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2부>

   
▲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

현 예비군 제도는 장성들 일자리 만들어 주는 제도
전시작전권 없는 대한민국 “부끄러운 줄 알아야…”

국가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세월호 참사
경제상황을 세월호와 연관시키는 건 “비겁한 태도”

시민들이 노동자의 손 잡아줘야…
노무현, 개천에 난 용… 환생했으면

【투데이신문 임이랑 기자】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통해 대한민국 사회는 민주화가 됐지만 ‘빨갱이’라는 낙인은 여전히 국민에게 두려움과 무서움을 주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한홍구 교수는 ‘빨갱이 두목’이라고 불리던 김일성의 항일독립투쟁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당시 한국사회에서는 ‘항일독립운동을 했던 김일성은 죽고 지금 북한의 김일성은 가짜다’는 논란이 일어났다.

이러한 논란에 대해 한홍구 교수는 “이젠 ‘가짜 김일성 설’의 망령을 떨쳐버리고, 어떻게 김일성이 실제보다 부풀려져 우리 민족의 영웅으로 부상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며 “김일성이 가짜라는 주장은 너무 허점이 많아 일일이 반박할 필요가 없다”고 반박하며 ‘김일성 가짜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결국 한홍구 교수는 그와 반대되는 사람들에게 ‘빨갱이’, ‘종북’이라고 낙인이 찍혔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연구실에서 밖으로 나와 다양한 사회 활동을 하고 있다.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들을 후원해왔으며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평화박물관 건립을 추진했고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학살을 폭로했다. 여기에 3년 동안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민간위원 활동을 통해 군부독재 시절 국가에 의해 조작된 사건에 휩쓸려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건들을 조사해 국가폭력에 의해 피해를 봤던 사람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데 힘을 썼다.

이처럼 다양한 활동 때문에 연구시간이 부족할 것 같지만 한홍구 교수는 연구와 저술에도 소홀하지 않는다. 2003년에는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 꼽히는 <대한민국 史>를 출간했고 최근에는 <역사와 책임>이라는 책을 출간해 연구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지난달 막은 내렸지만 손배가압류를 주제로 한 연극 <노란봉투>제작자로 활동하며 역사학자의 영역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대한민국 사회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한홍구 교수.

<투데이신문>은 한홍구 교수의 인터뷰를 1부, 2부 나누어 1부에선 군부독재 시절 간첩조작사건과 제헌헌법 그리고 역사학자가 바라본 대한민국의 정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2부에서는 다양한 사회활동으로 정신없이 바쁜 한홍구 교수에게 역사학자이지만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는 이유, <노란봉투>를 제작하게 된 배경과 대한민국의 노동문제, 그리고 세월호 참사의 역사적 의미, 예비군과 전시작전권과 같은 사회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훈련을 마치고 퇴소하는 예비군들 ⓒ뉴시스

▲ ‘방만운영’ 예비군 제도 폐지해야

Q. 2006년 노무현 정부시기에 3년 내로 전시작전권을 넘겨 받을 것이라고 했지만 지난해 10월 한국과 미국이 전시작전권 전환 시기를 2020년대 중반 이후로 미뤘다. 이처럼 대한민국의 보수는 왜 전시작전권 환수에 몸서리를 치는지 궁금하다.

