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학자 이희진

【투데이신문 이희진 칼럼니스트】지난 칼럼에서 21살짜리 소녀의 리더십에 감탄한 것을 보고,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 이유는 우울한 이야기와 대비돼 나온다. 우리 사회를 주도하는 사회지도층 지식인 사회 풍조에서는 이런 장면이 나오려야 나올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게 잘라 말하는 이유가, 절묘하게도 프로듀스 101에 대한 비판적 시각의 어두운 측면과도 연결된다. 이전 칼럼이 올라갔던 때와 비슷한 시기에, 우연히 이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기사를 보게 되었다. 2월 29일자로 올라온 조선일보의 ‘삼시세평’코너였다. 일을 보기 위해 인터넷을 연결하면 자동적으로 뜨는 포탈의 머리기사에 올라와 있었으니, 많은 사람들이 이 기사를 보았을 것이다.

이 기사를 얼핏 보면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영향력 있는 포탈의 머리기사에 올려놓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내용을 뒤집어보면 섬뜩하기까지 한 측면이 있는 듯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 이면이 안 보이는 것 같으니 한번 따져 보자. 이 기사의 핵심 논지는 ‘이 프로엔 우리 사회 치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이다. 살벌한 경쟁·등수로 줄 세우기·외모 지상주의·금수저와 흙수저의 운명을 지목하며, ‘그야말로 낯 뜨거운 한국 사회 민낯’이라고 결론졌다. 여기에 평가기준이 제멋대로인 트레이너의 태도와 출연료 한 푼 안 주고 높은 시청률 올린 방송사의 행태도 도마 위에 올렸다. 이런 내용을 보면 이른바 ‘을’의 입장에 놓인 연습생 소녀들의 입장을 꽤 생각해주는 것 같다.

물론 연습생 소녀들의 절박한 사정을 이용해서, 출연료도 안 주고 시청률 올리는 방송사의 행태까지 비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 그러니 ‘이런 프로그램은 태어나지도 말았어야 한다’는 논리가 정말 연습생 소녀들의 입장에서 고마운 말일지 궁금하다.

이 기사에서는 금수저· 흙수저 운운한 이유는 대형 기획사 출신에게 일방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며 유리한 환경 만들어 준다는 것이었다. 기자는 ‘제작진부터 탈락시키자’며 제작진을 비난했다. 하지만 이 말을 뒤집어 보자. 이 프로그램 공정성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점까지 인정 못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프로그램이 애초부터 없었다면 어찌 됐을까.

기자는 마치 이 프로그램이 대형기획사에서 보낸 연습생을 뽑기 위해, 애초부터 공정할 수 없는 방식을 택했다는 식으로 몰아갔다. 그런데 이 분야에 문외한인 필자가 알고 있기에도 정작 금수저 운운했던 대한민국 3대 대형기획사 중에는, 단 한 곳에서 단 한 명의 연습생만 이 프로그램에 보냈을 뿐이다. 또 굳이 대형기획사가 아니더라도, 각 기획사마다 이른바 ‘데뷔조’에 들어가 있는 연습생들이 이런 프로그램을 달가워 할 리가 없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무슨 뜻이 될까.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습생들 대부분은 ‘데뷔조’가 아니거나, 데뷔시켜도 뒷받침 할 마케팅에 자신이 없는 기획사 출신이라는 얘기다. 아예 소속사 자체가 없는 연습생도 여럿 보인다. 심지어 도마 위에 올랐던 단 한 명의 대형기획사 연습생조차, 쯔위 사태로 유명해진 그룹 트와이스 데뷔조에서 밀려난 2군 연습생일 뿐이다. 이들을 금수저·흙수저로 분류하는 것이 그렇게 의미가 있을까.

소속사 없는 연습생이 방송 중에 했던 소감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 프로그램 아니었다면 자신 같은 흙수저가 대형기획사 소속 연습생과 같은 무대에 서보지도 못했을 거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좀 실례가 되더라도 실명을 거론해보자. 여기서 뜨거운 감동을 주었던 김세정 양 같은 경우만 해도, 기자가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이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자신의 실력과 인성을 보여줄 기회가 있었을까. 설마 이 프로그램 비난한 기자들이, 이런 인재가 대중에게 자신을 알릴 수 있는 더 좋은 기회를 줄 수 있었다는 뜻은 아닐 것 같은데, 그러면서 왜 이 프로그램이 ‘금수저’를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몰아가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렇게 따져 보면, 힘없는 연습생 소녀들을 매우 생각해주는 척했던 기자의 위선이 드러나는 것 같다. 사실 이런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니라면, 그야말로 대형기획사를 위주로 한 연예기획사에서 자기들 기준대로 골라 공급하는 인원에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게 과연 소속사 힘을 등에 업지 못하는 연습생들 생각해주는 논리냐는 것이다.

