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투어, ‘바나나보트 참사’ 책임회피 논란

   
 


저녁시간 밥집을 가면 퇴근 후 삼삼오오 모여 저녁을 먹는 아저씨들이 한숨을 내쉬며, 혹은 역정을 내듯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 볼 수 있다. “돈 위에 사람이 있는 것이지 사람 위에 돈이 있는 게 아니다”. 또 어린 시절 친척 어른들도 명절 때가 되면 “돈이 중해”라고 종종 하곤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하는 건 분명 사람 위에 돈이 있는 것처럼 구는 상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투데이신문>에서는 기업의 갑질 등 사람 위에 돈이 군림하는 경제 이슈를 생생하고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해 1인칭 시점에서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소개하는 ‘문제적 경제’를 기획하게 됐다.


 

   
 

해외여행 떠난 3일 째, 사고
보트 운전자, 면허 미소지자
돈 없어 중환자실 이송 지연
사고 이틀 후 현지서 아들 화장

【투데이신문 박지수 기자】 우리 가족은 나, 아내, 딸, 아들까지 4명이다. 그런데 아빠인 내가 아무리 불러도 우리 아들은 대답이 없다. “복덩아, 복덩아...” 애타게 불러도 우리 아들은 대답할 수 없다.

지난 1월 9일 오전, 언제나 그랬듯 우리 가족은 즐거웠다. 특히 아들과 딸의 대학 합격 소식에 아이들 장래를 근심하던 그동안과 달리 가족 모두 마음 편히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이날은 우리 가족이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를 여행하는 3일째 되는 날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날 오전, 아이들은 인도네시아 빈탄에 있는 리조트의 해양스포츠를 즐기고 있었고 아내와 나는 해양스포츠 장소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서 여행중이었다. 아내와 둘이 있는 중간중간에 아이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여행 전부터 해양스포츠에 대한 기대가 컸던 아이들이 과연 잘하고 있을까, 또 얼마나 즐거워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났고 이번 여행은 최고의 여행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런데 그러던 중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여기 좀 와 보셔야 겠습니다. 아이들이 다쳤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이 말을 전해듣고 난 ‘놀던 중 팔이나 발이 다친걸까’하는 생각과 함께 나를 보고 안심과 서러움의 눈물을 흘릴 아이들을 달래줄 방법을 고민하며 아이들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날 반기는 아이들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도착해보니 딸은 요추가 골절되고 간 출혈이 심해 병원으로 후송된 후였으며 아들은... 우리 아들은... 피를 잔뜩 흘리고 이 세상을 떠난 뒤였기 때문이다.

해양스포츠 업체 관계자, 리조트 관계자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어떻게 하다가 우리 아이가 이 지경이 된 거냐고, 왜 우리 아이가 여기에서 이런 일을 당한 거냐고. 바나나보트를 타던 중 방파제 안에서 급회전을 한 탓에 아이들은 바닷가에 떨어졌고 바나나보트를 몰던 운전자 역시 바닷가에 떨어져 해당 바나나보트에 매달려있던 보트가 아이들을 세게 친 것이라고 그들은 설명했다. 게다가 현지 경찰이 조사한 결과 아이들이 타고 있던 보트 운전자는 면허가 없는 미성년자였다. 울화가 치밀어 올랐고 표현할 수 없는,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그 무더운 인도네시아 날씨에도 몸에 한기가 느껴졌다.

   
▲ 바나나보트를 매달고 달린 모터보트

같은 시간 딸 아이를 만나러 현지 병원에 간 아내는 3만 달러(한화 2800만원)가 없어 멈추지 않고 피를 흘리는 딸을 중환자실로 옮기지 못하고 쩔쩔 매고 있었다. 타지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큰 돈이었기에 아내는 하나투어에 연락해 비용 지급을 요청했지만 거절 당했다. 결국 리조트 측에서 돈을 지불해 급하게 딸 아이를 중환자실로 옮길 수 있었다.

아들은 1월 11일 현지에서 화장했다. 슬픔 앞에서 꼼짝할 수 없었지만 장례를 치러야 했고 동생의 죽음을 본 딸 아이는 피를 흘리고 중환자실에 누워있으면서도 동생을 봐야 한다고, 동생 마지막 가는 길을 보내줘야 한다고 병실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홀로 몸 가누기도 힘든 딸을 데리고 아들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한국에 가야 한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게 된 것일까.

