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재성 씨 장례식장 (사진제공= 삼성일반노조)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근로자, 뇌종양 판정 3년 6개월 만에 숨져
삼성, 근로자 여러 차례 찾아가 합의 요구…산재 은폐 의혹
삼성일반노조 “삼성, 반도체공장 노동자 문제 투명하게 해결해야”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근로자로 일했던 조재성(30)씨가 입사한 지 1년 6개월 만에 뇌종양이 발병해 3년 6개월 가량 투병하다가 결국 사망했다.

그런데 삼성전자 측에서 조 씨의 산재 여부가 정확히 밝혀지기 전인 지난해 1월경 투병 중인 조 씨를 돌보고 있는 아버지를 만나 조 씨의 퇴직을 종용하고 합의를 제안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은폐 및 책임 회피 의혹이 일고 있다.

유가족 “삼성전자, 수차례 찾아와 퇴직 권유”

1월 8일 삼성일반노조와 유가족에 따르면 조재성 씨는 2010년 초쯤에 대학을 졸업한 뒤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5라인에 입사했다. 그는 입사 후 주로 공정(CVD) 설비 유지‧보수 업무를 맡으며 설비엔지니어로 1년 6개월 정도 일했다.

그러던 중 2011년 6월쯤에 뇌종양이라는 날벼락과도 같은 판정을 받는다. 이후 2년 동안 휴직인 상태로 수술을 비롯해 병원 치료를 반복했지만 안타깝게도 암이 계속 재발했다. 이에 지난해 9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진단을 받고 삼성서울병원에서 안산산재병원으로 이송됐다. 결국, 조 씨는 그해 12월 29일 세상을 떠났다.

조 씨 아버지에 따르면 조 씨는 뇌종양이 발병하고 난 후 3년 6개월 동안 열심히 치료를 받았다. 한 번에 800만 원 정도 하는 주사도 한 달에 2번, 모두 10번을 맞고 항암치료를 하는 등 최선을 다했지만 암은 계속 재발했다. 조 씨에게 뇌종양이 발병했을 때부터 삼성전자 측은 치료비 전액을 지원해줬다.

조 씨 아버지는 <투데이신문>과의 통화에서 “처음에는 삼성 욕도 많이 하고 그랬다. 그래도 뒤돌아 생각해보니 (삼성 측이) 아이가 죽을 때까지 치료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줬다”며 “이미 아들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조용히 보내주려고 마음먹고 있다”고 말했다.

조 씨는 뇌종양이 생기자 회사를 휴직상태로 있다가 지난해 1월에 퇴사처리돼 회사에 근무하는 동안이 아닌 퇴사 후 사망해 산재 적용 여부가 애매모호한 상태다.

조 씨 아버지에 따르면, 조씨가 병가로 휴직을 낸 상황에서 삼성전자 관계자가 지난해 1월경 조 씨 아버지를 찾아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휴직기간도 최대한 썼고 회사 측에서도 더 이상 (지원)할 수 없다’면서 몇 차례 찾아와 합의를 제안했다는 것.

당시 합의서에는 ‘(조재성 씨 병과 관련해) 시위를 하지 않겠다’, ‘민형사상 책임을 삼성에 묻지 않겠다’와 같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조 씨 아버지는 전했다. 또 처음 삼성이 합의금을 1억원 정도 제시했지만 협의 끝에 2억 4천만 원에 합의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결국 조 씨는 그해 1월 31일자로 퇴직처리가 됐고 합의금을 받았기 때문에 삼성전자로부터 병원비 지원도 끊겼다. 사망 전까지 조 씨의 치료비는 5천 만원 정도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조 씨 아버지는 현재 삼성전자 측과의 합의서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합의서를 갖고 있지 않은 이유에 대해 조 씨 아버지는 “당시 경황이 없었다. 합의서를 2부 만들어 갖고 있어야 하는데 회사에서 합의서 1장이 왔고 그대로 그 서류에 도장을 찍어 보냈다”고 밝혔다.

