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 수인 엄마 김명임씨, (우) 영만 엄마 이미경씨 ⓒ투데이신문 최소미 기자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지난 1000여일 동안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광화문 광장은 상처와 아픔의 공간이었다. 한여름 따갑게 내리쬐는 땡볕 아래서, 한겨울 살결을 스치는 칼바람에도, 무엇보다 모진 정부의 무관심에도 유가족들은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해 꿋꿋하게 버텼다. 그리고 그들 뒤에는 100만개의 촛불이 함께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시민들의 진심 어린 위로에 보답하기 위해 단원고 희생 학생과 생존 학생 어머니들로 구성된 4.16 가족 극단 ‘노란리본’을 꾸렸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직접 연극을 통해 시민들의 고통과 아픔을 보듬기로 했다.

그녀들이 처음 연극을 시작한 것은 지난 2015년 10월, 세월호 참사 이후 심리 치료의 일환이었다. 어찌어찌 모임은 구성됐지만 그저 일주일에 한 번 다 함께 희곡 한 편 읽는 정도였다. 그렇게 접한 여러 개의 작품 중에 어머니들에게 가장 호평을 얻어 탄생한 것이 바로 경기도 안산 반월·시화 공단을 배경으로 비정규직들의 애환을 코믹적으로 그려낸 옴니버스 극 <그와 그녀의 옷장>이다.

그리고 지난 23일 노란리본은 최근 부당하게 무대를 빼앗긴 예술인들에게 무대를 돌려주기 위해 세워진 ‘광화문 블랙텐트’ 무대 위에 올랐다.

<그와 그녀의 옷장>은 총 3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됐다. 부당 해고 위기에 놓인 경비원 아빠 호남의 옷장, 파업 중 용역업체 직원이 된 아들과 맞닥뜨린 엄마 순심이의 옷장, 장기 투쟁 중인 노조위원장과 사랑에 빠진 막내아들 수일이의 옷장과 얽힌 사연으로 이야기는 흘러간다.

   
▲ (좌) 영만 엄마 이미경씨, (우) 예진 엄마 박유신씨 ⓒ투데이신문 최소미 기자

아파트 경비원인 호남은 동료 영광과는 세상에 둘도 없는 40년 지기 절친이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아파트 경비실장으로부터 둘 중 한명은 조만간 해고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한다. 호남과 영광은 서로에게는 비밀로 한 채 경비실장에게 잘보이려 뇌물을 건네려다 발각되고, 두 사람 사이에서는 이전과는 다른 어색한 기류가 흐른다. 결국 평소 건강이 좋지 않던 영광은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경비복은 호남의 차지가 된다. 하지만 호남은 기분이 좋기는커녕 현실과 우정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며 괴로워한다. 그렇지만 그동안 해고당해 쌓여가는 작업복만 해도 수벌인데 경비복 마저 벗을 거냐는 아내 순심의 타박에 경비복을 놓을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호남은 옷장 속에 묵혀있던 오래된 청카바를 발견한다. 호남은 한때 그 옷을 입고 정의감에 불타올라 불의에 맞서 싸우던 자신의 젊은 날을 떠올린다. 그리고는 파업을 선언하고 영광이 입원한 병원을 찾는 것으로 금갔던 두 사람의 우정은 한층 더 단단해진다.

