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경찬 문화칼럼니스트】모던하고 새하얀 무대는 깔끔함을 넘어 수술대가 떠올려진다. 섬뜩하게 느껴질 때 다시 한 번 이 연극의 제목을 상기시킨다. ‘스피킹 인 텅스(SPEAKING IN TONGUES)’. 직역하면 ‘방언’이라는 뜻인데 선뜻 이해가 안 된다. 그래서 부제에 더 집중하게 된다. ‘잃어버린 자들의 고백’. 두세 번은 혼자 읊조리게 된다.

공연이 시작되면 침대가 들어오고 두 커플이 보인다. 이들은 불륜 사이다. 그리고 네 남녀는 한 공간에 있지만 다른 공간을 연기하고, 서로 보이지만 보지 않는 연기를 한다. 지극히 연극적인 장치들이 극대화 돼 있다. 

그리고 그들의 말에 집중하게 된다. 말들은 서로 겹치고 서로의 다른 의사전달은 관객들에게 복잡한 감정 선을 느끼게 한다. 육체적인 관계를 맺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걸까? 이런 모순적인 질문이 이 연극을 보는 내내 쫒아 다닌다.

이 연극은 3막으로 구성돼 있다. 두 편의 에피소드가 펼쳐지고, 두 쌍의 남녀가 나온다. 각막의 이야기가 서로 얽혀지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관객은 퍼즐을 맞추듯 연극을 감상하게 된다. 서로의 복잡한 심리는 왜곡된 말로 인해 더욱 복잡해진다. 말이라는 것이 자신의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포장하고 위장하려는 것은 수단으로 남는다.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이런 것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될 때 극은 마무리 된다.

   
 

연극 ‘스피킹 인 텅스’는 호주 유명 극작가 앤드류 보벨의 대표작이다. 1996년 호주 시드니에서 초연됐고 이후 호주, 미국 영국 등 영미원에서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한국에는 초연이다. 문화권이 다른 곳에서 넘어온 이 연극이 한국에서 어떠한 성과를 거둘지는 아직은 미지수이나 물질만능주의 속에서 인간 본연에 대한 고독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다면 공통분모는 이미 충분히 만들어 진 것이다.

이 작품은 남자와 여자, 인간과 인간의 형성된 관계가 무너지면서 믿음까지도 함께 무너지는 과정과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듣고 싶은 말과 하고 싶은 말이 다른 그래서 결국은 마지막은 침묵만이 흐르는 씁쓸함. 이것이 연극 ‘스피킹 인 텅스’다.

작품의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배우들의 열연이다. 4명이 1인 2,3역의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 내면서 다른 상황, 다른 인물을 보여주는 내용을 더욱 몰입하게 만들어준다.

중의적인 대사와 오버래핑 되는 말들은 연극이 주는 메시지를 극대화한다. 연극적이어서 더욱 신선한 허나 때로는 자신이 생각한 것과는 달라 이질적일 수 있다.

‘스피킹 인 텅스’는 7월 19일까지 대학로에 위치한 수현재씨어터에서 관객들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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