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인터뷰①] 김경훈 한국트랜드연구소 소장·국제미래학회 트렌드예측경영위원장

   
 

2035년 미래 예측, 패러다임·메가트렌드 중요
생산력·생산성 중심, 조직에서 개인으로 이동
“수명연장, 고령자 중심 권력구조 생겨날 것”
“아시아 중심되기 위해 분업화 시대 대비해야”

【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세상은 산업화와 정보화를 거치면서 나날이 변해가고 있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응답하라 1988’만 봐도 세상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 수 있지 않은가. 삐삐에 번호를 남기며 연락을 기다려야 했던 그 시절과 달리 지금은 통화버튼 하나만 누르면 바로 상대방과 연락이 닿을 수 있고, 버스 회수권을 사서 일일이 한 장씩 자를 필요 없이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갖다 대기만 하면 된다.

불과 28년 전에 비해 세상은 너무나 많이 바뀌었고 지금 이 순간도 변해가고 있다. 한 마디로 우리는 ‘자고 일어나면 달라지는 세계’에 살고 있는 것. 그렇다면 10년 뒤, 20년 뒤의 세상은 얼마나 달라져있을까.

또 요즘처럼 세상이 빠르게 변해갈 때, 우리는 과연 어떤 기준으로 미래를 준비해야 할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투데이신문>에서는 국제미래학회 전문가들과의 릴레이 인터뷰를 기획했다.

그 첫번째 인터뷰의 주인공은 한국트렌드연구소 김경훈 소장이다. 인터뷰를 통해 약 20년 후인 2035년의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지 들어보았다.

Q. 가까운 미래가 아닌 2035년이라는 대한민국의 먼 미래를 예측한 이유가 궁금하다.

: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몇몇 현재적 이슈, 단기적 이슈에 집중하느라 외부 세계의 변화에 대한 포괄적이고 장기적인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다들 당장의 위기에 너무 매달려 있다는 생각이 들어 대한민국 앞에 놓인 위기가 좀 더 장기적인 변화와 연관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Q. 20년 이라는 긴 시간을 예측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무엇인가.

:장기적 변화의 속성을 가진 개념인 패러다임과 메가트렌드로 미래를 예측해 볼 수 있다. 미래는 자신이 하기 나름이라고 강조하는 분이 많은데 이미 정해진 미래도 있다. 이를 ‘필연적인 미래’라고 한다. 인간 사회의 발전 과정에서는 다양한 구성요소들이 상호작용을 하는데 그 구성요소들이 확정된 경우 변화의 방향이 필연적이게 된다. 패러다임과 메가트렌드는 그런 변화의 방향을 보여주는 분석이라고 보면 된다. 구체적으로 패러다임은 한 시대를 구성하는 체계, 주기, 틀의 의미를 갖고 있고 메가트렌드는 전 세계에 걸쳐 수십 년의 주기를 가지고 인간의 욕구가 변화하는 방향을 뜻한다. 즉, 패러다임은 문명의 모양이 형성되는 방향이며 메가트렌드는 그 모양 속에서 인간의 욕망이 향하는 방향을 말한다.

Q. 패러다임을 통해 미래를 예측해 본다면.

: 크게 ‘생산수단의 재사유화’와 ‘초가속화’ 패러다임으로 나눠 볼 수 있다. 먼저 ‘생산수단의 재사유화’는 스마트폰이든 어떤 도구를 가지고 앞으로 개인이 정보 습득, 일, 놀이, 물건 생산 등 비즈니스를 할 것이다. 자본주의 이전에 농민이 토지와 농기구라는 생산수단으로 생산 활동을 했던 것처럼 생산수단이 다시 사유화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이 패러다임이 진행될수록 모든 산업과 서비스, 사회구조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생산력이 높아진 개인과 소규모 그룹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다. 초연결사회라는 개념, 미국에서 시작된 메이커 운동은 생산수단의 재사유화 패러다임의 초장치 버전으로 기억될 것이다. 두 번째 패러다임인 ‘초가속화’는 탄생과 성장, 확산, 소멸, 잔화와 같은 변화의 요소들에 속도가 적용된다는 것을 담았다. 이 세계에서 변화는 선형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복잡계에서 말하는 비선형, 즉 작은 충격이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게 될 것이다. 가령 농업은 개별 농가들이 글로벌 연결망에 어떻게 접속돼 있는가에 따라 성장이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Q. 상대적으로 경직된 한국사회가 초가속화 패러다임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 한국인들은 20세기 후반의 산업 자본주의 사회에 잘 적응한 편이긴 하나 이 사회를 이룩한 것이 아니라 선진 사회를 모방함에 그쳤다. 문제는 모방의 시기가 끝나고 있음에 따라 움직여야 되는데 한국은 모방의 대상 없이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먼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삶의 규칙이 한국인에게는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초가속화 패러다임은 한국 사회 전체에 커다란 도전이 될 수밖에 없다. 결과가 불확실하면 모험하지 않는 지금의 한국 의사결정 구조로는 결코 초가속화 패러다임에 적응할 수 없다.