: 우선 전시작전권을 좌파가 내세울 문제인가. 아니면 우파가 내세울 문제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대한민국에서는 항상 좌파가 민족문제를 제기한다. 우리나라는 민족을 대변해 세력을 키우고 정당성을 확보하는 우파들이 없다. 예를 들어 수온이 1도만 올라도 잡히는 어종이 다르다. 그렇기에 전시작전권 문제도 대한민국의 우파들 입장에서는 결국 서식지 문제다. 우파들이 전시작전권 환수에 몸서리치는 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가장 바른말 했다고 생각하는 게 ‘똥별연설’이다. 노무현 대통령 말을 좀 빌리면 ‘정말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북한에 비해 국력이 몇 십 배 큰데 육군 합참의장이 전시작전권 하나 안 찾아오고 뭐하는지 모르겠다. 민간 기업을 예로 들어 자신들이 운영하는 회사에 약한 사업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을 강화시키기 위해 공격적으로 투자할 것이다. 이렇게 투자를 많이 했는데도 불구하고 전체 자산 매출의 100분에 몇밖에 안 되는 회사한테 이 사업부분이 계속 뒤진다면 결국은 폐지하고 적대적 M&A를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국군을 폐지하고 인민군을 사오는 것이 맞다. 그리고 우리 사병들은 제대로 된 대가도 받지 않고 군대에 2년 동안 봉사한다. 여기에 정부는 해마다 좋은 무기를 사다준다. 그런데도 북한보다 전쟁 수행 능력이 떨어져 전시작전권을 환수하지 못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운전도 못하면서 BMW 사달라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Q. 그렇다면 전 세계에 전시작전권이 없는 나라가 대한민국 이외에 어떠한 나라가 있는가.

: 전시작전권이 없는 나라로 코스타리카와 바티칸 시국 산마리노 왕국 등이 있다. 이런 나라는 군대가 없으니 전시작전권도 없다. 여기에 대한민국은 군대는 있지만 전시작전권이 없으니 이런 나라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보다 비교가 안 될 만큼 가난한 북한이 우리에게 가장 큰소리치는 부분이 전시작전권이다. 우리나라의 국력보다 낮은 나라도 전시작전권이 다 있는데 대한민국의 군인들은 이러한 사실이 전혀 부끄러워하지도 않은 것 같다.

Q. 전시작전권이 없는 대한민국이지만 현역병으로 군생활 2년하고 전역하면 예비군 8년이 기다리고 있다.

: 예비군 제도는 폐지돼야 한다. 그 이유는 예비군 같이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는 조직은 없기 때문이다. 민방위가 500만 명이고 예비군은 300만 명이다. 여기에 상비군은 60만 명이다. 대한민국은 거의 1000만대군을 가지고 있다. 이정도 병력이면 중국은 몰라도 미국을 상대로 인해전술을 할 수 있다. 한국전쟁 당시 국군은 20만 명을 가지고 전쟁을 했다. 전쟁의 양상은 한국전쟁 때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그런데도 이렇게 많은 병력을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바로 장성들 일자리 만들어 주는 기능을 예비군이 담당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송영선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도 예비군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을까. 예비군은 대한민국 군대의 전력 상승에 아무 도움도 안 된다. 정말 예비 전력이 필요하다면 전쟁 때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예비전력을 만들면 된다. 대한민국의 국방부와 정부는 이제 전쟁 양상이 변했으니 ‘전쟁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고민을 해야 한다. 그리고 ‘예비군의 규모는 얼마가 적당할까’라는 고민도 같이 해야 한다. 국방부와 정부만 이러한 고민을 해서는 안 된다. 국민들도 유승준이 ‘군대를 갔네 안 갔네’를 따지기 전에 ‘왜 대한민국의 남자들은 군대를 가야하지?’라고 고민해 봐야 한다.

Q. 한국 기업의 조직도 군대와 비슷하고 대학교에서는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기합을 주기도 한다. 이처럼 사회 전반에 병영문화가 퍼져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 한 해 머리 깎고 입대하는 청년이 27만 명이다. 이들이 전역할 때쯤이면 병영문화에 물들어 사회에 쫙 퍼지게 된다. 물론 옛날보다 인권이 신장됐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위계질서와 상명하복 같은 군사주의의 문화들이 학교와 사회, 직장 그리고 대학교 선·후배 관계까지 침투해 들어갔다. 지금이 오히려 군사독재 시절보다 군사주의가 민간 사회에 확산돼 있는 것 같다. 한국 사회 민주화를 위해 여성들의 인권 신장도 중요하지만 남성들의 인권 신장도 중요하다. 대한민국의 남자들은 자신의 인권이 침해되는 것에 대해 너무 익숙해져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로가 서로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 같은 경우에는 유치원과 학교를 통해 사회를 배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군대에서 사회를 확실하게 배우고 나온다. 대한민국의 병영문화가 사회에 그대로 나오는 이러한 악순환 구조를 차단해야 하며 군대 내의 병영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 눈물을 흘리는 세월호 유가족 ⓒ뉴시스

