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힙합 언더그라운드 1세대 래퍼 UMC/UW

   
 

【투데이신문 임이랑 기자】최근 한 케이블에서 방영된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로 한국 힙합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화려한 무대 위에서 랩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드러내는 랩퍼의 모습에 연령을 불문하고 많은 이들이 열광하고 있다. 

이제 힙합이라는 장르는 한국 음악의 ‘대세’가 됐다. 하지만 일부 뮤지션들은 대중에게 더욱 어필하고 인기를 끌기 위해 여성 비하나 선정적 가사를 선보여 힙합음악의 인기에 찬물을 끼얹기도 한다. 이에 힙합계 내부적으로 자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언더그라운드 중심으로 활동해온 힙합 1세대들은 지금과 같은 힙합 열풍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대표적인 힙합 1세대 뮤지션으로 정치·사회 문제를 통렬히 비판한 랩으로 마니아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UMC/UW는 “지금의 한국 힙합은 일베의 스피커로 전락했다”고 지적한다.

정신적 토양이 척박한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힙합은 온라인에 기반한 대중음악 장르 중 하나가 됐다고 UMC/UW는 분석한다.

25년간 힙합 음악을 하며 3장의 앨범의 낸 그는 현재 한국 힙합은 어려운 시기가 아니며 오히려 10대들의 힙합에 대한 소비가 힙합 뮤지션들의 기본 소득이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투데이신문>은 현재 XSFM이라는 팟캐스트 회사의 사장이자 시사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를 진행하며 랩퍼로서 잠시 휴식기를 갖고 있는 UMC/UW를 만나 최근 근황과 그의 음악 세계, 한국 힙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UMC/UW, 그리고 한국힙합 

Q. 우선 UMC/UW의 근황에 대해 궁금해하는 팬들이 많다. 최근 근황을 좀 알려 달라.

: 주변에 반 농담으로 음악을 접었다고 말하고 다니면서 대안미디어인 팟캐스트와 관련된 사업을 하고 있다. 평소 관심을 갖고 있던 차에 시작했는데 이미 이곳에 몸을 담고 있는 주변 사람들이 ‘여기는 레드오션(Red Ocean)이다’, ‘힘들다’라며 만류했다. 막상 팟캐스트 사업을 시작해보니 일이 너무 많다. 지금은 정말 찢어지게 바쁘다. 

Q. UMC/UW는 힙합언더그라운드 1세대다. 어렸을 적부터 힙합 뮤지션이 꿈이었나.

: 그렇다. 나와 잘 맞을 것이라 생각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랩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왜? 남들이 아무도 안하니까. 그때 당시 잘나가던 가수들은 락밴드였는데 남들이 다하는 거 하면 시시하지 않나. 그래서 아무도 안하는 힙합을 택했다.

Q.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랩을 했다면 약 25년간 힙합에 빠져있었던 건데, 25년 음악생활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 실패다.(웃음)

Q. 왜 실패로 보는가.

: 결과가 그렇다. 결과가 여러모로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UMC/UW는 음악시장 내에서도 다른 래퍼들과는 달리 정치적인 퍼포먼스를 한다는 의미가 부여된 뮤지션이었다. 그런 점에서 UMC/UW는 새로운 부분을 개척해야 했다. 새로운 부분을 개척해 다른 뮤지션들에게 많은 영향을 줬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으니 실패한 것이다. 나는 UMC/UW의 커리어를 그렇게 보고 있다.

Q. 대세 중 대세인 힙합이란 무엇인가.

: 사실 힙합은 미국 뉴욕의 가난한 할렘가에 사는 흑인이나 히스패닉계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표현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한마디로 저항과 애환이 담겨 있는 하나의 장르인데 예술사를 보면 힙합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는 예술과 문화는 항상 있었다. 힙합의 시작이 사실상 미국이기 때문에 미국에서 힙합은 인권운동의 산물이었고 무장투쟁의 자식이기도 했다. 여기에 커뮤니티가 필요한 사회적 소수자들의 안식처가 바로 힙합이었다.

