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미선 칼럼니스트
·스토글 대표이사
·경찰교육원 외래교수 / 교보문고 독서코칭 전문강사 / 아동문학가

【투데이신문 윤미선 칼럼니스트】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문구를 들어 보았을 것이다. 미국인이 가장 존경한다는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의 게티즈버그 연설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연설의 내용은 민주 정부의 설립 원칙을 밝힌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연설의 하나로 꼽히고 있는 이 연설은 그만큼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 때문이다. 영어로 272개 단어밖에 되지 않는 이 연설의 힘이 아직까지도 민주주의의 가치를 알리는 말이 되고 있다.

1863년 11월 19일. 펜실베이니아주 게티즈버그 국립묘지 앞 연단에 선 링컨은 쇠테 안경을 쓰고 원고를 내려다봤다. 그는 간결하고 감동적인 말로 민주주의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토로했다. 2분여 동안의 짧은 연설이 끝나자 청중은 얼어붙은 듯했다. “완전히 실패했군.” 관중의 반응에 실망한 링컨이 내뱉은 말이었다. 링컨이 몸을 돌려 자리를 향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도리스 굿윈 전 하버드대 교수가 지은 『권력의 조건(Team of Rivals)』이 전한 게티즈버그 연설 장면이다. 이것은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설의 하나로 꼽힌다.

게티즈버그는 남북전쟁 최대의 격전지였다. 북군과 남군 합쳐 16만 명 이상이 참전해 5만여 명이 전사했다. 전투 현장에 지어진 국립묘지에서 링컨은 개관 기념 연설을 했다. 그러나 링컨은 주 연설자가 아니었다. 당대의 명연설가 에드워드 에버렛 국무장관이 주 연설자였다. 에버렛은 링컨에 앞서 2시간이 넘게 연설했다. 에버렛은 나중에 편지를 보내 “대통령께서 2분 동안 한 것처럼 저도 2시간 동안 개관 행사를 빛나게 할 훌륭한 연설을 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라고 고백했다.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은 세계 역사의 고비 때마다 다시 등장했다.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는 1963년 워싱턴 링컨기념관 앞에서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연설을 한다. 이 연설의 첫 머리 “백 년 전, 한 위대한 미국인이…”는 100년 전 게티즈버그에서 연설한 링컨을 지칭한다. 프랑스 헌법(1958년 제정)은 프랑스공화국의 설립 원칙으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규정했다. 버락 오바마는 지난해 11월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뒤 “우리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지구상에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게티즈버그 연설은 272개 단어로 이루어진 짤막한 문장 속에 민주주의 이념을 압축했다. 국민의 민주정부 수호 의무와 자유를 실현하기 위한 헌신 의지를 담았다.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미 독립 이후 뜨거운 감자였던 노예 문제를 해결하여 ‘제2의 건국’을 이룬 링컨은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이 됐다.

우리는 연설을 할 때 어떻게든 자신의 이야기를 청중들에게 전달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그런데 그 최선이 청중을 위한 최선이기보다는 자신에게 다하는 최선이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러다보니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게 되고 심지어 청중의 몫인 평가까지 자신이 도맡아 하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만약 링컨이 에버렛의 2시간의 긴 연설을 들은 청중들에게 또다시 자신이 준비한 1시간이 넘은 연설을 고집했다면 어땠을까?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연설 하나를 도둑맞았을 것이다.

필자는 게스츠버그 연설을 보면서 독일 속담이 떠오른다. “진리는 짧게 답한다. 그러나 허위는 길게 변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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