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학자 이희진

【투데이신문 이희진 칼럼니스트】우리 사회에는 청산해야 할 역사적 과제가 많은 편이다. 파란만장한 역사를 겪어왔으니 당연한 현상일 것이다. 그래서 올해 역시 그런 문제로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다. 그런 문제 중 하나로 ‘식민사학’을 꼽을 수 있다. 우리 근대사 최대의 비극이 일본의 식민지가 됐다는 사실이며, 여기서 청산해야 할 역사적 과제도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식민사학은 한국사람 들에게 열등감을 심어주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니, 청산해야 할 과제로 꼽힐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필자 역시 그 필요성에 대해 기회 있는 대로 강조해왔다.

그런데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이 당연한 과제를 청산하는 것도 그리 쉽지가 않다. 그 원인은 식민사학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 많아 저항이 만만치 않다는 점부터 꼽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뭔가 모자란다. 사실 해방이 된 지 반세기가 훨씬 넘은 지금까지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심어 놓은 식민사학에 추종해야 할 이유는 없어진 셈이다. 더욱이 이런 것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내놓고 활동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뭔가 다른 이유가 더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얼마 전 직접 그 이유를 시사해주는 경험을 한 바 있다. 그 계기는 ‘한국과 중․일 사이의 역사 관련 쟁점에 대한 종합 검토’라는 학술대회였다. 여기서 필자의 역할은 ‘임나일본부’에 관한 연구사를 정리하는 것. 연구사를 정리하는 정도였기 때문에 그렇게 심한 시비가 걸릴 일은 아니었지만, 이전부터 분위기는 묘했다. 그리고 발표 현장에서 현실로 드러났다.

토론자가 필자를 ‘식민사학에 젖어 있다’는 식으로 몰아갔던 것이다. 그러니 분위기가 험악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몰아간 이유는 비교적 간단했다. ‘임나일본부’에 관한 이른바 ‘분국설’이라는 것이 있다. 일본서기에 야마토 정권이 속국으로 삼고 임나일본부를 통해 지배한 고구려·백제·신라·가야가 만주와 한반도에 걸쳐 있던 나라들이 아니라, 일본 열도에 있던 분국이라는 주장이다. 이 학설에 대한 비판논리의 핵심인 ‘임나가 한반도에 있었음이 입증된 내용’을 소개하고 이 점 때문에 북한 이외의 학계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학설이라 하자, 대뜸 ‘식민사학’이라고 몰아간 것이다.

그동안 식민사학을 청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던 필자의 입장에서는 황당했다. 이렇게 한마디로 끝나면 변명밖에 안 될 수 있을 테니, 분국설 비판이 왜 식민사학 추종이 아니라고 하는지 간단하게 언급해야겠다. 사실 한국 민족주의 입장에서 ‘분국설’은 위험한 논리가 될 수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일본서기에 나와 있는 대로, 야마토 정권이 고구려·백제·신라·가야 등을 속국으로 삼고 통제했다는 점을 인정하자는 얘기가 된다. 단지 ‘이들이 만주와 한반도에 걸쳐 있던 나라들이 아니라, 일본 열도에 있던 분국’이라는 점만 다를 뿐이다. 그런데 이 말이 그대로 뒤집혀 일본서기에 나와 있는 고구려·백제·신라·가야 등이 일본 열도가 아닌 만주와 한반도에 걸쳐 있던 나라들이었다는 점이 증명되면 어찌될까? 결론은 말 하나마나다.

실제로 임나 문제에 관련된 성왕 등 중요인물과 사건들이 만주와 한반도의 것과 일치하는 것들이 많아 더 우기기가 곤란한 상황이다. 더욱이 이날 한 토론자가 주장한 것처럼 ‘일부는 한반도에 있었지만, 일부는 일본열도’라는 논리도 성립하기 어렵다. 만약 그렇다면 일본서기 자체가 본국과 분국을 어떤 식으로든 구별해서 적었을 텐데 그런 흔적이 없다. 더욱이 워낙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들이 많아 일부라도 한반도에 관련이 있다는 점이 증명되면, 나머지 사건들도 줄줄이 딸려 들어오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을 설명하려 했지만, 토론자는 막무가내였다. 심지어 시간이 없다고 사회자가 필자의 답변을 끊어버리는 사태를 뻔히 보면서도, 질문 한 것이 몇 개인데 대답을 못하느냐고 몰아가기까지 했다. 이런 행각을 보면 애초부터 작정을 하고 들어온 것 같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엄연히 눈앞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그런데 학술회의 진행상황을 보니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가 대충 짐작이 갔다.

