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리한테만 좋은 곳이라서 죄송합니다
[칼럼] 우리한테만 좋은 곳이라서 죄송합니다
  • 김재욱 칼럼니스트
  • 승인 2015.08.13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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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김재욱 칼럼니스트】5년 전, 이곳으로 이사를 했다. 동 주민들은 ‘새로 오는 집에서 반상회를 하는 게 전통이다’고 해서 우리 집에서 반상회를 하게 됐다.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모여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떤 할머니가 반장한테 한 마디 하신다.

“이번에 새로 온 경비 바꿔야겠어. 인사도 안 하고, 담배도 피우더라고.”

“좋은 분인 거 같던데요. 그런 걸로 어떻게 경비를 교체를 하겠어요.”

“안 돼. 그 새끼 잘라야 돼.”

이런 말을 들으면서도 나서지 못했다. 이사 온지 얼마 안 되어 급하게 나설 수 없었고, ‘설마 한 사람이 저런다고 교체가 되겠어?’ 하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정말로 ‘그 새끼’는 잘렸다. 주민들 모두가 저 할머니 같지는 않았지만, 아파트에서 경비하나 바꾸는 건 일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그 분 포함해서 지금까지 모두 여섯 분의 경비가 교체되었고, 이제 며칠이 지나면 지금 계신 아저씨도 다른 동으로 가게 되었다.

반장이 아저씨 면전에 대고 이렇게 말했단다.

“경비 교체 해달라고 민원을 넣었다.”

청소 안 하고, 낙엽을 안 치우고, 혼자 있을 때 책을 본다는 게 교체 이유란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떻게 당사자 앞에서, 사람이 같은 사람한테 ‘당신 맘에 안 든다고 민원을 넣었다’고 통보를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반상회 한 번 없이 혼자서 경비를 바꿔달라고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 여름에 무슨 낙엽이 있으며, 혼자 있을 때 책을 본 게 교체사유라니.
아저씨는 6개월 간 우리 동에 계시면서 누구보다 일을 열심히 하셨고, 주민들한테 허리가 꺾어질 정도로 인사를 하셨다. 다른 동 지하창고는 정리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아도, 우리 동은 늘 깨끗이 정리가 되어 있었다. 인사받기 미안할 만큼 좋은 아저씨였다. 이런 분인데 반장은 도대체 아저씨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혼자서 경비단을 찾아가 경비를 교체해 달라고 민원을 넣었다. 반장을 옹호하는 한두 명 이외 나머지 주민은 모두 아저씨를 좋아하는데도 불구하고 경비단에서는 민원을 받아들여 교체를 하겠다고 했다.
자연스레 5년 전 일이 떠올랐다. 아저씨는 좋은 분이라는 걸 알고, 반장의 처사는 불합리를 넘어 치졸했다는 점, 한두 사람의 말만 듣고 쉽게 경비를 교체해 버리는 경비단의 편의위주의 일처리를 더 두고 보기 어려웠다. 나는 경비단에 전화를 해서 항의했고, 집사람은 직접 찾아가서 ‘경비 교체할 때 모든 주민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따졌다. 이래서 아저씨는 다시 우리 동에 계시게 됐다. 그걸로 끝인 줄 알았는데, 반장은 이 아저씨한테 눈치를 줬고, 아저씨는 가끔 나를 볼 때마다 ‘더 있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교체 결정이 번복 되었을 때 그렇게 기뻐하시더니 결국 이렇게 됐다.
경비실 앞에서 우연히 반장을 만났다. 반장은 ‘아파트 생활 30년인데 이런 경비는 처음 본다’며 바꿔야 한다고 뇌까린다. 나는 ‘아저씨 모든 면이 마음에 든다. 누가 민원을 넣었다고 해서 제가 경비단에 전화해서 앞으로 한두 사람 말만 듣고 함부로 경비를 교체하지 말라’고 항의했다고 반장 면전에 대고 말해 버렸다. 차마 욕은 하지 않았지만, 말투를 곱게 하기 어려웠다. 집에서 키우는 개한테도 이럴 수는 없는 일인데, 사람이 사람한테 어떻게…….
며칠 전 반장한테 수모를 당한 아저씨는 나를 붙잡고 하소연을 했다. 당신보다 십 수 년은 어린 내 앞에서 울먹이신다.

“갑질 심하죠. 우리 동의 그 사람은 상습적으로 했고요. 다른 동에선 정말 일 잘하는 경비가 어눌하다고 해서 잘렸어요. 사람들이 그 사람 일 잘하는 거 아는데도 동의서를 갖고 오니까 찬성을 해서 그 사람 잘렸어요. 경비원은 파리 목숨이에요.”

“…….”

“(민원 넣은)그 사람을 볼 수가 없더라고요. 제가 버틸 수가 없을 거 같아요. 솔직히 자존심이 상하고…….”

“아저씨가 여기 계속 계시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됐잖아요. 자존심 회복이야 다 안 되셨겠지만, 아저씨 편드는 사람들이 많고, 여기 계속 계시게 됐으니깐 어느 정도는 회복하셨잖아요?”

“김재욱씨 덕분에 자존심은 회복됐어요. 그래도 고민이 되고 생각이 많아져요.”

아저씨, 제가 그 맘 다 압니다. 제가 다 알아요. 아까 아저씨 울먹일 때 저도 울고 싶었어요. 그런데 어차피 아저씨 보기엔 저도 갑이잖아요. 악어가 되기 싫어서 그냥 듣고만 있었습니다. 사람 마음이 그게 아니군요. 제 생각도 짧았습니다. 아저씨가 계시게 되면 모든 게 다 정상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네요. 마음이 아픕니다. 다른 동에 가시면 모쪼록 우리 동 반장 같은 사람탈만 쓴 사람은 만나지 마시고, 저 같은 사람도 만나지 않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저 아저씨 할 일 하시면서 마음 편히 계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88올림픽 선수들과 각국의 기자들이 머물렀던 좋은 곳인데 우리한테만 좋은 곳이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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