   
▲ ‘대한민국 미래 메가 컨퍼런스’ 에서 발표하고 있는 김경훈 소장

Q. 메가트랜드로 본 미래는 어떠한가.

: 글로벌한 세계에서 삶의 모든 분야와 인간적인 기본적인 욕구에 기반을 두고 관찰되는 변화로 인해 다섯 개의 메가트랜드가 등장할 것이다. 먼저 ‘디지털 집사의 세계’가 열릴 것이다. 현재에 이어 2035년의 미래에도 여전히 디지털화는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는 생산성 향상, 일의 편의성, 건강관리, 시간 절약과 같은 인간 보편의 욕구가 최적화 도구를 통해 발현되기를 바랄 것이다. 이 욕구에 의해 미래에는 인공지능을 가진 나에게 최적화된 비서가 출현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두 번째로는 ‘위험성이 제거된 메가시티’가 등장할 것이다. 풍요와 기대수명 증가에 따라 인간들을 안전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걱정 없는 세계를 지속적으로 추구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일상적 안심의 상징은 위험성이 제거된 메가시티로 구현될 가능성이 크다. 세 번째로는 ‘도시 연대의 세계’가 이뤄질 것이다. 2035년의 미래에는 도시들의 삶이 국가적 수준과 큰 차이를 보일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국가라는 큰 조직의 개입 없이도 개별 도시의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인프라들을 구축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북유럽의 작은 국가들, 뉴욕과 인근 도시, LA와 샌프란시스코를 잇는 지역 등에서는 도시 연대적 속성을 가진 지역들이 주목받고 있는데 2035년에는 이런 변화가 더욱 확산된 형태가 될 것이 분명하다. 네 번째로는 ‘수명연장의 세계’가 나타날 것이다. 미래에는 수명연장으로 인해 젊은 층의 소외 및 무기력화나 빈부격차와 수명 및 삶의 질의 비례화, 성장을 위한 노동력 부족 등의 문제부터 사회적 권력이 고령자에게 쏠리면서 사회의 근간을 흔들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아시아가 세계인 세계’가 도래할 것이다. 2035년에는 베이징, 상하이는 물론이고 자카르타, 하노이, 방콕, 마닐라 같은 도시가 현재의 서울이나 부산 이상의 경제력을 갖출 가능성이 크다. 사회적 인프라가 비교적 안정돼 있고 교육 등에 대한 열의가 높은 국민이 있는 국가와 도시의 성장은 빠른 속도로 진행돼 아시아는 글로벌 시장을 압도하게 될 것이다.

Q. 디지털 집사(비서) 등장 외에도 또 어떤 인적 자원이 디지털화돼서 등장할 것 같나.

: 예를 들어 간호나 요양 같은 서비스 분야는 지금으로서는 인간의 몫이라고 생각하지만 미래에는 이러한 부분조차 로봇이 대신하게 될 것이다. 직접적인 노동은 로봇에게 맡기고 로봇과의 협업으로 간호나 요양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일을 인간이 맡는 방식으로 변화될 것이라 생각한다. 다른 분야에서도 이런 식으로 신기술과의 협업으로 새로운 잡(job)을 창출해가는 일이 많아질 것이다.

Q. 미래에는 나라의 개념이 아닌 각 도시 연대의 세계가 될 것이라고 예측, 그러나 한국은 글로벌한 경쟁을 유지할 수 있는 메가시티를 만드는 게 가능할까.

: 사실 대단히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래에는 1000만명 규모 정도의 메가시티가 중심이 돼 이웃한 도시 간에 연대해 메갈로폴리스 규모를 유지하면서도 유연성을 갖춰 미래 성장의 주역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이에 따라 글로벌한 경쟁을 유지할 수 있는 메가시티, 또는 도시 연대를 발 빠르게 만들어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이런 문제에 대해 접근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다. 글로벌 시대의 도시화 혹은 도시 중심의 사회 경제적 구조에 발맞춰 국가, 광역 자치단체, 지자체 등의 구조와 협력 방식 등의 논의가 빠르게 시작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현재 밥그릇을 챙기는데 급급한 수준에서 멈춰있다. 이처럼 한국은 메가시티를 만드는 것에 대한 대응이 늦은 편이기에 메가시티 형성은 대단히 어려운 과제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Q. 현재는 각종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는데, 미래에는 어떻게 위험성이 제거된 메가시티가 가능한가.