사회자도 토론자가 발표자보다 더 긴 시간 발언하는 것은 놔두면서, 정작 발표자인 필자가 설명하려고 하자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중간에 발언을 끊어 버렸다. 사회자는 학술회의 참여를 안 해 본 초보자가 아니라, 나름대로 ‘안 끼는 데가 없다’는 말을 듣는 사람이니 경험이 없어 이랬을 리는 없다. 나중에 좀 따졌더니 ‘발언 많이 하면 당신에게 손해가 될 것 같아 그랬다’고 생각해주는 척 하기도 했고. 나중에 주최 측에 볼멘소리 좀 하고 종합토론 시간에 얻은 발언기회도 턱없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물론 이 자체만으로는 그리 큰 문제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사회의 학술회의라는 것 대부분이 이런 식이라는 점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으니까. 소화하기 어렵다는 점을 뻔히 알면서, 발표자 여러 명 세워놓고 시간 없다는 핑계로 제대로 검증 안하고 지나간다. 학술대회를 주최하는 사람들이 이런 현상을 모를 정도로 저능아이거나 경험 없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 원인 역시 간단하다. 학술회의를 글자 그대로 ‘학술적인 문제에 대해 검증하는 기회’로 여기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보다는 사회적인 이슈가 되는 문제를 두고, 주최 측이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가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검증하기 어려운 구조임을 알면서도 고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변에서 불편하게 여기겠지만, 우리 사회의 학술회의라는 것이, ‘예산 받아다가 적당히 생색내놓고 아는 사람들끼리 나누러 갖는’ 구조가 된 지는 오래다. 이래놓고 학계에 지원 모자란다고 펄펄 뛰는 모습은 좋게 말해서 안쓰럽다. 이런 점을 감추려면 뭔가 대단한 성과가 있었던 것처럼 생색을 내야 하니, 군소리 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것도 당연하다. 이런 것이 우리사회의 학술대회라는 점 다시 언급하는 거나 듣는 거나 지겨울 것이다.

물론 학술회의 대부분이 국민의 혈세를 가지고 여는 것이라 이런 점만 가지고도 짜증이 나겠지만, 더 섬뜩한 점은 다음부터다. 사실 이번 학술회의에서 필자가 발표하는 부분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을 것임은 이미 예고가 돼 있었다. 학술회의 이전부터 주최 측과 은근히 갈등이 있었던 것이다. 뒤풀이 시간에 주최 측 수장이 ‘당신이 유연하지 못해 그런 사태가 벌어졌다’는 식으로 몰아간 점에서도 배경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사실 필자는 식민사학의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해오면서도, 아무거나 식민사학으로 몰아대는 현상에 대해서도 비판해 왔다. 그 점이, 좋게 말해서는 민족주의 진영이고 나쁘게 말하면 국수주의 성향을 가진 집단을 건드린 것이다. 필자가 식민사학을 청산하자는 데까지 뜻을 같이하는 집단에 대해서도 비판한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사회에서는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나 집단이 있으면, 무조건 욕만 하는 것으로 해결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게 그렇지가 않다. 그들이 벌인 행각의 어떤 점이 우리 사회에 나쁜 영향을 주었는지, 그래서 어떻게 응징해야 하는지 분명히 해놓지 않으면 심각한 부작용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만 말하면 구름 잡는 이야기가 될 수 있으니, 쉬운 사례부터 짚어보자. 예를 들어 수백만 북녘 동포를 굶겨 죽여 놓은 ‘주체사관’을 추종한다면, 이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 지탄 받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권희영 교수처럼, 같지도 않은 이유로 애꿎은 사람을 ‘종북·좌빨’로 몰면 어찌될까? 대한민국 역사학계에 권희영 교수의 선동에 놀아날 저능아가 그리 많지도 않은 상황에서, 사정을 뻔히 아는 사람들의 반응은 뻔하다. 그리고 이렇게 파렴치한 행각에 분개하는 과정에서, 애꿎은 사람을 빨갱이로 몰아놓은 사례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다.