Q. 그렇다면 한국 힙합과 미국 힙합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 미국에서는 문화장르가 문화적, 시대적인 필요성에 의해 나타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미국에 이러한 장르가 있으니 이제 수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허세 쩌는 친구들에 의해 수입이 됐다. 이건 힙합뿐만이 아니라 모든 장르가 다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한국 힙합은 한국사회 전체의 열패감이 가장 잘 녹아 있다. 문제는 어디에 분노해야 하는지 왜 분노해야 하는지 누구에게 분노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상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 힙합을 실질적으로 수입해 왔던 90년대 아이들은 그냥 찌질이들이었다. 인종차별을 당해보지도 않았고 밖에 나가 무장투쟁을 하지도 않았다. 여기에 좋지 않은 생활환경에서 목숨을 걸고 살아보지도 않았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통용되고 있는 힙합의 정형은 1990년대 말 PC통신 찌질이들이 만들어놨다. PC통신에 의해 수입된 힙합은 현재 인터넷 영향을 그대로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대한민국 힙합은 일베의 스피커이며, 미국 힙합과 달리 온라인의 승리라고 볼 수 있다.

Q. 한국 힙합과 온라인과의 관계에 대해 더 설명해 달라.

: 사실 온라인의 분위기는 진보적인 것 같지만 더 큰 그림자는 지금 대한민국 힙합의 주요 고객인 남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열패감을 어떻게 표현하느냐는 거다. 그래서 21세기 대한민국 힙합의 얼굴은 일베의 얼굴이다. 왜냐하면 남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 토양은 그것밖에 없으니까. 나를 주먹으로 때릴 수 있는 사람에게만 충성하고 그 외에 것들에게는 스웨거(Swagger·허세 가득한 몸짓으로 음악을 하는 멋쟁이라는 뜻의 신조어)를 날린다.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다. 음, 나쁘다는 건 아니고 그렇다는 거다.

Q. 한국에서 힙합이라는 장르가 어떻게 발전해 나갈 것으로 보는가. 

: 한국 기자들이 참 촌스럽고 멍청한 게 장르를 자꾸 주인공으로 내세우려한다. 장르는 날씨로 따지면 태풍이나 기압골 같은 거다. 언젠가는 지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도 장르가 날씨와 다른 점이 있다면 오래 머물기도 하고 유행이 지났다가 다시 유행이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장르라는 게 생겨나면 장르는 인간 문화의 배경이 된다. 즉 하나의 고전이 된다는 의미다. 그리고 한국 힙합은 다른 대중음악에 비해 늘 관심을 가져주는 중고생이 있다. 10대들이 힙합 뮤지션들에게 기본 소득이 돼줬다. 다른 대중음악은 거품이 많이 빠졌기에 이름 알리기 힘들다고 울부짖지만 힙합을 하는 친구들은 그에 비하면 훨씬 유리하다. 음반을 안 내고 있고 활동을 안 하고 있는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조심스럽지만 힙합지금보다 더 굶어야한다. 너무 욕심 많은 이들의 돈이 힙합 장르에 들어와 있다고 생각한다. 거의 20년째 청소년들을 사로잡고 있으니까.

Q.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쇼미더머니>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나. 만약 출연제의가 들어온다면 출연할 의사가 있나.
: 시장을 위한 서로의 쇼(Show)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거다. 각자가 필요한 역할에서 춤을 추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내 아내는 <쇼미더머니>를 꼬박꼬박 챙겨본다. 하지만 난 제대로 본 적이 없다. 더군다나 금요일에 재밌는 게 얼마나 많이 하는데. 아무튼 나는 나가면 안 될 것 같다. 우선 방송에 나갈 생각도 없거니와 청운의 꿈을 안고 <쇼미더머니>에 참가한 참여자들과 젊은 심사위원들의 마음에 대못을 박아가며 출연하고 싶지는 않다. 실력 있고 젊은 래퍼들이 출연해야 한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Q. <쇼미더머니>와 같은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으면 뮤지션 이름 한 줄 알리기도 힘든 구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 의견을 두고 싶지 않을 정도로 한국에선 워낙 당연한 문화다. 국가전체가 중앙미디어에 엄청난 힘을 실어주고 있다. 힙합 가수들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의 가수들도 마찬가지로 이제 TV에 출연하지 않고는 이름을 알리기 힘들다. 그렇기에 <쇼미더머니>와 같은 프로그램이 한국에선 최선이다. 다른 답이 없다.

