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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업무 강도·실적 위주 평가로 밤샘 근무
부장검사 폭언‧인격모독에 스트레스 호소
관습적인 검찰 내 ‘상명하복’ 문화 도마위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지난 5월 19일 이제 막 법조인으로 첫발을 내디딘 30대 초임 검사가 돌연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바로 임용 2년 차 서울 남부지검 형사2부 소속 김홍영(33) 검사. 김 검사는 유서와 함께 서울 양천구 목동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김 검사가 남긴 유서에는 ‘물건을 팔지 못하는 영업사원의 심정이 이렇겠지’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유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그의 자살 원인은 과도한 업무에 의한 스트레스로 방향이 흘러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김 검사의 지인들은 그가 죽음을 선택한 데는 직속상관이었던 김모 전 부장검사와의 갈등이 직접적인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그가 친구들과 주고받은 메시지를 비롯해 주변인들의 진술 등 이를 증명하는 정황과 증언이 속속들이 밝혀졌다.

현재 유족들은 김 검사의 죽음이 단순히 업무적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 아닌 김 전 부장검사의 폭언과 인격 모독이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김 전 부장검사는 자신과는 관련 없는 일이라며 유족들의 연락을 회피하는 상황이다.

김 검사의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에 김 전 부장검사가 상당한 책임이 있다”며 남부지검과 대검찰청, 청와대에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에 대검의 지시에 따라 남부지검은 자체 조사에 나섰고, 이후 대검 역시 직접 진상규명에 착수했다.

검찰은 이번 사건으로 조직 내 군대식 ‘상명하복’ 문화가 여전히 만행하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대 법대 출신의 전도유망했던 초임 검사의 갑작스러운 죽음. 대체 검찰청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돌아오는 장기 사건들이 목을 조인다”

김 검사가 생전에 근무한 남부지검은 여의도 인근 증권가를 관할하는 곳이라 금융 관련 고소‧고발 사건들이 많고 업무 강도가 다소 높은 편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검사가 지인들에게 보낸 카톡에는 ‘거의 이틀 밤을 새웠다. 매달마다 시험 치는 느낌’, ‘숫자 몇 개 남았는지로 모든 걸 평가한다’, ‘매일 실적을 취합해서 일일보고를 만들고, 매주 화요일마다 월간업무보고를 만들고, 매월 말에 4대악 실적보고를 만든다. 각 실적 취합 시점도 달라서 만들 때마다 계산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가 남긴 유서에도 ‘사건은 늘어만 간다’, ‘돌아오는 장기 사건들이 목을 조인다’, ‘물건을 팔지 못하는 영업사원들의 심정이 이렇겠지’라고 쓰여 있었다.

김 검사가 과도한 업무와 실적 위주의 평가로 인해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했음을 짐작케 한다.

또한 김 검사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어금니에 씌운 금니가 빠지고 자면서 귀에서 피가 나는 등의 건강상의 문제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서에서 ‘병원에 가고 싶은데 병원에 갈 시간이 없다’, ‘살고 싶다’는 내용을 남기기도 했다.

동기생들은 “김 검사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 이틀 전 그가 맡았던 7건의 사건을 다른 평검사에게 재배당 당한 것을 들었다”며 “이로 인해 자괴감과 모멸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과도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김 검사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 유가족과 지인들의 입장이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해 우수한 성적으로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엘리트에 평소 밝고 명랑했던 그가 단순히 그 이유만으로 스스로 죽음을 택할 리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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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 폭언과 인격모독에 자살충동 느껴

김 검사가 죽음을 택한 것은 과중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뿐만이 아니라 직속상관이었던 김 전 부장검사의 폭언과 인격모독이 직접적인 원인 제공을 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 검사와 김 전 부장검사가 함께 일하기 시작한 지는 약 4개월 전. 법무부 법조인력과장으로 있던 김 전 부장검사가 올해 1월 서울 남부지검 형사2부장으로 발령되면서부터다.