그러한 결과가 실제로 나타났던 적이 있다. 군사정권이 끝나고 민주화의 바람이 불던 시절, 진짜 북한에서 파견된 간첩이 자기 정체를 밝히고 남한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는데도 아무도 신고하지 않았다. 나중에 이 간첩을 검거한 안전기획부에서 남한 쪽 사람들을 만나 이 부분을 따졌을 때 이유는 간단했다. 이들은 ‘자기 정체 밝히는 간첩이 어디 있나? 간첩 조작하려고 우리에게 접촉시킨 너희 요원 아니냐?’고 오히려 따졌던 것이다. 이럴 때 걸려고 만들어 뒀던 ‘국가보안법’으로도 잡아넣을 엄두를 못 낼 만큼, 당시 보안관련 기관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극도로 나빴다. 안전기획부장이 아무리 하소연을 해도 ‘다 너희들 업보 아니냐’는 냉담한 반응만 돌아왔다. 이 사태는 당시 언론에도 보도됐고, 여기서 모티브를 얻은 영화도 나왔었다.

이런 사태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애꿎은 사람을 빨갱이로 몰아댄 결과, 반공이라는 것도 결국 권력 잡은 것들 사리사욕이나 채우자는 핑계에 불과하니 평범한 국민들은 신경 쓸 필요도 없다고 인식하게 만든 셈이다. 반공주의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만한 이적질도 없고, 김씨 왕조의 입장에서는 환영할 일이다. 그러니 권 교수의 주장에 기반을 두고 추진되고 있는 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가 결국 어떤 사태를 몰고 올지도 뻔하다. 안보의식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사회 교육까지 믿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

이렇게 편이 갈려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상태에서 상대를 도와주는 짓을 ‘이적질’이라고 한다. 인간이 저지르는 가장 어리석은 일로 꼽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이런 이적질이 되풀이될까? 사실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런 행각을 벌이는 자들일수록 자기들이 내세우는 명분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명분 팔아 자기 사리사욕 채우자는 생각뿐이니, 나중에 나타날 부작용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적보다 더한 적’이라는 말이 공연히 나오는 게 아니다. 그러니 내막을 알고 보면 뻔뻔스럽게 애꿎은 사람 몰아대는 행각을 벌이는 자들이, 겉으로 봉사하는 척하는 집단의 입장에서는 철저하게 배제되어야 할 존재인 셈이다. 여기까지는 아는 사람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이렇게 뻔한 진리조차도 쉽게 묻혀 버리는 것 같다. 그만큼 사회적으로 건전한 대책을 찾는 사람보다, 명분 팔아 사리사욕이나 채우려는 자들이 권력에 더 가까이 있다는 얘기가 되겠다.

이런 점은 주제가 친일 행각, 식민사학 등으로 바뀌어도 마찬가지다. 식민사학 청산하자는 점 자체야, 주체사관 추종하는 집단과 마찬가지로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권 교수가 종북세력이라고 모는 것처럼 식민사학 추종자로 몰아 낸다면 이 역시 결과적으로는 식민사학 청산을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실제로 소송으로 번져 사회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으니, ‘민족주의자’들에게 아무거나 몰지 말고 신중하자고 주장해왔다.