   
 

힙합계의 스토리텔러(storyteller) 

Q. 음악을 할 때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었을 것 같다. 언제 가장 음악하기 힘들었는가.

: 지금이다(웃음). 지금 내 생활은 너무 바쁘고 집에 돈을 벌어다 줘야 한다. 그리고 음악은 늘 포기하고 싶었다. 사실 음악은 ‘비용 대비 보람’이다. 둘은 반비례할 가능성이 높다.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돈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보람을 찾을 것인지. 음악은 한국에서 이 두 가지 모두를 충족해 주지 못할 확률이 높다. 즉, 직업으로서 보람을 느끼기도 힘들고 돈도 못 번다. 열심히 활동할 당시에도 음악하기 참 잘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Q. 만약 자신이 음악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었을 것 같나.

: 그나마 가능성이 높은 것을 꼽자면 직업군인일 것 같다. 특전사에서 복무하면서 어떠한 일을 하든 나와 생리가 맞아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 점에서 군대는 나와 잘 맞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직업은 보람이 없다. 군인도 마찬가지겠지만 다만 위계가 정해져있기 때문에 오히려 위계가 없다. 정해진 위계만 잘 지켜주면 은근히 막역하다. 이러한 점이 마음에 들었고 바깥세상보다 좀 착한 사람들이 많다고 해야 하나? 그렇기에 힙합을 하지 않았다면 직업군인이 됐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 같고 그 외에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이름 팔아먹으려고 하는 직업은 안 했을 것 같다.

Q. 가사가 대개 서사적인 느낌이 있다. 국문과 출신이라서 그런가. 음유시인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 팟캐스트를 통해 내 국문과 시절에 대한 말을 여러 번 했다. 평점 2.4다. 그렇기 때문에 국문학에 대해선 아는 게 없다고 보면 된다. 국문과에 진학한 이유는 사실 내가 10대이던 시절 PC통신에서 음악 하는 사람들이 만든 가사를 보면 토가 나오게 유치했다. 나는 그 유치한 가사가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대중장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대중문화의 특성을 제대로 못 본 것이다. 아무리 유치한 음악이고 가사라 할지라도 자본의 힘이나 미디어의 힘을 통해 밀어주면 대세가 된다. 그게 지금의 한국 힙합이라고 보고 있다. 한국말도 아니고 한국의 정서도 아니고 그냥 마이크를 잡고 흔들어대고 싶어서 하는 게 현재 한국의 힙합이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봐야 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여성 비하와 패륜랩과 같은 일베 정서라도 힙합에 붙어있다. 이렇게 된다면 힙합이 가지는 강점은 가사가 많다는 것밖에 없다. 가사가 많으니 산문문학이 된다는 가능성을 빼고 우리나라에서 힙합의 ‘긍정적인 특색은 없겠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Q. 그동안 사회비판적인 음악을 많이 선보였다. 때문에 대중성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이는데.

: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남자다. 당연히 한국에 살면서 보이는 사회적 혹은 개인적인 문제들을 노래하려 했다. 그리고 뮤지션은 자기 자신을 반영하는 가사를 어느 정도 써야 한다. 그 가사가 사실이 아닐지라도 자신의 마인드를 반영해야 한다. 여기에 사회현상까지 반영해주면 좋은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랑 노래를 하지 않았다.

Q. 혹시 최근 발생한 사건 중에 곡으로 써보고 싶은 게 있는지. 아니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회 혹은 정치적 이슈가 있나.

: 없다. 많은 분들이 내가 음악에 사회적 반응을 음악에 담는 뮤지션으로 기억하고 있을 텐데 사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음악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런 점은 뮤지션으로 많이 게을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현재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신문에 나오는 문제들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그래서 요즘은 뉴스를 보면 피곤해지는 직업병이 생겼다(웃음). 

