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마포 <민중의 집> 정경섭 대표

   
▲ 마포 민중의 집 정경섭 대표 ⓒ투데이신문
한국형 ‘민중의 집’ 만든 민주노동당 출신 정경섭 대표
민중의 집 알게 된 순간, “머리에서 섬광이 스쳤다”
대중과 호흡하지 않던 진보세력, 외면받을 수밖에
현재 분열된 진보운동·정치, “재편이 필요하다”
 
【투데이신문 김두희 기자】이탈리아, 스웨덴 등 유럽에는 1층은 선술집, 2층은 강의실, 3층은 지역 주민 단체들과 노동조합 및 진보정당 사무실이 함께 살을 맞대며 북적이는 곳이 있다. 이런 장소가 존재한다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쉽게 상상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미 대한민국에도 7개 지역에서 자리 잡고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리고 이곳은 ‘민중의 집’이라고 불린다.
 
대한민국 ‘민중의 집’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는 사람이 있다. 바로 마포 민중의 집 정경섭 대표이다. 정 대표는 지난 2001년, 일본서적을 번역한 자료를 읽다가 ‘민중의 집’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는 이곳의 존재를 알게 된 순간을 두고 본인의 저서 『민중의 집』(레디앙미디어, 2012)을 통해 ‘머릿속에 한 줄기 섬광이 번쩍 스쳤다’고 말했다.
 
자신의 30대를 고스란히 진보운동에 바쳤으며 국회의원 선거에 두 번 출마하기도 한 ‘진보세력’으로서 정 대표가 ‘민중의 집’에 대해 호기심과 관심을 가진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켜보는 것, 관심을 갖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능동적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2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친 후 2008년, 서울 마포구에 드디어 대한민국 최초 ‘민중의 집’ 문이 활짝 열렸다.
 
정 대표와의 인터뷰도 서울 마포구 ‘민중의 집’에서 이뤄졌다. 비록 북유럽처럼 한 건물이 통째로 ‘민중의 집’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지역 상인회, 시민단체, 협동조합, 노동조합을 비롯해 공부방을 찾아온 초등학생들까지 북적이는 이곳은 새로운 대한민국 진보운동의 ‘상징’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민중의 집’을 통해 지역과 주민이라는 뿌리부터 시작되는 진보운동을 꿈꾸고, 또 실행하는 정 대표를 <투데이신문>이 만나 향후 우리나라 ‘진보’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진보세력의 약화와 분열은 자신들이 자초한 것

새로운 진보 운동의 ‘상징’으로 성장할 민중의 집에 대해 간단히 설명한다면
- 민중의 집은 유럽에서 이미 100년 전부터 생기기 시작했다. 이곳은 전 유럽에 분포돼있을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는 지역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곳으로 동네에 있는 노동조합, 협동조합, 진보정당 그리고 시민단체들이 한데 모여있다. 1층에는 술집, 2층에는 강의실 및 세미나실, 3층에는 20~30개의 동네 노동조합, 협동조합, 진보정당의 사무실들이 한 건물에 입주해있다. 지금도 이탈리아에는 1500개 정도, 스웨덴에는 600개 정도의 민중의 집이 있으며 북유럽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민중의 집이 운영되고 있다. 이곳에서 진보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모여 일상을 보내고, 술도 함께 마시면서 놀고, 이 안에서 아이를 키우고, 각 세대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도 이런 곳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난 2008년 서울 마포구에서 처음 민중의 집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노동조합, 협동조합, 진보정당, 시민단체 등 15개 회원단체와 지역 상인회가 함께 하고 있다. 또 성소수자 단체도 들어와 있고. 지금은 마포뿐만 아니라 강서·양천, 중랑, 은평, 구로, 인천 서구, 전라도 광주까지 7개 민중의 집이 있고 자매단체로는 장수 농민의 집이 있다. 이중에서 나는 마포 민중의 집 대표를 맡고 있다. 아쉽게도 아직까지 민중의 집 연합회가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직접 이달 말부터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각 지역에서 진보운동을 하는 단체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작업을 시작하려고 한다.