▲ ‘세월호 참사’ 슬픔 간직한 사람들이 모여 세상 바꿀 것

Q. 지난해 국민들을 슬픔에 잠기게 한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앞으로 어떻게 기록될 것으로 보는가.

: 국가가 아무것도 안 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물론 지나봐야 알겠지만 우리 근현대사에서 세월호 참사를 가장 진하게 느끼게 해주는 사건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광주 5.18 민주화 항쟁이다. 광주 5.18 민주화 항쟁에 대해 국가폭력으로만 기억할 수도 있다. 쉽게 생각해 전남도청에서 30명이 죽은 사건으로만 생각할 수 있지만 항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가 또 역사다. 세월호도 마찬가지로 어린 학생들이 죽은 사건만은 아니다. 세월호에 실종자나 사망자가 내 가족이 아니고 일 년이 넘게 지났는데도 우리는 아직도 세월호를 떠올린다. 즉 세월호는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사건이 세월호와 광주 5.18 민주화 항쟁이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에 책임 있는 사람들은 무척 피곤할 것이다. 국민들이 빨리 잊어줘야 하고 교통사고처럼 생각해줘야 하는데 시민들은 핸드폰에 추모 스티커를 붙이고 가방에는 추모를 상징하는 고리를 걸고 다닌다. 이처럼 세월호를 잊지 않은 사람들이 많고 죽어간 어린 학생들에 대해 미안해하고 아파하고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들. 살아남은 사람들과 슬픔을 간직하는 사람들이 모여 세상을 바꿀 것이다. 그렇기에 세월호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Q. 하지만 정부는 세월호 참사 해결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세월호 유가족에게 막말하는 정치인들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 정부도 처음에는 ‘배 하나 빠졌겠구나’하고 간단하게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전 국민이 이 사건을 지켜보자 사상최대의 구출작전이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 현장에서는 체계도 전혀 안 갖춰져 있었다. 이렇게 체계가 잡혀있지 않은 이유는 아마 경비 문제도 걸려있었던 것 같다. 구출하는데 몇 십억을 투입해야 하니 이 돈을 ‘해경이 책임지는 것인지’, ‘안전행정부가 책임지는지’, ‘청와대에서 특별자금이 나오는 것인지’를 놓고 서로가 고민했던 것 같다. 그리고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한테 이 비용을 다 뒤집어 씌우면 어떡하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만약 박정희 군부독재 시절이었다면 비용문제를 떠나 무조건 구출했을 것이다. 어쨌든 세월호 참사라는 납득하기 힘든 일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다. 아마 내가 대한민국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랑 박근혜 대통령 욕을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이지만 나도 이럴 줄은 몰랐다. 대한민국의 수장인 이상 사고에 대해 최선을 다해 구출했었어야 했다. 그랬는데도 불구하고 같은 결과가 나왔다면 국민들과 유가족들도 ‘어쩔 수 없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지금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 고위관료와 새누리당은 자신들에게 ‘똥물이 튀지 않을까’하는 걱정을 하고 있다. 그렇기에 정부는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조직적으로 ‘세월호 피로증’을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보수라고 하는 사람들이 권력과 정보기관, 언론을 모두 장악해 여론 조작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역사는 바뀌지 않아’라고 국민들에게 계속 주입하고 있다. ‘조직된 패배주의’를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다.

