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학자 이희진

【투데이신문 이희진 칼럼니스트】지난 주 갑작스럽게 개성공단을 폐쇄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개성공단이 그동안 남북 협력의 상징이자, 갈등을 완화시켜주는 역할을 해왔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다. 이런 곳을, 북한 측도 아닌 대한민국 정부에서 먼저 폐쇄하겠다는 발표를 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 사회에 주는 충격이 크다.

물론 이러한 결단을 내리게 된 명분이 없지 않다. 북한 측이 끔직한 피해를 줄 수 있는 핵무기와 그 운반체 개발을 코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현실적으로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 더욱이 국민이 굶어죽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고 정권 유지에만 신경 쓰는 것이 김정은 정권의 행태다. 이런 정권이 한 방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핵무기를 갖게 된다는 현실이 달갑지 않은 것도 당연하다. 그러니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보면 여러 가지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던 개성공단을 폐쇄하는 극단적 조치에 대해서도, 납득할만한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예고도 없이 전격적으로 발표한 처사에 대해서는 우려할만한 측면도 있을 듯하다. 우선 이 조치가 대한민국에 주는 피해도 만만히 않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취한 조치들을 보면, 당장 ‘자해행위’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피해를 입는 쪽은 대한민국이다.

개성공단에 막대한 투자를 해놓은 대한민국 기업이 피해를 보아야 할 액수가 기본적으로 조(兆) 단위가 넘는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가 보상해주겠다는 말을 언론에 흘리고 있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개성공단에 입주해 있던 기업들은,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도록 사전에 귀띔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날벼락 맞듯이, 시설은 물론 만들어놓은 제품이나 원자재조차 건지지 못하고 몸만 빠져나온 상태다. ‘대체 부지를 마련해준다’, ‘채무 상환을 연장해준다’는 정도는 이런 사태를 맞은 기업의 피해를 보상해주기에 터무니없는 조치에 불과하다. 그러니 개성공단에 입주해있던 기업주들 입장에서는 ‘벼랑에서 밀어버린 꼴’이라는 말이 튀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피해는 공동보조를 맞추고 있다는 미국·일본과 비교된다. 북한에 돈 보내는 것을 제한하고, 북한 국적자의 입국을 금지하겠다는 일본의 조치에서 일본 자체가 피해를 볼 액수는 크지 않다. 북한과 거래하는 개인이나 기업을 응징하겠다는 미국의 조치 역시, 당장 미국 자체가 받은 타격은 적다. 이런 조치가 길어지면 미국도 부담스러워질 수 있다는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공동보조를 맞춘다고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북한에 대해서는 대한민국만 먼저 손해를 보고 들어가는 조치를 취한 셈이다. 물론 박근혜 정권 입장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조치를 취했어야 할 명분이 있다. 언론에 이미 흘려 놓았듯이, 경제적 이익보다는 국가안보가 먼저라는 것이다. 이 자체가 근본적으로 말이 안 되는 명분이라고 몰아갈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이 명분 이상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도 성립하지 않는다. 지금은 협조가 잘 되고 있는 것 같지만, 변화무쌍한 국제정세 속에서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모른다는 점도 의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경제 제재라는 조치가 길어지면, 재제하는 쪽도 피곤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는 끝장을 볼 것처럼 몰아 부치다가도, 어느 시점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손을 빼버리는 일도 흔하다. 이번 경우에도 그러지 말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이러한 사태가 벌어졌을 때, 미국이나 일본은 태도를 바꾸어 버려도 큰 손해를 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면 미리 자해행위나 다름없는 피해를 봐놓은 대한민국만 복구할 수 없는 손실을 보게 되는 셈이다. 실제로 해방 이후 대한민국을 공산세력과의 대결 최전선에 밀어 놓고, 정작 ‘자유진영’의 대국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공산세력의 종주국들과 화해해 버리기도 했다. 잘못하면 이번에도 대한민국만 대국들의 농간에 놀아나, 막대한 피해를 볼 수 있다. 이 피해는 단지 일부 기업의 경제적 피해 뿐 아니라, 같은 민족끼리의 갈등을 줄여주고 민족적 차원으로 협력할 기회까지 날려버리는 차원으로 발전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둘째 치고, 당장 감당해야 할 현실적인 피해부터가 만만치 않다. 현재 상황이라면 이 기업들 상당수가 도산해 버릴 것이다. 그리되면 이 기업들에서 먹여 살리고 있는 수천 명의 직원과 그 몇 배는 될 식솔들에 대해서는 사실상의 학살이나 다름없는 조치를 취한 꼴이다. 이렇게 대한민국 국민들이 치러야 할 희생을 뛰어 넘는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박근혜 정권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런 조치를 취한 이유가 단순히 대국들의 압력에 놀아난 것은 아니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가장 강력한 동맹이자 후원자인’ 대국에 대해 의구심만 가져도, 펄펄 뛰는 사람 많다. 우리 사회에서 국적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대국에 대한 불경죄를 추구하는 꼴은 흔한 일이고, 필자 역시 직접 당해본 바 있다. 대국들과 이런 집단의 압력이, 이번 조치를 취하게 된 배경은 아니었으면 한다.

그랬다면 대한민국의 장래는 끔찍해질 것이니까. 설마 확실한 보장도 없이, 대한민국 정부가 자기 나라에 피해부터 입혀놓고 나 몰라라 하는 일을 벌이지는 않았을 것이라 믿고 싶은 심정이다. 그리고 총선을 앞두고 대한민국에 피해만 불러올 일을 했다면, 정권의 입장에서도 자해행위가 될 미친 짓을 한 꼴일 수도 있다. 그러니 설마 박근혜 정권이 이런 짓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믿는 것이 일반적인 분위기다. 하지만 일본과 황당한 내용으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합의를 해놓은 박근혜 정권이기에 의구심을 지울 수는 없다. 의구심을 지우려면, 박근혜 정권은 가까운 장래에 이러한 선택을 했어야만 할 이유를 분명히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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