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학자 이희진

【투데이신문 이희진 칼럼니스트】풍납토성 관련 문제가 중요하기는 한 모양이다. 대한민국의 주요 현안을 다룬다는 국정감사에까지 등장했으니 말이다. 이 자체야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한번 시작했다 하면 기본적으로 몇 조의 예산이 투입되어야 하는데다가, 수만 명 주민들의 생존권 문제가 걸려 있는 사안이다. 그러니 국민의 생활을 살펴야 하는 국회의원이 국정감사장에서 이런 문제를 거론하는 사실 자체는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렇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 국정감사장에서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라는 사람에게서 이해가 가지 않는 발언이 나왔다는 보도가 있었다. 모 지역 신문에 보도된, 10월 7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종합감사 중에 있었다는 질의 응답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 자리에서 새누리당 박인숙 의원이 나선화 문화재청장에게 ‘근거 없는 책동으로 왕궁터가 아니라고 유언비어를 확산하는 측에, 문화재청에서 확실하게 대처’하라는 주문을 했다 한다. 이에 대해 나선화 문화재청장은 ‘풍납토성은 왕성’이라는 소신(?)을 밝혔다 하고.

박인숙 의원 말대로라면 졸지에 ‘유언비어를 퍼뜨려 근거 없는 책동’을 한 당사자가 된 필자로서는 황당할 뿐이다. 박인숙 의원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발언을 했는지는 몰라도,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풍납토성이 한성백제의 왕성이었느냐 아니냐는 문제는 본질적으로 학술적인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 물론 학술적인 문제를 가지고 선동의 도구로 이용하는 사람이나 집단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이를 필자에게 적용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박 의원 같은 사람들은 믿고 싶어 하지 않겠지만, 고 강찬석 선생과 필자가 문제를 제기했던 책이 ‘책동’과 아무 상관없었다는 정황은 분명히 드러나니까.

확인하기가 어렵지도 않다. 풍납토성은 한성백제의 왕성이 아니었다고 주장한 우리의 책 ‘잃어버린 백제 첫 도읍지’의 출간은 2009년에 이뤄졌다. 필자는 몰라도, 풍납토성 발굴 초기부터 이 문제를 조사해왔던 공저자 강선생은 풍납동 주민들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풍납동 주민들은 이 책의 존재 자체도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필자가 풍납동 주민들에게 연락 받은 시기도 몇 달 전, 주민대표로부터 풍납토성 관련 심포지움을 기획하고 있으니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나서부터였다. 박 의원 말대로 주민들을 선동하기 위해 이런 주장을 폈다면, 책을 출간하고도 5년이 넘도록 주민대표와 접촉을 하지 않았을 리 없다. 이 정도면 적어도 강 선생과 필자가 풍납동 주민들을 선동하기 위한 주장을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 질 것이다. 현재의 협력도, 핍박받는 사람들끼리의 협력이라는 동병상련 차원 이상의 것은 아니다. 필자가 안 그래도 쪼들리는 주민들에게서 대단한 이권이나 얻어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이에 비해 풍납토성을 왕성으로 만들기 위해 벌인 행각은 대비가 된다. 당장 며칠 전만 해도 학자라는 사람들이 반대 의견 가진 측을 철저하게 배제해놓고 자기들끼리 마음대로 결론을 내려놓았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렇게 내려놓은 결론을 바탕으로, 내막도 모르는 국회의원으로 하여금 국정감사를 하는 자리에서 상대를 매도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비록 지역신문이기는 하지만, 언론에서 그 내용을 보도했다. 이들은 전문학술단체 뿐 아니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산하 기관이 막대한 지원에, 국회의원까지 동원하고 있는 셈이다. 도대체 어느 쪽이 ‘책동’을 하고 있는 것일까?

‘책동’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측면에서라면, 풍납토성을 왕성이라고 몰아가는 쪽의 전통이 훨씬 깊을 것이다. 그 점에 대해서는 고 강찬석 선생과 공저로 책을 집필하기 위해 자료를 받아든 필자가 경악했을 정도로, 심각한 경우도 있었다. 풍납토성에 대한 현재의 인식을 굳히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김모 기자의 경우였다. 그의 저서 『풍납토성, 500년 백제를 깨우다』는 풍납토성이 한성백제왕성이라는 인식을 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해도 볼 수 있다. 물론 당사자는 이 책을 바탕으로 언론계는 물론, 학계에서까지 자기 위상을 굳혔다. 이후 학자들보다 더 훌륭한 한성백제왕성 전문가로 대우를 받았으니까.

