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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혜화동에서 ‘보성문구사’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어”

대한민국 문구점의 오랜 역사가 그대로 살아 숨 쉬는 곳이 있다. 그곳은 바로 종로구 혜화동 혜화초등학교 맞은편에 자리한 ‘보성문구사’다. 보성문구사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문구점으로 잘 알려졌다.

미아리 영훈중·고등학교 후문에서 처음 문구점을 시작했다는 보성문구사의 터줏대감 이씨(77) 할아버지. 그는 경신중·고등학교, 구 보성중·고등학교(현 종로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 앞을 거쳐 현재 혜화초등학교 앞에서만 20년 가까이 문구점을 운영하고 있다. 문구점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씨 할아버지의 삶은 가장 오랜시간 몸담은 보성문구사를 빼곤 설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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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보성문구사가 지난 2013년부터 새 주인을 애타게 찾고 있다. 이제는 문구점을 접고 여생을 편히 보내고 싶다는 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급매로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기자가 방문한 그날(2016년 8월 9일)까지도 임자가 나타나지 않은 것을 보아하니 할아버지의 작은 바람을 이어갈 새 주인을 찾는 일이 쉽지는 않은 모양이다.

오래된 시간만큼 많은 이들에게 소중한 추억의 장소로 기억되는 보성문구사.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 모를 보성문구사 속 이씨 할아버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기자는 이른 아침부터 혜화동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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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문구사는 혜화동로터리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이씨 할아버지가 직접 만들었다는 초록색 간판이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았다. 뽀얗게 내려앉은 먼지와 ‘교련복’이라는 글씨가 간판의 나이를 실감케 했다. 준비물을 사기 위해 앞다퉈 모여든 학생들로 북적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방학 때문인지 보성문구사의 오전은 비교적 한산했다. 10시가 조금 안된 시간, 안주인인 유씨(70) 할머니가 가게 한편에 놓인 소파에 앉아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기자에게 할머니는 흔쾌히 의자 하나를 내어주셨다.

할머니는 평소 같음 너 나 할 것 없이 볼펜, 샤프심, 지우개 등 필기구를 비롯한 각종 준비물을 사기위해 몰려든 학생들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오전을 보냈어야 하지만 여름방학이 시작된 덕에 요즘은 조금 늦게 가게 문을 연다고 운을 뗐다.

방학이나 수업시간처럼 문구점을 찾는 학생들이 드문 시간에 할머니는 바느질을 하거나 한자 공부, 성경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물밀듯이 밀려오는 학생들 때문에 정신없기도 하겠지만 막상 이렇게 조용하면 적적할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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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문구점을 찾는 손님 대부분이 어린 학생들이라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특히나 대형 문구점이 많아진 요즘은 더욱 그렇다. 이날 문구점에서 기자가 만난 손님도 주머니에서 쌈짓돈을 꺼내 캡슐뽑기기계를 돌리는 어린 초등학생이 대부분이었다. 할머니는 하지만 절대 가격을 보태거나 속여 받는 일은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내가 얼마 전에 길을 가다 파프리카를 사려는데 보니까 옆에 바구니 물건이 더 싱싱해 보이는 거야. 그래서 저것들로 바꿔달라니까 주인이 물건을 뺏으면서 안 판다는 거야. 내가 다음번에 뭘 또 살 줄 알고. 한 번 왔다가는 뜨내기손님은 없어요. 문구점도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가격을 올려서도 안되고 불친절해서도 안돼. 백년손님이 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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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가게 안팎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얼마나 오래됐는지 짐작조차 어려운 포장지가 바랜 물감부터 옛날 영화에서 볼법한 교련복까지 가게 안을 빼곡하게 채운 물건 하나하나가 세월을 말하고 있었다. 엄마를 보채 얻어낸 동전 몇 개로 사 먹던 쫀드기, 아폴로 등 흔히 불량식품으로 불리는 간식들이 반가움을 자아냈다.