‘기획 의도만 듣고도 불쾌해 했다’며 인용된 엄마 기자(김윤덕)의 말은 가히 충격적이다. ‘내 딸을 시장 좌판에 내놓은 듯해 슬프고 섬뜩했다’고 할 만큼, 이 프로그램의 잔인한 장사속이 혐오스럽다고 비난했다. 그런데 필자로서는 이 엄마 기자에게 자식들이 있다면, 어디에 취직을 했기에 이런 말을 하는지가 더 궁금하다. 그리고 도대체 어떤 세상에서 살기에, 이 프로그램 이외의 세상이 그렇게 동화처럼 평화로워 보이나. 이 프로그램 아니더라도, 요즘 대부분의 청년들은 연습생 소녀들과 다를 바 없이 면접관 앞에서 ‘좀 뽑아주세요’라며 애걸해야 한다. 회사 면접의 좌판대에서 이러는 건 훨씬 나아 보인다는 뜻일까. 이 엄마 기자 눈에는, 몇 명 내지 단 한명의 면접관이 당락을 결정하는 채용 구조가 수십만 표를 모아 운명을 결정하는 방식보다 더 공정해 보이는 것일까.

청년들 이야기는 할 필요도 없다. 필자부터도 좌판대 위에서 자신을 팔아 봤다. 교수 시켜 달라고. 벌써 20년 전 즈음에 겪었던 기억 덕분에 요즘에는 교수 채용 공고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왜냐, 요즘 보도가 좀 뜸해 졌다고 고매하신 교수님들에게 면접 본 시간 강사가 자살해버리는 사건을 잊어야 하느냐는 말이다. 이 프로그램 트레이너들이 막말한다고 몰아갔지만, 그랬다고 자살할 연습생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고매하신 교수님들께서는 뒤끝도 길어서, 20년 전에 공개강의 면접한 그 분들과는 지금도 원수로 지낸다. 이래도 자살하는 사람이 나오는 이유를 이해 못하겠나.

이러고 보면 걸핏하면 울음바다 터지는 이 프로그램 시청률이 왜 높은지 알 것 같다. 이 상황은 연습생 소녀들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대부분의 중생들이 매일 같이 맞닥뜨려야 하는 것이다. 즉 이 프로그램은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들이 겪었거나 겪고 있는 상황에 연습생 소녀들을 몰아넣고, 우리 자신의 모습을 재현해주었을 뿐이다. 노력은 몰라도, 설움만큼은 평범한 중생들도 연습생 소녀들 못지않게 받았을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보여준 것이 무엇일까. 그렇게 받은 상처에 딱지가 앉아 눈물마저 말라버린 우리 중생들에게, 잔인한 상황에서 눈물을 흘리면서도 굴하지 않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 셈이다. 그런 이유로 이 프로그램만 잔인하다는 비난을 받아야 할까. 정말 잔인한 것은 우리 사회가 아닌가. 이 프로그램은 그 잔인한 현실을 가슴 시리게 보여주는 역할을 할 뿐이 아니냐는 말이다. 그런데도 마치 이런 프로그램만 아니면, 자존심 세우며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여기는 태도가 더 오만하게 보인다면 지나친 말일까.

이런 꼴을 보고 있자면, 최근 폐지된다는 사법고시가 오버랩 된다. 여기에도 ‘젊은 인재들이 평생을 시험에 낭비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생각해주는 척하는 말을 많이 흘렸다. 그래놓고 무엇을 내놓았나. 있는 집안 아니면 다니기도 어려운 로스쿨 제도다. 우리 사회의 법을 집행하는 법관을, 있는 집 자식 아니면 쳐다보지도 못하게 만든 셈이다. 어차피 사법고시도 마찬가지가 된 지 오래라고 하지만, 돈만 있으면 시험 통과하려고 어렵게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제도가 있는 집 자식에 더 유리해진 것 같다. 이렇게 이래저래 있는 집만 유리한 제도 내놓을 거면, 생각해주는 척이라도 하지 말던가 말이다.

이렇게 득 될 것 없다 못해 최소한의 기회까지 빼앗아 가겠다는 말을 알아듣기 어렵게 해놓고, 생각해주는 척 온갖 생색을 다 내는 것이 꼰대들의 수법이다. 그러면서 진짜 고쳐줬으면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눈길도 돌리지 못하게 한다. 상대적으로 좀 낫게 만들려는 노력에 대해, 완벽하지 못하다고 온갖 트집을 잡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이런 꼰대들에게 휴머니즘이나 상생의 리더십 같은 것을 기대하지 말라고 하는 거다. 남의 운명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는 꼰대들 행태가 이 모양이니, 김세정 양을 비롯한 연습생 소녀들이 보여준 인성이 더 가슴 시리게 와 닿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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