그런데 그 책의 근거 대부분이 바로 강 선생이 발굴한 자료를 이용한 것이었다. 즉 왕성이 아니라는 증거들을 이용해 왕성이라는 논지의 책을 만들어 발표했다는 뜻이다. 당연히 근거 대부분에 대해 이런 저런 조작과 왜곡을 자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행각은 설사 나중에 풍납토성이 왕성이라는 결론이 난다 하더라도, 용서받을 수 없는 학문적 만행이다. 이렇게 까지해서 풍납토성을 한성백제왕성으로 만들어 간 것이다. 필자 역시 강 선생을 만나기 전까지는 김 기자의 책을 매우 훌륭한 저서로 생각하고 있었으니,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아직도 속고 있을 수밖에 없다.

지난 5일 있었던 학술대회에서도 마찬가지다. 하긴 반대 증거를 자기 쪽 논리로 바꿔 풍납토성을 왕성으로 몰아간 김 기자 역시 여기에 참여했다. 이 학술대회가 열리기 이전부터도, 필자는 반대 의견을 가진 측을 철저하게 배제한 여기서의 결론이 어떨 것이라는 점을 예언한 바 있다. 아니나 다를까, 현장에서 지켜본 이 학술대회의 진행은 국회에서의 날치기 통과조차도 점잖게 느껴질 정도의 분위기였다. 명색이 7개 전문학회가 참여한 학술대회라는 곳에서, 제대로 된 반대쪽 연구자가 있다면 그 자리에서 드러날 거짓말을 근거로 들이댄 경우가 내용의 반 이상이 되는 것 같다. 그런 내용을 이용해서 반대 의견을 매도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여기서는 지면의 제한을 고려해 한 가지 지적하고 싶다. 김 기자와는 달리 강 선생의 자료를 이용해 같은 결론을 내렸다 하더라도, 그 자료를 악용해 황당한 주장을 내놓는 경우도 있다. 진짜 하남위례성의 위치를 단정하고, 그 지역에서 백제 유적이 발견됐다는 식의 주장이 그것이다. 물론 대부분은 사실과 다르다. 지목된 현재의 하남시 지역에서는 제대로 된 발굴이 있어본 적이 거의 없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 대해서, 강 선생은 물론 필자 역시 거리를 두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이날 학술대회에서 바로 이들에 대한 비판이 많이 쏟아졌다. 그래놓고 분명히 차원이 다른 주장을 폈던 우리를, 이들과 같은 주장을 편 것처럼 슬쩍 섞어 넣는 수법을 썼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하지도 않은 주장, 특히 한성백제왕성의 위치를 어디라고 단정하고 거기서 백제 유적이 발견되었다는 주장을 한 것처럼 몰아갔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그 거짓말들에 대해서 밝혀 나아가기로 하겠지만, 벌써부터 그런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학문적인 차원에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행각을 벌여 상대를 매도해놓았으니, 앞으로도 이들이 제대로 된 검증을 시도하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상대의 입을 막는 데에 더 주력하겠지만.

풍납토성이 왕성이냐 아니냐는 문제가 기본적으로 학술적인 문제이나, 현실적으로 몇 조 이상의 자금이 투입돼야 할 현안과 연결돼 있기도 하다. 따라서 풍납토성 발굴이 시행착오가 되면 대한민국 사회가 치러야 할 희생은 만만치 않다. 그러니 섣부른 결정을 하기 전에 신중하게 검증할 필요가 있다. 시행착오로 인한 피해에 비해 검증 비용은 그야말로 ‘껌값’에 불과하니까. 그러니 양쪽이 자신의 학문적인 생명을 걸고 제대로 된 검증을 하게 만들 필요는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개나 되는 학술단체에서는 이를 세력 과시와 정치인을 동원한 매도로 해결한다. 점잖은 척하는 학자들이 그야말로 ‘책동’을 해대는 이 사태를 뒤집어 보면 그야말로 섬뜩한 이면이 보일 것이다. 이런 사태를 단순한 오만과 편견, 아집 때문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뭔가 이래야 할 만한 이권이 걸려 있지 않은 바에야 이렇게까지 할 리는 없다. 사실 발굴비용에 대한 고고학계의 집착을 감안하면, 그 이권이 어떤 것인지 짐작하기 어렵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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