   
▲ 경성중·고등학교와 보성중·고등학교 배지, 단추, 마크ⓒ투데이신문

그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경신중·고등학교, 보성중·고등학교의 오래된 배지와 단추, 마크였다. 할머니는 못해도 족히 40년 가까이 된 것들이라며 지금은 어디서도 구하기 힘들다고 했다. 이제는 중년의 가장이 된 당시 학생들이 자녀들과 함께 문구점을 찾아 “이거 아빠 학교 다닐 때 있던 건데”라며 추억을 곱씹고 가곤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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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2시가 다 될 무렵 할머니와 교대하기 위해 이씨 할아버지가 문구점에 도착했다. 할아버지는 숨돌릴 틈도 없이 오자마자 할머니가 미처 다 하지 못한 문구점 살림살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문구점을 운영하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밴 습관처럼 보였다. 이내 할머니가 앉아있던 소파에 편히 자리 잡은 할아버지는 자연스럽게 보성문구사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할아버지는 군에 입대하기 전 지금의 한국전력에서 3년간 근무했다. 이후 군 생활을 마친 28살 무렵(할아버지의 고향은 황해도로 남한에서 다시 호적을 만드느라 조금 늦은 나이에 입대했다) ‘한전으로 돌아가야 하나’, ‘무엇을 먹고살아야 하나’ 생계를 고민하던 중 장사를 결심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문구점이었다. 전과, 문제집, 참고서 뿐만 아니라 각종 학용품, 체육복 교련복 등 학생들이 학교 다니면서 필요한 갖가지 물건을 판매하는 문구점이 일종의 ‘문화사업’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렇게 미아리 영훈중·고등학교 후문에서 할아버지의 문구점 역사가 처음 시작됐다. 하지만 남자 혼자서 물건을 떼다 사고파는 일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결국 1년 후 운영하던 문구점을 접고 당시 할아버지와 같은 일을 하던 친척들을 도우며 문구점과의 연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지금의 아내 유씨 할머니와 백년가약을 맺으며 다시 문구점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경신중·고등학교, 보성중·고등학교를 거쳐 현재 혜화초등학교 앞에서까지 문구점을 운영한 것이 벌써 근 50년째다.

   
▲ 할아버지가 직접 쓴 개학 전 구매할 물건 목록ⓒ투데이신문

한 평생 가까이 문구점이라는 한 우물만 판 할아버지는 슬하에 둔 1남 1녀를 남부럽지 않게 키워냈다. 또한 당신의 남은 생도 경제적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여유도 있다. 자식들은 편히 모시겠다며 이제 그만 문구점 사업을 접길 권한다. 할아버지 역시 여행도 다니면서 남은 생을 즐겁게 보내고 싶다. 그래서 지난 2013년 가게를 급매로 내놓았다. 하지만 선뜻 문구점을 인수하겠다는 임자가 나타나지 않아 아직까지도 할아버지가 문구점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업종이 아닌 문구점을 그대로 이어갔으면 하는 게 할아버지의 바람. 앞으로도 새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어쩌냐는 기자의 질문에 할아버지는 “어쩔 수 없지 뭐. 여기 있는 물건 하나하나 내가 다 사들인 건데 버리고 가?”라며 크게 호통쳤다. 이날 본 할아버지는 교련복처럼 지금은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물건 하나도 허투루 버리는 법이 없었으며, 선풍기도 고장 날 때마다 고쳐가며 수 십 년 넘게 사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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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제는 정말 이씨 할아버지가 보성문구사를 떠나야 할 때가 온 듯하다. 연세도 연세지만 건강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얼마전 당뇨로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유씨 할머니는 그 당시를 떠올리며 “이제 그만해야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직 제 주인이 나타나지 않은 문구점을 무작정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 하루빨리 보성문구사의 기나긴 역사를 이어줄 좋은 새 주인이 나타나 할아버지 마음의 짐을 덜어줄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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