Q. 과소평가된 뮤지션이라는 평가가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TV출연 등 활발한 활동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 과소평가 됐다는 말도 맞겠지만 반대로 과대평가된 뮤지션이라는 말도 맞는 것 같다. 그리고 예전부터 TV출연은 욕심이 없었다. 매일 아침마다 거울로 내 얼굴을 보는데(웃음). 내가 20대 초반일 때 유명세는 인간의 삶에 좋은 영향을 끼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랩을 하고 무대에 서고 어떤 음악을 하고 싶다는 것은 분명했지만 유명해져서 무엇을 하고 싶다는 건 분명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명세라는 것을 독으로 여겼다. 왜냐하면 엄청난 유명세를 받을 준비가 안 돼 있었다. 연예인으로서 재능이 있다고 스스로 오해했다면 모르겠지만 그냥 최소한도로만 유명해지고 싶었다.

Q. 자신의 음악과 관련해 악플도 많이 봤을 텐데.

: 안티의 숫자는 곧 팬의 숫자를 증명하기 때문에 좋은 일이다. 그리고 나에겐 악플이 인생에 큰 도움이 됐다. 그렇다고 악플을 단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의미는 아니다. 길 가다 만나면 가만 두지 않을 거다(웃음). 그런데 어떤 일을 해도 버틸 힘을 준 것은 맞다. 악플을 단다는 것은 나쁜 일이라 누구한테도 권유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 나이 먹고 이런저런 다른 일 해가면서 살아가는 나에겐 이상하지만 자양분이 됐다.

Q. 힙합 가수들끼리 서로 디스(Diss)전을 펼치기도 한다. 디스를 하고 싶은 뮤지션이나 인물이 있나.

: 누구 이야기를 해볼까(웃음). 새정치민주연합에도 많고, 새누리당에도 많다. 랩을 안 한 지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서. 그리고 지금은 내 눈앞에서 래퍼가 멀어진 지 오래다. 그래서 과거 누구와 음악적으로 싸운 적이 있으면 무엇으로 싸웠는지 기억도 안 난다. 안타깝지만 지금은 음악시장에서 디스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Q. 박진영은 40살이 넘었지만 아직도 댄스가수를 하고 있는데 UMC/UW도 40살, 50살이 될 때까지 힙합을 할 수 있을까.

: 박진영씨처럼 오랫동안 댄스가수를 하고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내가 힙합가수에서 팟캐스트 회사 사장님이 될 거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일을 하면 일에 대한 비전은 있지만 어떻게 될 것이라는 예측은 하지 못한다. 예측을 한다는 것은 예언의 범주에 속하기 때문이다. 내가 세운 팟캐스트 회사도 이제 막 시작한 회사다. 하지만 어떤 회사든 많은 노력을 하지 않고서는 성과가 짠하고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열심히 살아간다는 기분으로 현재 일에 충실하고 싶다.

Q. 새 앨범이 언제쯤 나오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어떤 콘셉트인지 귀띔해줄 수 있나.

: 당분간은 계획이 없다. 당분간이다. 그리고 나는 앨범 홍보에 목을 걸고 열심히 한 적이 없다. 앨범 활동을 할 때에도 항상 나의 상황은 제로라고 생각했다. 이 말이 무조건 내 앨범이 잘될 거라는 의미가 아니라 망하나 잘되나 별 대단한일 없을 것이라는 의미다. 여기에 나한테 투자를 많이 하는 기획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직 스스로 젊다고 생각하니까. 음악은 한 달에 한번쯤 생각은 한다. 그런데 자고 일어나면 오늘의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아직까진 계획이 없다.

Q. 본인의 수많은 곡 중에서 추천해 주고 싶은 곡이 있다면 <투데이신문> 독자들을 위해 추천해달라.

: 이런 질문이 가장 어렵다. 내가 가장 잘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곡이 3집 앨범에 수록된 <사랑은 재방송>이다. 라임이 가장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나는 음악작업을 할 때 라임이 아예 마음에 들지 않으면 원칙부터 돌아간다. ‘라임을 쓰려다 스토리가 다 망가지는 거 아닌가. 내 음악을 듣는 사람들한테 전달할 건 다 전달했나’ 하면서 처음부터 다시 쓴다. 그런데 <사랑의 재방송>은 가사 쓰는데 5분도 안 걸렸던 것 같다. 만들어 놓고 음악적으로 가장 후회하지 않았던 틀! <사랑은 재방송>.

