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학자 이희진

【투데이신문 이희진 칼럼니스트】며칠 전 전격적으로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는 발표가 나며 전국이 시끄럽다. 그동안 애매한 태도를 취해왔던 교육인적자원부가 갑작스럽게 태도를 바꾼 꼴이라, 나름대로 충격도 없지 않은 것 같다. 이렇게까지 해야 했던 명분은, 기존 교과서 집필진이 ‘왜곡과 과장을 통해 잘못된 역사적 사실을 제시하며 국론을 분열시킨 사태를 바로잡기 위해서’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그래서 우수하고 균형 잡힌 집필진을 선발해, 공정성과 객관성을 갖추고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겠다는 것이다.

교육부 발표내용만 보면 한국사 교과서 편찬에 대한 좋은 말은 모두 동원해놓았고, 그만큼 이상적인 한국사 교과서가 나올 것 같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역사에 기본적인 소양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기가 막혀 코웃음도 안 나올 것 같다. 그만큼 현실성이 없고, 그것 때문에라도 내세워진 명분의 진실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우선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겠다는 목표부터가 그렇다. 이를 그럴듯한 말로 여기는 것 자체가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도 없다는 점을 자백하는 거나 다름없다. 역사가 바로 이를 증명한다. 역사 속에서 이를 내세웠던 집단은 많다. 그런데 그 중 하나라도 진짜 ‘올바른 역사관’이라는 것이 있었다면, 지금까지 이 문제를 고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사실 그동안 제시되어 왔던 ‘올바른 역사관’이라는 것을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야말로 특정 종교나 이념에 기울어 있는 독선적인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더 나아가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올바른 역사’를 팔아먹었다는 손가락질을 받는 것이 고작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동안 역사 속에서 수도 없이 내세워왔던 ‘올바른 역사관’이라는 것이 웃기지도 않는 헛소리였다는 뜻이다. 뒤집어 말하면 ‘올바른 역사관’을 규정하는 것 자체가, 지금까지 성공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고, 그만큼 이는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신의 경지로 여겨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한국사 교과서를 통해 ‘올바른 역사관’을 확립하겠다는 사람들이 신의 경지에 올라 있는 것일까?

이 문제에 앞장서 왔던 한국학중앙연구원 권희영 교수 같은 이들의 행각을 보면 기가 찰 노릇이다. 그가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한답시고 주장해 온 근거라는 것은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지난 16일 밤 방영된 KBS 심야토론에서는 이런 태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그는 이승복 사건 등을 빼놓았다는 이유로 다른 교과서들을 좌편향으로 몰았다. 여러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그런 교과서라고 북한정권을 독재정권이라고 비난하지 않은 것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선정한 사건을 빼놓았으니, 다른 교과서는 좌편향이라는 것이다. 이건 자기만큼 시시콜콜하게 또는 과격하게 북한을 비난하지 않았으니, 비록 북한 정권을 비판했더라도 좌편향이라는 논리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식이라면 권희영 교수 자신까지도 좌편향으로 몰아 버릴 수 있겠다. 누군가 김씨 왕조 정권에 험한 소리 해놓고 ‘나만큼 험하게 비난하지 않았으니, 좌편향에 종북이다’라고 몰면 그만이니까. 이러려면 차라리 김씨 왕조에 대한 욕 경연 대회라도 열어서, 여기 우승자 빼고는 모조리 좌편향이라고 몰아가는 편이 낫겠다. 이게 제정신을 가진 역사학자라는 사람의 입에서 나올만한 내용일까?

이렇게 독선이라는 말도 민망할 정도의 행각이 전국에 방영되는 공영방송의 토론 프로그램에서 당당하게 나온 것이다. 이러고도 역사과 교수 자리 유지하면서 당당하게 얼굴 들고 다니다니, 기득권층 편에 서면 웬만큼 뻔뻔해도 되나보다. 필자 같은 사람들이 방송에서 이런 수준의 말을 했다면 바로 사회적으로 매장 당했을텐데 말이다. 