: 기대수명 증가로 인해 전 세계 사람들은 안전 문제에 더욱 민감해질 것이다. 미래에 사람들은 새로운 위험, 예를 들면 바이러스 같은 신체적 위협 요소나 인간관계의 어려움 같은 심리적 위협 요소들에 계속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현재는 범죄 등의 위험요소에 대해 치료, 즉 사후 처리에 초점이 더 맞춰져 있지만 미래에는 예방, 즉 사전 처리에 많은 관심을 갖는 사회로 변모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2035년의 도시는 안정성이 살고 싶은 장소의 첫 번째 고려사항이 될 것이며 지금보다 위험성 없는 메가시티를 이룰 수 있게 될 것이다.

Q. 수명연장은 이제 축복인 아닌 재앙으로 일컬어진다.

: 노동력 부족은 한국뿐만 아니라 고령화에 처한 일본, 유럽에서도 대단히 심각한 문제로 부상되고 있는데 지금의 우리는 청년 실업, 실버 세대의 경제적 곤란과 같은 발등의 불을 끄기에도 급급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수명연장으로 생기는 한국적 고령화는 기회보다 위기 요인으로 다가올 것이다. 도시들은 젊은 층의 부족을 고령자의 생산 활동 참가와 소비력으로 채워야 하는데 이에 따라 고령자 중심의 권력구조가 생겨날 것이라 예측된다. 이 때문에 미래에는 고령자 중심의 권력구조가 가져올 세대 갈등의 문제를 해소하는 게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Q. 고령자 중심의 권력구조가 가져올 세대 갈등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 정답이 없다. 다양한 해결책을 시도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선은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사회적 합의가 생겨날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고령자 중심의 권력 사회에 대한 미래 시나리오를 만들어보는 게 어떨까 싶다. 하나의 예로 1980년대 후반, 남아공의 백인과 흑인들이 사회적 위기에 공감하면서 미래 시나리오를 그려보았고, 그 결과 백인과 흑인의 화해 없이는 어떤 종류의 미래도 남아공을 위기에서 살려낼 수 없다는 부분이 널리 공감돼 흑백화해의 큰 물결이 시작됐다고 한다. 이처럼 문제에 대한 사회적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미래 시나리오 작업을 해보는 것이 미래에 고령자 중심의 권력구조가 가져올 세대 갈등을 해소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Q. 20년 후에는 아시아가 글로벌 성장의 주역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 중심에 서기 위해 한국은 어떤 성장 전략과 역량을 갖춰야 할까.

: 2035년에는 전 세계 소비의 절반가량이 아시아에서 일어나며 인재나 자원, 비즈니스의 역내 교류가 21세기 초반의 글로벌화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이에 따라 아시아 국가 간에 이해관계가 더욱 치열하게 얽히고 그 속에서 도시의 약진이 계속될 것이다. 20년 후 한국이 아시아의 중심으로 서기 위해서는 분업화를 예상하는 것이 적절한 전략일 것이다. 20세기 미국이나 독일, 일본이 각 대륙의 경제를 이끌었던 것과는 달리 미래에는 사회 전체적인 수준에서 발전의 정도가 비슷한 수준일 것으로 예측된다. 이 때문에 미래에는 분업화를 통해 아시아인의 연대의식, 문화 교류, 상호 이해의 과정을 통해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 예상됨에 따라 지금부터 분업화 시대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Q. 변화하는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 한국인들의 삶의 규칙에 변화가 필요하다. ‘삶의 규칙’이란 외부의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을 통해 개인이 갖게 되는 행동 지침을 말한다. 예를 들어 고령자 중심 사회에서 계속해서 늘어나는 한국의 고령자들이 권력을 유지하는 데 힘쓰기보다 젊은 세대에게 어떻게 권력을 나눠줄지를 걱정하는 것은 삶의 규칙의 중대한 변화다. 즉, 새로운 변화에 맞는 삶의 규칙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한국인이 관성 또는 성공의 습관을 바꿔야 한다. 우리는 앞으로 20년간 겪을 외부 세계의 변화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변화를 이해하면서 새로운 삶의 규칙을 수용해야 할 것이다.

Q. 2035년을 맞이할 한국인에게 가장 중요한 미래전략은 무엇인가.

: 이미 능력을 갖춘 세대들을 잘 지원하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즉, 디지털 네이티브인 2·30대, 모바일 네이티브인 10대들은 충분히 새로운 시대의 규칙을 수용하고 발전시킬 능력을 갖추고 있다. 문제는 이 세대들이 기성 사회에 적응하면 할수록 능력을 잃어버리게 되는 구조가 한국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세대 간 협력과 지원을 통해 능력을 갖춘 세대가 젊고 도전적이며 역동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이게 한국의 장기적 성장 잠재력을 키울 수 있는 미래전략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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