Q. 세월호의 실소유주가 국정원이라는 것과 함께 세월호 참사가 국정원 프로젝트라는 의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 국정원이 세월호와 관계된 흔적이 조금 있는 것 같긴 하다. 하지만 ‘국정원이 세월호를 소유하고 있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 해봤을 때 아마 국정원에서도 자금을 관리하기 위해 세월호에 투자, 수익을 얻으려고 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실제 세월호 소유주가 국정원이고 사고까지 국정원의 기획이었다는 일부 의견에 대해선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세월호 사건에서 ‘왜 세월호 관련한 세세한 부분이 국정원 파일 속에 있었나’하고 따지지만 보고사항에 국정원이라고 써진 파일이었을 뿐이다. 이러한 증거가 ‘세월호는 국정원이 실소유주다’고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신중할 필요가 있고 ‘왜 조사 안 하나’, ‘해명 안 하나’에 대해서는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우리에게 충분히 있지만 도가 지나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Q. 세월호 유가족을 비난하는 ‘일베’, 그리고 세월호 참사 이후 다시 태어난 ‘서북청년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 ‘일베’나 ‘서북청년단’ 같은 세력이 형성될 것 같으면 보수 세력이 나서서 억눌러야 한다. 유럽에서도 극우파 등장에 가장 기겁을 했던 진영이 보수진영이었다. 이처럼 한국에는 진정한 보수 세력이 없다.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평화와 같은 보편적인 아젠더(Agenda)를 말하는 진정한 보수 세력이 생겨야 한다. 솔직히 우리나라에서 도덕적으로 존경할 만한 보수주의자가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보수 세력 중에 병역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한 사람이 얼마나 되나. 과거 중국의 모택동 아들이 한국전쟁 당시에 전사했고 미국의 벤 플리트(Van Fleet) 8군 사령관 아들도 한국전쟁에서 전사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고위직 관리의 아들 중에서 전쟁에 참가해 전사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만약 건전한 보수가 있다면 ‘일베’나 ‘서북청년단’같은 단체는 생기지 않는다. 더욱이 ‘일베’는 젊은 사람들 중 많은 사람에게 관심을 받기 위한 욕망과 상실감이 결합한 부분이 일베를 만들었고 ‘서북청년단’은 거리에 나와 돌아다니는 아스팔트 극우에 지나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수구진영이 얼마나 진보진영에 위기를 느꼈으면 폭식투쟁과 같은 말도 안 되는 조롱을 하고 있겠는가.

   
▲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

Q. 어떤 이들은 세월호 참사 때문에 경제가 어렵다고 주장했다.

: 지역마다 영향을 있을 것 같기는 하다. 술을 마시거나 쇼핑을 할 분위기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는 이명박 정권 때부터 잘 안 돌아갔다. 경제 부분에 있어서 정부가 세월호를 연관시켜 핑계거리를 찾는 것이다. 아주 비겁한 태도다.

Q. 세월호 참사도 시간이 지나면 점점 잊힐 것이다. 국민들이 세월호를 계속 기억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 잊히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시간이 지나면 잊히는 게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사람들 각자 먹고살아야 하는 문제도 있지 않은가. 부모가 죽어도 자식이 죽어도 마찬가지로 점점 잊힌다. 일반 시민이 세월호를 잊는 것은 당연하다. 처음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을 때의 분위기가 계속 이어질 수 없다. 참사 당시에는 보수언론과 재향군인회, 자유총연맹과 같은 보수단체들도 팽목항에 텐트를 치고 같이 봉사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니 오히려 유가족이나 실종자 가족을 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는 간단하다. 슬퍼하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지라고 하면 자신들의 기반이 파헤쳐 지기 때문이다. 세월호에는 관피아와 공안세력과 같은 여러 세력이 관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가 안 돌아 간다’, ‘지겹다’와 같은 이상한 논리를 퍼트려나가는 것이다. 잊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슬픔이라는 것은 정말 아무 이유 없이 찾아온다. 그렇게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세월호는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 스타케미칼 노조원들의 농성 ⓒ뉴시스

▲ 시민들이 노동자에게 내민 손 <노란봉투>

Q. 지난 한해도 쌍용차 노조와 지금까지 해결되고 있지 못한 생탁 노조 파업 등 각종 노조 문제가 많았다. 이런 가운데 교수님은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손배소를 통해 오히려 노동자를 탄압하는 사회현실에 대한 내용을 담은 연극 <노란봉투>의 제작자로 참여했다.