우리 부부는 혼자서 몸도 가누지 못하는 딸을 데리고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 했다. 그런데 이날까지 하나투어가 마련해준 비즈니스 석은 하나 뿐이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딸만 비즈니스석에 눕혀두고 아내와 나는 3등석에 앉으라는 게 말이 되나. 하나투어는 잔여석이 있는지 여부를 살펴봐야 한다며 비즈니스석을 주지 않으려 했다. 도저히 딸 혼자는 둘 수 없다고 사정을 거듭해 말하니 그제서야 아내와 나에게도 비즈니스석을 내 줬다. 그런데 다음날 비행기에 올라타 보니 ‘잔여석이 남을지 모르겠다’는 하나투어의 말이 무색하게도 비즈니스 석은 텅텅 비어 있었다. 화장한 아들을 품에 안고 혼자 움직일 수도 없는 딸을 데리고 비행기를 탄 아내와 나는 서러워 서로 아무말 없이 계속 눈물만 흘렸다.

1월 13일 딸은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고 이 병원 장례식장에서 3일동안 아들을 보냈다. 아들의 장례식에 온 하나투어 직원들은 화한과 함께 조의금 100만원을 주고 갔다. 중상을 입은 딸에 대해서는 한 마디 물어보는 일이 없었다.

   
▲ ⓒ게티이미지뱅크

아들이 떠난 후 우리 가족은 모든 게 예전같지 않다. 아내는 집안일을 모두 손에서 놨고 딸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지만 입학한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있다. 다니던 회사를 겨우 나가고 있는 나는 104kg에서 85kg으로 살이 급격히 빠졌고 다니지 않던 성당에 나가고 있다. 성당 내 마라톤 동호회도 가입해 뛰는 동안이라도 아들을 잃은 슬픔을 잊어보려 하고 있지만 아직은 힘들다. 집안일을 놓고 먹기를 거부하는 아내에게 힘이 되고자 집안일을 하고 밥을 해 먹이려고 애쓰고 있으나 이마저도 아내는 싫어해 웃음꽃만 피던 우리집은 매일같이 실랑이가 벌어진다.

오늘도 슬픔에 잠겨 있는 집을 나와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소리친다. ‘아들아, 불러도 대답없는 내 아들아, 왜 이렇게 됐을까. 이건 악몽일거야. 그리고 누구에게 이 책임을 물어야 할까. 우리에게 해양스포츠를 소개한 하나투어는 너의 죽음에 관해 팔짱만 끼고 있는데 더 이상 너와 마주 않아 밥을 먹을 수 없고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이 슬픈 현실을 누구에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

김민호(50)씨는 고(故) 김홍석 군의 죽음이 현지 여행업체의 과실이라고 주장하는 하나투어의 입장에 분노하고 있다. 여행일정표, 예약안내 문자 내 동영상 URL 등을 통해 하나투어는 고 김홍석군과 그의 누나 김모(21)씨가 탑승한 바나나보트 등의 해양스포츠를 소개하고 있으며 특히 해당 동영상에는 하나투어의 로고까지 삽입돼 있음에도 자사에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씨는 “하나투어에서 해당 해양스포츠를 소개해주지 않았다면 우리 아이들은 바나나보트를 타지도 않았을뿐더러 아들이 죽는 일은 없었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이에 따라 김 씨는 지난 7일 아들 고 김홍석 군에 대한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하나투어를 상대로 소송을 접수했다.

한편 하나투어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해당 사건은 현지리조트 내의 해양스포츠업체를 통해서 예약을 해 발생한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현지리조트는 ‘100% 자사의 과실’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보상할 것을 약속해 이와 관련, 김 씨 역시 수긍했으나 불현듯 하나투어에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당초 계획했던 보상 절차를 밟고 있는 중이라고 강조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른바 이 ‘바나나보트 사망사고’에 분노하고 있다. 순식간에 벌어진 사고로 앞길이 창창한 청년이, 한 가정의 장남이 눈을 감았기 때문이다. ‘1등 여행사’라고 자칭하는 하나투어가 여행상품을 더 좋게 보이려고 동영상을 만들고 고객들에게 홍보하기에 앞서 자사가 소개하는 상품 및 서비스가 고객에게 어떻게 제공되고 있는지, 안전한지 확인했다면 지금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분노할 일도, 고 김홍석 군의 가족이 눈물을 흘릴 일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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