그러고 보면 이날 토론자나 사회자의 반응은 그에 대한 대답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그 대답이 바로 ‘너도 식민사학자로 몰겠다’는 것이었던 셈이다. 사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고대사 연구가’라는 사람이 토론자로 정해졌을 때부터 뭔가 이상했다. 학계에서 또 마주칠 사람이라면 대놓고 억지 쓰며 몰아가기가 좀 어렵다. 하지만 학계에서 잃어버릴 체면조차 없는 사람이라면 이런 정도의 부담조차 없다. 그러니까 원 포인트 미션을 받고 나섰다고나 할까?

여기까지는 필자의 개인적인 문제겠지만, 그 배경을 캐어 보면 우리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역사 관련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런 문제를 두고 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쓸모가 없을 테니, 좀 구체적으로 언급해보겠다. 역사 문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라면 최근 ‘동북아 재단’이 심각한 상황에 직면해 있음을 알 것이다. 이 기관에 많은 비판이 집중되면서, 여기서 집행한 연구과제 일부는 몇 년 동안 썼던 연구비 전액을 반납하라는 조치가 취해졌다는 소식이 들린다. ‘별 관련이 없는 자기 연구과제도 불똥이 튀겼다’고 푸념하던 분께 들은 이야기이니 큰 착오는 없을 것이다.

뭐든 엉터리로 해도 대충 넘어가는 우리 사회 연구풍토에서 연구비 전액을 회수하는 일은 드물다. 그러니 이런 조치가 이 기관과 연구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 지는 분명할 것이다. 물론 동북아재단이 그동안 많은 실책을 저질렀고, 성의 없는 기획에 연구비를 주다가 문제가 된 점도 있다. 이런 점만 보면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 할 수 있고, 필자 역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여기까지 진행된 상황만 보면, 그동안 기득권에 안주해왔던 기상사학계에 확실한 경고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일부 민족주의자들이 벌이는 사태가 이적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동북아재단이 비판 받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식민사관에 젖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일부 분야에서 그런 측면이 없지는 않겠지만, 최근의 행각을 보면 엉뚱한 문제까지 식민사학으로 몰아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일부는 법적 소송으로 번지기도 했다.

이런 사태가 크게 번지게 되면 기성사학계의 반응도 분명해진다. 실제로 필자는 ‘식민사학 청산하자는 작자들이 실제로는 이거 내세워 자기들 사리사욕 채우려 한다’고 몰아가는 꼴 여러 차례 보았다. 일부가 이런 행각을 벌이고 있는 것 자체는 사실이니 할 말도 없다. 그러면 기성 사학계는, 이런 짓 하지 않고 순수하게 식민 사학 청산을 원하는 집단까지 도매금으로 끼워 넣는다. 이런 식으로 해서 기득권자들이 자기들 치부 덮어버리고 기득권 유지하는 꼴 한 두 번 보는 것이 아니다. 현재 동북아재단 사태도 이런 전철을 밟게 될 확률이 크다.

사실 필자가 눈으로 확인한 사례만 해도 질릴 정도다. 그런 문제 중 필자의 발표 주제에도 걸리는 것이 있기 때문에, 갈등을 우려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필자와 직접 엮여 있는 문제만 해도 제법 많다. 얼마 전 대규모 발굴에 들어가겠다는 발표가 난 풍납토성 문제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지금까지 20년에 걸친 시험발굴에서 찾지 못한 흔적을, 대규모 발굴로 찾겠다는 발상이 학문적인 것일 수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확인도 하지 않고 몇 조의 예산이 들어갈 발굴을 시작부터 하겠다는 발상은 국민의 혈세로 발굴 참여 집단의 사리사욕 채우기 이상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일이 반대쪽에서도 벌어질 것 같다. 필자도 단언하지는 못했지만, 내심 하남 지역이 한성백제의 왕성이었다고 본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왜 단언하지 못했겠느냐는 점이다. 몇 번 강조했지만, 하남 지역은 본격적인 조사가 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비교적 비용이 적은 시험발굴이라도 해서 왕성의 흔적을 찾기 전에 결론부터 내지 말자는 발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 이곳에서도 이적질의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분명 신라 목탑의 특징이 뚜렷한 초석을 가지고 한성백제 것이라고 몰아가거나, 적어도 지금 남아 있는 부분은 신라의 기법이 뚜렷한 이성산성을 백제성이라고 복원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풍납토성을 왕성으로 몰아가려는 기성학계에서는 경사가 났다. 당장 ‘그것 봐라. 더 황당한 주장을 하려고 풍납토성이 왕성 아니라고 몰았다’는 식으로 나온다.