마포 민중의 집 대표로 있으면서 국회의원 출마를 한 적도 있던데, 정치에 뜻이 있는 건가
- 나는 민주노동당 창당 멤버였고 이후로도 쭉 진보정치를 지지해왔다. 그리고 이때 민주노동당 위원장 지역이 마포였기 때문에 정당 득표율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국회의원 출마를 했던 것이다. 또 2008년엔 진보신당 위원장을 하기도 했었는데 이때도 출마를 했었다. 당시 같이 출마했던 분들이 정청래, 강용석 등이었다. 아마 거기서 내가 제일 존재감이 없었을 것이다(웃음).
 
흔히 진보세력은 자주파(NL), 평등파(PD)로 나뉜다. 이중 어떤 노선의 정치를 지지하는지
- 현재 우리나라 진보세력의 다수를 자주파가 점하고 있으나, 나는 평등파로 분류된다. 그렇지만 학생운동을 한 사람은 아니다. 질문 내용처럼 진보세력을 이야기할 때 크게 자주파와 평등파로 나누고 있다. 자주파는 한국사회의 모순이 일어나는 이유가 분단에서 온다고 본다. 그래서 제1과제를 통일이라고 생각한다. 빨리 통일을 이뤄 우리 민족이 함께 살아야 조금 더 행복한 사회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이 자주파의 가장 핵심적인 생각이다.
그런데 나는 이들의 생각과는 조금 다르다. 통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해 한국 자본주의에서 발생한 문제점을 고쳐야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자본주의는 천박한 자본주의다. 천박한 자본주의에서는 사람을 돈과 상품보다도 못한 것으로 취급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나는 이러한 우리 사회의 상황을 개선하자는 입장이다.
자주파가 진보세력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독재정권을 겪은 이들이 대학에 와서 그동안 본인들이 알던 현실과의 괴리를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무슨 말이냐면, 70·80년대 학번들이 보기에는 북한 사회가 본인들이 알던 것과 너무 달랐다는 이야기다. 1960년대에는 우리보다 북한이 더 윤택한 삶을 살았다는 경제지표도 있지 않나. 그런데 어릴 때는 냉전 위주의 교육을 받던 사람들이 대학에 오니 그동안 교육받았던 것과는 정반대의 현실 상황을 알게 된 것이다. 또 이산가족 문제도 있었고. 그렇게 현실을 알게 되면 ‘5000년 동안 우리가 한반도에서 한민족으로 살았는데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얽혀 이렇게 우리가 고통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감성적, 논리적으로 ‘통일을 해야 우리나라가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당시 진보운동을 하던 사람들에게 닿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주파가 더 많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싶다. 자주파의 생각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부분이 있지만 그들의 운동 방식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많이 갖고 있다.
 
   
▲ 마포 민중의 집 정경섭 대표 ⓒ투데이신문
진보운동은 청년들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은 사회운동에 대해 관심이 없고, 관심을 가질 상황도 아니다. 그러면서 진보가 위기라는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는데
- 맞다. 진보의 재생산이 안 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현재 진보운동은 청년들에게 외면 받고 있다. 진보의 속성 중 하나가 젊은이들의 열정에서 비롯된다는 것인데 이게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진보가 위기라는 말이 나온다. 그런데 우리사회의 양극화가 계속적으로 굉장히 심각해지고 있지 않나. 근본적인 사회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만 우리가 대중과 호흡하지 않는 방식으로 가게 된다면 젊은이들에게 계속 외면받을 것이다. 당연히 ‘진보운동, 사회운동 해봤자 바뀌는 게 없는데 뭐하러 하냐’, ‘차라리 영어 단어를 외우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진보세력 안에서 자주파니, 평등파니 정파적으로 대립을 많이 했다. 이제 이에 대해 반성하고 좀 더 대중의 삶 속에서 호흡하는 진보가 되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 노력들이 결실을 이루기 위해서는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또 그동안 여성운동, 노동운동, 환경운동 등이 각각 노력을 해오고 있었으나, 이제 이것을 연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각자의 의제만 갖고 달려 나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의제와 상대방들이 요구하는 것들을 본인들의 운동과 연결시켜서 사회 구조 자체를 더 좋은 방향으로 바꿔나가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각각의 운동만을 진행했기 때문에 사회가 바뀔만한 시너지효과도 내지 못했고 고립되기만 했던 것 같다.
 
