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학자 이희진

【투데이신문 이희진 칼럼니스트】며칠 전, 경남 지사와 경남도 교육감이 무상급식 예산지원 문제로 언쟁을 벌였다는 기사가 떴다. 이 언쟁은 한번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다음에도 그 앙금이 남아 계속 되고 있다는 후속기사도 나온다. 사실 이 문제는 도(道) 하나를 관리하는 분들만이 아닌 대한민국 전체가 고민해야 할 문제이기는 할 것이다. 무상급식을 다 해주고도 남을 만큼 재정이 풍부하다는 곳을 본 적은 없는 것 같으니까.

그런데 논란이 심해지는 현상을 보면서, 요즘 교육 문제의 관심사가 너무 이런 쪽으로 쏠리는 현상이 바람직한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아이들 점심 한 끼 먹이느냐 마느냐는 복지 문제에 가까울 뿐, 교육의 본질적인 목적은 아니지 않은가? 교육 문제에 있어서 본질은 뭐니 뭐니 해도 다음 세대가 자신과 사회의 생존과 발전을 이끌어 나아갈 수 있는 잠재력을 키워주는 것이라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교육문제에 대한 고민 중 가장 비중이 커야 할 것이 바로 이런 측면이어야 당연하다. 하지만 요즘 이런 문제로 고민하는 경우가 오히려 드문 것 같다. 그렇게 되는 원인은 눈 앞의 이권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당장 아이들 점심 챙겨주기 어려운 입장에서라면 이런 문제가 더 절박하게 들어올지 모른다. 오히려 먼 장래에 필요한 능력 키우기 같은 문제가 그저 구름 잡는 이야기 이상으로밖에 들리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심리가 당연할 수 있는 것 같지만, 심각한 맹점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될 듯하다.

무상급식 같은 문제는 시급하기는 하지만, 지나가고 나면 장래에 남는 게 없다. 그저 현재를 때우는 문제일 뿐이다. 교육을 두고 ‘백년대계(百年大計)’라고 하면서도 이렇게 지나가면 남는 게 없는 문제에 집착하게 되면, 본질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이 더 어려워지다 못해 불가능해 질 수 있다.

사실 대한민국을 떠나 이민가고 싶은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교육 때문이라는 조사가 있다. 여기서 나타나듯이, 대한민국 학부모들이 교육문제에 부담을 느끼는 원인은 분명하다. 들어가는 비용이 가족의 생활을 위협할 정도로 부담스러운데 비해, 그런 비용을 치르고 난 다음에는 무엇을 얻었는지 의문일 정도로 남는 것이 없다는 점이다. 이른바 ‘고비용 저효율’이 근본적인 문제라는 뜻이 된다.

이런 상태를 방치하는 한, 아이들 점심 한 끼 해결해주느냐 마느냐는 지엽적인 문제일 뿐이지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본질적인 문제의 해결은 대한민국 교육이 가지고 있는 ‘고비용 저효율’ 구조에 대한 손질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여기까지 확인해 놓고 보면,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논란이 없는 것이 오히려 의심스러워진다. 필자 혼자 천재가 아닐진대, 대한민국에 교육 전문가들이 이런 평범한 원리를 몰라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도대체 왜?

가만히 생각해 보면 본질적인 문제 해결에 걸린 이권은 무상급식 같은 데에 걸린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큰 것 같다. 예를 들어 교육의 고비용 구조를 유도하는 사교육 문제만 해도 그렇다. 보도되는 통계를 보면 수십조 규모는 된다고 하니까. 하나만 하면 섭섭하니 또 한가지 예로 대학의 고비용 구조는 어떨까? 간단하게 보아도 급식보다는 허리 휘어지는데 훨씬 심각한 요소라는 점 쉽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사례를 들면 그동안 지겹도록 고민해 온 문제가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처음부터 제기했던 ‘본질적인 차원’의 고민이었는지는 의문이다. 먼저 사교육 문제만 해도 그렇다. 얼마 전 몇몇 시사 프로그램에서도 언급한 적은 있었다. 그러나 이 또한 사교육에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는 뻔한 사실과 그러니 강제로 금지하는 조치를 취한 게 어쩌니 저쩌니 하는 언급이 대부분이다. 이런 것이 본질적인 고민일까?

