성과를 보고 싶어 무리하고 있다는 소식이 나왔다. 이런 발굴을 맡은 입장에서는 막대한 자금을 들인 사업을 시작해 놓았으니, 다른 문제로 갈등을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해석도 있다.

심지어 앞으로도 발굴사업을 타내려면, 힘 있는 측과 갈등관계를 만들지 않는다고도 한다. 막대한 발굴 자금을 일단 타 낸 셈이니, 다른 일에 신경 쓸 여유도 없을 것이다. 사실 지방 치고는 경상도 지역에 고고학 관계 기관이 많으니, 이런 점도 관계가 없지 않을 것 같다.

뭐가 결정적인 이유인지는 확인하기 어렵겠지만, 어쨌든 이런 저런 이유로 고조선 역사를 밝히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는 중도 유적지는 파괴를 앞두게 된 셈이다. ‘학술적인 문제를 돈으로 판단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이던 학계가 막상 자신의 이익 앞에서는 장사꾼 뺨치는 행각을 벌이는 꼴 여러 번 보아 왔다. 중도 유적지가 그러한 행각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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