지금 설명한 것들을 진보 세력 약화의 원인으로 볼 수 있겠다. 최근에는 그나마 원내에 자리를 잡고 있던 통합진보당이 해산되기도 했는데
- 통합진보당의 해산은 명백히 국가가 잘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통합진보당 노선에 절대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통합진보당에 대한 의혹과 논란의 처벌을 국가가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하고 싶다. 정당의 활동에 대한 논란들은 국민들에게 맡겼어야 한다. 그런데 국가가 직접 나서서 강제로 정당을 해산한 것은 적절치 못한 행동이었고, 또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밖에 존재감이 없는 진보정당들의 상황에 대해서는 결국 우리가 자초한 결과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우리끼리 분열되고, 기존 정치의 안 좋은 모습을 답습했던 것도 분명히 있었다. 올해 안에는 반드시 이 점들을 반성한 후에 진보정치가 재편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의당, 정동영씨가 있는 국민모임, 또 미약한 세력이지만 노동당도 있다. 그리고 재편된 진보정치는 과거의 오류를 좀 더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여전히 국민들이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아닌 제3세력에게 보내는 기대감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기대감을 재편된 진보세력들이 가져가길 희망한다.
 
하지만 정동영씨 탈당을 두고 ‘야당세력이 또 분열한다’는 여론도 존재한다
- 당연히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일단 10%가 넘는 진보정치의 지지층과 제3세력에 대한 지지층들의 표를 먼저 결집하는 게 더 중요하다. 처음에는 당연히 야권 분열이라고 비난을 받을 것이다. 집권당인 새누리당도 사실 국민 과반수에게는 욕먹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오랫동안 1번(새누리당)과 2번(새정치민주연합)이 채워주지 못한 기대치에 대해 실망감이 있었다. 이 기대치를 재편된 진보정치세력이 채워주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진보세력 약화를 두고 ‘의회’, ‘국회의원’ 자리에만 집착했기 때문이라는 일각의 지적도 있다
- 정치의 속성 중에 하나가 권력을 쫓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권력을 ‘어떻게 선하게 쓸 것인가’를 두고 누구나 고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진보정당의 대다수 국회의원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권력을 선하게 쓰기 위해 치열하게 고군분투했다고 본다. 다른 국회의원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농성, 시위 현장을 비롯한 삶의 현장 구석구석을 뛰어다녔던 사람들이다. 문제는 그것이 사회운동이라는 흐름 속에서 함께 전략을 짰던 게 아니라 개별적인 사안으로 진행됐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우리 진보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사회 구성원들이 좀 더 평등하고 행복한 삶을 살도록 할 수 있을까’라는 전략 속에서 함께 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운동 전략 자체를 새롭게 짤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 달리 생각하는 것은 진보세력이 국회의원 몇 명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힘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민주노총을 포함한 진보운동과 사회운동들이 다 퇴조하고 있을 뿐이다. 진보운동, 사회운동의 비전을 새롭게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이라는 거대한 조직 자체도 퇴조하고 있는데 더 소규모의 세력들은 오죽하겠는가. 진보운동, 사회운동, 여성운동, 환경운동이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지 못하면서 세력이 위축되고 이에 따라 진보정치도 함께 위축되는 것이지, 진보정치가 위축됐기 때문에 소규모 세력들이 위축된다는 이야기는 틀렸다고 본다. 만약 후자가 맞는 이야기라면 우리가 국회의원이라는 존재를 너무 크게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
결론적으로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던 진보세력의 움직임 중 하나가 바로 ‘주5일제’였다. 이때는 나도 자주 거리에 나가 시위를 하곤 했는데, 아마 2002년쯤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진보와 보수를 떠나서 대부분이 주5일제 근무를 하고 있고 또 모두 이에 대해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아니었다. 주5일제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이념 논쟁이 있었는지 모른다. 또 이것 때문에 민주노총의 주요 간부들이 다 구속되기도 했다. 그때 보수언론이나 보수인사들, 그리고 기업에서는 ‘5일만 근무하면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가 망한다’면서 더 많이 생산해야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어떤가. 진보세력들이 노동자들에게 좀 더 휴식을 주자고 치열하게 투쟁한 끝에 단계적으로 주5일 근무를 하게 됐다. 그리고 지금은 아무런 거부감 없이 이것을 누리고 있다. 물론 우리가 못했던 것들도 많다. 하지만 잘한 점과 못한 점을 모두 같은 기준에 두고 평가받았으면 한다. 주5일제 같은 경우도 이 사회의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해 진보세력이 본인들을 내던지면서 헌신한 것 아닌가.
 
