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위기에 놓인 서울 예지동 시계골목에 가다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죽은 시계에 생명을 불어넣는 곳이 있다. 

바로 50년 넘게 전통을 유지하는 서울 종로구 예지동 시계골목이다. 이 골목은 80~90년대만 해도 전성기를 누리며 번성했다. 하지만 2006년, 재개발 바람이 불면서 상인의 절반 이상이 터전을 떠났다. 우여곡절 끝에 재개발은 무산됐지만 상권은 예전 모습을 찾기 힘들다. 

그래도 시계수리 장인의 실력과 다양한 제품 때문에 이곳을 찾는 사람은 꽤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시계는 예지동에서 고칠 수 있다”는 전설은 여전히 유효하다.

추억과 전통, 장인이 머무는 골목을 언제까지 볼 수 있을까. 지난 7일 본지는 재개발 소문에 휘청이는 ‘위기의 시계골목’을 찾았다.

   
 

을지로4가역 3번 출구를 빠져나와 청계천 배오개다리를 건넜다. 멀리서 ‘시계 귀금속 카메라 도매시장’이라고 적힌 빛바랜 빨간색 간판이 눈에 띄었다. 이곳은 예전부터 시계 수리와 판매로 유명해 ‘예지동 시계골목’으로 불린다. 바로 맞은 편에는 의류도매상가인 광장시장이 자리하고 있다.

오전 10시 20분, 청춘에게는 낯설고 어르신에게는 익숙한 향수의 거리를 걸었다. 세월을 온몸으로 견딘 듯한 낡은 가게 간판들이 눈에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서니 시계를 비롯해 귀금속, 카메라 등을 파는 가게가 보였다.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골목은 썰렁했다.

   
 

어떤 수리상인은 고개를 묻은 채 수리에 여념이 없었다. 손님들은 고치는 모습이 신기하다는 듯 시선을 고정했다. 골목 내부는 조금 어두웠지만 유리관 안에 진열된 시계는 반짝였다.

한 가게에서 서울 면목동에 사는 유옥희(62)씨 부부를 만났다. 이날 유씨는 목수 일을 하는 남편의 시계를 사러 왔다고 했다. 그는 “일하는 사람들은 휴대전화를 보지 못하니 시간을 보려면 손목시계가 필요하다”고 속삭였다. 

유씨는 10년째 시계 골목을 찾는 단골이다. 다른 곳을 가지 않는 이유는 가격이 싸고 좋은 물건이 많아서다. 군대 가는 아들을 포함해 가족 시계를 이곳에서 해결했다. 지금껏 탁상까지 합치면 15개 정도 구매했다고 하니 1년에 하나꼴로 산 셈이다.

   
 

주인 할아버지는 6만5000원짜리 시계를 권했는데 유씨는 계속 깎아달라며 실랑이를 벌였다. 결국 주인은 못이기는 척 6만원에 타협을 봤다. 생각보다 저렴하게 샀는지 부부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유씨는 “1만원대 저렴한 시계부터 비싼 시계까지 다양하다”고 만족감을 드러내며 “만약에 여기가 없어진다면 아쉬울 것 같다”고 전했다.

1960년대, 상인들이 사과 궤짝 위에 시계를 놓고 판 것이 시계골목의 초석이 됐다. 80~90년대만 해도 예지동 시계골목은 잘 나갔다. 하루에 3000만원을 번 상인도 있었고 결혼 예물도 20~30건가량 주문이 들어왔단다. 게다가 골목에 사람이 많아 발 디디기가 힘들 정도로 꽉 찼다. 하지만 1997년 IMF가 터지면서 재개발 얘기가 나돌았고 이후 골목은 점점 위축됐다.

   
   
 

위기의 결정타는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재개발 추진으로 시계 골목에 120m짜리 빌딩이 세워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종묘의 경관이 훼손된다며 제재를 가해 재개발은 무산됐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보상을 받아 가게를 접었고 누구는 새로 지어진 세운스퀘어에 둥지를 틀었다.

노점 상인 이강록(54)씨는 30년 동안 시계 판매와 수리를 해왔다. 과거 수차례 재개발 추진 바람이 불었을 때도 묵묵히 버틴 그였다. 여기에 남은 이유를 묻자 “하다 보니 정이 들었고 정이 들다 보니 떠나지 못했다”며 말끝을 흐렸다.

   
 

재개발의 후폭풍은 상인들에게 상처만 남겼다. 해마다 떠도는 재개발 소문은 상인을 흔들며 불안하게 했다. 이씨는 재개발 얘기가 나온 뒤 상인 60~70% 정도가 골목을 떠났다며 아쉬워했다. 여기저기 백화점이 생기고 인터넷으로 손쉽게 시계를 사는 시대, 휴대전화가 보편화되고 시계 찾는 이들이 줄어드는 지금. 골목은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이씨는 죽은 시계를 살리듯 골목도 살리고 싶은 마음이다. 그는 “다른 곳에 가서 자리를 잡으려면 몇 년이 걸리고 단골을 만들기도 쉽지가 않다”며 “전통을 지켰으면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권 회복을 원하는 건 상인 조익상(70)씨도 마찬가지다. 조씨는 시계처럼 쉴 새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토해냈다. 그는 “2006년 재개발 추진 이후 매출이 급격하게 줄었다”며 “여기가 추억을 더듬는 손님을 맞이하는 골목이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걷다 보니 멀리서 작은 빨간색 백열전구 하나가 반짝거렸다. 25년 경력의 상인 최승규(48)씨가 전구 아래에서 돋보기를 쓴 채 시계를 고치는 것이었다. 그 모습이 환자를 수술하는 의사처럼 사뭇 진지했다. 가게 이름이 ‘시계 병원’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잠시 후 어떤 남성이 최씨 가게에서 본인 시계에 5만원을 얹어 좋은 시계로 바꿔갔다. 물물교환은 이 골목의 또 하나의 재미다. 이곳에는 50년대 시계부터 명품, 중고, 전자시계까지 다양하다. 그는 “여기는 수리가 안 되는 게 없고 시계에 관한 문제는 웬만한 건 다 해결된다”며 자신감을 표했다. 그러면서 “복원이나 리모델링을 통해 거리를 살렸으면 한다”고 소망했다. 

   
 

골목이 사라지지 않고 명맥을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 가지를 꼽자면 ‘사람’과 ‘기술력’이다. 추억을 좇는 단골이 많아지고 시계수리 기술력이 전국 최고로 소문났기 때문이다. 시계만의 가치와 매력, 아날로그적 감성을 알아주는 손님이 있어 상인들은 힘이 난다. 한 고객은 “이 골목은 외국 시계업자 사이에서도 유명하다. 필요한 부품이 다 있고 장인도 많다”며 뿌듯해했다.

하지만 현재 시계골목은 도시정비구역상 ‘세운4구역’으로 묶여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추억의 공간이 언제 사라질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자본과 전통의 위태로운 줄다리기는 언제쯤 마침표를 찍을까. 서울 예지동 시계골목의 시간은 오늘도 속절없이 흐르고 있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