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지식인의 공개적 자위행위
[칼럼] 지식인의 공개적 자위행위
  • 김재욱 칼럼니스트
  • 승인 2015.09.21 18: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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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욱 칼럼니스트
▸저서 <삼국지인물전>, <역사, 어제이면서 오늘이다> 외 4권

【투데이신문 김재욱 칼럼니스트】중국고전에 정통하거나, 여전히 유가(儒家)를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는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를 읽어서는 안 될 책이라고 하면서 비난하는 이들이 무척 많다. 이들과 같은 학자에게 영향을 받은 일반인들도 비난의 대열에 합류하기도 한다. 그 안에 살육과 권모술수가 난무하여 사람의 정서를 해친다고 말하며, 소설 속 이야기를 진실로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삼고초려? 그거 거짓말이야. 너희들 그게 사실인 줄 알았지? 그거 다 소설이야.”

소설 삼국지와 정사 삼국지의 차이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안다. 삼고초려는 나관중이 재미있게 꾸며낸 이야기가 맞다. 정사 「유비전(선주전)」 에 이렇게 나온다.

“제갈공명을 몇 번 찾아가서 부하로 삼았다”

그리고 제갈공명이 쓴 「출사표」엔

“남양 땅에서 농사나 짓고 있는 저를 세 번이나 찾아주시고……” 라고 한 줄 나오는 걸, 나관중이 대단한 일로 꾸며 놓았다. 어디 그 뿐인가. 삼국지에 나오는 일화는 대부분 꾸며낸 이야기다. 삼국지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이런 정도의 사실은 다 알고 읽는다. 또한 삼국지는 ‘정사로서 알아야 할 역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는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삼국지를 읽어서는 안 될 책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역시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기는 하다. 그렇다면 비난을 멈춰야 하는데 왜 끊임없이 ‘그런 책 읽지 마라’고 하는 것일까. 이른바 ‘지식인’ 또는 ‘학자’를 자처하는 아주 많은 사람들 중엔 오만무례하고 인간이 덜 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삼국지? 참 재미있다. 재미있으니까 읽고, 사람에 따라서 그 이야기를 처세에 활용하기도 하고, 내면을 들여다보는데 쓰기도 한다. 삼국지와 내면에 뭔 상관이 있느냐고? 소설일망정, 그리고 권모술수와 살육이 들어 있다 하더라도 그 내용을 통해 ‘나는 어떤 사람인가’, ‘무슨 마음을 먹으며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할 수 있다. 나아가 현재 이 사회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한다. 세상을 사는 데 필요한 지식과 지혜는 권위를 인정받는 ‘철학서’나 ‘경전’에만 있다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매우 잘못된 것이다.

자기네들이 최고라며 자부심을 가지는 것 까지는 좋다. 그런데 일반인들이 전문가 대접을 하며 떠받들어 주니 자부심이 넘쳐흐른 나머지 일반인을 계몽의 대상으로 삼는 무례한 짓도 서슴지 않는다. 만인이 좋아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옳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반드시 그르다고 해선 안 된다. 지식의 심천을 막론하고 사람과 사람사이에서는 해선 안 될 말, 보이지 말아야 할 태도가 있는 것이다. ‘이런 책 보지 마라’는 말은 함부로 내 뱉어선 안 될 말이다. 그처럼 남들의 머리 위에 올라앉아서 침을 튀기며 가르칠 시간에, ‘삼국지 때문에 이 사회가 타락했는가. 타락한 사회가 삼국지를 만들어 냈는가’를 생각해 보는 게 나을 것이다. 아울러 ‘나는 내면 수양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를 진지하게 숙고해야 하겠다.

더욱 가소로운 건 자신들은 삼국지의 내용을 다 꿰고 있으면서 남들한테는 ‘보지 말라’, ‘봐선 안 된다’고 하는 태도다. 그러니까 ‘내가 보니까 이거 별로다. 너희들을 위해서 충고하는데 보지 마라’고 하는 것인데, 이 얼마나 오만무례한 태도인가. ‘내가 보기엔 좋지 않았다’고 말하려 하더라도 우선 상대의 심중을 살펴야 하는 것이 ‘사람’의 태도일 것인데, 재미있게 읽고 있는 사람한테 ‘그거 읽지 마라. 사람 버린다.’고 한다. 지식인이라고 해서 호오의 판단까지 모두 옳을 것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부류를 요즘 말로 ‘꼰대’라고 한다.

공부 좀 했다는 사람들이 자주 범하는 잘못은 자신 이외의 모두를 계몽의 대상으로 보고 말하거나 글을 쓰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공부한 건 벼슬이 아니다. 자신의 분야에 정통하다고 해서 남들한테 자신의 분야 이외의 것까지 가르치려 들면 안 된다. 자신들은 그것을 ‘소통’이라고 하겠지만, 일반인이 보기엔 ‘공개적으로 하는 자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반드시 상스런 욕을 해야 욕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권위적인 태도야 말로 욕보다 더 사람을 해치고 세상을 병들게 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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