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학자 이희진

【투데이신문 이희진 칼럼니스트】며칠 전 국회에서, 이상일 의원이 주최한 전문가 토론회에 참가했다. 주제는 ‘우리의 무관심 영역 한국고대사, 어떻게 봐야 하나’. 중국·일본과 역사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현실에서, 동북아역사특위에 소속되어 있는 국회의원이 주최하는 것이라 의미가 적지 않다고 여겼다. 나름대로 연구했던 내용이 정책을 수립하는데 활용되면 보람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발제문을 받고 나니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회의원이 우리 사회 중요 정책을 수립하는 사람이라는 말은 되풀이하기도 민망하다. 따라서 국회의원이 개최한 토론회라는 것이, 단순히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호기심이나 충족시키자는 차원일 리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원칙적으로 이들에게 제공된 정보는 대한민국의 역사정립과 교육 방향은 물론, 중국과 일본 같은 주변 국가들이 자기들 좋을 대로 엮어 내는 역사왜곡에 대응할 근거와 논리를 찾는 정책에 활용되어야 한다.

실제로 이날 여야를 막론한 정계 거물들이 참석했다. 물론 이들은 토론회가 시작하기 전에 덕담만 하고 자리를 빠져 나갔다. 그렇다고 해서 토론 내용이 이들에게 전혀 영향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보좌관들이 남아 보고를 하는 것이 관례이니까. 그러니 이날 토론 내용이 우리 사회 역사 정책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주기 쉽다.

당연히 이런 데에서 발표할 때에는 앞으로의 정책 수립에 도움이 되면서도,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지 않을 내용을 내놓는 것이 도리다. 그러니 여기서 거론되는 내용은 깊이 생각해서 책임질만한 내용을 내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에 불행한 사태가 초래될 것이다.

무책임하게 던진 내용이 교육과 홍보에 반영되면, 그 후유증을 감당하기 어렵다. 더 나아가 이런 내용을 배운 외교관들이 중국·일본 등과의 외교에 들이 밀었다가는 개인적인 망신으로 그칠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익을 넘기게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자리 같은 곳에서 논의될 내용은 일방적인 주장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검증을 거쳐야 한다.

그렇지만 발제문을 받고 검토해보니, 전문가 토론회가 이런 방향으로 진행될 지는 의심스러웠다. 검증을 해야 할 국가기관부터 이날 발표 주제에 맞는 전문가를 보낸 것이 아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아예 고대사 전공이 아닌 인물을 보내왔다. 그나마 동북아역사재단에서는 고대사 전문가를 보냈지만, 스스로 이날 주제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인물이 파견되었다. 게다가 물리적으로 제대로 된 검증을 할 수 없는 시간에, 발표자와 토론자 숫자를 늘려 무리하게 배치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짧은 시간밖에 배정되지 않을 예정이었던 토론문에, 이런 식으로 해서는 제대로 된 검증을 할 수가 없다고 평범한 원론을 지적해 두는 정도의 내용을 담았다. 덧붙여진 내용이라야 별 것은 없었다. 이런 식으로 검증할 의지도 없는 방식의 토론회를 통해 제공된 내용으로 인한 피해는 엉뚱한 사람들이 보게 되니, 주장을 한 당사자들이 책임을 지는 구조를 만들자는 것 정도. 사실 역사학계에 몸담았던 25년 세월 동안 전문가들이랍시고 황당한 주장을 내놓은 당사자들은 아무 탈이 없는데, 좋은 마음으로 그 주장을 받아들인 정치인이나 언론인들이 그 피해를 받는 꼴을 한두 번 본 것이 아니다. 이런 점이야 세상에 조금이라도 제대로 된 관심을 기울였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한 내용일 것이다.

그런데 정말 답답한 상황은 발언이 끝난 직후부터 이어졌다. 너무나 당연한 원론을 얘기했을 뿐인데, 사회자가 발언시간 7분이 지난 것 같지도 않은 상태에서 발언을 끊었다. 바로 앞의 토론자가 덕담으로 10분을 넘길 때까지 아무 말도 않다가, 그러고도 끝낼 기색이 보이지 않자 개입한 것과 너무 비교가 되는 장면이었다.

여기서 끝난 것도 아니다. 발표·토론자의 발언이 다 끝나고 30분 가량 남은 시간에, ‘질문을 받되, 대답은 해주지 말라’는 해괴한 원칙을 천명하고 질문을 받았다. 이런 원칙 아래에 하는 질문이 뭐가 될 지는 뻔했다. 어차피 대답도 못 들은 거, 자기 생색내는 소리나 일방적으로 늘어놓을 수밖에 없으니까. 학술토론이라는 데에서 대표적으로 꼽히는 악습을 사회자가 노골적으로 조장한 꼴이다.

제대로 된 토론을 유도해야 할 사회자가 왜 이런 식의 행태를 보였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사실 전문가라는 사람들 상당수가, 남의 주장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검증해야 한다면서도 정작 자신의 주장이 검증받는 것은 싫어한다. 필자로서는 명백한 이중잣대이고, 고쳐야 할 악습이라,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뒷일을 수습하지 못할 것이 분명해 지적한 것 뿐이다. 그런데도 이런 말이 나오는 꼴 자체를 못 보겠다고 입을틀어막아 버린 것이다.

그래도 내막을 알아 보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토론회가 끝나고 난 다음에 여러 사람이 달려와 악수를 청하며, ‘속시원하다’고 격려를 해주었다. 자기 자랑이라는 섣부른 판단은 잠시 접어두시기 바란다. 이런 말을 해준 분들 대부분이 힘없는 사람들이었을 뿐이다. 정작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전문가 집단은 말조차 섞기 싫다는 듯이 외면했으니, 개인적으로는 득 될 것 없는 소리를 한 셈이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이 토론회를 주선한 이상일 의원은 ‘국민의 혈세가 아니라, 본인의 정치 후원금으로 개최한 거니 너무 부담주지 말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해 줄 정도였다. 그 말을 들으니 더 답답했다. 고대사 분야 뿐 아니라,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위상을 악용해서 지원해주는 사람 바보 만드는 고전적 수법을 알기 때문이다.

그 수법은 간단하다. 발표자는 근거도 논리도 이해가 가지 않는 내용을 일방적으로 늘어놓고, 토론자는 덕담이나 해대며 시간만 때운다. 그래놓고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아 곤란하다는 소리라도 나오면, ‘그러니 앞으로 더 관심 갖고 지원해달라’고 한다. 물론 다음 번에 기회 마련해줘 봐야 이전에 했던 내용 재현하며 또 시간만 보낸다.

이런 식으로 해서 필요한 내용을 검증하는 것이 아니라, 부담 없이 같은 내용 되풀이하면 연구비를 타낸다. 이런 분위기에서 악습 되풀이하지 말자는 말을 꺼냈으니, 싸한 반응이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 원론적으로는 피해자 입장이 될 국회의원이 난감해지게 만들 정도였으니... 이래놓고도 사회자는 기어코 예상되던 마지막 한마디를 던져놓았다. ‘다음 번에도 이런 자리 만들어 또 불러달라.’

이런 사태를 보면 인문학이 사회적으로 쓸모없는 학문 취급 받는 이유도 달리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인간사를 연구하는 학문 자체가 쓸모없는 것일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 분야의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사리사욕 채우기 위해 사회에 도움 되지 않는 방향으로 능력을 발휘하면, 마치 그 분야 자체가 쓸모없는 것처럼 비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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