◈ 문재인 대표는 오락가락 말고, 박근혜 대통령은 귀를 열어라
 
진보세력 약화 및 야권 분열이라는 이슈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새정치민주연합은 전당대회를 열었고, 문재인 의원이 새 당대표로 선출됐다. 야권에 새로운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지
-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면 좋겠다. 그동안에는 ‘기대한다’는 이야기조차 안 나올 정도로 새정치민주연합이 국민들로부터 많이 외면받고 있었던 것 같다. ‘차라리 제1야당을 교체하는 게 한국사회가 더 나아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올 정도였다. 그동안 새정치민주연합에게 수없이 많은 기회들이 있었지만 제1야당으로서 제대로 역할 수행을 했느냐에는 의문이 든다. 이제 문재인 의원이 대표가 됐지만 대표를 바꿨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처방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아픈 부분까지 다 같이 도려내면서 수술하고 개혁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나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잘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진보정당도 잘되고 새정치민주연합도 잘됐으면 좋겠다. 이전에 진보정당이 국민들의 지지를 어느 정도 받고 있었을 때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세력을 잡고 있었을 시기였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지만, 대중들은 과연 나처럼 생각하고 있겠냐는 말이다. 국민들이 여전히 새정치민주연합에 기대를 걸고 있을까? 아쉽지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문재인 대표의 첫 일정이 박정희·이승만 대통령 묘소 참배였던 것을 두고 야권 지지자들이 비난하지 않았나. 문재인 대표에게 걸었던 기대감이 무너지니 비난한 것은 아닐까
- 그것도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문재인 대표가 자신의 색깔과 행동을 명확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만약 문재인 대표가 야성을 찾을 것이라고 한다면 찾아야지. 또 제1야당의 대표로서 박근혜 대통령과 대립하는 것은 좋지만 그러면서도 미생들에 대한 대안을 확실히 챙겨줘야 한다. 그렇지만 지금 문재인 대표는 첫 행보부터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이며 그의 행보는 과연 누구를 위해서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런데 또 어떻게 보면 모두를 다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변화는 어렵다. 그래서 대표 한 사람이 바뀌었다고 그 거대한 조직이 쉽게 바뀔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 것도 굉장히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 박근혜 정부는 ‘많은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정부’로 기억될 것 같다.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사고를 당하지 않은 일반 국민들도 엄청난 충격을 받지 않았나. 그동안에는 이렇게 우리 피부에 닿도록 국가 권력과 여러 자본들이 철저한 네트워크를 이룬 모습, 정부가 국민들을 구원하고 보호해주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나도 너무 충격을 받았고 일을 대처하는 방식을 보면서 정부의 무능을 그대로 드러냈다고 생각했다. 인사문제도 계속되지 않았나. 지금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하게 사람들에게 박수 받는 일을 한 게 없는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도 보수라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정통 보수’라고 뽑은 사람이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면 박근혜 대통령은 보수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보수도 개혁하지 않으면 세력을 계속 이어가기가 쉽지 않다, 너무 끔찍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지금 보수세력의 끝장, 끝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제3자들은 ‘보수세력이 흔들리면 진보세력에게 좋은 것 아니냐’고 하는데 그럴 수도 있겠으나 국민들에게는 무엇보다도 불행한 일이다. 지금 정권을 잡고 있는 보수세력이 흔들리면 당연히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피해가 돌아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진보세력이 지금 이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도 맞는 이야기다. 지금 주어진 기회를 살릴 수 있는 전략을 빨리 짜야한다. 그래서 진보세력을 재편해 세력을 규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전략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앞서 박근혜 정부를 ‘무능’하다고 했는데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 무능과 불통이라고 흔히 이야기 하지 않나. 자기 고집만 계속 부리고 있다. 리더가 능력이 없고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으면 상황이 이상해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본인이 무능하다보니까 국무총리 인선 등의 문제에서도 여론이 나쁘게 흘러가는 것을 보면서 ‘왜 내 마음을 몰라주지?’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나 할까. ‘나는 국민을 위해서 일하는데 사람들이 날 몰라주고 외면 받고 있다’는 생각은 다시 말하자면, 대통령이 을(乙)의 위치에 서버리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도 가장 힘든 상황이 서로가 을이라고 생각할 때다. 서로가 피해자라고 생각할 때. 그러면 자기연민에 빠져서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된다. 만약 듣는 귀라도 있으면 어땠을까. 그런데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이것조차도 없다.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이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그 지역 주민들의 말을 귀담아 들었기 때문 아닌가. 또 한 사람의 말이라면 틀릴 수도 있으니까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종합적으로 들어야 한다. 무리를 이끄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듣는 귀인데, 이게 너무 없다.
 