힙합가수에서 시사 팟캐스트 진행자로

Q. 어떻게 힙합 가수에서 팟캐스트 진행자로 활동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 앨범 활동을 하면서도 팟캐스트를 자주 들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나도 팟캐스트 방송국 하나를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포맷을 만들어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수익구조를 내보고, 그래서 버스비도 벌고 기름 값도 벌면서 ‘다음 앨범이나 준비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그때가 2012년이다. 당시에는 팟캐스트가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자리가 이곳에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재밌는 팟캐스트 방송을 만들고 내 방송에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 정도로만 시작하게 됐다.그런데 지금은 팟캐스트의 인기가 좋으니 회사, 방송사, 언론사 등 모두 팟캐스트를 하려고 하지 않나.

Q. 그렇다면 <그것은 알기 싫다>를 진행해 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주제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 나와 함께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멤버들은 다 똑같이 이야기 할 거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지난 2014년 6월에 있었던 지방선거 관련 방송이었다. 멤버 세 사람이 한 달 동안 21회를 제작했다. 전국의 기초단체장을 모두 다뤘다. 이 아이템은 2012년 19대 총선이 끝난 직후부터 생각했던 아이템이었다. 방송을 제작하기 전 청취자들에게도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의 정보가 필요하겠지만 ‘내가 재미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사무실도 없었다. 그때 정말 잠자는 시간 빼고 계속 편집하고 취재하고 녹음하고를 반복했다. 너무 바빠서 밥을 물고 일했던 기억이 난다. 21회를 제작했지만 사실 실적은 어느 정도 나왔는지 아직까지 모른다. 실적을 알아보는 체계적인 시스템도 없다(웃음). 개인적으로 내년에 총선이 있지만 총선 기간이 왔으면 좋겠다(웃음).

Q. 시사 팟캐스트를 진행하다보니 정치적인 문제도 다룰 텐데 그렇다면 진보인가 보수인가.

: 한국에서 말이 많으면 좌빨이다. 그런데 이러한 논리는 성립하기 어렵다. 말 많은 게 탤런트인데. 난 내가 탤런트라는 것을 이용해서 일을 하는 것 밖에 없다. 내가 좌빨로 보인다면 저들이 나를 두려워하는 거다.

Q. <그것은 알기 싫다>의 앞으로의 방향은.

: 미디어를 소비하는 대중이 시사프로그램을 접하지 않는 이유는 피곤해서다. 그렇기 때문에 시사를 생활정보처럼 들을 수 있는 방송으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어떠한 일이 생겨도 놀라지 않는 대중을 만들고 싶다. 쉽게 말해 어떤 이야기나 소식에도 쉽게 긴장을 하거나 휘둘리지 않는 대중을 만들고 싶다. 여기에 도와 달라 부르짖지 않는 방송, 겁주지 않는 방송, 유명한 사람 이름 안 팔아도 살아남는 방송을 만들고 싶다.

Q. 마지막으로 덧붙일 얘기가 있다면.

: 내 주변에 사업을 오래한 친구가 있는데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경영자는 어디를 가야겠다고 생각하면 가는 길에 몰려드는 파도를 견뎌야 한다고. 계속 안 넘어지고 가는 게 중요하다. 우리 회사 같은 신생업체는 오래가든지 금방 망하든지 둘 중 하나다. 파도가 어디로 오는지 모르기 때문에.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했던 고민인 우리 회사가 어떤 이미지를 남기고 어떤 영향력을 미치고 싶었는지를 절대 잊어버리면 안 된다. 그 고민과 마음이 바뀌는 순간 회사 운영은 재미없어진다. 그래서 나는 기존의 모든 언론들이 하지 않는 콘텐츠를 계속 던져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그리고 현재는 음악보다 팟캐스트 방송에 좀 더 집중하고 싶다. 그러다 망하면 망하는 게 목표다. 큰 손해 안 내고. 솔직히 말해 앞으로의 계획은 우리 회사가 노란우산 공제에 들어가는 거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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