교과서 국정화를 주장하며 내세운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의 근거 역시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자기네 기관에서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해보았더니, 학생들 대부분이 국정교과서가 좋다고 했단다. 사회적 영향이야 어쨌건 입학시험 편하게 치르는 거 이외에는 관심 없는 고등학생들에게 물어보면, 당연히 헛갈릴 일 없는 국정교과서가 좋다고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찬성 유도하려면 차라리 골치 아프니 역사과목 없애는 게 어떠냐고 물어보는 편이 낫겠다. 그래서 압도적인 다수가 역사과목 없애는데 찬성하면 양정호 교수가 이런 것도 받아들이자고 나올 것 같나. 이렇게 자기주장에 편리할 대로 근거를 끄집어내 이용해 먹는 것이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겠다고 나서는 대표적 인물들의 행각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신의 경지는 고사하고 역사학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조차 갖추지 못한 자들이 ‘올바른 역사관’을 팔아먹고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말 같지 않은 명분을 팔아먹는 일은 사이비 교주의 주특기다. 역사학에 있어서 그런 사이비 교주 식의 행각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바로 우리에게서 가장 가까이 있는 북한 정권부터 올바른 역사관이랍시고 ‘주체사관’을 내세우고 있다.

88년 필자가 부친께서 초빙교수로 갔던 독일의 튀빙겐 대학을 방문했을 때, 북한의 역사책을 직접 접하면서 확인했다. 북한의 한국사 개설서나 교과서 역할을 하는 『조선전사』나 『조선통사』에는 큰 제목 바로 아래에 수령님 교시가 나온다. ‘위대하신’ 김일성 수령께서 각 주제마다 ‘올바른 역사’를 지정해주고, 역사학자들이 이를 풀어 나아가는 형식인 셈이다. 이렇게 수령님께서 정해준 교시를 믿어 의심치 않고 써 나아가는 이 주체사관이, 정말 ‘올바른 역사관’인 것처럼 보이나? 보통의 정신 상태라면 이게 김일성 정권 미화라는 현실적인 목적을 위해 역사를 악용하고 있다는 점을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가면 ‘솔방울로 수류탄 만드셨다’는 말부터 시작해서, 각종 혁명사적지를 조작해내도 사실처럼 느끼게 된다.

박근혜 정권에서 ‘올바른 역사관’을 내세우는 행각이 달라 보이나? 기존 교과서가 역사를 왜곡시켰다고 몰아가고 있지만, 권희영 교수 같은 앞잡이들이 지적하는 왜곡 사실은 근현대사 일부 문제에만 집중되어 있을 뿐이다. 즉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측이 종북·좌편향과 관계없는 몇 천 년 역사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갖지 않는다는 얘기다. 결국 몇 십 년 치 역사에 자기들 마음에 맞지 않는 내용이 있다고 해서, 반만년 역사에 대해 서술한 교과서 전체를 획일적으로 바꾸어야 하겠다고 나오는 셈이다. 웩더독(Wag the dog·꼬리가 몸통을 흔들고 있다는 뜻)이 따로 없다. 이런 식의 태도가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기 위해서라고 보이면 정신 상태를 의심해야 할 것이다.

진짜 속셈은 뻔하다. 자기들 취향에 맞는 역사 만들어 강제로 청소년들 머리 속에 구겨 넣겠다는 발상 이상이 될 수 없다. 이게 바로 지금도 북녘 땅에서 김씨 왕조 정권이 하고 있는 짓이다. 걸핏하면 종북·좌편향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박근혜 정권 자체가, 김씨 왕조가 저지르고 있는 못된 짓 중 하나를 따라하겠단다. 그러고 보면 이들이 정말 김씨 왕조를 싫어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염불보다 잿밥’이라고 김씨왕조와의 대립을 팔아 권력 다져보겠다는 발상이 아니라면, 굳이 이런 짓을 따라 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

하긴 보기만 해도 정이 뚝 떨어지는 『조선전사』나 『조선통사』를 굳이 금서로 정해 못 읽게 만드는 것이 이런 분들 발상이었다. 지금이라도 국가보안법 걸어 필자를 잡아넣으려 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꼴을 보면 북한 측 간첩이 대한민국 정부 깊숙이 침투해서, 이런 식으로 종북·좌편향을 팔아가며 우리 사회를 북한과 다름없는 체제로 만들어버리려 하는 거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번 교과서 국정화는 전격적으로 발표됐다. 그동안 신중을 기해왔던 교육부총리나 국사편찬위원장의 태도가 무색해진 것이다. 그렇게 된 원인은 임면권자 차원의 결정이고, 이들도 그 압력을 느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결국 교과서 국정화로 일어날 부작용과 혼란은 박근혜 정권 차원에서 책임을 져야 할 문제가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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