조금만 생각해보면 돈 있는 사람들이 자기 아이들 인재 만드는 교육에 돈 쓰는 건 상당히 건전한 투자이다. 그런데도 왜 이런 투자가 지탄의 대상이 될까? 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이 앞으로 자신은 물론 국가와 사회를 이끌어 가는데 필요한 인재 양성에 쓸모 있는 것이라면, 여기 들어가는데 쓰인 자금이 지탄의 대상이 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이에 대한 비난이 공연한 열등감으로 국가사회에 필요한 투자를 막는 행각으로 몰려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 이런 식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교육에 돈 쓰는 게 건전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퍼 부은 돈이 국가사회에 별 도움이 되지 않더라는 경험 때문이라 해야 할 것이다. 결국 상급학교 진학하고 별 쓸모도 없는 졸업장 따는 데 엄청난 돈을 쓰게 만드는 구조라 문제라는 얘기인데, 필자가 아는 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란은 거의 없었다.

대학의 고비용 문제도 마찬가지다. 등록금이 지나치게 부담스러운 수준인 것은 모르는 사람 거의 없다. 그런데 비싼 등록금의 피해를 보는 사람은 엄청 많은 반면, 혜택을 보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혜택이 소수에 몰리는 구조가 생긴 이유는 뭔지, 그들이 그런 혜택을 받은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검증 과정도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러고 보면 엄청난 이권이 걸린 부분에 대한 고민은 뭔가 왜곡되어 알려진 측면이 있다. 논란이 되다 보면 그런 문제가 부각될 것이다. 그러니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논란이 오히려 적은 데 대한 해답도 시사가 될 듯하다.

이런 문제에 대한 논란이 억제되어 이익을 얻는 집단은 분명하다. 알고 보면 교육계라고 기득권층이 없지 않다. 예를 들어 교수 같은 지위는, 미국 같은 나라와는 달리 그 자리는 하늘이 낸다고 할 만큼 인기가 높다. 앞으로도 그래야 할지 따져보는 논란은 별로 없으니, 그들이 누리는 특혜에 가까운 혜택은 계속될 것이다. 그밖에 교육정책을 좌우하는 자리들도 별로 다를 것은 없는 듯하다.

그래서 이들을 중심으로 제시되는 해결책이라는 것도 비교적 단순해지는 것 같다. 사교육은 강제로 못하게 하느냐 마느냐 수준, 비싼 등록금은 나라에서 대주면 된다는 단순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주변에 이런 이야기 해봐도, 본질적인 해결을 모색하는 것은 골치 아프니 적당히 묻어놓는 게 상책이라는 분위기다.

이런 식의 태도가 결국 어떤 메시지가 될까? 이런 문제는 어차피 해결이 안 되니 포기하고 운명으로 받아들이라는 것. 그래도 못살겠다는 아우성이 나오면, 나라가 감당할 수 있건 없건 무조건 보장하라고 몰아놓고 뒷일은 모른다는 것. 그러고 보면 무상급식에 대한 논란도 결국 자기 돈 아니니, 국민의 혈세 더 쓰라는 얘기 밖에 안 되는 것 같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조삼모사 이외의 차원이 아닐 것 같은데, 결국 국민과 그 대표자들끼리 누가 더 큰 희생을 치르느냐는 문제를 두고 물고 뜯으라는 뜻이 된다.

이런 와중에 현재 상황에서 교육계에서 기득권을 가진 집단에 대한 손질은 멀어진다. 이게 누구를 위해 일어나는 현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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