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이희진 칼럼니스트】며칠 전 2015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즈를 관람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바둑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별 감흥이 없겠지만, 바둑 애호가들에게는 평소 범접하기 어려운 프로기사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만도 가슴 설레는 경험이다. 그동안 주로 사회의 어두운 측면을 주로 거론해왔던 필자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그럴 만큼 애호가들은 바둑이라는 게임, 그리고 그 바둑에 최고 수준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프로 바둑기사들에 대해 경외심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는, 그래봐야 잡기(雜技)에 불과한 바둑에 경외심까지 가질 필요가 있겠느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사회기강을 잡기 위해 잡기를 금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실학자도 바둑만큼의 예외로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럴 만큼 바둑은 잡기 이상의 품격이 있다. 그 품격은 바둑이 세상의 오묘한 이치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나올 것이다.

사실 바둑만큼 규칙이 단순한 게임도 드물다. 그저 마주 앉은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며 바둑판 위에 돌을 올려두기만 하면 된다. 그 단순한 규칙에서, 수천 년 동안 연구해도 ‘정답’찾아낼 수 없는 변화가 나오는 것이 바둑의 원리다. 얼마 전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미생’을 들지 않더라도, 바둑의 원리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인용된다. 물론 일상사에 오르내리는 다른 분야의 원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바둑만큼 명료하게 오묘한 원리를 보여주는 분야는 드물다. 그리고 그 오묘함은 얄팍한 상식의 범주를 뛰어넘는다.

예를 들어 바둑 초보자에게 강조하는 원칙 중 하나가 ‘빈삼각은 두지 마라’는 것이다. 그렇게 가르쳐놓고 세계대회 같은 데에서 빈삼각이 나오면 ‘역시 고수가 되려면 빈삼각을 둘 줄 알아야 한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얄팍한 상식에만 비추어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바로 이런 것이 바둑의 묘미다.

이런 원리가 심장을 울릴 만큼, 세상은 단순한 합리성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 차 있다. 살아가면서 느끼는 혼란도, 따지고 보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단순한 잣대로만 세상을 보려 하는 데에서 나온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단순 논리 이상의 것을 추구하며, 그래서 앞뒤가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논리가 새로운 차원을 보여줄 수 있다는 ‘이율배반’같은 개념을 수용하는 것이 동양철학의 특징이다. 이런 원리를 담아낸 게임이 바둑 말고 또 있을까?

이를 수용하지 못하는 사고방식은 점차 한계를 드러낸다. 근대적 합리성의 총아로 지목되는 것이 컴퓨터다. 정해진 논리로 처리하는 일에는 빠를 뿐만 아니라, 실수 없는 정확성을 자랑하다는 현대 기술의 총아가 바로 이것이다. 세상이 단순하다면 이런 컴퓨터가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 아니라는 말은 꺼내기도 민망할 것이고.

서양 사람들이 바둑에 약한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단순한 합리성으로 생각하는 풍조에 젖은 사람들이, 이율배반 같은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게 극복할 수 있는 장벽을 아닐 테니까. 필자가 아는 분의 남편이 아마추어 고수였는데, 프린스턴 대학에 초빙되어 갔을 때의 경험을 들은 적이 있다. 이 학교 수학과 학생들이, 바둑의 원리를 연구해서 이 분을 이겨보겠다고 달려들었다가 결국 포기했다고 한다.

바로 이렇게 자신이 알고 있는 합리성만으로 세상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 바둑이다. 강력한 슈퍼 컴퓨터도 체스로는 사람을 제압할 수 있지만, 바둑에 있어서는 고수 축에도 끼지 못한다. 그래서 바둑은 알면 알수록 어렵다고 하며, 고수가 될수록 더 깊이 연구를 하게 된다.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이 적용될 장면이다. 조금만 익숙해지면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요즘 게임과는 차원이 다르다.

바둑의 매력은 이 뿐만이 아니다. 그 매력 중 하나가 깔끔한 승부이다. 그렇게 오묘한 원리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승부는 대쪽같이 난다. 그리고 그 승부에는 실력 이상의 것이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다. 비교적 공정하다는 스포츠에서도 편파판정 문제가 끊이지 않으며, 실제로 심판의 농간에 의해 승부가 갈리는 일도 흔하다. 하물며 현실에서는 말 같지도 않은 억지와 우격다짐을 통해 승리를 얻는 일도 많다.

동네에서 장난처럼 두는 바둑이라면 몰라도, 프로바둑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세상의 험한 꼴을 보다가 바둑의 승부를 대하면 마음의 위안까지 얻게 된다. 이번에 삼성화재배를 구경하면서도 확실하게 느꼈다. 닫힌 문의 유리창을 통해서 대국장을 들여다보거나, 강당 무대 위의 대국자를 먼발치에서 쳐다보는 것만 해도 실례로 느껴질 만큼 대국장의 분위기는 경건하다.

그래서 결과에 깔끔하게 승복할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때 상당한 괴로움을 느끼고, 이 때문에 이를 피하려 온갖 추접스러운 짓도 한다. 하지만 바둑의 승부를 두고는 이런 일반적인 감정조차 극복해야 한다. 남의 승부를 연구하거나, 승부가 끝나고 나서 승패의 원인을 찾는 데까지도 패배의 아픔과 격의를 따지지 않는 진지함이 넘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정정당당하고 깨끗한 승부를 가르치는 데에도, 바둑이 훌륭한 역할을 할 것 같다.

그럼에도 최근에는 바둑 애호가들이 줄어드는 것 같다. 세태가 변했다는 뜻이 될 것이다. 요즘에는 뭐든 빨리 배워 활용하는 것을 좋아한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해야 하니 당연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이런 풍조의 부작용 역시 만만치 않다. 사실 가면 갈수록 깊이 생각하지 않고 말을 내뱉고 행동으로 옮기는 풍조가 심해지는 것 같다. 뭐든 쉽게 배우고 쉽게 버리는 풍조의 영향도 없지 않을 것이다.

깊이 생각하는 버릇을 기르는 데에는 기본적으로 책을 권한다. 하지만 요즘은 이조차 귀찮다고 온라인 정보에 의존하는 모양이니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면 즐기는 게임이라도 바둑을 배우라고 권하고 싶다. 생각 없이 손부터 나가는 이른바 ‘덜컥수’로 겪는 낭패를 겪으며 신중함을 배우는 데에는 바둑만한 것이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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