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비운의 부자(父子) 관계 (1)
[칼럼] 비운의 부자(父子) 관계 (1)
  • 이종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5.09.02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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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퀴즈를 하나 내보고자 한다. 최근 막을 내린 KBS 드라마 『징비록』, 한참 방영중인 MBC 드라마 『화정』, 그리고 9월에 개봉할 영화 『사도』에서 눈에 띄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비극적인 부자 관계’를 소재로 삼았다는 것이다.

『징비록』과 『화정』의 경우 부자 관계가 주된 내용은 아니다. 『징비록』은 임진왜란을 극복하는 류성룡과 조선 민초들의 이야기이고, 『화정』은 광해군~인조에 이르는 혼란의 시대 속에서 드러나는 권력욕과 그것에 대항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두 드라마 속에서 부자 사이의 갈등은 드라마의 진행에서 매우 중요한 소재로 자리 잡고 있다. 『징비록』에서는 선조와 광해군의, 『화정』에서는 인조와 소현세자와의 갈등이 바로 그 역할을 하고 있다.

곧 개봉할 영화 『사도』에서는 아예 본격적으로 포스터에 ‘아버지와 아들, 비극이 시작되다’라는 문구를 넣었다. 제작사 측에서 제공하는 영화의 내용을 보면 재위기간 내내 왕위계승 정통성 논란에 시달린 영조가 완벽한 왕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뒤늦게 얻은 귀한 아들 세자만은 모두에게 인정받는 왕이 되길 바랐지만, 기대와 다르게 성장하는 세자에게 실망한다. 어린 시절에는 남다른 총명함으로 아버지 영조의 기쁨이 되는 아들이었지만, 성장하면서 아버지와 달리 예술과 무예에 뛰어나고, 자유분방한 기질을 가진 사도세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진심을 몰라주고 다그치기만 하는 아버지를 점점 원망하고, 결국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가족사가 시작된다.

그렇다면 역사에 기록된 실제 사도세자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김범 연구사의 글에 따르면, 실제로 사도세자는 첫 아들이 죽은 후, 영조가 41세였을 때인 1735(영조 11)년에 태어났다. 당시 시대 상황을 고려했을 때 상당히 늦은 나이에 본 아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영조의 기쁨은 남달랐고, 후궁의 소생인 사도세자를 태어나자마자 중전의 양자로 입적시키고, 그 다음해에 왕세자로 책봉했다고 한다. 원자 책봉과 세자 책봉 모두 조선 역사상 가장 빠른 기록이었다.

이랬던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는 결국 아버지가 아들을 굶겨 죽이는 비극적인 사태로 끝난다. 이 사태의 전반적 과정은 『영조실록』의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영조실록』의 영조 38년 기록에 따르면, 영조는 “세자의 천품과 자질이 탁월해 임금이 매우 사랑했는데, 10여 세 뒤부터 점차 학문에 태만하게 되었고, 대리청정한 뒤부터 질병이 생겨 천성(天性)을 잃었다”고 전해진다. 여기에서 영조와 사도세자 사이에 문제점이 학문에 대한 두 사람의 태도의 차이, 그리고 사도세자에게 생겼다고 전해지는 질병 때문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영조와 사도세자 사이의 사이가 멀어지게 된 것은 언제, 무엇 때문일까? 일단은 사도세자가 글공부보다는 무예를 더 좋아했던 것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김범 연구사의 글에 따르면, 사도세자는 10세 무렵부터 학문에 싫증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영조실록』 영조 20(1744)년 기록에 따르면, 사도세자가 9세 때 영조는 “글을 읽는 것이 좋은가, 싫은가” 하고 묻자 세자는 “싫을 때가 많다”고 대답했고, 이 때 영조는 “동궁의 이 말은 진실하니 내 마음이 기쁘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이 실제로 영조가 진실로 대답한 것을 기뻐하기보다는 걱정을 한 것이 더 크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후 영조가 사도세자의 공부에 더욱 신경을 쓰고 강력하게 통제했으며, 무인의 기질이 강했던 사도세자에게 이것은 족쇄로 자리 잡았을 것이라는 김범 연구사의 연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사건이 있은 지 1년이 지난 뒤 영조는 사도세자의 기가 너무 세다는 것을 강하게 질책한다. 박시백의 글에 따르면,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중국의 한 문제와 무제 중 누가 더 훌륭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고, 세자가 문제라고 대답하자 영조는 세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도세자가 지은 시를 인용하면서 기가 너무 세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이렇게 갈라지기 시작한 부자 관계는 결국 개인적 질병과 정치와 맞물리면서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사태에 이르게 된다.(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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