: <노란봉투> 이야기를 하려면 ‘손잡고’라는 단체를 같이 말해야 한다. ‘손잡고’에서 <노란봉투> 캠페인을 같이 했다. 노동자들이 손배가압류에 걸려 현장에 목을 매달고 죽는 사람이 한 해 수십 명이 나오는데 ‘지식인들은 과연 무엇을 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도 노동문제를 전공으로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시간이 갈수록 노동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보수언론에서 그렇게 이야기 하는 노동 귀족이 연봉 5~6천만 원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20~30억씩 손해배상 때리는 것이 옳은 것인가. 대한민국에서 노동의 가치가 20~30억씩 정도의 인정을 받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파업 때문에 공장이 며칠 쉬었다고 10억, 20억씩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것 자체도 문제가 있다. 정말 그렇게 몇 십억씩 손해가 발생했다면 노동자들에게 그 정도의 임금을 생산성에 맞게 지급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들이 노동자에게 어떻게 손을 내밀 수 있을까’ 고민하는 차원에서 만든 것이 ‘손잡고’이다. 마침 가수 이효리씨의 편지 덕분에 많은 분들이 손배가압류 문제에 대해 고민해주고 참여해 줬다. 여기에 ‘손잡고’에서도 시민들에게 감성적으로 접근해보자고 해서 <노란봉투>라는 연극을 만들게 됐고 이양구 작가가 좋은 글도 써주고 좋은 배우들을 구해서 제작이 된 것이다.

Q. <노란봉투>를 제작하면서 느낀 점이나 소감을 묻고 싶다.

: 배우들하고 많이 친해졌다. 며칠 전 배우들이 모여서 구미 스타케미컬 해고 노동자 차광호 씨를 위한 문화제를 열었다. 비록 무대도 없고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배우들이 열심히 공연을 해줬다. 사실 배우들 중 원래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던 배우가 없었다. 그래서 <노란봉투> 연극 내용에 대해 상당히 부담스러워 했다. 하지만 지금은 배우들이 스스로 나와서 공연한다. 배우들의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회문제에 대한 의식을 여러 곳으로 확산시킬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솔직히 예술이라는 것이 당대 민중들의 고통과 유리된 예술은 예술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Q. 역사학자인데도 불구하고 이처럼 다양한 사회문제와 노동문제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인가.

: 역사 공부를 하다 보니 우리 사회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자꾸 생각해 보고 스스로 질문을 던져본다. 노동문제 같은 경우 차광호 씨가 굴뚝에 올라간 지 1년이 지났다. 하지만 사측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차광호 씨를 계속 저렇게 놔두면 어떻게 될까? 답은 뻔하다. 30~40년이 지나 역사학자들이 ‘굴뚝에 오른 차광호 씨를 왜 죽게 내버려뒀나’라고 물었을 때 우리는 무엇이라고 답해야 할까? 지금 살고 있는 이 시간도 훗날 역사가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차광호 씨와 같이 우리사회의 어두운 곳에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해 공감 할 줄 알아야 한다.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다.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의 슬픔에 공감해야 한다. 실제로 세월호 참사의 아픔과 슬픔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모두 흩어져 있다. 이들을 한 곳에 모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 지식인들은 노동문제와 함께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나 또한 한 시대를 살고 있는 지식인으로서 노동문제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Q. 과거 역사 속의 노비와 현재의 노동자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노동자들은 민주주의가 되면 오랫동안 꿈꾸던 평등사회가 오고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회사는 노동자를 존중해주는 것처럼 하면서 등골 빼먹고 뒤통수 치고 이러니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역사 속 노비를 생각해 봤을 때 노비들은 내 아버지도 노비이니 나도 노비이고 내 아들도 마찬가지로 노비이니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적었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은 갖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점에서 노비에 비해 우리가 훨씬 좋은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간혹 주변에서 나에게 ‘역사가 과연 변하기는 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하지만 역사를 길게 공부하다 보면 우리가 흘린 피, 우리가 흘린 땀만큼 역사는 변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처럼 역사가 역동적으로 변한 나라는 없다고 생각한다. 세계사적으로 봐도 역사는 꾸준히 변화 발전하는 것이 아닌 확 변하기도 하고 가끔은 정체되고 밀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역사를 바꿀 수 있는 기회는 생각보다 자주 온다.

Q.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가정 하에 현재 대한민국에 다시 환생했으면 하는 역사 속 인물은 누구인가.

