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학자 이희진

【투데이신문 이희진 칼럼니스트】며칠 전 TV를 보며 채널을 돌리다가, KBS 제1TV의 ‘역사저널 그날’이라는 프로그램에 눈길이 멈춘 적이 있었다. 이날 주제가 하필 필자의 전공과 아주 가까운 ‘임나일본부’였기 때문이다. 최근 아베 정권이 임나일본부에 대한 언급해서 논란이 일었으니, KBS에서 이 내용을 다룰 적당한 프로그램으로 ‘역사저널 그날’을 선택해서 내보내는 자체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래서 가볍게 ‘무슨 소리가 나오려나’ 정도만 확인하려 보기 시작했던 프로그램이었지만, 결국 끝까지 보면서 분노가 일었다. 일본의 역사왜곡을 비판한다면서 시작한 방송 내용이, 문제가 많았던 15년 전 역사스페셜을 답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 때도 대한민국의 입장을 오히려 곤란하게 할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어, 해당 프로그램의 게시판부터 시작해서 여러 경로를 통해 문제를 알리려 애썼던 바 있다. 앞으로도 이 문제가 일본과 갈등을 빚는 하나의 원인이 될 것이라는 점을 의식한다면, 이에 대한 오해는 심각한 후유증을 부를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방송이나 학계에서 퍼뜨리는 오해 몇 가지를 풀어 보자.

우리 사회에서는 이른바 ‘임나일본부’설이라는 것이, 야마토 왜가 한국계 고대국가를 지배하기 위해 설치했다는 주장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일부 사실이기는 하지만, 이는 황국사학자 중에서도 과격파인 쓰에마쓰 야스카즈의 주장일 뿐 일본의 주류는 아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학설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 학계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임나일본부’설에 대해서 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기 쉽다. 바로 이것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맹점이다. 일본에서는 야마토 왜가 한국계 고대국가를 지배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대신, 야마토 정권이 한반도 남부의 세력에 비해 우위에 서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보는 주장이 강하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이를 ‘임나일본부’설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러니 한국과 일본에서 말하는 ‘임나일본부’설이 서로 다른 셈이다. 왜 같은 말을 가지고 다르게 인식하는 현상이 일어날까? 제대로 인식시키려고 했다면 그리 어렵지 않은 개념이다. 그러니 우리 고대사 학계의 학자들이 제대로 알리려 했다면, 이런 것부터 정확하게 알리는 게 정상이다. 바꿔 말하면 이렇게 잘못된 인식을 심은 주체가 대한민국의 고대사 연구자들이라고 봐도 지나치는 말이 아니다.

그런데 왜 이런 상식적인 이야기가 방송 같이 영향력 있는 매체를 통해 국민들에게 전달되지 않을까? 알고 보면 이게 더 섬뜩하다. 우리 사회에서 기성사학계가 ‘임나일본부’설과 관련된 식민사학의 논리를 보면, 온건한 일본 학자들이 쓰에마쓰 야스카즈의 주장을 비판한 것과 같은 맥락의 내용이 대부분이다. 즉 온건한 황국사학자가 과격한 황국사학자를 비판한 논리를 도입해서, 마치 식민사학의 뿌리인 황국사관 자체를 비판한 것처럼 눈속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황국사관에도 두 갈래가 있으며, 스에마쓰의 ‘임나일본부’설을 비판한 논리 상당부분도 단순히 계열만 다른 황국사학자들의 주장이라는 점을 제대로 알리기 곤란한 상황이다.

이럴 만큼 대한민국의 기성학계와 일본의 온건한 황국사학자는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 몇 년 전 활동했던 한일역사공동연구에서 ‘야마토 왜가 한국계 고대국가를 지배한 것이 아니라는 공감대를 얻은 것이 성과’라는 식의 발표가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알고 보면 이 때문이다. 사실 반세기 이전부터 확인됐던 사실을 가지고,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 공동연구의 성과인 것처럼 발표하는 대국민 사기극이 가능할 정도로 대한민국의 고대사 학계와 일본 고대사 학계는 밀착돼 있다.

이날 해당 분야 전문가라고 출연한 교수가 식민사학을 극복할 대안으로 소개한 설도 바로 이런 맥락의 주장이다. 그는 일본서기에 임나일본부라는 낱말이 나오고 여기에 미코토모찌라는 주석을 붙여 놓았다고 설명했다. 이는 외교사절이라는 의미가 있으니, 임나일본부가 지배기관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됐다는 뜻이 되겠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 주장의 오리지널인 일본 학설의 핵심은 미코토모찌가 ‘천황이 제후에 보내는 사자’라는 의미였다는 발상에서 시작된 것이다. 어원부터가 그랬으니, 실제 지배는 못했더라도 그만큼 가야에 대해 야마토 정권이 우위에 서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복선을 깔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패널로 등장했던 교수는 조금 다른 주장을 했다고 할 것이다. 당시 한반도에 파견됐던 사신들은 왜가 아니라 아라가야를 위해 일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런데 이는 15년 전 필자의 책에서 자세히 해설한 바 있듯이, 사료를 조작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것이 21세기로 접어들던 시점에 바로 KBS 역사스페셜에서 식민사학의 대안이라고 방송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당시 역사스페셜에서는 있지도 않은 일본서기 기록을 만들어내거나 내용을 변조해서 만들어낸 논리를 방송에 내보냈던 바 있다. 15년이 지난 오늘날도 그 때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당사자를 다시 초청해서 밀어주는 것 역시 그대로다.

대한민국의 공영방송이 이런 행태를 보이고 있으니 일본에 ‘한국도 역사왜곡에 관한 한 만만치 않다’는 명분을 주기 십상이다. 그래서 당시에도 해당 프로그램 게시판에 문제를 지적했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나중에 필자의 저서에도 이 문제를 비중 있게 다뤘고, 해당 분야가 들어가 있는 강의를 할 때면 역사스페셜의 해당 회차 영상을 보여주며 학생들에게 ‘사회에 나가 방송에서 활동하게 되면 이러지는 말아 달라’고 강조한다. 그렇지만 15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나아진 것이 없는 실정이다.

역사저널 그날이 아니라 조선시대 그날이라는 말까지 감수할 정도로 조선 이외의 다른 시대를 다루는데 인색한 ‘역사저널 그날’에서 모처럼 고대사, 그것도 일본과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이 걸린 문제를 다루려면 좀 더 신중하고 치밀해야 했던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제작진이야 한 회를 때우고 지나가는 정도로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의 공영방송에서 내보낸 내용이 국제사회에서 문제가 되면 그 영향은 적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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