   
▲ (왼쪽부터) 동혁 엄마 김성실씨, 수인 엄마 김명임씨, 주현 엄마 김정애씨 ⓒ투데이신문 최소미 기자

순심은 아침부터 흘러나오는 콧바람을 숨길 수 없다. 사랑하는 막내아들 수일의 첫 출근 날이기 때문이다. 한평생 작업복만 입고 살아온 남편과 자신과는 달리 깃 빳빳한 양복에 넥타이를 맨 수일을 보고 있으니 흐뭇하기 그지없다. 순심은 서둘러 수일을 출근시키고 자신은 동료 용심과 화심이 있는 파업 현장으로 향한다. 등록금도 비싸고 비전이 없다며 대학에 가지 않겠다는 아들 고삼이와 공부는 곧잘 했지만 취업이 안된다며 공무원 시험에 눈을 돌린 아들 권태 걱정에 한숨 쉬는 용심, 화심과는 달리 순심은 아들 수일 자랑에 웃음꽃이 핀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그들 앞에 용역업체 직원들이 나타나 훼방을 놓는다. 그런데 그중 한명의 모자를 벗겨 얼굴을 확인한 순심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만다. 바로 아들 수일이었던 것. 순심은 자신이 수일을 그런 상황에 내몬 것만 같아 마음이 아프고, 아들만큼은 그렇게 살게 하지 않게 하려고 부당 해고 위기에 놓인 남편 호남에게 경비실장에게 주라며 와이셔츠를 건넨다. 아픈 친구를 배신하면서까지 이래야 하냐고 버럭 화를 내는 호남에게 그동안 해고당해 쌓여가는 작업복만 해도 수벌인데 경비복 마저 벗을 거냐며 모진 말을 한다. 순심 역시 그러고 싶지 않지만 아들 수일만 떠올리면 어쩔 수가 없다.

   
▲ 동수 엄마 김춘자씨, 애진 엄마 김순덕씨 ⓒ투데이신문 최소미 기자

수일은 용역 일을 관두고 새 직장을 구한다. 평소 소심하고 내성적인 수일은 그곳에서의 노조 조합원 교육이 낯설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조합간부 손에 이끌려 300여일간 장기투쟁을 벌이고 있는 ‘사랑 전자’ 투쟁장을 방문한다. 수일은 그곳에서 남자처럼 씩씩한 노조위원장 순애를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동안 노조활동에는 일절 관심도 없던 수일은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랑 전자 투쟁장을 찾아 순애를 돕는다. 하루는 단식 농성을 벌이선 순애는 갑자기 들이닥친 용역들에게 몸과 마음 모두에 상처를 입고, 수일은 그런 그녀를 위로한다. 수일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한 듯, 순애는 마음을 열고 그간 농성을 벌이면서 쌓아둔 속 얘기들을 꺼내 놓고 두 사람은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극 중 순애는 이런 말을 했다. 

“이 조끼를 벌써 300일 넘게 입었네요. 때론 이놈의 조끼가 지긋지긋할 때가 있어요. 1년 내내 조끼만 입고 있는 게 너무 원망스러울 때가 있어요. 그래도 이 조끼 덕분에 세상이 어떤지도 알았고, 사랑스러운 동지들도 만나고, 사랑스러운 수일씨도 만났어요”

아마 순애를 빌려 그녀들의 속내를 꺼내 놓은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인지 순애의 모습에서는 지난 여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삭발과 단식을 강행했던 어머니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 ⓒ투데이신문 최소미 기자

연극을 마치고 그녀들은 배우에서 ‘끝까지 밝혀줄게’라는 피켓을 들고 진실을 외치는 ‘엄마’로 돌아왔다. 연극을 보는 내내 웃음을 멈출 수 없었지만 무대 위에 오른 세월호 어머니들을 보자마자 밀려드는 알 수 없는 뭉클한 마음에 점점 붉어지는 눈시울을 막을 길이 없었다.

이날 블랙텐트에 있던 사람들은 다 함께 작곡가 윤민석의 세월호 추모곡 <약속해>를 불렀다.

‘우리가 너희의 엄마다. 우리가 너희의 아빠다. 너희를 이 가슴에 묻은 우리 모두가 엄마 아빠다. 너희가 우리 아들이다. 너희가 우리의 딸이다. 우리들 가슴에 새겨진 너희 모두가 아들딸이다. 그 누가 덮으려 하는가 416 그날의 진실을. 그 누가 막으려 하는가 애끓는 분노의 외침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우리 모두 행동할 거야. 이마저 또 침묵한다면 더 이상의 미래는 없어. 끝까지 다 밝혀낼 거야. 끝까지 다 처벌할 거야. 세상을 바꾸어 낼 거야. 약속해 반드시 약속해’

   
▲ ⓒ투데이신문 최소미 기자

공연이 끝난 후 객석에 있던 모든 관객과 어머니들은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것은 앞으로 세월호 진상 규명, 온전한 선체 인양, 세월호 특별법 개정을 위해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우리들만의 무언의 약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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