지금 대중은 진보와 보수 모두에게 신뢰가 무너졌다. 특히 시간이 흐르다보니 옛날에 거칠었던 운동권 모습을 꺼려하는 사람들도 많다. 평화로운 방법으로 진보운동을 할 수는 없는 건가
- 진보 운동이라는 게 길거리에서 데모하고 점거하고 거리를 뛰어다니는 것만은 아니다. 물론 그렇게 행동할 때도 있긴 하다. 예를 들면, 이곳 망원시장도 합정동에 홈플러스가 입점하면서 1년 동안 싸웠다. 왜냐하면 홈플러스 측에서 그들의 말을 안 들어줬기 때문이다. 망원시장 사람들은 생존권이 달린 문제였는데 법·제도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사회에서 벌어지는 문제는 인간이 만든 법·제도를 가지고 다 해결할 수 없다. 그러니까 제도 외에 우리가 하나로 뭉쳐서 목소리를 내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 모여서 집회하는 게 불법은 아니지 않나. 사람들이 모여 집회를 하겠다고 신고하고 집단적으로 의견을 표출할 뿐이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하나의 요소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집회는 손에 꼽을 정도이고 나머지는 다른 방식으로 진보운동을 하고 있고 또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 이곳, 민중의 집도 일종의 새로운 방법이다.
 
   
▲ 마포 민중의 집 정경섭 대표 ⓒ투데이신문
◈동네 사람들 모인 민중의 집, 진보운동의 새로운 방식 될 것

진보운동 중 노조의 다소 과격한 모습과 노조원만을 위한 파업이라는 지적 등으로 대중의 외면을 받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가
- 일단 노조의 조직률이 10%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한계가 너무 명확하다. 자신의 목소리를 명확하게 내기 위해서는 집단을 꾸려야 하는데 조직률이 너무 낮다. 또 지금은 정규직 위주의 노조니까 당연히 정규직만의 이해관계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사회에서 노조를 결성하기 어려운 비정규직 등이 함께 모일 수 있도록 돕는 작업이 중요한 것 같다. 예를 들면 청소하는 분들, 식당에서 일하는 분들이 어떻게 노조를 만들겠냐는 말이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라서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래서 노조라는 조직 외에 다른 방법으로 모일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 그것이 지역의 민중의 집일 수도 있고 또 다른 공동체일 수도 있다. 지금처럼 회사 안에 노조가 갇혀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직종에서 일하는 분들이 지역에서 묶일 수 있도록 체계를 고민하고 실현해야할 것으로 본다.
 
