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욱 칼럼니스트
▸저서 <삼국지인물전>, <역사, 어제이면서 오늘이다> 외 4권

【투데이신문 김재욱 칼럼니스트】“선배가 문자 보냈는데 답을 안 해? 이런 XX.”

“죄송합니다. 선배님.”

“우리가 이러니까 기분 나쁘지? 그럼 너희들도 선배 되면 우리처럼 해.”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딸아이의 전언을 대화체로 옮겨 보았다. 대학에서만 그러는 줄 알았더니 고등학교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선생님들은 아시냐?”

“선생님들이 모르니까 그러겠지. 전통이 있는 동아리일수록 그런 게 더 심하대.”

“다른 학생들은 뭐라고 해?”

“다들 싫어해. 그리고 언니들은 그런 동아리에 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고.”

“너희 동기들은 그런 말 듣고 가만히 있었대? 안 덤비고?”

“하하, 어떻게 덤벼? 선배인데. 싫은 아이들은 벌써 다 탈퇴했어.”

선생은 학생의 일상에 지나치게 개입해서는 안 된다. 그 중 교우관계는 학생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므로 선생님의 뜻대로 이래라 저래라 해서는 더욱 곤란하다. 어느 선까지 개입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있겠지만, 한 쪽만 피해를 입는 일이 벌어지거나, 그럴 조짐이 있을 때는 곧바로 나서서 해결해 주어야 한다. 후배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돼 먹지 못한 선배가 싫어서 하고 싶은 걸 못하고 그만두거나, 또래끼리 모여서 선배들 흉이나 볼 수 있을 뿐이다. 선생님한테 고충을 토로할 생각은 아예 하지 못한다. 선배들한테 ‘찍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일선학교에서 써먹는 그 ‘인성교육’이라는 말은 실체도 없을뿐더러 실천도 없는 헛된 구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모르긴 모르되 우리나라의 인성교육은 대부분 ‘예절’에 맞춰져 있는 것 같다. 아이들한테 명절에도 입지 않는 한복을 입혀 놓고는 평소에 할 일도 없는 절하는 방법이나 가르치고, 머그컵에 커피를 마시는 아이들한테 방송에서나 나올 법한 다구(茶具)를 갖춰놓고 녹차를 우려내서 마시게 한다. 이것도 꾸준히 하면 그런대로 괜찮다. 맹자(孟子)의 말처럼 ‘하루만 볕을 쬐게 해 주고 열흘은 춥게 하는’ 짓을 하면서, 그 잘못은 모르고 인증 샷 몇 장을 찍어 보여주며 인성교육을 했다고 큰소리친다. 학교에선 이것을 지켜야 할 전통으로 생각할지 모르나, 학생들은(물론 일부에 불과하다) 후배를 억압하는 일을 ‘전통’으로 안다. ‘오래된 동아리 일수록 선배들의 횡포가 심하다’는 말이다. 덧붙여 그렇게 횡포를 부리는 학생들도 아마 많은 봉사점수를 쌓았고, 도덕과목 점수도 매우 높을 것이다. ‘인성’을 ‘교과목’으로 ‘교육’하고 점수로 ‘수치화’할 수 있다는 그 생각부터 근본적으로 글러먹었다고 본다.

아이들이 지혜롭게 처신한다는 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하겠다. 도덕점수가 높고 인성이 잘 갖추어진 선배의 쌍욕을 학생들 대다수는 싫어하고,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 잘 피한다. ‘그런 동아리에 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고 하며 후배들이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은근히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그래도 선배한테 대드는 건 잘못되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물론 이 말 안에는 ‘똥이 더러워서 피하는’ 마음이 들어 있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학교에선 아이들의 상황을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미꾸라지같은 선배들은 꾸준히 나오면서 전통을 만들어 간다. 이런 선배들이 극히 일부에 불과하더라도 이 정도까지 되었다면 학교에서 조치를 취해야 하겠다. 당신 아이가 선배의 문자에 답을 안했다는 이유로 욕을 얻어먹으면 ‘아이들은 다 그러면서 크는 거야’하고 너그럽게 웃으며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은가?

고등학교건 대학교건 후배의 위치에 있는 분들한테도 감히 한 말씀드린다. 선배들의 횡포에 맞서면 당장 찍힐 수도 있겠고, 도와주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적을지 모르겠지만, 목소리를 모아서 문제를 제기하고 선배들한테 맞서보도록 하자. 횡포를 부리는 선배는 소수에 불과하다. 그런 횡포를 싫어하는 선배들도 많으니 심호흡을 하고 용기를 내서 덤벼보자. 소극적이지 않아도 된다.

“내가 네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법이 있어? 너도 나한테 존대해라. 나한테 아무 때나 문자 보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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