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도둑질에 실패한 도둑
[칼럼] 도둑질에 실패한 도둑
  • 김재욱 칼럼니스트
  • 승인 2015.08.25 23: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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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욱 칼럼니스트
▸저서 <삼국지인물전>, <역사, 어제이면서 오늘이다> 외 4권

【투데이신문 김재욱 칼럼니스트】얼마 전 신경숙의 소설 『전설』 중 일부의 내용에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표절한 흔적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문학전공자들과 대중들은 문제가 되는 구절을 대조하고는 신씨가 표절을 했다는 데 대부분 의견일치를 보았다. 유명작가들은 기고 글이나 SNS를 통해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인 신씨가 표절을 저지른 일을 마치 자신의 일처럼 부끄러워하고 참담해 하는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표절 당사자로 지목된 신씨는 이렇게 말했다.

“표절이란 문제 제기를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국’을 읽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독자에게 사과한다.”<2015. 6. 24. 동아닷컴>

과거의 흔적을 보니 잘못한 것 같기도 한데, 잘못을 저지른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빠져나가는 수단을 보니 과연 글 솜씨는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만인이 표절이라 함에도 끝까지 ‘표절이란 문제 제기’라고 하면서 인정을 하지 않고 있다. 신씨가 사과를 한 대상은 ‘자신의 흐릿한 기억력’이지 ‘표절에 분노하는 독자’가 아닌 것이다.
한편 신씨를 최고의 작가로 키워 낸 ‘창작과 비평’은 처음부터 끝까지 미온적으로 대응하다가 대중의 분노가 가라앉고, 관심도가 떨어지자 슬그머니 해명을 했다.

“저희는 그간 내부토론을 거치면서 신경숙의 해당 작품에서 표절 논란을 자초하기에 충분한 문자적 유사성이 발견된다는 사실에 합의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유사성을 의도적 베껴 쓰기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무의식적인 차용이나 도용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표절이라는 점이라도 신속하게 시인하고 문학에서의 ‘표절’이 과연 무엇인가를 두고 토론을 제의하는 수순을 밟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표절이 뭔가. ‘문자적 유사성이 발견 되는’ 순간부터 그 글은 표절한 글이 되는 것 아닌가? 게다가 문제가 된 그 구절이 단순히 문자 몇 개가 ‘유사한’ 정도였는가? 글의 전개 방식도 거의 똑같았는데 그것을 두고 어떻게 ‘의도적 베껴 쓰기가 아니다’고 할 수 있는가. 문학전공자의 자질을 의심하게 된다. 게다가 신씨처럼 끝까지 ‘표절’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작가가 ‘의식적인 도둑질’을 했고 출판사는 돈 때문에 그런 도둑질을 비호한다고 단죄하는 분위기가 압도하는 판에서 창비가 어떤 언명을 하든 결국은 한 작가를 매도하는 분위기에 합류하거나 ‘상업주의로 타락한 문학권력’이란 비난을 키우는 딜레마를 피할 길이 없었기에 저희는 그동안 묵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이상 2015. 8. 24. 뉴시스>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똑같은 글을 쓸 수 있는 지 되묻고 싶다. 무의식이 되려면 베끼고자 하는 해당 작품을 수백 번 읽어서 그 글에 익숙해 진 나머지 내 글이 그걸 베꼈는지 베끼지 않았는지도 몰라야 하는 것 아닌가? 어떻게 봤는지 안 봤는지 기억도 못하는 글과 자신의 글이 그토록 유사할 수가 있는 것인가? 그리고 도둑질이라는 말에 ‘의식적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게 온당한가? 무의식적으로 도둑질을 하는 사람도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 사람은 도둑이라고 단죄하기 전에 우선 ‘치료’를 해 주어야 하겠다. 창작과 비평도 단죄하면 안 되겠다. 치료를 받아야 할 출판사라고 해야 할 것이다.

출판사의 이 변명은 사족이고 이에 대한 나의 반박도 그러하다. 출판사에선 한 번도 ‘표절’이라고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족을 붙인 것은, ‘창작과 비평’이 얼마나 대단한 곳인지 알 수 없으나 이번 사건의 책임을 당사자인 신씨에게 돌리지 않고, 불특정의 독자들에게 돌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자신들은 억울하다며 도로 큰소리를 치는 태도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우리말과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는 한자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고려의 문장가인 이규보가 일침을 놓는다.

“옛사람의 시체를 본받으려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그 시를 익숙히 읽은 뒤에 본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표절하기도 어렵다. 도둑질에 비유해 보겠다. (도둑은) 먼저 부잣집을 엿보아 그 집 문과 담의 위치를 눈에 익혀 둔 뒤에야 그 집에 잘 들어가 남의 것을 탈취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면서 남이 모르게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남의 주머니를 더듬고 상자를 열 때에 반드시 잡힐 것이다.”<이규보, 『동국이상국집』, 부록 「백운소설」. 한국고전번역원의 번역 일부 수정하여 인용함>

신씨는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훔치려다 실패한 도둑에 불과하다고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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