: 내가 현대사가 전문이니 가까운 시대의 인물을 말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환생해서 자신의 실패에 대한 반성을 하고 다시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노무현 대통령의 실패가 지금 우리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죽음으로서 득을 본 사람들은 친노밖에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살아있으면 지금 친노 중에 정치할 수 있는 국회의원은 누가 있을까. 노무현 대통령이 모든 것을 껴안고 죽었기 때문에 친노가 살아남았다. 미국에서는 오바마 같은 흑인 대통령이 나오기 까지 무려 250년이 걸렸다. 하지만 우리는 해방 된 지 100년도 안됐는데 노무현 같은 대통령이 나왔다. 솔직히 노무현 같은 사람이 대통령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많지 않다.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DJP(김대중·김종필)연합을 통해 집권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단독으로 집권했다. 그렇기에 노무현 대통령은 ‘나 같은 사람도 대통령을 할 수 있으니 한국이 정말 민주화 됐구나’하고. 하지만 이 상황을 조금 바꿔보면 노무현이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릴 만큼 사실 대한민국은 민주화 되지 않았다. 노무현이 대통령을 하면서 기록을 관리하고 시스템을 갖추는 일들을 했지만 이러한 일들은 노무현 대통령 이후 민주 대통령이 2번, 3번 하고 난 다음에 했어야 할 일들이었다. 여기에 탄핵까지 당했다가 복귀했다.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강력하게 사회 개혁을 시도했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후보 수락연설에서 ‘자라나는 세대에게 불의에 맞서 당당하게 싸울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이러한 사회를 만들지 못하고 떠났다. 노무현 대통령 자신은 개천에 난 용이었지만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들어서자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국민들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걸었던 꿈은 소중한 것이다. 이명박 후보와 정동영 후보가 대선에 붙었을 때 500만표 차이로 패배했다. 내 개인적인 생각에 이러한 선거 패배 기록은 100년이 지나도 안 깨질 것이다. 최다표로 정동영 후보가 진 것은 노무현 대통령 이후 500만명이 투표장에 안 간 것이다. 투표장에 안 간 사람들은 ‘에이 투표 해봤자 별 볼일 없네, 5년 동안 맡겨놨는데…’ 하고 말이다. 이 사람들이 가진 꿈은 소중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현재의 새정치민주연합은 ‘5년 뒤에 다시 정권 찾지 뭐’ 이런 식이다. 상대는 정권이 넘어가지 않도록 온갖 반칙을 다 하고 있다. 그 와중에 사람들은 죽어나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별로 관심도 없다. 하지만 그냥 다시 살아와서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싶을 뿐이다.

Q.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 당연히 교수로서 학생들을 위해 강의를 열심히 할 것이다. 여기에 강단학자가 아닌 행동하는 학자가 되기 위해 다양한 사회현안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물론 ‘손잡고’도 열심히 할 것이다. 하던 일 열심히 해야 하지 않겠나.(웃음)

역사학자 한홍구는…한홍구 교수의 집안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학자였던 한백겸의 14대손이자 언론을 통해 국민 계몽에 앞장섰던 독립운동가 한기악의 손자다. 그리고 ‘일조각’ 출판사의 창업주 한만년 선생의 아들이다.

쟁쟁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사회에서 금기시되는 김일성의 항일독립투쟁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대학교에서 과거사를 가르치고 연구하면서도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평화박물관 건립을 추진했고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들을 후원해왔으며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학살을 폭로하고 3년 동안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민간위원 활동으로 군부독재 시절 국가에 의해 억울하게 간첩 누명을 쓴 사건들을 조사해 진실을 밝혀냈다.

이처럼 다양한 활동 때문에 연구시간이 부족할 것 같지만 한홍구 교수는 연구와 저술에도 소홀하지 않는다. 2003년에는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 꼽히는 <대한민국 史>를 출간했고 최근에는 <역사와 책임>이라는 책을 출간해 연구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여기에 지난달 막은 내렸지만 손배가압류를 주제로 한 연극 <노란봉투>제작자로 활동하며 역사학자의 영역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다양한 사회 활동을 하고 있는 지식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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