심지어 토지박물관 심광주 관장은 이를 빌미로 필자와 ‘잃어버린 백제 첫 도읍지’의 공저자인 강찬석 선생이 하지도 않은 말까지 조작해 매도하고 다닌다. 우리도 이들과 같은 주장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강선생과 필자는 천왕사 터 위쪽의 심초석이 백제 것이라거나, 지금까지 발굴된 이성산성이 백제가 쌓은 것이라고 한 적이 없다. 단지 천왕사 심초석 아래쪽에 별개의 목탑터가 있고 또 다른 심초석으로 보이는 것이 있으니 확인해보아야 한다고 했다. 또 이성산성 8차 발굴에서 깊이 묻혀 있던 백제 토기가 나왔으니 백제가 쌓은 성 위에 신라가 또 이성산성을 쌓았을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고 했을 뿐이다.

지금 형태의 이성산성을 백제성으로 둔갑시켜 문화재로 등재하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으면 아무리 심광주 관장이라 하더라도, 하지도 않은 말 만들어 매도할 생각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무리하게 신라 유적과 유물을 백제 것으로 둔갑시켜 생색내려는 시도 때문에, 애꿎은 사람까지 도매금으로 매도당할 여지를 만들어 놓은 셈이다. 이런 이적질 때문에 풍납토성을 한성백제 왕성으로 둔갑시켜 대규모 발굴비를 타내려는 시도가 성공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런 사태를 보아하니 내막을 모르는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 할 수 없겠지만, 몸담고 있는 역사 관련 문제에 대해서는 감히 ‘예언’ 같은 것을 해볼 수 있겠다. 역사 문제에 관한 한, 2016년은 이적질의 시대가 될 것이다. 물론 이적질의 결과는 단순히 여기에서 끝나지도 않을 것이다. 이런 이적질을 하는 이유가 사리사욕 채우기에 있다는 점이야 이미 앞에서 말해놓았지만, 그나마 위안이 되는 점도 있다. 요즘은 세상의 변화가 빠르다보니 이적질의 결과도 빨리 나타난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반응은, 앞으로 있는 총선과 대선에서 두고두고 여당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다.

여기에 야권의 대선주자로 유력한 박원순 시장이 균형을 맞춰 줄 것 같다. 2조의 예산을 언급하고 있지만, 사실 보상비까지 포함해서 대규모 발굴을 유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자금이다. 확인도 안하고 밀어붙이는 발굴에 이런 자금 투입해놓는다면, 하나마나한 보상과 성과 없는 발굴에 반발이 생기지 않을 리 없다. 이렇게 여야 대선 후보에 하나씩 상처를 내서 균형을 맞춰주려나 보다. 이것도 균형 맞추느라고 일부 선동가들은 하남의 신라 유적을 백제 것으로 몰아 박원순 시장의 풍납토성 발굴을 도와줄 것이고….

내막을 알고 보면 그야말로 ‘웃픈’ 블랙 코미디의 연속이 될 것 같다. 그렇지만 이 점이 우리 사회에는 비극일 수밖에 없다. 그저 합리적으로 일이 처리되기만을 바라는 순박한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앞문의 늑대나 뒷문의 호랑이 중 하나를 집에 들이라는 식의 선택이 될 테니까. 제대로 일을 처리하려는 사람이나 집단은 오히려 발붙일 데조차 없어진다. 이래서 사람들이 무력감에 빠진다. 명분만 보면 분명히 해야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알면 알수록 실제로 하는 짓들이라고는 명분 뒤에서 이적질하며 사리사욕 채우는 것 밖에 없다. 그러니 누구를 지지해도 개판되기는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당장 올해 있을 대선에서 누구를 찍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이러니 기권이 늘어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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