더불어 당시 조 씨 아버지는 산재신청을 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묻자 치료에 전념하느라 산재신청을 하지 못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으로 계획을 묻자 그는 “우리 가족들이 여기서 끝내자는 사람이 많다. 지금 산재해서 뭐하겠냐고 한다. 가족과 협의 중이다”라며 “그냥 삼성전자에 들어가서 아이가 죽은 게 원망스럽다”며 슬퍼했다.

   
▲ 지난해 10월 23일, 서울 영등포구 63시티 앞에서 반올림 회원들이 2014 반달(반도체노동권을 향해 달리다) 공동행동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 뉴시스

삼성일반노조 “사측, 약점 빌미로 합의 종용”
반올림 변호사 “합의서, 윤리적 문제 있어”

이번 사건과 관련해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은 “조재성 씨 사망사건을 접하면서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중증 질병에 걸린 노동자 문제를 투명하게 해결하려고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삼성전자는 예전에도 장례를 치르고 있는 유족을 만나 산재 인정받는 것보다 더 많은 보상금을 주겠다는 식으로 회유했었다. 또 노동자가 치료받는 기간이 길다는 이유로 치료비에 부담을 느끼는 가족의 약점을 가지고 합의를 종용하는 모습이 7년 전에도 있었다”며 “7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삼성은 자기들의 책임을 은폐하려고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지난해 5월 14일에 삼성전자 권오현 대표이사가 백혈병 등 직업성 질병 피해자들과 유족에게 사과와 보상, 재발방지를 약속했었다”면서 “하지만 진정성이 없는 약속이었다는 것을 (이번 조재성 씨 사망을 계기로) 입증시켜준 것이라고 본다”고 전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소속 임자운 변호사는 “합의 자체가 불법은 아니지만 합의 효력이 거기까지 미칠지가 관건”이라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직업병과 관련해 이런 식으로 합의를 했으니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기는 힘들다고 본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삼성 측이) 합의 자체가 공개됐을 경우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이런 식(합의서를 삼성만 갖고 있는)의 합의를 숱하게 해왔다”며 “물론 합의는 자율적인 법률행위이기 때문에 법적인 문제는 없다고 해도 윤리적인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고인의 명복을 빌고 안타까워… 별도의 입장은 없어”

이와 관련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투데이신문>과의 통화에서 “고인의 명복을 빌고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퇴직 종용과 합의 내용 등에 대해) 별도의 입장을 드릴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한편, 2007년 3월 삼성전자 기흥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 황유미 씨가 급성 백혈병으로 숨진 바 있다. 이에 그해 6월 황씨 아버지는 산업재해 유족급여를 신청하기도 했다.

삼성전자 백혈병 논란과 관련해 사회적으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지난해 5월 14일, 삼성전자 권오현 대표이사 부회장은 긴급 브리핑을 갖고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 근무하다가 산업재해로 의심되는 질환으로 투병 중이거나 사망한 직원과 가족에게 합당한 보상을 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권 부회장은 백혈병‧직업병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사과·보상을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산업재해로 의심되는 병을 갖게 된 근로자들의 산재신청과 행정 소송 등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반올림은 지난달 29일 올린 카페 추모글을 통해 “살아생전 정작 조재성 님 본인의 산재신청은 하지 않으셨지만 앞서 산재신청을 했던 삼성반도체 뇌종양 피해자 고 이윤정 님의 산재규명을 위해 투병 중에 애써주신 마음 잊지 않겠다”고 전했다.

이어 “현재 반올림에 제보된 반도체, LCD 뇌종양 피해자만 21명이다. 백혈병 다음으로 많이 제보된 암”이라며 “반도체, LCD 공장 노동자들이 연이어 백혈병을 비롯해 뇌종양 등으로 쓰러지거나 사망하는 등의 경우가 반복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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