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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세월호 참사 유가족의 울부짖음과 잘린 머리카락이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웠다.

지난 2일 오후 1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희생자와 피해 가족들을 돈으로 능욕한 정부 규탄 및 배·보상 절차 전면 중단 촉구 기자회견’과 함께 세월호 피해자와 유가족 삭발식이 열렸다.

이날 광화문 광장에는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를 비롯해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 등 많은 시민들이 자리했다. 기자회견 사회는 416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이 맡았다.

희생자 학생 단원고 故신호성 군의 어머니 강부자 씨의 발언이 기자회견의 포문을 열었다.

강 씨는 “우리 유가족이 죄인인가. (정부는) 내 새끼를 진도 앞바다에 수장시키고 부모들까지 죽이려고 한다”며 “대한민국에 대통령이 있나. 대한민국 국민이 진실을 밝혀달라고 울부짖는데…. 난 내새끼가 어떻게 죽었는지 똑바로 알고 죽어야겠다”고 절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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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씨의 발언이 끝나자 기자회견문 낭독이 이어졌다.

회견문 낭독을 맡은 416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자 단원고 故전찬호 군의 아버지 전명선 씨는 “정부는 시행령안 폐기와 세월호 선체인양을 촉구하는 여론을 잠재우고 있다. 또 돈 몇 푼 더 받아내려고 농성하는 유가족으로 호도하려는 의도를 가진 정부의 행태에 분노한다”며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추모와 진상규명 열기가 높아져가는 이때에 져야 할 책임은 회피하고 돈으로 희생자와 피해 가족을 능욕하고 있다”고 정부의 태도를 강하게 규탄했다.

더불어 전씨는 “정부가 참사 1주기 전에 해야 할 일은 배·보상이 아니라 선체인양을 통한 실종자 완전 수습과 철저한 진상규명”이라며 “대통령이 ‘실종자 가족들이 끝내도 된다고 할 때까지 하겠다’, ‘4월 16일 이전과 이후는 달라져야 한다’, ‘유가족의 한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으면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러면서 시행령 폐기와 세월호 선체 인양을 거듭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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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과 416가족협의회가 요구하는 것은 높은 보상금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의 실종자 수색과 진상규명, 안전사회를 이룩하는 것이다.  

현재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진상규명 ▲시행령 폐기 ▲세월호 선체인양 ▲배·보상 절차 전면 중단이다. 무엇보다 어렵사리 국회를 통과한 세월호 특별법을 무력화시키는 해양수산부의 시행령이 폐기되길 바라는 입장이다.

앞서 해수부는 지난달 27일,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을 입법예고했다. 416가족협의회 등에 따르면 시행령은 세월호 특별법이 정한 세월호 특별위원 사무처 직원 정원을 120명에서 90명으로 줄이고 사무처 직원들의 비율을 파견 공무원이 더 높은 쪽으로 정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결국 정부가 특별위원회를 장악하게 돼 진상규명이 어려워질 수 있다. 이에 진상규명을 촉구하던 세월호 가족협의회는 시행령안에 반발, 같은달 30일에 광화문 광장에서 ‘416시간 집중 농성’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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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이 끝나고 오후 2시경 세월호 참사 희생자, 실종자, 생존자 부모 등 52명의 삭발식이 거행됐다. 이들은 머리를 자르기 앞서 ‘정부 시행령안 폐기하라. 세월호 온전하게 인양하라’라고 쓰여진 노란 커트보(보자기)를 몸에 둘렀다. 비슷한 시각, 진도 팽목항에서도 단원고 희생자 학생 부모 4명의 삭발식이 진행됐다.

삭발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구축과 선체 인양의 의지를 표명하는 의식이다. 조계종 노동위원회 노동위원 도철 스님과 지견 스님, 양한웅 집행위원장 등의 도움으로 삭발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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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은아”, “상호야”, “유민아”…

모두 희생당한 단원고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짖었고 이내 바리캉이 가족들의 머리 위로 올려졌다.

머리카락을 자른 단원고 실종학생 故허다윤 양의 아버지 허흥환 씨는 “우리 다윤이가 제일 싫어하는 삭발을 하고 말았다”며 울먹였다. 허씨는 “실종자 9명이 깜깜한 바다에 남아있어 삭발할 수밖에 없었다. 국민여러분, 9명의 실종자 꺼내줍시다”라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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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故오영석 군의 어머니 권미화 씨는 “오늘 삭발하면서 군대를 가기 전 우리 아들의 마음을 읽었다. 성인이 된 자식을 세상으로 보낼 때 마음의 준비를 하는 부모 마음을 읽었다”며 통곡했다. 이어 권씨는 “수능을 못 보고 대학도 못 가본 아들을 그리워하는 부모들을 위로해줬으면 한다. 우리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눈물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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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려 나간 머리카락이 바닥으로 툭툭 떨어져나갈 때마다 세월호 유가족의 눈물도 뚝뚝 떨어졌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진실을 침몰시키려는 자, 우리가 반드시 침몰시키겠다”

삭발을 마친 세월호 유가족들은 주먹을 불끈 쥐고 이렇게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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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실종 유가족의 삭발식을 본 시민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초등학교 6학년생 아이를 둔 시민 전신영(41)씨는 “같은 부모 입장에서 남일 같지 않다고 생각해 바쁘지만 여기 나오게 됐다”면서 “자식잃은 부모에게 온갖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이 상황이 참 안타깝다”고 전했다.

이어 전씨는 “마음 같아서는 나도 같이 삭발을 하고 싶다”며 “우리나라 국민들이 ‘나 역시 이런 일을 겪을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에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고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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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시민 이소리(25)씨는 “암담하다. 그냥 암담할 뿐”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이씨는 “정부가 세월호 1주기를 앞두고 돈 얘기를 꺼낸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자식과 가족을 잃은 이유를 알고 싶은 게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런데 국가가 그것을 안 하려고 하는 게 화나고 답답하다. 하루 빨리 진상조사와 인양이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는 입장을 밝혔다.

삭발식이 마무리될 무렵, 먹구름이 끼고 바람이 불더니 결국 비가 쏟아졌다. 하늘에서 내린 비는 우리의 몸을 적셨고 유가족의 눈물은 모든 이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셨다. 세차게 쏟아지는 비를 보며 생각했다. ‘하늘에 있는 아이들이 아빠, 엄마의 민머리를 보며 흘린 눈물이 아닐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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