지금 민중의 집을 새로운 진보운동, 노동운동의 대안처럼 보고 있는데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나
- 민중의 집은 자발적으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새로운 방식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아이들 공부방이나 어른들의 모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확산되면 만들어진다. 이곳에서는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쳐주는 것도 자원봉사로 이뤄지고 모두가 모두에게 도움을 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예를 들어 내가 기타를 배우고 싶으면 기타를 잘 치는 사람에게 알려달라고 하고, 대신 나는 내가 잘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면 된다. 그렇게 되면 각자의 마음 안에 ‘이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 덕분에 기쁨을 느끼고 행복해진다’는 인식이 점점 들어오게 될 것이다. 만약 혼자 무엇을 하려고 하면 전부 다 돈이 들어가지 않나. ‘내 인생이 너무 재미없어서 질식할 것 같다. 다른 숨구멍이 필요하다’고 판단이 들 때 이런 작업이 자연스럽게 생겨나면서 지금 있는 7군데 민중의 집 말고 다른 지역에도 하나씩 민중의 집이 들어올 것이다. 물론 돈을 소비하면서 삶이 풍요로워질 수는 있겠지만 한계가 있다. 문화센터나 주민자치센터에서도 사람들과 만날 수 있겠지만 그래도 민중의 집 같은 곳은 정서적, 가치관적으로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까 금방 친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타인을 경계하는 사회가 아닌가. 하지만 이곳에서만큼은 사람들과 편하게 교류할 수 있고 안정을 느낄 수 있다.
 
대표님의 말을 들으면 민중의 집은 마음의 고향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는 대한민국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할까
- 일단은 진보정치가 재편되는 게 가장 큰 숙제다. 지금까지는 무상교육, 무상의료 같은 담론만 이야기했었다. 이게 필요 없다는 게 절대 아니다. 중앙에서는 이 이야기를 끊임없이 쏟아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지역에서조차 나올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생활 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다양한 전략과 방식들을 우리가 현장에서 실천해나가야 한다. 그러면서 지역과 동네에서부터 뿌리를 탄탄하게 받치는 작업을 진보세력들이 실행할 필요가 있다. 지역과 동네의 힘들이 모여 중앙으로 전달됐을 때만이 중앙에서 말하는 무상교육, 무상의료 같은 거대한 주장을 이룰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영국이나 캐나다에서 하루아침에 무상의료가 이뤄진 게 아니다. 수많은 노력과 사회적 합의, 때로는 날선 투쟁과 논쟁들이 계속 있었기 때문에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사회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사람들과 만나서 설득하는 것으로는 전부 해결할 수 없다. 함께 모여 즐겁고 행복하게 놀고, 삶을 나누는 방식으로 운동의 전략을 바꿔야 한다.
 
민중의 집과 함께 하는 대표님의 향후 계획이 궁금하다
- 이렇게 인터뷰를 하게 된 것도 진보진영에서 15년 이상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앞서 이야기했던 주5일제와 같이 잘한 부분은 칭찬받고, 반성해야 하는 부분은 성찰한 후 새로운 진보를 위해 나아가려고 한다. 또 여전히 지역 현장에 뿌리 내리면서 마포에 계신 분들의 삶을 조금 더 개선시킬 수 있도록 내 나름의 노력을 할 것이다. 예전에 민중의 집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해 실명을 올린 현수막을 시작했었는데 그 현수막이 안산까지 점점 전파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이것을 보면서 ‘사회운동과 새로운 진보를 위한 실험들이 옆에서 옆으로 전파될 수 있겠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지역 안에서 진보의 새로운 방향을 위해 그동안 진보운동에서 오류가 있던 부분을 개선·반성하고 잘했던 부분은 사람들에게 알리면서 우리의 지지층을 더 넓히려는 작업을 더 많이 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새 진보정당이 잘 되면 현실과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보고 싶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