유가족과 지인들에 따르면 김 전 부장검사는 김 검사가 평소 보고를 할 때 결재판으로 몸을 찌르거나 수시로 폭언을 퍼붓는 등의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또한 술자리에 불러내 술시중을 들게 하거나 공개적으로 모욕감을 주는 등 부적절한 행동이 지속됐다.

실제 김 검사는 생전 대학 동기들과의 카톡 대화에서 ‘부장검사에게 매일 욕을 먹으니 살이 빠진다’, ‘맨날 욕먹으니 자살 충동이 든다’, ‘울적해서 유서를 작성해봤다’고 말했다.

또 ‘술자리 끝났는데 부장이 부른다’, ‘술 취해서 잘하라고 때린다...슬프다 사는 게’, ‘욕을 먹어도 웃으면서 버텼더니, 술 마시면서 나한테 당당하다고 욕을 했다’ 등 업무 외적인 술시중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김 전 부장검사의 부하 직원에 대한 폭언과 인격모독은 김 검사만이 겪은 문제는 아니었다.

김 전 부장검사가 법조인력과장으로 근무할 당시에도 서류를 집어던지거나 막말을 하는 등 폭력적인 행동으로 함께 일하던 평검사들과 법무관들이 그를 기피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유가족과 사법 연수원 41기 동기생들은 지난 5일 ‘김홍영 검사 사망에 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김 검사의 죽음이 단순 업무 스트레스에 의한 것이 아닌 다른 요인에 의한 것이라는 의혹을 품고 있다”며 “그 의혹이 낱낱이 밝혀지기를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김 전 부장검사는 남부지검으로 발령된 지 5개월 만인 6월 10일 서울고등검찰청으로 전보된 상태다. 김 검사의 사망으로 인한 문책성 전보가 아니냐는 주장에 대해 법무부는 개인의 의사에 따른 전보라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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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만행하는 검찰의 ‘상명하복’ 문화

검사들이 상사의 가혹행위로 자살한 사건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3년 10월 부산지검 박모 검사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1년 대전지검 허모 검사는 ‘죄송합니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목을 매 숨졌다. 이들 모두 상사로부터 느낀 인간적 모멸감 때문에 자살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의정부지검 임은정(42·여) 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남부지검에서 연판장 돌려야 하는 거 아니냐, 평검사 회의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런 말들이 떠돌다 사그라졌다. 말리지 못한 죄로 동료들 역시 죄인이라 누구 탓을 할 염치도 없었다”며 김 검사의 죽음과 관련해 검찰을 강하게 비난했다.

그는 “스폰서를 달고 질펀하게 놀던 간부가 나를 부장에게 꼬리 치다가 뒤통수를 치는 꽃뱀 같은 여검사라고 욕해 10여 년 전에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며 자신이 검찰에서 겪은 폭언 일화도 공개했다.

현직 검사로 몸담고 있는 A씨는 “검찰 내 상사의 가혹행위로 인해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검사들이 많다. 김 전 부장검사는 후배들에게 갑질하는 수많은 상사들 가운데 한 명에 불과하다”며 검찰 내 ‘상명하복’ 문화가 관행되고 있음을 언급했다.

그는 “현재 검찰 내에는 군대식 상명하복만 있을 뿐 소통문화가 전혀 갖춰지지 않았다”며 “검찰 내 민주주의 훈련과 내부적 민주주의 실현이 시급하다”고 꼬집었다.

2004년 대검은 검사들이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 대해서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검사는 검찰 사무에 관해 상사의 명령에 복종한다’고 규정한 ‘검사동일체원칙’을 폐지한 바 있다.

검사동일체원칙이 사라진 지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일이 발생한 것은 검찰 내 상명하복 문화가 여전히 뿌리 깊게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김수남 검찰총장은 최근 대검찰청 확대간부회의에서 김 검사 자살 사건 관련해 “상사나 선배가 감정에 치우쳐 후배를 나무라거나 인격적인 모욕감을 줘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험이 부족한 신임 검사 등 후배들이 어려운 검찰 업무에 빨리 적응하고 능력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지도하고 교육하는 것이 상사와 선배들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김 검사의 죽음을 계기로 더 이상 이 같은 비극적인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검찰 내 조직 문화 개선이 일어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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